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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건들지마라
출처 : 여성시대 공포글에리
사진 출처 : https://giphy.com/gifs/zaX2Np7LrLaOA
(1)
좀비가 생긴 이유는 아무도 몰라.
그저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이야. 늘 그렇듯 인도로 걸어다니는 사람도, 차를 타고 도로를 지나는 사람도 있어. 앞을 보며 천천히 걸어.
오늘은 바람도 적당하고 기온도 적당하고 미세먼지도 없어. 날씨가 참 좋아. 친구를 만나서 어디 놀러갈까? 아니면, 가족과 외식을 할까? 그런 평범한 생각을 해.
그런데 갑자기 저 앞에서 누군가 비틀비틀 걸어와.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어? 술에 취했나?
대낮부터 낮술을 하네. 이상한 짓하면 어떡하지.
괜한 해코지를 당할까봐 미리 옆으로 몸을 피해. 그런데 영 이상하네. 정확히 뭐가 이상한 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직감이 빨간 경보를 울리고 있어.
왜?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이 찝찝함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하는 걸까?
키에엑!
…무슨 소리지?
그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비틀비틀 걸어오던 누군가가 갑자기 몸을 틀어 지나가던 남성의 어깨를 씹어먹는 걸 목격해. 주변에서 시끄러운 비명이 울리고, 당혹감에 오히려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지.
머릿속엔 언제나 배우던 화재 시 대피 요령, 지진 발생 시 대피 요령 등 별 것이 다 있지만 그건 도움이 되지 않아.
그 어디에도 사람을 씹어먹는 사람을 마주할 때의 내용은 없어.
어깨를 뜯긴 남자가 몸을 뒤틀며 비명을 지르다가 쓰러져. 죽었나 싶은 찰나에 어깨 뼈를 뱉은 사람이 근처에 주저앉아 오줌을 지린 남자의 머리를 쥐어잡고 목을 물어뜯지.
시끄러운 비명들은 여전해.
그런데….
저건 여자인가, 남자인가?
자세히 보니 몸은 온통 피투성이에 두피가 벗겨져 있어.
어… .
저 사람…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다른 사람들은 어째서 저 사람을 못 보고 지나쳤지? 핸드폰을 한다고 해도 피 냄새가 날 텐데. 단순히 노숙자라고 생각했나?
당황스러운 상황은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어.
우드득…. 쩝…. 쩝….
꿀꺽.
아무것도 못하고 서 있다가 문득 어깨가 뜯긴 남자를 봐. 남자는 바닥에 쓰러져서 미동이 없어.
…죽었나?
곧 그 생각을 우습게 여기듯, 남자가 비틀비틀 일어나더니….
아.
이쪽으로 온다.
그제서야 퍼뜩 도망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데 어디로?
어디로 가야하지?
다급하게 눈을 돌리다가 다시금 남자와 눈이 마주쳐.
눈이 충혈된 것 같이 빨갛고 초점이 맞지 않아. 저건 인간이 맞나?
의문과 함께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다가 깨달아. 다리가 벌벌 떨리고 있었어. 몸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제대로 서있는 건 맞나?
키아아악!
남자가 달려들며 포효해. 꼭 그것이 사람이 아닌 괴물처럼 보여서 냅다 등을 돌려 도망가기 시작해.
주변에서 웅성거리며 모여있던 사람들도 다 비명을 지르며 흩어져. 영상을 찍었는지, 사진을 찍었는지 웃으며 핸드폰을 들고 있던 이들도 핸드폰을 들고 달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멀리 가지 않고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 있어.
허세를 부리며 강한 척, 제자리를 고수하던 남자가 제일 먼저 얼굴을 물어뜯겨. 피가 사방으로 튀고 한순간의 정적이 흘러.
저게 뭐야.
누군가 희미하게 중얼거려.
고개를 드는 괴물의 모습에 도로를 가로질러 도망가는 사람들이 생겨.
그들은 달려오던 차에 몇몇이 치여서 날아가거나 땅을 뒹굴고, 차 밑에 깔린 채 비명을 질러. 시끄럽게 쿵쿵거리는 소리와 차에 탄 사람들의 욕설이 어지럽게 도심을 휘저어.
사람을 먹고 있어.
그럼 저건 식인인가?
누군가 신고했는지 귀찮음이 가득한 경찰이 어디선가 나타나서는, 사람을 물어뜯는 식인들을 향해 다가가.
겁도 없지.
그렇게 허세부리며 가만히 있던 남자도 눈이 충혈되었는데.
조금씩 뒤로 물러나는데 뭐라고 얘기하던 경찰 역시 떼거지로 달려든 4명의 식인들에게 말 그대로 먹히고 말아.
이대로는 안 돼, 도망가자, 역시.
일단 집에 가자.
집으로….
목적지를 정하고 달려가는데 그 뒤로 다른 사람들이 식인들에게 물려 또다른 식인이 되어가고, 멀쩡한 사람들을 뒤쫓고 있어.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스럽지만, 집으로 돌아와 창문과 문을 모두 걸어잠가. 그리고 티비를 틀어.
해야할 일은 하나지. 뉴스 채널을 틀어.
역시나.
뉴스 속보가 나오고 있어. 식인은 서울에만 있었던 게 아닌 것 같아. 최초의 식인 등장은 부산. 그 다음은 대구, 대전, 이런 식으로 아래서부터 올라온 거 같아.
그것도 오늘 새벽부터….
어째서 몰랐을까. 평소 뉴스를 보지 않았던 스스로를 원망해.
기분이 매우 나빠져.
그러다 문득 가족이 생각나.
걱정되지, 저런 식인들이 있다는데. 다들 무사할까?
핸드폰으로 급하게 문자와 카톡을 남겨.
-당장 집으로 와.
문을 이중잠금 했지만 그건 다시 풀어둬. 가족이 돌아와야 하니까.
힘없이 소파에 앉아.
아무도 문자나 카톡을 읽지 않아.
초조해져서 손톱을 깨물며 전화를 누르는데, 뉴스에서 식인들을 지칭하여 "좀비"라고 불러.
좀비.
영화에서나 즐기고 소설이나 만화로나 접했던 그것.
그게 정말 현실에서 등장했다고?
믿을 수 없는 얘기야. 하지만 직접 목격했잖아.
정말 좀비인가?
내가 다른 세상으로 넘어온 건지, 생생한 꿈을 꾸고 있는건지, 이제 헷갈리기 시작해.
뚜르르르. 뚜르르르.
뚜….
연결음이 끊겨.
-여보세요?
익숙한 목소리. 안심했어. 아직은 괜찮은 것 같아보여.
긴 말은 필요없어. 즉시 집으로 오라고 소리쳐. 왜냐고 묻지만 일단 와서 얘기하자고 해. 좀 짜증을 내면서 안 된다고 하는 가족의 말에 답답해.
생사를 왔다갔다 하는데 어떻게 일을 먼저 생각하지?
좀비가 나타났다고 말해도 안 믿는 눈치야. 그런데 갑자기 비명소리와 함께 물건이 깨지는 등의 시끄러운 소리가 나더니 전화가 뚝 끊겨.
미칠 것 같아졌어.
아무래도 안 되겠어.
찾으러 가야겠다 싶어서 식칼과 망치를 챙겨. 이것밖에는 무기가 없어.
그것들을 두 손에 들고 울음을 참아. 만약 도착했는데 좀비가 되어 있으면 어떡하지.
걱정부터 앞서기 시작해. 그러나 여기서 가망 없다며 마냥 포기할 수는 없어. 바지와 운동화, 긴팔의 얇은 티.
심호흡을 하고, 집을 나와.
조용한 거리. 조금은 스산하게 느껴져. 평화로웠던 세상이 삭막해진 것 같아.
우선 가족의 직장이나 학교에 가보기로 해. 역시 모부님부터 확인해야겠지.
형제자매는 이미 내 연락을 읽은 상태야. 간다고 답장도 왔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내가 나간다고 말했고, 위험하면 연락하라고 했으니 분명 연락해줄거야.
그렇다면 직장으로.....
바로 그 순간 전화가 와. 재빨리 무음으로 돌리고 전화를 받자 동생이야. 좀비가 있대. 도와달래. 친구가 물렸대.
-어디야?
아파트 입구래.
가까운 곳이야.
달려가서 동생을 찾아. 화단의 수풀에 숨어있던 동생이 나를 발견하고 손짓해. 죽어버린 동생 친구가 몸을 꿈틀거리며 일어나.
그러나 우리를 발견하지는 못한 듯, 기존의 좀비와 함께 다른 방향으로 가버려.
안심이야. 다친 곳이 없는 걸 확인해.
-얼른 집으로 가. 절대 밖에 나오지마.
조심스럽게 당부한 뒤 동생을 집에 보내고, 다시 모부의 직장으로 향해.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져. 시간이 너무 걸려. 하지만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건 리스크가 커. 너무 위험해. 거기에도 좀비가 있을지도 몰라. 그럼 도망갈 수 없어.
간신히 걸어서 도착한 직장에 좀비가 하나 정도 있는 걸 발견해.
최대한 피하려고 돌아서 가려다가 실수로 꽃병 잔해를 밟아.
콰직.
키에엑!!!
꽃병을 밟는 소리에 좀비가 달려와.
좆됐다.
역시나 당황한 머릿속은 하얗게 변하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
어떻게 하지?
하지만 나도 모르게 손을 휘두르고 있지.
망치로 관자놀이를 후려치자 좀비가 바닥을 나뒹굴어.
크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려.
손목이 덜덜 떨리고 저릿거리지만 멈출 순 없어. 일어나려고 꿈틀거리는 좀비의 목을 칼로 마구 찌르고 쑤셔서 잘라버려.
의외로 쉽게 잘리네.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해. 칼과 망치를 내려놔. 좀비는 더 이상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살인을 한 걸까?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내 몸을 감싸.
하지만 마냥 그러고 있을 수도 없어. 무서움에 고인 눈물이 흐르지 않게 힘을 주고, 망치와 칼을 다시 잘 챙겨.
손과 몸, 얼굴에 좀비의 피가 튀어 냄새를 풍기지만 불쾌하지 않아. 그보다 중요한 건 가족이야.
천천히 건물 안으로 들어가. 난장판이 된 건물 안은 먹혀 죽은 사람들의 신체 일부나, 깨진 거울, 흐트러진 종이와 바닥을 나뒹구는 컴퓨터 등만 있어.
사람들은 어디로 갔지?
주위를 둘러보지만 짐작이 가는 곳이 없어. 고요함 속에 모부님을 불러봐.
-엄마. 아빠. 어딨어?
-살아는 있어?
속삭이는 목소리에도 조용한 걸 보면 이 안엔 좀비가 없나봐. 하지만 확산되는 중인 좀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몇이나 튀어나올지 몰라. 자꾸만 뒤를 돌고, 옆을 두리번거려.
긴장으로 소변이 마려워지는 것 같아. 생리적인 현상일 테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 현상에 조금 화가 나.
저긴 어디지?
저 안쪽에 닫힌 문이 있어.
가까이 가서 똑똑, 두드려봐.
-계세요?
답이 없어.
문을 열어보려고 손잡이를 돌리지만 잠긴 거 같아.
다시 똑똑 두드리고 누구 있냐고 물어봐.
조용해서 없는가 보다, 생각하고 몸을 돌리는데,
끼익….
문이 열려.
모부님이 거기서 나와. 다른 몇몇 사람들과 함께야. 그곳에 피신해 있었나 봐. 다행스러운 일이지.
그 사이 동생들에게 무사히 집안에 들어왔다는 문자가 왔어.
이제 나와 모부님만 가면 돼.
여러명이 있으니까 확실히 안심되는 기분이야. 선두에 서서 경계하며 나와. 주변에 널브러진 돌이나 막대같은 걸 다른 사람들도 주워들고 걸어.
모부님의 손에 든 무기를 보니 심장이 철렁, 가라앉는 것 같아.
모부님이 자식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나서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그건 너무 싫어.
꼭 같이 살아야 해. 다치지 않고.
건물 앞에 나오자 아수라장이 된 도로가 그제야 눈에 담겨. 뒹구는 차와 산산조각난 물건의 잔해, 곳곳에 널브러진 먹힌 시체들.
생사 여부를 확인하고 나서야 주변이 보이다니.
신기한 일이야.
우엑…웨엑….
뒤에서 신체의 일부를 보고 토를 하는 사람도 있어.
욱욱, 토하는 소리에 덩달아 토기가 치밀지만 꾹 참아. 도로를 따라 걷는데 한적하니 좀비는 보이지 않아.
안심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밖으로 나오는 손엔 핸드폰이 쥐어져있어.
핸드폰으로 뉴스를 확인해봐. 뉴스는 계속해서 속보가 뜨고 있어. 같은 내용이니 별 쓸모는 없는 것 같아.
sns를 눌러봐.
sns는 좀비를 피해 도망가라, 어디에 숨어있다 따위의 글들이 수십 개가 올라오고 공유되고 있어.
그런데 어디에도 정부의 입장은 나오지 않아.
긴급대책이라도 세우려고 회의 한다. 이런 내용 정도는 있어도 되는 거 아냐?
하지만 정부에 관한 건 찾을 수 없어.
화가 치밀어.
동시에 불안해져.
정부가 우리를 버렸다면… 어떡해?
뉴스를 본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아니면 단순히 무서운지, 덜덜 떨고 있어.
주위를 둘러봐.
조용하지만 좀비는 어디서나 나올 수 있어. 걸음을 재촉해.
사람들과 함께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별로 달갑지 않지만 사람들도 집 안에 들여보내.
설마, 이 사람들…
우리 집에서 지낼 생각은 아니겠지?
집에 먹을 게 그래도 많아서 다행이야.
전날 마트에서 잔뜩 사와서 집에 쌓아둔 게 행운이었어. 집에 오자마자 온가족이 모여서 얼싸안고 기뻐해. 어색하게 거실에 옹기종기 앉아 쉬던 사람들이 가족을 보더니 자기들도 가족이 걱정된다며 가보겠대.
말리진 않아.
걱정스럽지만 뭐… 당분간 못 나가게 될 테니까.
그들이 가주는게 이득이긴 하지.
그래. 사실 나가준다고 먼저 말해줘서 기뻐.
그래야 식량 소비를 더 줄일 수 있으니까. 그럼 집에서 버틸 수 있는 날도 늘어날 거야.
이렇게 이기적인 생각은 잘 하는 편이 아닌데 어째서 이런 생각들만 드는걸까? 이런 상황이 닥치니 사람이 변하긴 변하는 건가봐.
각자 챙겨온 걸 들고 나가는 걸 보다가 송곳 따위를 빌려줘.
그거라도 어딘가에는 쓸모가 있겠지.
별 것도 아닌데 고맙다며 사람들이 나가. 그러자마자 이중잠금을 해. 문을 완전히 닫아놓고 거실로 돌아와.
좀비가 들어올 일은 거의 없을거야. 그도 그럴게, 여기 꽤 층수가 있어서 창문 타고 넘어올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
베란다 쪽 문도 잘 잠겨있고 말이야. 만약을 대비해서 문이라는 문은 제대로 잠가뒀어.
방문은 닫기만 해뒀지만.
그래도 계속 걱정되어서 창문에 달린 커튼을 전부 쳐. 어둠이 가라앉은 집안이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것 같아. 거실 불을 켜고 상을 가운데로 가족이 모여앉아.
식량을 최대로 아껴먹자고 약속하고, 절대 개인행동을 하지 않기로 해. 방문을 꼭 닫고 거실에서 다같이 자기로 했어. 방에 들어갈 때도 온가족이 같이 가기로 약속하지.
그렇게 몇 번이나 세뇌하듯 얘기하고 나서야 그나마 마음이 편해져.
하지만 문득 불안감이 치솟지.
친척들은?
친구들은?
이 식량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지?
여기는 얼마나 안전하지?
좀비의 지능은 얼마나 되는 거지?
문을 따고 들어올 수 있는 확률이 제로인걸까?
다시 티비를 틀고 뉴스를 봐. 소리는 최대한 줄여. 혹시나 소음을 듣고 천장을 부수고 달려들면 어떡해.
그럴 일은 없겠지만.
뉴스는 별 거 없이 같은 내용만을 반복해. 지루해. 하지만 다른 소식이 있을지도 몰라. 조금은 기대를 하고 기다려.
마침내 정부에 관한 내용이 나와.
-현 정부는 해외로 긴급 대피를 하였으며, 안전을 확보한 후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회의를……….
뭐야.
결국 먼저 도망갔다는 소리야.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지.
사람들이 없으면 전기 공급은 안 될테고, 수도 공급도 어찌 될 지 모르며 음식을 만드는 공장들도 가동되지 않을거야.
농사를 짓지도, 고기를 잡지도, 목축업을 하지도 못하니 식량은 한정적이 되고 점점 수요만 늘어나겠지.
공급은 없는데도.
과연 여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2)
집안에서 온가족이 함께 생활한지 일주일이 조금 넘게 지났어. 날짜 개념도, 시간 개념도 무뎌지고 있어. 핸드폰으로 간간히 확인해야 알 정도야. 그마저도 핸드폰의 배터리를 아끼려고 며칠에 한 번 확인하지.
아직은 전기가 완전히 끊기지 않아서 조금씩 핸드폰만을 충전하는 정도로 쓰고 있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알 수가 없어.
이따금 좀비가 나타나는 상상을 해본 적은 있었지만 결코 현실이 되기를 바란 건 아냐.
화장실로 들어와서 거울을 봐. 전기도 모자라 수도도 조금씩 위태로워져. 최대한 쓰임을 줄이려고 노력하지만 별 소용은 없나 봐. 그래도 일주일 버틴 게 용하네.
진작 끊길 줄 알았는데.
집에 있는 라이터는 간당간당하고, 양초는 이제 하나밖에 안 남았지. 물을 욕조와 큰 대야에 받아뒀지만 그것마저 조금씩 부족해지고 있어.
그래도 정수기는 아직까지 그럭저럭 쓸 수 있어서 조금 안심해.
하지만 ……….
거울 속 초췌한 얼굴이 보여. 조금 떡진 머리도. 퀭한 눈밑이 신경쓰여.
밤에 악몽을 꾸고 있다는 걸 가족들이 알면 어쩌지.
책임감이 들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가족만큼은 무사히 살아야 한다. 안전하게 살아남자.
그럼 나약해질 수 없어. 결심을 해. 나약하게 굴면 안 돼. 내가 지켜야 해.
강해져야 해.
문득 뉴스가 떠올라.
정부 측에선 외국의 힘을 빌려 구조활동을 할 예정이래. 정확한 계획은 아직 나오지 않았어.
이참에 해외에 가는 건 어떨까 싶어. 하지만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 남아 있을까?
공항까지 갈 수 있을까?
해외에서 입국을 허락할까?
막막한 현실이 답답해.
다시 거실로 돌아와. 티비 앞에 둔 라디오를 상에 올려.
오래 된 라디오를 틀어. 티비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아.
재난 상황에 왜 라디오가 필요한지 몸소 체험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치직…. 치직….
라디오의 잡음 속에서 정부의 계획이 발표되는 중이야.
드디어 헬기와 비행기를 한국으로 보냈대. 정확히 일주일 가량 구조 활동을 할 계획이니, 오후 2시에서 저녁 8시 사이에 예고된 장소로 오라는 것이 정부 지침이야.
여기까지 듣고 몸을 일으켜.
가족들을 두고 주방으로 와서 둘러봐. 식량은 아직 남아있지만, 점점 줄어서 위태로워지고 있어. 심지어 유통기한도 있으니 더욱 위험하지. 언제까지 집에서 나가지 않고 있을 수 없어.
여기서 언제까지고 버틴다면 좀비에게 먹히지 않을지는 몰라도 다같이 굶어 죽어버릴지도 몰라.
그건 안 될 일이지.
살아남아야 해.
다시 거실로 돌아가.
라디오는 여전히 뉴스를 전하고 있어.
해외에 오면 정부에서 일정 금액을 주고 해외 지원을 받아서 우리가 외국에서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모양이야.
…이거라도 희망이 생겼단 게 어디야.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동앗줄같아.
모부님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걱정되는 눈치였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사는 데다가 너무 연세가 많아 모시고 가기엔 리스크가 커.
최소한의 인원으로 조용히 가야 해.
늙은 사람은 쓸모가 없어. 방해만 될 뿐이야.
방금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언제부터 정이 이렇게 없었지?
왜 이리 냉정해졌지?
당황스럽고 무서워. 이 변화가 싫어. 그러나 거부할 수 없어. 얌전히 받아들이기도, 거부하기도 싫은 묘한 상황이야.
그래서 악몽을 자꾸 꾸는 거겠지.
좀비를 찌르던 그 순간을 끝없이 반복하며. 그 날 좀비의 물렁한 살결과 붉은 피와 썩은 냄새…. 잊을 수 없어.
잊으면 안 돼.
아니, 사실 잊고 싶어.
어쩌면 좀비를 죽인 그 순간 큰 변화가 일어난 걸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니 그만 기분이 나빠졌어.
하지만 가족들을 보니 역시 기분 나쁜 티를 낼 수 없어. 불안감만 심어줄 뿐이야.
가족들과 음식을 먹으며 라디오에서 들은 내용을 얘기해.
어떻게 할지 한참 상의를 한 끝에 정부에서 말한 대피소로 가기로 해. 여기 죽치고 있는 것보다 당연히 대피소에 가는 게 낫잖아.
대피소를 알려준다는 시간에 맞춰 라디오를 틀어.
서울 강남의 어디 건물 옥상, 부산의 해운대 해수욕장, 뭐 어디는 어디….
지역별로 나뉘어져 특정 장소가 불리지만 우린 살고 있는 지역 한 곳만 집중하면 돼.
5월 30일부터 6월 5일까지 모이라고 하는 소리가 있으니, 당장 출발해야 그 안에 대피소에 도착할 거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고 은밀하게 지나가야 해.
좀비와 가급적 마주치면 안 되니까.
당장 동네에 좀비는 별로 없다지만 번화가는 어떨까?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이라면?
안 다치고 갈 수 있을까?
온갖 걱정을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얼른 가자며 재촉해. 음식과 몇 가지 생필품을 챙겨. 생리대와 탐폰, 약과 붕대. 라디오.
그리고 손에는 각자 칼이나 망치를 나눠 들어.
식칼이 3개라서 다행이지. 식칼 3개, 망치 2개, 그리고 야구방망이.
우리 무기의 전부야.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아.
망치와 식칼을 양손에 들고 앞장 서서 집을 나와.
아파트는 조용해.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어. 계단으로 소리나지 않게 신경 써서 내려와. 양말만을 신고 가면 안심이지. 그렇게 1층으로 와서 신발을 신어.
먼저 유리 너머로 밖을 보고 멈춰버린 자동문을 손으로 열어.
반쯤 연 자동문으로 빠져 나오는데, 아파트 단지는 역시나 조용해. 그러나 곧 맞은편 동에서 사람들이 나오는 걸 발견해. 우리처럼 바로 출발하려나봐.
눈이 마주치고, 그들이 반색하며 다가와. 시끄러워지면 어떡하지.
경계를 하고 있는데, 대피소에 가는 거라면 같이 가자고 말해.
같이 갈까? 말까?
그쪽 사람들은 15명 정도 되는 것 같아.
그렇다면 우리 가족을 대신해 죽을 수도 있단 소리잖아.
…………….
나쁜 생각이지만 어쩔 수 없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만 해.
속내를 감추고 고개를 끄덕여.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며 남자가 말을 걸지만 그런가요, 시큰둥한 대답만 해줘.
남자는 머쓱하게 제 옆의 다른 남자와 얘기를 시작해. 더는 말을 걸지 않아서 다행이야.
쓸데없는 정이 들면 안 돼.
완전히 합류하기 전, 가족들을 불러서 저 사람들에게 정을 주지 말고 믿지도 말라고 신신당부해. 사람이 많아져서 좋기만 한듯 이해를 잘 못하는 동생들이 답답하지만 애써 참고 무작정 믿지말라고 충고해.
어거지로 알았단 대답을 듣고 나서야 좀 안심이 되는 거 같아.
…괜한 정을 주면 나중에 죄책감이 들지도 모르잖아.
이건 생존본능이야.
어쩔 수 없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안해.
내가 방심할까 그게 걱정이 돼.
정신 바짝 차리자. 심호흡을 하고 사람들 틈에 섞여서 걸어가.
좀비가 거의 없던 아파트 단지를 나와 본격적으로 큰 도로에 나오자 긴장이 돼.
건너편 도로에서 좀비가 어슬렁거리는 것이 보여.
며칠 전 확인한 sns에 따르면, 좀비는 시각과 후각이 없대. 대신 청각이 발달했다나봐. 우리는 조용히만 가면 되는거야.
숨을 죽이고 지나가. 좀비가 자주 나오기 시작하니 걱정이 크지만, 적어도 우리가 조용히 지나간다면 큰 문제는 되지 않을거야.
그래도 기껏해야 한두 마리 정도가 나온 게 다야.
안심이지. 불필요한 싸움은 최대한 피해야해.
더 큰 그림을 위해서는…….
맞은편 동의 사람들은 음식이 우리보다 많아.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해. 식량이 조금 부족했던 우리 가족에게 큰 이득이야.
우리는 식량을 합쳐서 같이 먹으면서 이따금 편의점에서 보충하기도 하기도 해.
쉴새없이 걷고 또 걸어. 생수통을 가득 들고 다니며 수시로 수분 보충도 하고 볼일도 적당히 해결해.
서로 몸에서 어느 정도 냄새가 나도 금방 익숙해져서 모르게 돼. 씻지 못하니 어쩔 수 없어. 하지만 조금씩 심해진다는 건 다들 어느 정도 아는 거 같아.
아직은 어린 동생이 지쳐 보여서 동생 짐을 대신 들어. 몇 시간만에 지쳐 힘들어하는 걸 보며 계속 달래고 손을 잡고 걸어. 하지만 별 소용은 없어. 조금씩 동생이 뒤쳐지기 시작해.
조급해져서 손을 잡고 더 빨리 걸어. 그래도 소리는 안 나.
단 걸 좋아하는 동생의 입에 초콜렛을 넣어주니 그제야 좀 나아져. 다시 무리의 가운데로 숨어든 동생이 초콜렛을 먹으며 열심히 걸어.
이따금 휴식을 취해주지만 많은 시간을 쉬지 못하다 보니 조금씩 사람들이 지쳐가는 게 보여. 그래도 최대한 갈 수 있는 데까지는 가야 해. 그래야 제때 도착할 거야.
서로를 다독이며 계속 걸어.
그나마 다행인 건,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다는 것 정도. 물론 지하철을 타면 더 가깝다지만…….
가만.
우리……… 차를 타면 어떨까?
차에 달려드는 좀비는 어느 정도 뭉개면서 달릴 수 있어. 좀비는 차를 따라올 정도로 빠르지 못하니까 괜찮다고 sns에서 그랬어.
이 무슨 바보같은 짓을 했지?
흥분을 감출 수 없어. 만일 우리 가족만 타고 가다가 큰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 일단 저 사람들도 차에 태워야겠지.
날이 어두워지자 누군가가 근처 아파트 단지에서 묵자는 말을 해. 아무도 반대하지는 않아.
다들 저녁이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어.
빠르게 단지 안으로 들어와. 여기도 좀비가 있어. 당연한 일이지만,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네.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근처 좀비가 없는 동에 도착해.
다행히 좀비는 이 작은 소음을 아직 눈치 못 챈 것 같아.
아파트 안을 살펴. 좀비는 없어. 안심하고 모든 사람들이 들어와.
몇 층을 계단으로 걸어올라가 빈 집을 찾아. 열린 문들을 위주로 살펴보는데, 정말로 이 안에는 단 한 마리의 좀비도 없는 것 같아.
여기 사람들은 다들 밖으로 나가 있었던 걸까?
적당한 층수의 집으로 들어가 단체로 저녁을 먹고 자리를 잡아. 옹기종기 모여앉은 채로 지도를 들고 어디까지 왔는지 표시해. 아직 꽤 거리가 남았는데 이 속도로 이 정도 거리를 이동한다면 며칠 정도 걸릴지 고민하고 있어.
하지만 내겐 좋은 생각이 있잖아.
굳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할 말 있는데요, 저.....
-좋은 생각이 있어요.
시선이 몰려. 조금 뿌듯함을 느껴. 헛기침을 하고선, 차를 훔쳐서 이동하자고 해.
노리는 건 벤과 같은 적당히 큰 자동차. 그래야 좀비에게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어.
소형차는 쓸모가 없어. 그건 많은 사람이 타지도 못하니까.
밝아지는 얼굴 표정 속에 고민하는 사람도 있어.
-하지만 그곳에 도착해서 내릴 때 좀비가 쫓아오면 어떡하지?
그건 걱정할 것이 못 돼.
우리는 적당한 번화가 근처에서 내린 뒤 조용히 이동할 거니까.
일단 이론은 그렇지만 상황을 지켜봐야 알겠지. 여차하면 이들을 미끼로 우리 가족만 도망갈 예정이니, 더더욱 우리 가족에게 불리한 것은 없어.
사람들은 그럴 듯한 말에 넘어와.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하기 시작해.
멍청이들.
하지만 고마워.
일찍 잠을 청하고 새벽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고 별 의미없이 썩은 계란으로 눈두덩이를 문질러. 붓기나 멍이 있는 것도 아닌데.
평소보다 푸짐한 아침을 챙겨먹고 차를 찾으러 나와. 계단을 내려와 1층에 도착해. 유리를 통해 밖을 흘금 살펴.
어라.
좀비들이 조금 늘어있어. 우리 때문은 아닐거야. 그건 확실해. 소음 낸 적 없으니까.
그냥 하릴없이 걷다가 흘러들어온 거겠지.
애써 신경을 끄고 한층 더 내려가 지하주차장으로 가. 넓은 주차장은 바깥과 달리 평온한 상태야. 하지만 여기에도 좀비는 있을 수 있어.
긴장한 상태로 천천히 걷기 시작해.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 주차장이라 그런가.
우리가 원하는 차는 많아.
보이는 차마다 창문 너머로 기름을 확인해.
하지만 그게 의미가 있을까?
잘 보이지도 않고 확실하지도 않은 걸.
결국 제일 많은 기름이 있을 것 같은 차의 창문 유리를 깨.
혹시 몰라서 미리 소리를 좀 내봤는데, 조용한 걸 보면 근처에 좀비는 없는 것 같아.
다행이지. 안심하고 창문 유리를 마저 깨. 뚫인 창문으로 손을 넣어 문을 열지.
차 안에 여러명이 올라타고 남은 사람들도 적당히 나뉘어 각자 고른 차에 올라타.
우리 가족은 적당한 사람 두 명과 같이 길쭉한 벤에 올라타. 언제든 적당히 도망갈 수 있게 뒷좌석에 자리했어. 트렁크를 확인해보니 영화에서처럼 좀비가 들어있진 않아. 안전한 걸 확인하고 앞을 봐.
남자가 핸들 밑으로 전선을 이리저리 매만져.
그러자 덜컥 시동이 걸려.
외국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을 한국에서 볼 줄은 몰랐는데. 남자는 우리 차 시동을 걸어두고 다른 차들의 시동도 걸어주고 와.
눈이 마주치자 머쓱하게 웃으며, 좀비물이나 화산같은 재난 영화 매니아였다고 말해.
별로 물어본 적 없어.
하지만 그냥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여.
덕분에 도움을 얻었으니까, 이 정도 반응은 예의라고 생각해.
다행히 기름은 꽉 차 있는 차야. 다른 차들도 그럭저럭 기름이 있는 것 같아.
밖으로 나오자 자동차 소리에 좀비들이 몰리기 시작해. 하지만 엑셀을 밟아 속력을 조금 높이니 금방 뒤쳐져.
역시 안전하구나. 또 한 번 안심하고 도로를 달려.
사실 도로로 나오면 좀 막힐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인도에 뒹구는 차량이 많더라고.
덕분에 무난하게 달릴 수 있어. 우리가 몇 날 며칠을 걸어서 도착했을 거리는 차로 고작 몇 시간만이 걸려.
좀비가 없는 근처 거리에 도착해. 많을 거라고 생각하고 긴장했는데, 일순 긴장이 풀려.
그래도 경계를 늦추지 않아. 주위를 충분히 살핀 뒤 문을 열고 내려.
조용히 모든 사람이 내리고 함께 문제의 번화가로 걸어가. 도로의 끝, 번화가 입구에 5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어.
아.
자세히 보니 그건 좀비야.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아. 그럼 그렇지. 최대한 조용히 그곳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건물로 들어와. 빌라인 것 같아. 역시나 비어있는 집을 확인하고 우리는 안으로 들어와. 역시 좀비는 문을 열고 들어올 정도의 지능은 없는 것 같아.
아무래도 계단도 못 올라오는 것도 같고. 하지만 이건 모르는 일이야. 기어다니다가 올라올 수도 있는 거니까. 계단은 계속 조심하기로 해.
어쨌든 좋은 정보를 얻었어. 좀비 지능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감이 잡혀. 백화점 내에만 들어가게 된다면 좀비의 수가 늘어나진 않을 거야.
백화점 내의 좀비만 조심하면 된다는 소리지.
우리는 이 빌라에서 하루를 지내기로 해. 고개를 들고 바라본 창문 바깥은 어둠이 깔려 있어.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백화점 건물은 내일 오전에 가기로 결정했어.
드디어 내일이 5월 30일이야. 구조 활동의 첫 날….
반드시 가족과 함께 구조 받겠어.
주위를 둘러봐. 여기까지 오니 다시금 관대해지는 기분이 들어. 그래. 이왕 구조된다면 이 사람들도 같이 구조되는 게 좋겠지.
지쳐있긴 해도 다들 멀쩡해 보여. 여기까지 오는 동안 다친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야. 우리 가족의 발목을 잡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
백화점. 그곳에는 사람이 생존해 있을까?
그 안에 좀비는 얼마나 있을까?
우리가 좀비에게 들키지 않고 무사히 옥상에 갈 수 있을까?
옥상에 좀비가 있다면?
불안한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최악의 결과가 눈앞에 펼쳐져.
하지만 아무렴 어때.
아직까지는 멋진 영화의 엔딩을 보듯 무사히 살아있어. 다치지도 않았고.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저녁을 먹고 모여 앉아. 사람들이 갑자기 희망에 들떠서 이곳을 벗어나 어떻게 살지 얘기를 하기 시작해.
같이 여행을 가자는 사람도 있어.
그건 바보같은 짓이야.
영화도 안 봤나. 함부로 남과 같이 할 미래 계획을 세우면 그건 사망 플래그가 된다고.
하지만 그걸 굳이 말해주지는 않아. 분위기를 깨봤자 내게 이득인 게 없어.
조용히 대화를 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잠이 들고 제일 마지막으로, 눈을 감아.
오늘은 뭔가 기분이 좋아.
하지만 그만큼 불안해.
고민 끝에 믿지도 않던 신을 찾으며, 기도를 올려.
하나님. 정말 존재한다면 운명을 거스르는 좀비를 싹 다 데려가주세요. 안 그럼 가만 안 둘 거야 씨발. 아멘.
정신을 차렸을 땐 날이 밝은 뒤야. 여유가 생겼는지 조금 늦게 일어났어. 다른 몇몇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그러나 다들 신경쓰지 않아. 곧 구조 될 텐데 아무렴 어떻겠냐는 듯….
그건 끝까지 가봐야 아는 법이지.
화장실로 가서 수도꼭지를 틀어. 물이 나오지 않아.
맞다. 수도 끊겼구나.
너무 안심해서 현실을 잊다니.
바보같은 실수에 한숨을 쉬다가 생수를 대야에 담아.
대야 앞에 쪼그려 앉아 돌아가며 세수를 해. 생수는 트렁크에 많이 싣고 왔기 때문에 한 사람당 한 병씩은 써도 괜찮을거야.
무엇보다도, 오늘 구조될 예정이니까.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
우리는 드디어 마지막 목적지인 백화점을 향해 출발해.
(3)
빌라를 나와서 조용히 걸어. 여기서부터 정말로 바짝 긴장해야 해. 조금 주위를 둘러봐.
어쩐지 우리가 가는 길에 안개가 조금 낀 기분이야.
…실제로도 안개가 꼈을까?
단순히 기분 탓인가?
주위를 다시 한 번 둘러봐. 희미한 풍경 속에 서성거리는 것들은… 좀비일까, 사람일까?
워낙 조용히 다니다 보니 좀비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안 가. 좀비도 조용히 있으면 사람같으니까.
아니지.
그것들도 원래 사람이었을텐데.
문득 생각나는 악몽과 과거.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라 몸에 소름이 돋아. 어제는 하루종일 잊고 있었는데.
역시, 살인이겠지.
살인한 거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잖아.
그건 정당방위였어.
그리고 어차피 아무도 못 봤잖아.
거긴 나 혼자였다고.
가만.
그렇다면 말만 안 하면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닐까.
그런데…
그럼, 살인이 아니게 되나?
수억가지 고민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그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져. 하지만 계속 고민에 빠질 수는 없어. 죄책감과 정당방위라는 합리화를 뒤로 하고, 앞을 바라봐.
어느덧 우린 멈춰있는 상태야.
어?
언제 멈춘 거지?
뭐지? 무슨 일일까? 백화점 앞인가?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봐. 백화점이 바로 앞에 있어. 이상하네. 왜 안 들어가고…….
설마….
불길한 예감이 들어.
사람들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 뒤로 가는 척 슬쩍 옆으로 빠져서 앞을 제대로 봐.
백화점 건물의 앞에는 좀비가 가득해. 상상도 못했던 수야. 대체 몇 마리지, 저게? 어림잡아도 족히 30마리는 되어보여.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늘 맞아떨어지지.
이곳까지 오는 동안 조용했던 건 여기 모든 좀비가 모여 있어서 그랬던 걸까?
가만 보니 좀비들이 뭔가를 하고 있어.
……아.
좀비들이 둥그렇게 모였던 곳에서 조금씩 몸을 일으키고 근처를 서성거리기 시작한 뒤에야 깨달아.
우드득………….
쩝………….
까드득…………….
쩌업…………….
좀비들은 먼저 온 사람들을 먹고 있었던 거야.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해. 가족을 보니 무서운지 벌벌 떨어. 나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해. 조용히 가족을 한데 모아 내 뒤에 세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무리의 후반부, 그리고 언제든 옆으로 빠질 수 있게 겉으로 나와 있어.
어?
무리 선두에 있던 남자가 무기를 떨어뜨려.
챙그랑.
탱……….
탱…………….
바닥을 통통 굴러가는 쇠로 된 방망이가 보여.
조용한 이 공간에 갑작스러운 소음이 일지. 메아리처럼 허공에 소리가 울려.
씨발.
이럴 줄 알았어.
하여간 도움이 안 돼.
가족을 붙들고 옆으로 조용히 무리에서 빠져. 그들에게서 천천히, 그리고 멀찍이 떨어져.
크에엑!
예민하게 반응한 좀비가 달려와, 무기를 떨어뜨리고 놀라서 주저앉은 남자를 먹어.
아아악!!!!!!
무리의 어디선가 비명이 터져. 텅 빈 이 공간을 헤집기엔 충분하지.
케에에엑! 키아아악!!!!!
좀비들이 포효하기 시작해.
곧 모여있던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소리를 지르며 우왕좌왕 하는 꼴을 보니 다 죽을 거 같네. 도망을 가던지, 죽던지 하나는 해야할 텐데.
저 사람들은 죽는 것밖에 생각을 못했나봐.
하지만 여기는 상황이 다르지.
맞은편 도보로 건너가. 커다란 건물 옆 골목으로 돌아나가. 걸음은 빠르지만 결코 소리가 나면 안 돼. 멀리 있던 좀비들이 곧 저 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올 테니까.
아니.
이미 오는 중일지도 모르지.
가족이 비도덕적이고 비양심적이라며 걱정과 불평을 해. 하지만 그 말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야. 가족이 화를 내도 어쩔 수 없어.
-저 사람들을 구하려다 우리도 죽는단 말이야.
억지로 현실을 보여줘. 서로 도우려다가 사이좋게 좀비에게 물어뜯기는 모습을.
저렇게 되긴 싫어.
그러니까,
-우린 꼭 살아야해.
단호하게 말하니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불만스럽지만 어느 정도 화는 누그러진 것 같아.
…어쩔 수 없대도.
우린…… 정말 살아야한단 말이야.
비도덕적이고 비양심적이며, 비인간적인 일은 내가 다 할게.
같이 살아남자.
분위기가 가라앉아. 그런 것에 침울해져서 힘이 빠지면 안 돼. 분위기를 무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 최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써. 그건 꽤 도움이 돼.
건물을 크게 빙 돌아온 보람이 있어. 우리는 좀비들의 뒤쪽으로 걸어가.
백화점의 주차장 쪽은 좀비들이 앞으로 달려나가면서 한산해졌어.
가족을 데리고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 옥상까지 계단으로 올라가야한다는 게 고통스러울 수도 있어.
뭐, 그래봤자 좀비에 먹히는 밖의 사람들보다는 덜할 거야.
역시 같이 오길 잘했어. 무엇이든 내겐 다행인 일들이야.
그들이 주의를 끌어준 덕에 무사히 좀비 없는 길을 지나왔으니까.
이제 고지가 눈앞이야. 기쁨과 환희에 차서 걸음을 옮겨.
최대한 소리내지 않고 계단을 올라가. 역시나 신발을 벗어 가방에 넣고 양말을 신은 채로. 그래야 실수로라도 소리를 낼 확률이 줄어들지. 우리의 안전이 한층 더 보장되는 일이야.
이미 다 아는 얘기를 속삭여.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말이 좀 많아진 것 같아.
이따금 계단에 좀비가 서성거리고 있는 걸 발견해. 하지만 고작 한둘이 전부야. 그럴 때마다 안심하고 좀비를 주시해. 혹시 모르니 달려들어 칼로 목을 쑤셔서 갈라버려. 단숨에 끊어버려야 시끄러워질 일이 없어.
목과 머리만 분리하면 좀비는 움직이지 못해.
생각보다 좀비가 너무 없어. 의아함에 계단을 올라가며 주변을 살펴.
아. 이것 때문인가?
비상계단의 문.
비상계단 문은 대체로 닫혀 있어서 좀비가 여기까지 기어나오지 않은 것 같아. 간혹 열려 있는 층에서야 좀비가 서성거리곤 했으니까.
나름대로 추리를 해보니 재밌네.
계속 계단을 올라가. 무슨 계단이 이렇게 많고 쓸데없이 높은거람.
다리가 뻐근하고 힘들지만 이 정도는 참아야지. 이제 이런 걱정도 끝이라고.
배터리가 거의 없는 핸드폰을 봐. 다행스럽게도 아직 3시가 되어가는 중이야. 8시 전에는 옥상에 갈 수 있겠어.
워낙 지쳐있어서 그런지, 동생들이 투정을 부려.
너무 힘들어하길래, 잠시 계단에 앉아서 쉬어. 그 동안 물과 간식을 먹어. 또 작게 대화도 해. 다소 장난스러운 말도 오가고….
그렇게 6시. 드디어 옥상에 도착했어. 여기도 좀비가 있을지도 몰라.
물린 사람이 좀비가 되었다면?
물린 사람이 좀비가 될 지 모르고 옥상에 왔다면?
끔찍하지.
주위를 살피고 문을 열어.
끼이익……….
저녁놀이 지는 하늘은 붉어. 옥상에 헬리콥터가 있고 그곳에 살아있는 사람 몇몇이 우리를 보고 반겨.
그 주변을 보니 좀비는 없어. 긴장이 풀려서 주저앉을 뻔해. 하지만 간신히 힘을 주고 옥상으로 나가.
끼이익……….
문이 완전히 닫혀. 비로소 찾아오는 안도감에 헬리콥터로 달려가. 구조대원들이 괜찮냐며 우리 몸을 살펴.
뻔한 걸 묻네.
당연히 괜찮지!
몸수색이 끝나고 혈액을 체취해 면역 검사도 해. 다행스럽게도 가족 모두 좀비가 될 가능성이 단 1%도 존재하지 않아. 우리는 모두 면역자인 모양이야.
기쁨에 가족을 부둥켜안고 안도의 눈물을 흘려. 이제는 참지 않고 눈물을 흘려도 돼.
몸에 긴장이 완전히 풀려 주저앉아 버려. 펑펑 울며 앉아서 서로를 안고 있다가 구조대원의 말에 정신을 차려.
아직 완전히 구조된 게 아니야.
구조대원의 도움을 받아 헬리콥터에 올라서 안전하게 좌석에 앉아. 그 안에서 잠시 대기해.
2시간이 지나 8시가 되었지만 올라오는 사람은 더 이상 없어.
무전으로 대화하던 구조대원들이 헬기에 올라 문을 닫아.
마침내 헬리콥터가 하늘로 올라가. 창문 밖을 슬쩍 보니, 좀비들이 득실거려. 개중 대다수는 고개를 들고 이쪽을 보는 것 같기도 해.
드디어 끝이다. 완벽하게 끝이다.
이제 해외에서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거야.
.
.
.
라는 해피엔딩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떠나는 헬리콥터를 보며 눈을 깜빡여.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은 피인가?
눈물인가?
케에에엑!!!!!!!!
좀비의 소리가 귓가를 맴돌아.
어쩌면 영화에서처럼 멋진 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 줄 알았어.
거의 성공했는데, 실패했어.
그렇다면 우리는 영화의 주인공이 아닌걸까?
아수라장이 된 백화점 앞에 널브러진 사람의 시체 또는 몸이 뒤틀려 기어다니는 좀비.
-쿨럭!
기침이 나와. 울컥, 입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나와.
크어억! 키에엑!
찢어질 듯한 소음과 함께 좀비가 다가와. 팔을 붙들고 살점을 씹어먹어.
쩝………….
지익………………….
쯥…….
팔을 뜯어먹는 좀비를 봐. 이상하지. 팔을 뜯기고 있는데, 큰 고통을 느끼지 못해. 감각이 무뎌졌나?
감각이 존재하긴 했나?
나는 고통을 느낀 적이 있던가?
시선을 돌려. 하늘에서 옆의 좀비로, 그리고 좀비의 뒤로.
거리를 배회하는 좀비들. 살아남은 사람들을 찾아 쫓아다니고 있어.
그 속에 좀비가 된 가족이 보여.
또 다른 가족은 신체의 일부만 남기고 사라져있어. 아마 완전히 먹혔나봐.
-케엑………. 크으…..
몸이 뒤틀리고 벌벌 떨려. 극심한 배고픔과 함께 감각이 점점 사라지는 것만 같이…….
삐-….
이명이 들려, 정신이 하나도 없어. 시야가 어두워지고 머릿속은 아득해져.
나도 좀비가 되려나봐.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은 도망다니기 바빠.
하지만 곧 저들도 나처럼…
또는 시체처럼….
아. 더는 생각할 수 없어.
있잖아, 세상에 좀비가 생긴다면… 넌 어떨 것 같아?
-
끝.
늘 내가 하는 상상으로 써본 이야기야ㅋㅋ
부족한 글이지만 읽어줘서 고마워.
퍼갈 땐 출처만 제대로 밝혀줘!
존잼...이렇게 집중해서 글읽은거 오랜만이야..
와진짜잘봤어ㅜㅜ
미친 너무 재밌다.. 대박이야...
와...... 너무 재밌게봤어 진짜 작가여시다 작가여시.....
와 반전 미쳤다.... 단편영화 한 편 본것같아ㅜㅠ 완전 대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