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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두번째 조우(遭遇) ..3
신궁희연!
"힛힛히..... 이후 나는 사랑을 했었지.....! 그녀는 스스로를 처음에 나와같
은 가난한 한 무사의 딸이라고 소개했었고..... 우린 육개월 내내 빠짐없이 계속
만났었네. 한데 이 사실을 그녀의 부친이 알게 되어..... 어느날 나를 만나고 싶
다는 연락이 인편으로 보내왔더군."
왕우진의 음성은 갈수록 흡사 실성한 사람의 것처럼 변해갔다.
"히히히..... 한데 집으로 찾아가본 결과, 뜻밖에 희연은 엄청난 부호의 딸이
었더군! 그리고 신궁파오는 나같은 가난한 자에게 사랑하는 딸을 줄 수 없으니
혼인코자 한다면 상당량의 금자(金子)를 벌어보라고 했었어! 더구나 그것은..
... 그때까지만 해도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못해볼 만큼의 엄청난 액수 였
었다네."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피를 뱉아내듯한 음성.....!
"하하..... 해서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그 금액을 상상할 수 없었던 나는
결국 살인자가 되었네. 다만 죽어 마땅한 악인이 아닌 한 청부를 받아들이지 않
겠다는 조건으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을지언정 양심까지 팔지는 않겠다는 생
각이었었어.....!"
여기에 이르렀을 때 그는 처절히 자신의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이후 삼 년..... 결국 나는 흑보살이라는 이름으로 신궁파오가 요구한 액수
를 거의 모을 수 있었지.....! 그리고 마침내 이 악몽이 끝날때가 왔다고 믿었을
때..... 마지막 청부가 들어왔었고..... 나는 그렇게 스스로가 자랑스럽게 여겼
던 은사월검으로 또 한 번 간단히 목표를 제거했었지만..... 그것이 바로 희
연이었더군. 결국 나는 사랑을 얻기위해 살인자가 되었었고..... 종내 그 사랑을
내손으로 제거하고 말았었던 것이야.....! 인과응보(因果應報)일 수 밖에 없는
일이지만.....!"
참으로 어처구니 없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기막힌 이야기였다.
모닥불은 계속 탁탁 불똥을 튀기며 너울거리며 이 기구한 젊은이의 모습을
그 흔들리는 운명처럼 비추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약 일 각 여의 질식할 듯한 침묵이 흐른 후,
"허허..... 참으로 기막힐 일.....! 설마하니 신궁파오 그 더러운 것이.....!"
한 동안 말문이 막힌 듯 했던 영호충이 급기야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하다
는 듯한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듣고보니 마침내 모든 의문이 다 풀린것 같아.....! 결국 자네는 개들의 놀
음판에 휘말린 한 쐐기풀 밖에는 아니었었군.....!"
"후후후..... 개라.....!"
왕우진은 계속 참혹히 뒤틀린 표정으로 웃었다.
"하지만..... 그를 욕하지는 말아주게나. 모든 잘못은 다 내가..... 실로 그
만한 거부(巨富)가 딸을 위해 황금 탑을 쌓으라는 요구는 당연한 것이 아니겠
나.....!"
일순 영호충은 눈동자 깊숙히에 한 줄기 조그마한 증오의 불꽃이 피어 올리
기 시작했다. 음성조차도 모멸로 가득히 얼룩지기 시작했다.
"후훗..... 천만에! 그러나 그건 절대로 그렇지가 않아. 왜냐하면 자네의사
랑을 죽여달라 백루에 청부를 한것은 신주삼패(新州三覇)였지. 하지만 자넨 그들
이 왜 그녀를 죽이라고 했었던지 그 이유를 알고 있나?"
왕우진은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은.....!"
"훗후..... 그것보게. 결국 자넨 아직 이 일에 대한 반 쪽의 내막조차도 자세
히 모르고 있는거야. 현재 자네가 어떤 마귀들의 어떤 놀음판에 휩쓸려 춤을 추
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지."
"마귀들의 놀음판.....?"
일순 왕우진은 극도로 참혹한 표정 가운데에서도 한 줄기 의구심의 빛을 만
면에 더올렸다.
"후후..... 그러하네. 하다면 이제 하나 묻겠는데..... 자네 혹시 언젠가 우내
백사(宇內百邪)라는 이름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나?"
"우내백사.....!"
왕우진의 눈에 한 번 더 흠칫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그렇군.....! 칼을 잡은 이상 그들에 대해서라면야 모르는 자가 세상에 어디
.....! 그들이라면 이십여 년 전..... 한때 무림에서 실로 엄청난 살겁(殺劫)을 일
으켰던 사상최악의 마두들이라고 들었었네. 살인, 방화는 물론 노략질에 온갖
악행을 다 저질렀었던.....! 하나 개개인의 무공들이 한결같이 초유의 경지에 이
르렀을 뿐만 아니라, 종적이 워낙 교묘해서 관(官)은 물론 무림의 온갖 명문정
파까지 공적(共敵)으로 낙인찍고 척살령을 내렸으도 잡지못했었던 희대의 대마
왕들이라고도 들었었지."
차분히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결국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결국 십오 년 전, 중앙관사의 관군들과 무
림의 명문정파들이 연합해서 끈질기게 뒤를 추적한 결과 마침내 모조리 도륙을
했었다고 하더군. 일백을 잡기위해 무려 일천 여의 무수한 천하절정 고수들과 명
포들이 떼죽음을 당한 이후에야 말일세."
순간 영호충의 입가에 더더욱 짙은 모멸과 증오에 찬 웃음이 떠올랐다.
"후후후..... 좋아. 거기까지 알고 있다니 그렇다면 나머지는 내가 얘기를 해
줌세! 사실 그 악마들의 행적은 교묘했었어! 그렇게 많은 관군들과 무림정파들이
무려 십여 년의 세월에 거쳐 계속 추적에 추적을 거듭했어도 끝내 그 행적을 잡
을 수 없었는데..... 한데 어느날 마침내 그들 백사(百邪)의 정체를 캐고 보
니 그 내력들이 또한 실로 어처구니없는 것이었었지. 놀랍게도 그들은 하나같이
쓰레기같은 명문정파의 고귀한 자제들과 당대의 내노라 하던 명문(名門)의 자제
들라는 것이 밝혀 졌었던 것이지! 결국 이놈들은 배고프고 없어서 살인과 노략질
을 일삼았었던게 아니라 그저 심심해서, 자신들끼리 모임을 결성한 후 재미삼아
그짓들을 일삼고 있었던 최악의 악질들이었었던거야."
"물론 그 이야기도 들었었네.....! 그랬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투입되어 추
적을 했었으도 종적이 묘연했었던 것이라고들 하더군.....!"
영호충은 순간적으로 두 눈을 어마어마한 살기를 가득채우며 뼛골이 시릴 듯
한 냉소지었다.
"후후후..... 옳아! 하다면 한 가지 더 묻겠는데 자넨 그렇듯 교묘했던 개들이
어떻게 덜미를 잡혔었던지 알고 있나? 그 소탕된 경위 말일세!"
왕우진의 눈에 다시 한 줄기 의혹의 빛이 떠올랐다.
"글쎄..... 거기까지는 들어보지 못했네. 그저 무림과 관(官)의 연합된 노고
였었다고 듣긴 했지만.....
혹시 또 다른 뭐가 있었나?"
씨익, 영호충이 한 번 더 섬찍하기 그지없는 웃음을 지었다.
"후후후..... 사실이 그랬었어! 이것은 실로 관이나 무림이나 수치스럽기 그지
없는 일이라서 지금까지도 고작 몇몇 사람들만이 아는 극비로 붙여지고 있지만
, 당시 그들의 덜미를 잡게 된것은 결코 누구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야!
바로 놈들 속에 배신자가 하나 생겼었기 때문이었었네! 우내백사! 집요한 추적
이 계속되자 놈들 중 어느 하나가 친구들을 파는 댓가로 죄(罪)를 면제 받기로
약속하고 밀고(密告)를 했었기 때문에 정체를 알게 되었었던 것일세!"
"밀고!?"
순간 왕우진의 눈에 적잖은 놀라움의 빛이 떠올랐다.
"후후후..... 옳아! 한데 오늘 알아본 결과..... 실로 경악스럽기 그지없는 일
이 하나 있었네! 어찌된 연유인지 당시 밀고한 그 자 하나를제외한 나머지 모조
리 소탕되었었다고 믿었던 우내백사 가운데 소림사(少林寺)의 속가제자이자 당시,
역시 중원의 명문세가중 하나인 감숙사공세가(甘肅士公勢家)의 장주였던 철사자
(鐵獅子) 사공척(士公尺)이 어처구니 없이도 아직까지 생존해 있었네! 그가 바로
현재 신주삼패를 뒤에서 조정하고 있는 배후이자 사부(師父)였었어!"
"철사자 사공척....."
순간적으로 왕우진의 딱딱하게 경직되기 시작했다.
"후후..... 하다면 결코 나와도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겠군.....! 한데 그가
이 사건에 무슨 관계가 있단말인가?"
영호충은 다시 차디차게 웃었다.
"후후후..... 암! 당연히 있고 말고! 그것도 아주 엄청난 관계가 있지. 이 친구
야! 그럼 이제 확실한 내막을 하나 말해주겠네! 지금껏 자네가 단순히 금릉부호
로만 알고 있었던 연인의 아버지 신궁파오가 누군지 알고나 있나? 그자가 바로
지난 우내백사(宇內百邪)의 배신자일세! 본명은 혈붕왕(血鵬王) 우문개로(右文介
盧)일세!"
우내백사의 배신자 혈붕왕(血鵬王) 우문개로(右文介盧)!
"허어억! 무엇이라고.....!?"
그러자 순간, 왕우진은 흡사 심장이 퍽 하니 터져나가 버리는 듯한 충격을
받고 자신도 모르게 숨막히는 외침을 토해냈는데.....
그러한 그를 보며 영호충은 계속 두눈에 미칠 듯한 모멸의 빛을 철철 아내
며 계속 말을 이었다.
"후후후..... 바보같은 친구야.....! 따라서 자넨 지금껏 철사자 사공척과 혈붕
왕 우문개로! 그 두 악마놈들의 복수극에 휘말려 있었던게야! 즉, 다시 말하자면
우문개로 놈은 지난 친구들을 팔아 죄를 면제받은 후 어처구니없게도 이름을 바
꾼채 관(官)의 보호까지 받으며 금릉땅에서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었어! 반면 그
소탕극 속에서 천신만고로 살아난 사공척은 이 복수를 하기위해 신주삼패라는 제
자를 키운 후, 보나마나 어떻게던 관의 보호 속에 웅크리고 있는 그 놈을 끌어
내려고 그의 딸을 죽이겠금 백루에 청부를 했었던 것일세! 그리되면 필경 놈은 또
다시 딸의 보복을 하기 위해 바깥으로 튀어나올 판이었으니까!"
실로 기막힐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일 수 밖에 없었다.
"후후..... 한데 그 와중에 뜻밖에도 흑보살이라는 변수(變數)가 작용을 했었
던 것이지! 우문개로가 딸의 죽음을 청부한 자를 알아내기 위해 백루를 찾아 나
서기도 전에 바로 그가 백루를 쓸어버림으로서 모든 산통이 깨어져버린 것이었
으니까!"
"그럴수가.....!"
그러자 왕우진은 이에 그만 말문이 막혀가고 있었다. 실로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
하지만 그로서는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상념속에서도 이 일련된 사건에 대
해서 물을 수 밖에 없었다.
거의 미쳐버릴것만 같은 심정.....!
"도저히 믿을 수 없다.....! 하다면 대체 자넨 어떻게 이런 사실들을 그토록
소상히 알게 되었지.....?"
"후후..... 당연히 알 수 밖에는 없지! 까닭인즉 바로 내 부친이 지난 한 때 백
사를 쫓기위해 형성된 관군(官軍)의 한 수장이었으니까! 당시 내 아버님께서
는 금군의 포정사직을 일임하고 계셨었어! 그리고 나로하여금 이 일을 뒤쫓게 한
직속상관, 즉 현 금의위의 안찰사사 역시도 당시의 싸움에 함께 참여했었던 인
물로 우문개로와 친분이 있었던 것 같아! 따라서 이 일을 맡아 자네를 뒤쫓게
된 나 역시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는 입장이지! 안찰사는 이 관부의 치부
를 엄수하기 위해 우정 한 식구와 같은 나를 선택한 것이 분명했을 것이니 말일
세!"
실로 기막힐 노릇.....!
하나 영호충은 이러한 충격과는 전혀 아랑곳없다는 듯 두 눈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차디찬 모멸의 빛을 떠올리고 계속 말을 이었다.
"후후..... 실로 나 역시 자네가 이런식으로 사건에 얽혀들었을 줄은 몰랐었네
만..... 그렇다면 참으로 세상이 웃기는군! 설마하니 그따위 추접한 인간이 무슨
딸을 아낀다고 정당히 황금을 벌어오라는 수작을 했다는 것인지.....! 천하의 사
악한 짓은 모두 도맡아하고 종내에는 친구를 팔아 면죄를 받고, 게다가 강탈한 피
묻은 돈으로 이름까지 바꾼채 호의호식을 해온 그 따위가 감히 어떻게 말이야!"
부드득 이를 갈았다.
"후후..... 그러니 자네도 이젠 이 일에서 그만 손을 떼라고 권하고 싶네! 활극
은 끝난거야! 그 더러운 놈들의 사이에 끼어서 자네가 더 이상 피를 뿌려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일세!"
"..........!"
왕우진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은 채 이젠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
흡사 머리속이 휑하니 비어버린 느낌.....!
그러한 그를 보며 영호충은 계속 차디찬 웃음을 머금었다.
"후후..... 물론 자넨..... 어쩌면 그 사건이 자네의 옛 사랑과는 아무런 관계
가 없다고도 하고 싶겠지! 하다면 묻겠는데, 자네로 하여금 생명보다 더 사랑해
살인자가 되게까지 한 그 여자는 대체 지금 어디에 있나? 그녀 역시 제 아비가
그런 인간이었음을 몰랐을 것은 아니고, 강도짓을 빼고는 일반의 무사가 결코
그만한 거액을 모울 수 없으리라는 사실 역시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텐데, 역시
이만치 자네를 사랑 했었단 말인가?"
영호충의 얼굴에 떠오른 모멸의 빛은 끝이 없었다.
"후후후..... 천만에, 아마도 그녀는 자네보다 황금을 더 사랑했을 것일세! 아
니었으면 연인이 악의 길로 들어서기 전에 그런 추악한 집을 박차고 나와 자네
를 따랐어야 마땅했던 것이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러지를 않았으니 결국 그 아
비에 그 딸이었을 뿐! 자네가 순진했었던 것일세!"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다.
신궁희연, 실로 진상이 이렇게 밝혀진 이상, 그녀가 진정코 의기로운 여인이었
으면 당연히 제 아비의 제의에 맞서 항거라도 했어야 마땅한 일이었으므로.....!
결국 이래저래 너무도 순진했던 왕우진 만이 이런 사실을 꿈에서도 모른채 사
랑에 눈먼 살인자가 되었고, 또한 종내에는 저들의 복수극에 휘말려 아수라처럼
날뛰고 다닌 셈이 되었을 뿐.....!
그러한 그를 보며 영호충은 이윽고 스스로의 모든 견해에 다음과 같은 맞줄을
그었다.
"후후..... 그러니 이젠 이 어처구니없는 살겁에서 손을 떼고 그만 나와 함께
가세나! 일단 나를 믿고 관으로 가서..... 처벌 등 모든 일을 처음부터 하나하
나 상의해 보세."
처벌 등을 하나하나 상의해 보자.....!
"..........!"
그러나 왕우진은 그저 고개만 떨구고 있었을 뿐 그 후로도 오랫동안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말문을 열었을 때는 무려 반시진의 시간도 더 흘러 활활 타
오르던 모닥불이 완전히 사그라들 무렵 쯤이었는데.....!
말을 꺼내는 그의 눈은 사자(死者)의 그것인양 희뿌옇게 완전히 맥이 풀려 있었
다.
"아니..... 그러나 아직은 한 번 더.....! 할 일이 남았네.....! 혈붕왕 우문개
로..... 끝으로 내 그를 만나봐야겠네.....!"
그러한 그를 보며 영호충은 무겁게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여부를 알고 싶은 것이로군! 하지만 구태여 그래야할 필요가 있겠나?"
휘청, 왕우진은 흡사 금시라도 쓰러질것만 같은 모습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후후..... 물론일세..... 분명히 있네.....! 솔직히 난 희연을 내손으로 죽인
후 이미 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어. 물론 죽음조차도 전혀 두렵지가 않
아.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죽더라도 그를 한 번 보고나서 죽어야만 마
음이 편해질 것 같으네. 그 후에는 내 스스로 자네를 찾아와 달게 자수를 하도록
하지.....!"
완전히 혼을 잃어버린 버린 듯한 무기력한 모습, 왕우진은 흐릿한 눈빛으로
영호충을 보며 잠꼬대를 하는 양 계속 말을 이어갔다.
"어떠한가.....? 물론 법을 지켜 나를 잡아가야만 할 자네의 입장은 모르지
않지만 최후로 한 번만 더 그 사내를..... 믿고서 보내주게나. 아니면 나는 자네
와 싸워야 하네. 그리되면 결과는..... 이미 이야기해 줬지만 내 은사월검은 무
섭네. 솔직히 아직 자네는 내 적수가 되지 못하지.....!"
"헛허허..... 거 참.....!"
이에 영호충은 그만 무겁게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이후 그는 다시 일각 여 동안 뭔가를 골몰히 생각한 후 이윽고 한 번더 피식
실소를 지었다.
"뭐, 정히 그렇다면 어쩔수 없지.....! 사실 자네가 한 수 위라는 것은 이미
깨닫고 있는 판이고, 또한 개죽음 당하기에는 난 억울한 만치 불가분 보내 주는
수 밖에, 현재로서는 또 내 능력밖이니 어쩔수가 없지.....!"
과연 이것을 진심이라 할 수 있을까.....?
영호충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계속 쓴 웃음을 머금고 왕우진을 응시했다.
"아무튼 그 점에 대해서는 마음대로 하게나. 하지만 그 전에..... 자네 혹시 지
난 진강의 사건 이후 만났던 노목삼의 딸 노운설 소저를 아직 기억하고 있나?"
"노운설.....?"
순간 왕우진의 꺼져가던 눈빛에 흠칫 한 번 더 놀라움의 불꽃이 일었다.
"자네가 그녀에 대한 것을 어떻게 알고 있나?"
"응..... 우연히 자넬 쫓다보니 알게 되었네. 한데 그 아름다운 소저가 자넬 뒤
쫓아 집을 나섰더군. 지금은 내가 보호해 주고 있네만 자네가 지난 여인을 사랑
하는 이상으로 그녀는 자네를 사랑하고 있는 듯 하더구먼. 여기에 대해서는 어
떻게 생각하나?"
".........."
이에 왕우진은 한 번 더 극도로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었다. 그리고 다
시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힘없는 웃음을 지었다.
"허허..... 하다면 번거롭겠지만 자네가 나를 대신해서 좀 전해주게나. 그런 철
없는 짓 치우고 하루속히 가족들에게로 돌아가라고 말일세.....! 내가 이미 죽
었다고 해도 상관이 없을 것 같네."
"후후..... 이미 죽었다.....!"
영호충은 한 번 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런 거짓말까지는 못하겠네. 아무튼 자네 생각
이 그렇다니 그건 그렇다치고..... 또 하나, 자네가 우문개로를 만나고자 한다면
구태여 그의 집으로 찾아갈 필요까지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네."
"집으로 찾아가야 할 필요까지 없다.....?"
"그렇다네. 실은 내 낮에..... 이곳의 한 관포의 말을 통해 철사자 사공척이란
놈이 생존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직후, 이미 그 사실을 서찰에 써서 급보로 중
앙관사에다 연락을 취했었네. 아마 지금쯤은 그자에게도 이 소식이 닿았을 것일
세."
순간이었다.
"뭐가 어째.....? 벌써 소식이 닿았을 것이라고.....!?"
왕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한 번 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으로 쨍하는 쇳소
리를 내뱉고 말았다.
"그럴수가.....! 만약 사실이 그러하다면 흥분된 그 자는 지금쯤 분명 분노로
치를 떨며 딸의 복수를 하겠다고 날뛰고 있을 것이확실한 터인데.....?"
그러했다. 그것은 분명히 사실이었다.
* * *
바로 이 시각, 그로부터 천 리나 떨어진 금릉의 신궁세가(新弓勢家)!
흡사 왕우진의 그런 말을 증명이나 해주듯 지난 그의 연인 신궁희연의 아비
신궁파오! 아니, 지난 한때 천하에 무수의 대혈겁을 일으키고 친구를 팔아 면죄
를 받았었던 추악한 사내 혈붕왕(血鵬王) 우문개로(右文介盧)는 한 장의 서찰
을 받아쥐고서 분노로 벌벌 몸을 떨고 있었다.
서찰의 내용은 오직 한 마디 뿐이었다.
ㅡ청부자(請負者) 신주삼패(新州三覇)의 배후,
철사자(鐵獅子) 사공척(士公尺)이 살아있다!
그리고 서찰에 찍힌 것은 큼직한 금의위의 관인(官印).....! 이에 한 동안 서찰
을 보며 계속 덜덜 몸을 떨던 우문개로의 두 눈에서 가히 걷잡을 수 없을 만치
엄청난 살기가 화악 터져나왔다.
"크으으으..... 그래.....! 그랬었더란 말이지! 어쩐지 뭔가가 좀 이상하다 싶었
더니만 사공척 그 썩어질 귀신이 아직도 뒈지지 않고서.....!"
흡사 피부가 쩍쩍 갈라져나갈 것만 같은 끔찍한 살기였다. 뒤따라 그의 눈은
금시라도 핏물이 뚝뚝 떨어져 내릴 듯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가기 시작했는데..
...!
"크흐흐흐..... 그래.....! 하다면 결코 좌시할 수 없지! 이(牙)에는 이! 어차
피 사공척 너 개자식과 나는 한 하늘 아래 공생할 수 없는 만큼.....!"
빠드득! 소름끼치게 이를 갈며 목청이 터져라 버럭 벽력같은 대갈을 터뜨렸다.
"초토화 시켜준다! 다들 들어라! 내 이길로 즉시 놈에게 양자결단의 혈첩(血
帖)을 띄울 터인즉! 너희는 지체말고 중원전역의 모든 세력에게 파발을 띄워 집
결명령을 내리도록 한다! 사공척 놈의 목을 따버리는 것이다!"
촤르륵! 벽장으로 부터 한 장의 크다란 지도를 꺼내 탁자위에 펼친후 하나의
피빛 선열한 비수를 꺼내 그 중 한곳에 콱! 찍어 꽂았다.
"장소는..... 놈들과의 중간지점인 대모산(大茅山)의 백룡탄(白龍灘)이다!"
대모산(大茅山)의 백룡탄(白龍灘)!
"명을 받자옵니다!"
그러자 순간! 지금 그가 있는 주위에는 한결같이 온 전신에서 으스스한 냉기가
감도는 사십 대의 섬뜩한 기도의 사내 십여 명이 빙 둘러 서 있었는데, 그들이 일
제히 두 눈에서 시퍼런 불줄기를 길길이 내뿜으며 촤악! 부복지례를 취했다.
결국 왕우진의 예감이 한 번 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들어가고 있었던 것
이다.
* * *
또한 같은 시각,
지금껏 계속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영호충은 입가에 한 번 더 모멸에 찬 냉
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후후후..... 맞아. 따라서 불과 열흘을 넘기지 않아..... 이제 그 두 악당 놈
들은 곧 상상을 불허할만한 싸움을 벌일 것일세. 대충 금릉과 이곳의 중간 어디
인가가 접전 장소가 될것 같은데, 그곳에서 우문개로 그 자를 만나보도록하게
나. 나 역시 위치가 확인되는대로 갈터인즉.....!"
"그렇게 하도록 함세.....! 여러가지로 신경을 써주니 나로서는 그저 고맙다
고나 할 수 밖에.....!"
왕우진의 눈이 다시 흐릿하게 빛을 잃었다.
"그럼 그렇게 알고 나는 이만 가겠네.....! 맹세코 그를 만나본 후에는 순순히
자네에게 포승을 받록 하겠네만 그때까지는 쉬면서..... 힘을 좀 축적해둬야겠어
.....!"
이어 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듯 힘없이 등을 돌려 휘청휘청 급기야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느새 먼 산에는 뿌옇게 동이 터오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그의 모습이 다시금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렇게 두 번째의 조우(遭遇)를
끝낸 영호충은 극도로 침울히 고개를 떨구며 탄식같은 혼잣말을 토해냈다.
"이것이..... 진정코 잘하고 있는 짓인지 모르겠군.....!"
휘이이..... 주위에는 흡사 뼈를 에일듯한 정월의 새벽 삭풍이 눈가루까지 휘
말아올리며 불어 닥치고 있었으나 떨구어진 그의 이마에는 오히려 송글송글 땀
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이 친구야..... 솔직히 말해서 자네가 힘을 축적하기 위해서 쉬겠다는 그 말
은..... 아마 삼척동자라도 믿지않을 것이네.....! 나는 이미 알아.....! 자네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를 너무도 확실히.....!"
왕우진이 향하는 곳.....!
이어 그는 흡사 나약해지는 자신을 채찍이라도 하려는 듯 지긋이 입술을 깨
물며 두 눈 한 가득히 강철같은 의지의 빛을 떠올렸다.
더불어 그의 입에서는 한 번 더 실로 상상치도 못할만큼 섬뜩한 뜻밖의 독백
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후후후...... 하지만..... 어차피 죽어 마땅한 놈들일것 같으면! 오늘 이후,
실은 어차피 나 역시 자네 이상으로 이 두 손에 엄청난 피를 묻히게 될걸세! 어
쩌면 이로서 나 역시 관포의 생활을 마감할지도 모르지만..... 다시 보기까지 그
저 무사하도록만 하게나!"
왕우진 이상으로 엄청난 피를 두 손에 묻히게 될것이다! 내막을 알 수 없는 소
리일 수 밖에 없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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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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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 입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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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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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 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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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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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오늘도 잘보고 있습니다~~~
즐독이랍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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