교감, 마음이 불편하다/ 학교 내부자들
출처 : 블로그 '책숲' /이창수의 교감일기 이창수의 교감일기 ①교감, 마음이 불편하다-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얼마나 높은 위치에 서고 싶은가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
<그림책, 교사의 삶으로 다가오다/김준호/교육과실천/중에서>
“야, 얘들 가르치지 않고 점수만 쌓았냐? ”
교감자격연수 중이었다. 쉬는 시간에 강의실 밖으로 나왔다가 우연히 친구를 만났다. 다른 연수 강사로 온 친구였다.
“창수야, 반갑다. 이 시간에 어떻게 여기에 왔냐?”
“어.... 연수 받으러 왔어.”
친구의 질문에 가시 돋힌 느낌을 받았다. 반가운 것은 잠시 서로를 탐색했다. ‘교감 자격 연수 왔어’ 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도 있었는데 약한 목소리로 ‘연수 받으러 왔어’ 라고 대답했다. 나도 모르게 숨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보다.
“무슨 연수?”
“어... 교감 자격 연수”
“뭐? 야, 너. 얘들 가르치지 않고 승진하려고 점수만 쌓았구나?”
“엥. 무슨 소리야...”
교감 자격연수를 받던 날,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에게 들었던 얘기다.
우스게 소리일 수 있겠지만 뼈가 담겨 있는 말인 것 같다. 연수를 받는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친구가 던진 말 한마디가 여러 가지를 생각나게 했다.
현재 제도에서는 교감 되기 위해 최소한 20년을 근무해야 한다. 근무하는 중에 여러 가산점도 취득해야 한다. 그 친구가 말한대로 점수를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특히 벽지 점수라는게 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교통이 불편하고 문화의 혜택이 적은 곳이다. 강원도는 벽지에서 최소 10년 이상을 근무해야 한다.
강원도 지역 자체가 다른 타시도에 비해 근무하기가 열악하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벽지는 말 그대로 첩첩산중인 곳이다.
벽지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가족을 떠나 관사에서 혼자 지내거나 먼 거리를 통근한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대신 벽지근무경력 가산점을 취득한다.
연구학교경력, 보직교사경력, 특수학급경력 등 명부작성권자가 인정하는 가산점도 있다. 경력과 근무성적, 연수성적, 가산점을 집계하여 그해 교감 자격연수 대상자 선발을 위한 면접대상자를 선정한다. 면접고사 대상자에 올랐다고 해서 교감 자격 연수 대상자가 모두 되는 것도 아니다. 그중에서 또 추려낸다.
교육부에서 시행하는 지침을 보면 이렇다.
교감 자격연수 대상자 선발을 위한 면접고사는 형식적인 절차로 운영되어서는 안 되고, 부적격자가 선정되지 않도록 다양한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부적격자라고 하면 금품과 향응을 접대받거나 학생상습폭행, 성 관련 비위, 성적 조작으로 징계를 받은 자는 일단 제외된다. 다양한 검증 절차 과정으로 함께 근무했던 동료 교원과 교육행정직원들로부터 온라인 평가를 받는다.
함께 근무했던 곳은 전에 전에 근무했던 곳까지 포함시킨다. 근무지 한 곳에 보통 3년을 근무한다고 치면 10년 전에 근무했던 교원, 교육행정직원들로부터 평가를 받아야 한다. 면접 고사 당일에는 역량평가도 받는다.
교육과정 운영 지원 역량, 학생 생활교육 역량, 교육 정책에 대한 이해, 교육철학을 맥락으로 한 실천 경험과 해결 전략, 학교의 문제적 상황에 대한 대처 역량인 갈등관리능력, 토의토론능력, 의사소통능력, 문제해결능력을 검증 받는다. 그 뿐인가. 교직관과 교육철학, 교육관에 대해 면접관 앞에서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엄격한 절차를 두는 이유는 교감으로서 갖추어야 할 교직과 교양을 공정하고 실효성 있게 평가하기 위함이고 역량과 자질을 철저히 검증하기 위한 장치다.
특히 시대의 화두인 참여와 소통의 민주적 학교 문화를 이끌어가야 할 능력 여부도 중요하게 검증받는 요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강원도에서는 매년마다 보통 40안팎의 교감 자격을 부여한다.
물론 현행의 인사제도가 문제점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다. 경력 중심의 승진제도가 시작된 게 1953년 교육공무원법 제정부터였다. 그러니 시대의 흐름에 한참 뒤쳐진 것이 아니냐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미래 사화에 교사가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능력 중심의 제도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교원 승진제도로는 교감의 직무 역량을 제대로 확인하고 검증할 수 없다는 이유다. 경력 중심의 승진 제도가 권위적이거나 비민주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라고 보고 있다.
해외 대부분의 국가들이 교장이나 교감을 승진의 개념보다는 기능과 역할의 자리로 보고 있다. 독일과 미국의 경우에는 교사들이 선뜻 승진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교장이라는 막중한 책임감과 통솔력, 지나친 희생을 요구하는 자리를 그다지 달가워 하지 않는다. 그래서 교사 1년 차라도 교장이 될 수 있다. 대부분 승진을 포기한다고 한다.
소환된 미래라고 불리우는 팬데믹 상황 속에서 기존의 제도와 상식들이 바뀌고 있다. 재택근무가 상시화 보편화 되고 있고 비대면 원격 수업이 실시간 쌍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기존에는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제도 안에서 젊은 교사들이 자리매김을 할 수 없었다면 이제 코로나19 이후의 펼쳐질 교육 시대에는 오히려 그들이 주인공이 되어 학교를 변화시켜 나갈 것이며 거기에 따른 보상이 인사제도 안에서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년부터 초등1정 자격연수의 평가 방법이 절대평가로 바뀌었다. 평가 제도가 바뀌는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승진, 전보, 평가, 임용 등 교원 정책의 변화도 불가피해 보인다.
그런데 내 마음 속 한 구석에는 아직도 불편한 마음이 남아 있다. 왜 그럴까? 일반 사화에서는 축하할 일이 아니냐고 대부분 이야기한다. 그런데 학교 안 사람들은 내가 왜 불편해하는지 안다. 교감 승진에 대한 생각들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군 복무 후 1998년 9월 1일자로 강원도 홍천군 내면 운두초등학교로 발령 받았다.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과 홍천군 내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해발 1086m 운두령 기슭에 위치한 학교다. 하루에 버스가 2대가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엌 한 켠에 소를 키우고 아궁이에 장작을 때던 집이 있을 정도로 깡촌이었다. 아이들은 해가 져야 집으로 갔다. 집에 가더라도 놀 친구도 없고 딱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토요일도 학교 운동장으로 온다. 관사에 살고 있었기에 토요일, 일요일 구분하지 않고 아이들과 생활했었다. 학교 교육 외에는 다른 교육의 기회를 받을 수 없는 곳이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산이 전부인 곳이었다. 1998년 9월 강릉 지역에 침투한 무장 공비들이 북으로 도주한 통로가 있는 곳이다. 결혼을 위해 강원도 3대 도시 중 하나인 강릉으로 내려 왔고, 그후 지역 만기로 동계올림픽의 고장 평창으로 옮겨 다녔다. 벽지에도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가야 한다. 열악한 곳이기 때문에 가산점이라는 인센티브가 없다면 모두가 마다할 것이다. 어찌어찌하여 발령이 났더라도 1년이 지나면 떠나려고 할 것이다.
벽지 아이들은 매년 바뀌는 선생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벽지에 찾아가는 선생님들이 점수만 쌓기 위해 가는 사람으로 비춰져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설령 승진하기 위해 벽지를 찾아가는 선생님이라도 교육적 열정은 변함이 없다고 본다. 인사제도는 바뀌어야겠지만 기존의 것들을 모두 부정하고 새롭게 설계하려는 것에는 반대다.
“사람들이 승진하려고 하고 성공하려고 할 때는 주변을 못 봐요. 그런데 은퇴한 한 선배들을 만나면 표정이 다른 걸 느껴요. 여유가 생기고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시선이 보여요” 『책은 도끼다 』박웅현, 149쪽
광고인 박웅현의 이야기다. ‘사람이 승진하려고 하고 성공하려고 할 때는 주변을 못 봐요’ 처럼 승진에만 어두워 아이들을 소홀하게 보아 넘긴다면 당연히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보다 승진에 관심이 있고 오직 점수라면 물불을 안 가리는 교사들, 점수 앞에서는 양심조차 팔아치우는 교사들이 있다면 이들을 걸려 내는 적절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김도일의 『참스승- 인물로 보는 한국 기독교교육사상 』222쪽에 보면전영창 교장 선생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거창고등학교를 설립하였고 졸업생들을 위해 직업 십계명을 만들었다. 졸업식에는 반드시 10계명을 큰 소리로 외우는 순서를 갖는다고 한다.
1계명이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계명은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계명이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람들은 부와 사업의 성공, 그리고 자신이 종사한 직업에서 자리를 높여 가는 것을 행복이라고 본다.
전영창 교장 선생님은 인생의 궁극적인 성공을 한 사람에게라도 사랑을 다 바쳤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사랑은 섬김이다.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라는 말은 그만큼 섬기는 자리가 힘드니 각오하라는 말로 나에게 들린다.
‘교감으로 승진했다고 해서 자랑할 일이 아니라 섬겨야 할 대상이 많아졌다’
교사가 학생을 섬겨야 하는 것처럼 교감은 학생을 포함하여 교직원을 섬겨야 한다. 섬겨야 할 대상이 많아졌으니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섬기는 것, 가진 사람이 가지지 못한 사람을 섬기는 것, 도덕적 가치관이 높은 사람이 도덕적 가치관이 낮은 사람을 섬기는 것, 교육을 받은 사람이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을 섬기는 것. 그것이 섬김이다”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강현정 전성은, 38쪽
교감으로 내가 붙잡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자 철학이다. 이런 불편함이라면 평생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역사적으로 기존의 승진제도를 깨고 파격적으로 승진하여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된 사례도 있다. 임진왜란의 명장 이순신과 정조대왕이 신임했던 정약용이 그 주인공이다.
“내가 순신을 천거해 차례를 뛰어넘어 수사로 임명되었으므로 사람들은 갑작스레 승진된 것을 의심하였다. 유성룡이 아니었다면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없었다. 이때가 임란 1년 전, 왜적의 동병 소식에 추천한 것이었다.”『이덕일의 역사사랑 』이덕일, 149쪽
“1797년(정조 21) 36세 윤 6월 초2일, 곡산부사에 제수되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구설 때문에 두려우니 물러가서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마침 곡산에 빈자리가 있어 어필로 첨서낙점하였다.
사폐 하는 날 임금이 친히 유시하기를 지난번 상소문은 문사를 잘 구사했을 뿐만 아니라 심사도 빛나고 밝으나 참으로 우연한 일이 아니다. 바로 한번 승진시켜 쓰려고 하였는데 의론이 들끓으니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
한두해쯤 늦어진 다고 해서 해로울 것은 없으니, 떠나거라. 장차 부르리니,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다산의 한평생 』정규영, 106쪽
알맞은 인재를 알맞은 자리에 쓴 것이다. 교감 인사발령부터는 적재적소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직무가 요구하는 자격 요건과 개인이 요구하고 있는 능력 조건이 균형 있게 대등되고 적합하도록 인력을 배치하는 원칙이다. 교감이 차지하는 역할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가 아닐까.
교감은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시야가 좁은 사람은 설령 승진했다고 해도 언젠가 일에서 막힌다. 대인관계에 힘쓰며 열심히 일하는 것만 중시되는 시기는 처음 몇 개월 뿐이다. 그 기간이 지나면 일 하나만 아는 교감은 그야말로 일 밖에 모르는 바보일 뿐.
넓은 시야로 자신의 업무 능력 주변에도 눈을 돌리기 위해서는 많이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루두루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
얼핏 보기에는 일과 관계 없는 책이라도 읽어야 한다. 다양한 책을 읽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생각들이 떠오른다.
교감자격연수 중에 만났던 친구를 다시 만난다면 이렇게 얘기해 주고 싶다.
‘교감이 되니 마음이 불편해. 학생과 교직원을 잘 섬겨야 하니까’
학교 내부자들(박순걸)
https://blog.naver.com/bookwoods/221327852954
C채널 힐링토크 회복 플러스 360회 “독서 통해 그리스도 향기를 전하다" - 삼척 서부초등학교 이창수 교감
https://youtu.be/MlxeVb-MYt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