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걸이가 끝나면 끊고자 하는
관계성을 잘 끊을거라고 했던 언니같은 고객님...
난 교회에서 그를 만났고,그는 기가막히게 잘 생긴 남자였다.
적어도 그 당시엔...
왕자병 걸렸다면서 저 넘은 연하넘이니, 관두자 생각을 접으니
언니같은 그분이 "야..재가 너 좋아한다.다음에 너 보러 온다"
"아냐,쟈는 왕자병걸린 것 같은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 섹시 쥑인다 저넘은 좀 달르네 하면서..
그 다음 주에는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잊었다.
약간 거만하여 보였고, loner로서 교회 저 쪽 구석에서 혼자서 밥을 먹었고,
난 여러명이 둘러싸여서 먹었다.
유명인사로서 늘 사람들은 내 주위에 있었고,
바닷가의 집이 있어서, 의시 대고 다녔을 적이다.
교회에는 성경책도 안 들고 다녔지만,
믿음은 없었고, 어렸을적에 교회에서 사탕 얻어 먹었다는 추억도 그 누구하고도 나눌 수가
없었다. 아마 내가 살던 동네엔 교회가 없었는지,
아니면 사탕이 그리 땡기는 것이 아니였었나보다.
기도 합시다 하면 눈을 감았고, 설교도 다른 생각 하면서 듣는 척은 했다.
졸다가 고개가 아무방향으로 재쳐지지만 안으면 되는 것이니깐.
큰 교회가면 괜히 눈치가 보인다.
장사하러 큰 교회왔다고 하지만, 교인들은 절대로 자신의 경제사정을 나에게 들키고 싶지가
않으니, 작은 교회 간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큰교회 교인들이 나의 고객님들이 되었다.
난 일류라는 것은 바닷가 집에서 살면서 머세디스 벤즈를 타고 다니고, 명품 가방에다
다이야 몇카래트 반지와 목걸이 그리고 금으로 주렁 주렁 옷에 맞춰서 갈아 입고
폼 잡고 다니는 것이 잘 사는 것인 줄 굳게 믿었다.
아마 예수쟁이들..먼저 그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처럼
난 집 차 옷 은행의잔고..그리고 아들..딸이 아닌, 귀한 아들로 의시대고 뻑시고 다닐 적이다.
도네셩도 후하게 하고, 광고효과도 대단하였고, 뻑하면 포장마차처럼 천막치고서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 오뎅도 떡볶이도...유학생은 겉절이 김치 듬뿍 담아 주고,
떡은 미친뇬 떡 돌리듯, 담고 다시 와서 담아가는 할머니, 그냥 모른척 더 드리고..
속으로만 '잔머리의 대가'이시구나.ㅎㅎㅎㅎㅎ
남에게 나는 여장부로 보였고, 나는 퍼주는 인간으로 봤지만, 다 장사속이였고, 그게 적중이 되었다.
비됴가게에 가면 99%가 나의 고객이였으니, 가게 나오면서 주차장 가면서도
인사를 하게 되는 인맥이였기에, 아직도 한인시장은 안 간다.
파 한단 사러 갔다가 확률적으로 일곱 여덞명 만나면, 늙었느니, 살 쪘느니, 안 늙었느니,
살이 왜 그리 빠졌느니, 아프니, 튼실하니.이런 평을 내가 연예인도 아니니 들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될 수 있는 한 미국 식당에 미국 가게를 이용하고, 국산영화 들어 오면 상영후에
들어갔다가 끝나기전에 빨리 뛰어서 나온다.화장실은 안 간다.
남자와 여자가 만날 적에는 다 조건이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에 끌렸는가는 나는 남자의 외모가 맘에 들었다.
멋을 냈고 깔끔 했다는 것이고, 학벌을 알아 보기위해서 필적으로 감정을 해 봤다.
그냥 중간정도의 지적인 사람이였지만, 과학을 주장하는 발명가였고, 자신의 내공을
쌓았다고 하지만, 실전에 그는 실업자였다. 그러나 외모는 감추었으나, 그의 발걸음은
날 속일 수가 없었다. 사람의 현재의 생활은 걸을걸이로 알아 볼 수가 있었는데,
그는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이였다.
나의 발걸음은 무지 바쁘게 앞으로 꼬꾸라지게 걷는 것은 난 할일이 아주 많은 사람이라서,
왜 그런것을 해야 하느냐할적에 난 이미 시작을 한지 꽤 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몰입성이 없어지면 나라는 사람은 그저 껍데기만 있는 것일 것이다.
내가 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들 생각하지만, 상담할적에는 하지만,
하루중 말 안 하고 가만히 있는 나만의 시간은 돈을 버는 기분에 신이 난다.
토욜이라는 나만의 날에, 티비에서 나오는 범죄영화,로멘스 영화,흥미 땡기는대로
보면서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인데, 특히 시애틀에서 산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그것은 여기에 익숙해져서이고, 아마 땡빛의 아리조나에서도 나만의 공간이
있다면 행복함을 느낄 것이다.
내가 없는 것은 남자이다.
남자가 없이 살아 본 적이,ㅋㅋㅋ 거의 없었지만..지금처럼 행복한 적은 없었다.
그는 남자이지만, 그는 날 구속하지 않는다.
게시판에서 날 보조 해 줬던 사람도 남자였고, 실제로 만날 수 있는 남자에게 향한 마음을
불륜이라고 나에게 상처를 주었어도...
실제로 남자 보담은 내 자신에게 관심이 쏠린다.
내가 관심이 있다면, 아들이란 남자의 인생을 옆에서 ...안전거리에서 지켜 봐 주는 것이고,
힘들적에 울 엄마가 도와 주었듯이 나도 그렇게 해 주고 싶다.
그러나 남편의 엄마처럼 그렇게 아들의 여자와 아들 가운에 끼어 앉아서 졸면서
티비를 보겠다는 것은 웃기는 짓이고, 아직도 현대의 엄마들의 마음씨인 것 같다.
아들이 자기의 작품이란 생각으로 남편에게 못 받은 사랑을 아들에게서 받아 볼라고..
오늘 본 presume innocent라는 영화에서 남편의 바람에 부인은 그 여자를 무참하게 죽여 버렸다고
고백하는데, 자살할 마음의 표현을..난 너만 바라 보고 살았는데 난 잊혀졌고, 버려졌기에...
우리는 누가 바라 봐줘야 행복하고 자신에 대한 사랑은 외부에서만 와야 된다고 믿는
체제에서 너무 오래토록 살아 왔다. 그게 점잖은 사고 이기에 불행한 부부관계성에서
울타리 밖으로 나와서, 차거운 바람을 맞을 각오를 감히 못 한다.
차라리 불행하나 들키지만 않으면..과연 누굴 위한 행복인가..인생은 짧은데..
그래서 나는 달리 생각하여서 달리 살고 있고 달리 취급을 받지만,
누구에게 취급 받는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날 어찌 취급 하느냐가 이나이가 되니
그리 중요하게 된다.
그때 만난 남자와의 결별후에 단 한번도 다시 만난 적이 없었고,
간접적으로 소식을 들어도 난 그게 나와 어떻다는 것인가 하고 다른 일에 바쁘게 되었다.
그는 나의 조건중에 재물이 좀 있는 줄 알았고, 나의 후원을 받고 싶었다.
자신이 네살 젊다는 것과 총각이라는 것...그것이 힘이 되어서, 나에게 재물과 자신의
발명을 꾸준히 보조 해 달라는 조건이 있었다.
사랑하는 여자는 아니였고,쓸모가 있어야 되는 여자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헤어졌어야 하지만, 나에겐 그는 방패막이 되었다.
남자가 있다는 것은 다른 남자가 나에게 접근을 못하게 되는 것이였고,
매일 얼굴 보는게 아닌, 주말에만 일주..이주만에 보면 우리는 하루는 친했다가
하루 지나면 빨리 헤어지고 싶었다.
그래도, 나에겐 달걸이가 안 끊나서인지,끊지를 못했다가,
언니같은 그분의 말씀대로...끊었고 내 인생에 가장 오래 유지되었던
십년지기였다는 것이고 아무 의미도 지금은 없다는 것이다.
첫댓글 뭐유
ㅋㅋㅋㅋ
애고,, 이젠 끝난 겨?
남자들 다 그래요
광배에게 덕 볼려고 하는 겨
아예 강아지나 고양이 길러보슈
사랑을 베푸는 대상요
고 것들,, 참 귀여우요
넘자들 ,, 나이들어가는 넘자들
별볼일 없우
ㅠㅠㅠ
언제나 광배짝이 나타날까나?
4년전에 끝난 사람 이야기에요.현재는 진행형..
ㅎㅎㅎ
짝이라니 보다,친구처럼
울 진순이 떠난후 강아지는 이제 못 길릅니다 헤어지기 섭섭하여서...
광배
니 전번?
바뀌었잖수
광배씨 글은 어려워, 내가 읽기엔,ㅎㅎㅎ
도네숑이 뭔가 한참 생각했네, 미국에 살면서 말은 시골 토박이처럼 글을 쓰니 뭔소린지, 나원 참
차분하게 풀어서 써봐요, 글을.......
(253)344-9252 에욤.
안 선배니임~~그렇치 않아도 숨 쉬면서 읽어 보셩으로 서두에 적을라꼬 했는데,
알아서들 숨들 쉬시겠지 했더니..고만.ㅋㅋㅋㅋㅋㅋ
차분하게 되면 그때 맛으로 쓸께요. 제가 쓴 글만 2천페이지 입박합니다.
아들에게 물려 줄라고요.ㅋㅋㅋㅋ
니만 알게쓰지말고
설명도 하고
그러나 ,, 이런 접속사도 쓰셩
생략하니깐
한 번엔 물러융
카톡 안뜨네
벌써 넣었구요
아이폰, 스마트 폰?
ㅎㅎㅎㅎ
한글이 다 한글이 아니구만요. 다시 잘 써 볼꼐욤.
다음엔...
카톡이 안 뜨는 것은 선배님이 전화를 하세요.
그럼 제가 해 드릴께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