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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제 15 장/ 태풍전야(颱風前夜) ]ㅡ
한데 또한 바로 그때였다.
"흐흐흐..... 기다려라 흑보살! 감히 네가 어딜 가려고 하는게냐!"
두 사람이 막 배에서 내려 선착장 밖으로 몇 걸음이나 옮겼을까? 이곳에는
실로 예측치 못한 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돌연 주위의 눈덮힌 숲속에서 쨍하는 살기와 함께 약 삼십여 명의 흑의무사
들이 신형을 솟구쳐 나와 둘의 앞을 봉쇄한 것!
하나같이 섬칫한 창칼을 든 모습들! 특히 두 사람을 가로막기 무섭게 이들은
흡사 학이 날개를 편 듯한 학익진鶴翼陳)형의 봉쇄망을 펼쳤는데 이를 미루어 보
아 결코 흑도(黑島)의 무리들 같은 하류잡배들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에 영호충은 흠칫 걸음을 멈추며 순간적으로 바싹 전신의 근육이 긴장됨을
느끼며 그들을 향했는데.....!
"당신들은.....?"
그러자 무리중 숫처럼 시커먼 얼굴을 가진 한 사십 대의 흑면사내가 으스스한
냉소를 머금고 앞으로 나섰다.
"흐흐흐..... 강호의 친구들은 나를 귀면수(鬼面手) 흑유(黑流)라고 칭하고 있
지!"
귀면수 흑유!
그러했다. 그는 분명 아침나절 신주이세가의대전에서 중은월 마후돈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었던 그 사내!
계속 섬칫한 웃음을 머금었다.
"흐흐흐..... 한데 대체 어디로 갈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 지난 밤 이십여의
사람을 죽여놓고 그것도 모자라 어느새 또 다시 흑도(黑島)를 피로 씻은 자네가
.....! 혹시 오늘 밤 본 신주이세가(新州二勢家)를 덮칠 생각으로 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신주이세가.....?"
이에 영호충은 흠칫, 비로소 뭔가 집히는 점이 있어 똑바로 그들을 향했다.
"하다면 너흰 신주삼패의 수하들이겠군. 한데 나에게 흑보살이라니?"
일순 흑유의 입가에 다시 음험한 웃음이 떠올랐다.
"흐흐흐..... 왜? 설마 아니라고 할텐가? 그런 피투성의 모습을 하고도?"
피투성이, 영호충의 입가에 일순 피식 실소가 떠올랐다.
"하기사 지금의 내꼴을 보면야 누구라도 당연히..... 하지만 그렇다면 사람을
잘못봤어. 난 흑보살이 아니야! 오히려 그를 뒤쫓고 있는 관포이지."
시비를 피하기 위해서 한 말이었다.
기실 그로서는 이미 흑도에서 무수의 피를 뿌린바 있고, 또한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만큼 이들과 실갱이를 한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뜻밖에도 오히려 역효과를 부르고 말았는데.....
흑유가 대뜸 앙천대소를 터뜨린 것이다.
"핫하하하..... 가소로운 거짓말을! 그래서 오히려 본좌는 네가 더욱 흑보살이
라고 믿어지는군! 기실 내 이곳 관사의 사람들은 손바닥 처럼 들여다 보는 처지
지만 일찌기 너같은 인간은 없었거늘.....!"
묘하게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
이에 영호충은 흠칫 다시 해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 그건..... 나는 이곳의 소속이 아니라.....!"
하지만 소용없었다.
흑유는 일순 더더욱 섬칫한 냉소를 떠올렸다.
"흐흐흐..... 가소로운 놈! 괜한 변명은 그만두거라! 하나 정히 네가 흑보살
이 아니라 한다면 증거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방법.....?"
"흐흐흐..... 그러하다! 우선 첫 째는 이 자리에서 우리가 그 말을 믿을 수 있
게 칼을 쥐는 그 오른 손을 잘라 보이는 것! 그리고 둘 째는 순순히 포박을 받고
함께 이세가로 가는 것이다! 진짜 흑보살이 아니라는 확인이 되면 풀어주도록 할
테니!"
실로 어처구니 조차 없는 수작!
이에 영호충은 그만 자신도 모르게 파안대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핫핫핫핫..... 옛 말에 점입가경이라는게 있더니만, 그게 어디 당키나한 소리
인가? 더구나 내 이미 분명히 관사의 포두라고 일렀는데도, 한 마디로 무법천지
가 따로 없군!"
울컥, 더불어 급기야 또 다시 걷잡을 수 없는 울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기실 항주로 들어온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가 느꼈던 것은 온통 모멸스러움 뿐이
었던 것.....!
이에 영호충은 곧 다시 눈에 비수같은 안광을 번쩍이며 싸늘히 흑유를 향했다.
"아무튼! 그러나 그 방법은 둘다 내 마음에 내키지가 않는다! 내가 싫다면 감
히 어쩔 생각인가!"
씨익, 흑유의 입꼬리에 한 줄기 음험한 웃음이 걸렸다.
"흐흐흐..... 그야 어쩔수 없지! 흑보살이라 인정하고 무조건 절단을 내는 수
밖에! 아니라도 어차피 네가 흑도를 끝장낸 이상 그냥 살려둘 수는 없는 터이니!"
흑도를 피로 씻어냈기에 살려둘 수 없다!
"뭐가 어째!?"
순간 영호충은 이 말에 흡사 뒷통수를 쇠망치로 맞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동
시에 가슴속에는 더더욱 걷잡을 수 없는 울화가 치밀어오르기 시작했는데.....!
그는 눈에서 흡사 쇠붙이라도 꿰 을 듯한 정광을 폭출시키며 쨍 하는 금속
성을 내뱉었다.
"잠깐! 한데 네놈..... 지금 한 그 소리가 무슨 뜻이었더냐! 하다면 혹시 흑
도가 너희 신주삼패와 어떤 연관이라도 있었다는 말이더냐?"
하나 흑유는 여전히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느물댔다.
"흐흐흐..... 쥐새끼 같은 놈이 알고도 모르는 척 시침을 떼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아무 내막을 모르는 것인지.....! 하나 일단 물었으니 대답해 주지! 사실
인즉 그러하다! 아마 지금은 네손에 죽었으리라 추정되는 도산자는 분명 본
신주세가의 사람이다! 다섯 당주중의 하나인 셈이지!"
"뭐가 어쩌고 어째.....? 이것들이 보자하니 정말.....?"
찰나 영호충은 흡사 온 전신의 피가 모조리 머리꼭대기로 치솟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실로 그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못했던 노릇! 설마 저 추악한 인간세상의 지
옥도와 같았던 곳이 이들 신주삼패와 관련이 있었을 줄은.....!
그러나 그러한 충격은 잠시,
"에라! 이 모조리 찢어발겨 개밥을 만들어 마땅한 놈들아!"
그 순간 영호충의 분노한 몸은 어느새 번쩍 허공을 솟구쳐 흑유를 비롯한 포
위한 흑의무사들을 덮쳐가고 있었다.
온 전신을들끓게 격렬한 한 증오가 또 다시 그로하여금 살검을 뽑게 만든 것!
그리고 흑유 등 흑의무사들이 미처 영호충의 이러한 급습을 예견할 틈 조차도
없이.....
"아아아악.....!"
"크아.....!"
뒤따라 장내에는 또 다시 흑도에서의 사투때와 마찬가지로 처절한 비명과 함
께 촤아악 선열하기 그지없는 피보라가 사방으로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포위망의 중앙으로 뛰어든 영호충이 충혈된 눈으로 다
시 살귀같이 칼을 번뜩이기 시작한 것!
"쳔! 이 놈이.....?"
하지만 흑유! 이 사내의 반응 역시 만만치 않았다.
비록 영호충의 이 돌연한 급습에 잠시 멈칫하는 기색을 보이긴 했으나 그는
곧 바로 장검을 뽑아 영호충의 배후로 쏘아가며 흩으지려는 수하들을 향해 벽력
같은 일갈을 날린 것이다.
"당황하지 마라! 아무리 설쳐대도 놈은 혼자일 뿐! 압박공세를 가한다! 게다
가 우리에겐 곧 사방에서 원군이 몰려올 것인즉!"
그러자 흑의무사들은 용기를 얻은 듯 즉시 흩어지려던 전열을 가다듬으녀 영
호충을 향해 집중공격을 가해오기 시작했으니.....!
"죽여라!"
"흐아아아아.....!"
"이것들이.....?"
또한 사태가 이쯤되자 오히려 당황하기 시작한 것은 영호충이 되어버렸다.
우선 그는 이미 흑도의 접전으로 말미암아 적지않은 기력을 소진한 데에다,
이들의 기세는 이미 처음부터 느꼈듯 결코 예사롭지가 않았다.
한데 이런 상태에서 원군까지 몰려온다면.....?
"버러지만도 못한것들!"
"아아아악.....!"
"크으.....!"
이에 영호충은 당황함을 금치 못하며 일거수 일투족에 혼신의 힘을 실어 바
도를 휘젖기 시작했다.
방법은 오로지 원군이 오기전에 이 자리에서 벗어날 도리밖에 없었던 것,
한데 바로 그때였다.
콰두두두두두.....!
"거기 모두들 멈춰라! 살인자 흑보살은 순순히 포승을 받는게 좋다!"
돌연 접전이 벌어지는 사방에서 지축을 뒤흔드는 말굽소리가 울리며 누군가
의 벽력같은 폭갈이 터져나왔다.
"쳔..... 벌써 온것인가.....?"
이에 영호충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느낌으로 훌쩍 다시 몸을 뒤
로 날려 노운설을 막아섰다.
우선 그녀의 안위가 우려스러웠던 것!
한데 그 직후 다시 말굽소리와 함께 주위에서 몰려오는 원군이라는 무리들
을 보게되자.....!
"어엇? 아니 그런데..... 이것들은 대체 또 무엇인가.....?"
영호충은 그만 자신도 모르게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이 되어 멈칫 몸을 경직
시키고 말았다.
기실 그도 그럴게 어이조차 없이..... 아직 이들이 정말 흑유 등을 도웁고자
온 원군인지는 알 수 없으나 놀랍게도 순식간에 닥쳐와 물샐틈 없이 사방을 에
워싸고 있는 것은 바로 한결같이 푸른 복장을 한 백여 명의 관포들이 아닌가?
이에 영호충이 혼란스러운 심정으로 나타난 관포들과 흑유를 번갈아 보자, 흑
유란 놈은 그러한 영호충의 속도 모르고 다시 음침히 느물거림을 뱉아냈다.
"크흐흐..... 어떠냐 이 놈! 내 애초부터 이 항주관사의 관포들 중 모르는 사람
은 없다고 했었지? 더우기 이제 잠시후면 곧 우리 신주세가의 형제들 역시 몰려
올 터, 결단코 네놈은 이제 살았다고 할게 없는 몸이된다!"
결국 상황이 이쯤되면 항주관사 역시 신주삼패와 결코 무관하다고만은 볼 수
없는 터이었는데.....!
"하하하....."
그와함께 일순 영호충의 입에서 도저히 뭐라고 형언할 수 조차 없는 묘한 웃
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왓하하하하하.....! 정말이지, 진짜 이젠기도 안찬다! 기도 안차!"
뒤따라 웃음은 다시 폭소로 변했고, 그 폭소는 계속 엄청난 분노를 머금고 사
방으로 흩어져 가기 시작했다.
실로 도저히 웃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 노릇이었던 것.
* * *
그로부터 약 반 시진 후,
격분한 영호충이 다시 모습을 나타낸 곳은 바로 항주관사, 강소태수(江蘇太守)
서문천(西門泉)의 집무실이었는데.....!
서문천의 표정은 핼쓱하게 질려있었다.
대략 육십여의 나이에 눈처럼 하얗게 센 머리결과 피둥피둥 살찐 볼따귀를 한
인물.....!
주위에는 포두의 관복을 입은 위맹한 모습의 두 사내가 시립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와 아랫사람의 면전을 무시한 채 영호충은 연신 충혈된 눈에서 증
오에 찬 안광을 쏟아내며 이가 시릴듯 냉소를 흘려냈다.
"흐흐흐..... 실로 이건.....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구료 태수합하(太守閤下)
! 세상에 아무리 어이가 없어도 유만부득이지! 그래, 아무리 세상이 썩어 문들
어져도 유분수지 그래도 소위 법을 지키고 있다
고 자처하는 당신들이 인신매매나 일삼는 쓰래기들과 손을 잡고 도위부의 사람
을 치려고 들다니 과연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보오?"
안면은 휴지쪽처럼 구겨져 있었다.
"흐흐흐..... 하기사! 그래도 전혀 새삼스러운 일 같지는 않은게 종종 소문은
들었었지! 풍문에 의하면 일부의 탐관오리들이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까 두려워
옛부터 곧잘 어사대의 사람들을 해치는 경우가 있었다더구료! 돌이킨 즉 아마
이것이 바로 그런 경우인 듯.....!"
순간 서문천의 안색이 더더욱 하얗게 핏기를 잃었다.
"그 말씀은 어폐가 있소! 장군! 아무려면 본관이 설마.....!"
하지만 영호충의 노기는눈꼽만치도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저 수려한 얼굴의 증오심은 점차 그 도를 더해가고 있었다.
"후후후..... 하다면 어디 한 번 해명해 보시오! 오늘! 불과 한 시진 전에 일어
났던 그 일은 무엇이었소?"
서문천은 계속 사방으로 분주히 눈알을 굴리며 대답을 했다.
"허허..... 그..... 그건 발고가 들어오기를 근자 이 강소의 도처에서 무수한
인명을 살해한 흑보살이란 살인자와 유사한 인물이 나타났다는 말이 있었기에..
...!"
영호충은 더욱 냉혹한 웃음을 머금었다.
"후후..... 아주 해야마땅한 일을 하신 셈이구료! 하다면 그 발고를 한 인물
은 또 누구였소? 실제 내가 흑도를 치고자 들어간 사실을 아는 자들은 그들의
무리 뿐! 하다면 일단 나를 흑보살로 오인한 것은 그렇다치고, 이를 발고한
그 놈 역시 지금쯤은 옥에 갇혀 있어야 할터인데 과연 잡아두었소?"
서문천의 표정이 점차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그건 너무 경황이 없어서.....! 아랫것들도 설마 발고한 자가 그런
패거리일줄은 몰랐을 것이외다.....!"
영호충의 입가에 한 번 더 진득한 냉소가 떠올랐다.
"흐흐..... 하다면? 조금 전 나를 공격해왔던 무리들은? 대체 그들은 어찌되었
소? 보아하니 포위했던 관포들과 뭔가 이야기를 나누는 듯 하더니만 멀쩡한 사
람을, 그것도 자그마치 금의위의 순찰즙포를 죽이고자 칼부림을 해왔던 자들이
아무런 제재조차 받지않고 사라져가는 눈치이더구료! 그것은 이 항주성만이
가진 특별한 법이오?"
"그..... 그것은.....!"
이에 서문천은 잠시 말문이 막힌 듯 머뭇거리는 태도였으나 곧 다시 희얀치도
않은 변명을 둘러댔다.
"허허..... 그..... 그렇소이다! 사실 그들이 장군을 해치려한 죄는 백 번 죽
어 마땅한 것이오나 따지고 보면 그게 다 협의심에서 시작된 발로이라 믿어졌던
터이라.....! 기실 아무리 무지한 행동을 한 자들이라고는 하나 그들은 관(官)을
도와 죽음을 무릅써고 살인귀를 잡고자했었던 터인데 어찌 그러한 이들을 나무
랄 수가 있었겠소이까? 아마도 아랫것들이 그들을 놓아준것은 그런 연유가 아니
었던가 싶사온데.....!"
순간 영호충은 자신도 모르게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핫핫핫핫..... 과연 그럴 법 하긴 하구료! 과연 태수의 말씀은 지당한 바가
있다고 하겠소!"
하지만 이 말이 끝났다 싶은 순간! 집무실내에는 실로 상상치도 못할 일이 벌
어졌다.
"야! 이 돼지같이 더러운 놈아! 차라리 속이려거던 귀신을 속이거라!"
"아악.....! 이..... 이손.....!"
찢어지는 비명성이 사방을 울리는 가운데 영호충이 느닷없이 태수 서문천의 머
리채를 덥썩 틀어잡은 것이다.
그리고 시퍼런 박도가 쭉 뽑혀져 그의 목덜미에 닿은 것은 바로 그 다음 순간
의 일!
"오오..... 이 추악하기 그지없는 놈! 네가 아무리 그럴싸한 궤변을 둘러댄다
해도 내가 이미 모든 사실을 듣고 왔는데.....! 네놈은 지금껏 한갖 금전이 탐나
저 쓰레기 같은 놈들의 뒤를 닦아 주고 있었던 터이렸다? 살인을 방조하고 인
신매매 등 온갖 부조리와 야합을 하면서..... 그러고서도 할 말이 있다고 주둥이
를 놀려대는 네가 참으로 가증스럽기가 이럴데 없구나!"
"쳔! 멈추시오 장군! 그게 대체 무슨 짓.....?"
그러자 이 뜻밖의 광경을 목격한 두 포두는 안색이 그만 납빛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정작 목덜미에 시퍼런 칼날이 와닿은 서문천 그 장본인의 표정이야 더
이럴나위도 없는 상황.....!
그는 순간적으로 흡사낯빛이 썩은 돼지간처럼 변해 연신 숨막히는 비명을 질
러댔다.
"놔..... 놔라! 이 놈아! 썩 놓지 못하겠느냐! 네가 아무리 금의위의 즙포이면
즙포이지 본좌 역시 이품(二品)의 관직을 지닌 몸이거늘.....! 당장 네 상관인 대도
독에게 일러 네놈의 목을 치게 하겠다! 어서 썩 놔!"
하지만 영호충은 전혀 놓을 기미없이 이게 진정 그인가 싶을 정도로 소름끼치
는 웃음을 머금었다.
"흐흐흐..... 그래, 듣고보니 과연 그 말이 옳구나! 네놈의 직위가 이쯤되고 보
면 과연 연줄이 대도독에게도 닿고 있겠군! 하지만실은 그래서 내가 더욱 너
를 놓지 못한다! 놓았다간 너 쓰래기보다 더한 돼지보다 오히려 애꿎은 내 목이
먼저 떨어져 나가지 않겠느냐?"
"헉.....! 뭐..... 뭐가 어쩌고 어째.....?"
순간 서문천의 낯빛은 더더욱 사색이 되고 말았고, 영호충은 아랑곳이 없이
계속 섬뜩하기 이럴데 없는 냉소를 흘렸다.
"흐흐흐..... 그럼 이제 내, 위(偉)의 명을 받든 즙포사자로서 네놈의 죄에 대
한 판결을 내리겠다! 강소태수 서문천! 너는 자그마치 황제폐하의 은덕을 받아
황실 이품의 관직에 강소태수의 중직에 앉은 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작게는 백
성들을 살펴 선정(善政)을 베풀지도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악독한 녹림의 도적들
과 야합, 뇌물을 받으며 온갖 부조리를 방치했다! 따라서 그간 너로인해 희생된
선량들이 부지기수이며, 또한 내 직접 눈으로 목도한바 수많은 여인들이 죽도 살
도 못하는 고통을 받았으니 이를 판결에 붙여 즉살형(卽殺刑)에 처하기로 하겠
다!"
즉살형!
"허어억..... 이..... 이놈이 대체 지금 수슨 되도 않는 수작을! 네..... 네가
진정코 나와 무슨 칠천지 원수가 있기에.....!?"
하나 서문천은 더 이상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이 개 돼지같은 놈!"
영호충이 더 이상 말할 기회조차 주지않고 들이대고 있던 칼을 놀려 썩! 그
대로 그의 목을 잘라내어 버린것이다.
"아아아악.....!"
그러자 멱따는 비명과 함께 집무실내에는 순식간에 검붉은 선혈이 사방으로
튀고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기 시작했는데.....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만것이다.
기실 말마따나 한 성(省)의 태수라고 하면 현 조정에서도 이 품에 속하는 고
급관리......
더우기 근소한 차이는 있어도 휘하에 수 십의 자사(刺史)들을 거느린 이 강
소성(江蘇省)의 제왕을 뜻한다.
한데 그러한 그가 다른곳도 아닌 자신의 집무실에서, 그것도 수하무관들이 뻔
히 바라보고 있는 상태에서 허수아비처럼 목이 잘리우고 만것이니.....
"허어억.....! 아니 저.....?"
이에 지금까지의 상황을 지켜보던 두 포두의 안색은 그야말로 완전 백납처럼
변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따위는 전혀 아랑곳 없다는 듯, 영호충은 계속 잘리워진 서문천
의 목을 홱 그들에게 집어던지며 천둥같은 노후를 터뜨렸다.
"나는 대(大) 한(漢)의! 영호대장군(英狐大將軍)의 육 대 손이자 현영호세가의
한 사람이다! 또한 금의위 친군대도독의 명을 받잡아 현재 강호전역을 순시하는
즙포사자이기도 한 사람이지!"
탁! 그대로 피묻은 장검을 탁자위에 꽂아넣었다.
"한데 이 서문태수 놈은 나라의 녹을 먹는 한 관리로서 녹림의 잡배들과 결탁
! 이미 이른즉 스스로가 맡은 섭정을 소홀히 했을 뿐만아니라 온갖 악행들을 방
조하고 있었던 터이었다! 해서 내 분기를 참지못해 이 도적의 목을 자른 터! 불
만이 있는 자는 누구건 좋으니 한 번 앞으로 나서보거라!"
"헉.....! 이..... 이 일을.....?"
그러나두 포두는 백납같은 표정으로 어쩔줄 몰라 당황하고 있을 뿐 감히 이
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실로 그들로서는 어떻게 입 조차도 떼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었던 것
이다.
그러는 사이 또한 집무실의 앞에는 잇다런 비명과 호통소리 등에 놀라서 달려
온 관리들이 장사진을 이루기 시작했는데.....
하지만 역시 어느 하나 감히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아무도 없더냐?"
이에 영호충은 계속 충혈된 눈으로 그러한 그들을 촉어보며 살기등등히 노후를
이었다.
"좋다! 하다면 이 자리의 그대들 모두는 내 말에 따르라! 판결없이 이 도적놈
의 목을 자른 죄에 대해서는 차후 내 스스로 사법부로 가서 심판을 받을 터인즉
, 그대들은 먼저 이 놈의 목을 성 한복판에다 효시(梟示)토록 하라! 그리고 늦어
도 내일 오후까지는 진강자사직을 역임하고 있는 야차불이 이리로 올것인 즉, 내
그에게 당분간 이곳의 섭정을 맡길터이니 일사불란하게 그의 명에 따르도록하고!
알겠느냐!"
"진강자사.....!"
그러자 좌중에는 즉시 적지않은 웅성거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실로 엄청난 난변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어느 누구도 감히 선뜻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지는 못했고, 그와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두 포두중 구리빛 피부의 사
내가 무겁게 개탄하며 옆의 사내에게 일렀다.
"어쩔수 없네.....! 비록 지금껏 모셔온 상관이시긴 했어도 일의 성질이 이미
우리 소관이 아니야......! 그대로 따르는 수 밖에......!"
이에 옆의 포두짜 역시 마지못해 고개를 주억이는 눈치를 보였다. 영호충은
비로소 언뜻 짚히는게 있어 구리빛 피부의 포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자네 성명은......?"
사내는 무겁게 개탄하며 가볍게 손을 모아 읍해 보였다.
"소관은 호법부 휘하의 좌포직을 맡고 있는 이영(李瑛)이라 하옵지요. 장군의
뜻에 따르기로 하겠소이다.....!"
이영(李瑛)!
일순 영호충의 입가에 보일듯 말듯한 웃음이 순간적으로 스쳐갔다. 하다면 그
는 아침나절, 노운설이 납치되어 갔었던 객잔을 봉쇄하고자 끌어들였던 관포들
이 말했었던 바로 그 직속상관이었었던게 분명한 것이다.
또한 그들을 통해 이미 사전에 이런 난변이 일어나리라고 분명히 예고를 받고
있었을 인물.....!
이에 영호충은 곧 그 점을 깨닫았고, 그러나 전혀 그런 내색을 않고 계속 이
영에게 입을 열었다.
"좋아! 뜻이 그러하면...... 하다면 그대 둘은 지금 즉시 그 도적의 목을 성 가
운데에다 효시하고 서둘러 수하들을 풀어 관사(官舍)안을 물샐틈 없이 봉쇄하도
록 하게. 진강자사 차불이 오기까지는 누구를 막론하고 이곳에서 빠져나가게 해
서는 아니되네!"
"헉.....! 아.....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한다고......?"
그러자 좌중에는 다시 크다란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섭정을 할 사람이
오기까지 관료들을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한다!
이 발언의 속에는 실로 어떤 뜻이 숨어 있겠는가?
분명 논공행상과 부정한 자들에 대한 처벌의 뜻이 숨겨져 있는 것이었다. 따
라서 서문천과 마찬가지로 그간 부정을 해온 자들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릴수 밖
에 없었고, 이영은 곧 다시 무겁게 포권을 취해보였다.
"분부에 따르오이다. 모쪼록 매사에 아량을 남기시기를......!"
영호충은 가볍게 턱을 주억여 보였다.
"좋아. 서두르도록 하게. 그리고...... 자넨 우 포두의 직을 맡은 듯 한데 이
길로 즉시 흑도(黑島)로 가도록 하주게나. 가면 섭명진이라는 사람이 상당수의 여
자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을터이니 그들을 일단 이곳으로 데려와 주는 것일세."
"분부 받자옵지요.....! 즉시 시키는데로......!"
그러자 사내는 즉시 종종걸음으로 집무실을 나갔고, 이영 또한 휘하의 관포들
에게 관사안을 물샐틈 없이 에워싸게 한후 내부의 관료들을 일단 모조리 호법부
의 건물 한 곳에 몰아넣어 감시하게 했다.
따라서 항주는 물론 강소성의 모든 행정을 총괄하고 있는 이 대규모의 지방관
구는 삽시간에 모든 업무가 정지되어 버린채 문이 굳게 닫혔고, 내부에는 곧 상
상을 불허하는 적막과 암운(暗雲)이 떠돌기 시작했다.
분명 곧 어떤 엄청난 태풍이 닥쳐올것만 같은 불길한 조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었다.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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