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6차 김누리 교수의 “거대위기 시대, 대한민국 대전환” 강의를 듣고/ 안성환
사단법인 울산문화아카데미에서는 제436차 김누리 교수의 “거대위기 시대, 대한민국 대전환” 특강을 개최하였다. 김 교수는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이자 사회비평가, 교육개혁가로 널리 알려진 학자이다. 특히 JTBC “차이나는 클라스”, tvN “어쩌다 어른” 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과 활발하게 소통해 왔다.
강의를 들으며 먼저 '개혁'과 '혁명'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개혁은 기존 제도를 고쳐 발전시키는 것이라면, 혁명은 기존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얼핏 혁명이 더 어려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존 제도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개혁이 오히려 더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이번 강의는 다소 민감한 주제를 포함하고 있었다. 강의가 끝난 뒤에도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개인적으로는 1시간 30분의 강연 뒤 20분 정도의 자유토론이 이어졌더라면 더욱 깊이 있는 논의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따라서 이 글 역시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개인적인 소감임을 먼저 밝히며, 혹시 있을 오해를 미리 경계하고자 한다.
김 교수는 독일 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1968년 혁명(68혁명)'을 소개하였다. 그는 한국에는 독일과 같은 의미의 68혁명이 없었으며, 대신 1987년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한 86세대의 민주화운동이 정치민주화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낸 민주화운동과 촛불시민운동은 한국 정치민주화의 중요한 성과로 평가되지만, 그는 이를 두고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라는 다소 도발적인 표현을 사용하였다.
한편 나는 다른 생각도 해 보았다. 당시 대한민국은 삼시 세끼조차 해결하기 어려웠던 보릿고개를 막 벗어난 시기였다. 만약 독일식 68혁명이 그 시절 한국에 찾아왔더라도 시대적, 경제적 여건 속에서 제대로 뿌리내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김 교수가 말한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의 이유 또한 흥미로웠다. 광장에서는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가정에서는 권위적인 가장이 되고, 학교에서는 학생을 억압하는 교사가 되며, 직장에서는 갑질하는 상사가 되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민주주의를 말하면서도 일상 속에서는 민주주의적 태도가 충분히 실천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독일은 어떻게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을까?
김 교수는 그 배경을 1968년 독일 사회의 변화에서 찾았다. 68혁명의 핵심 구호는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이 운동은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되어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었고, 정치뿐 아니라 교육, 문화, 가정, 노동 현장까지 변화시키는 사회문화적 혁명으로 발전하였다고 했다.
그는 당시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며 반전운동에 나섰고, 독일 역시 과거 나치 청산과 민주주의 성찰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소개하였다. 또한 당시 독일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의 구호인 "더 많은 민주주의를"을 인용하며, 정치민주화뿐 아니라 사회민주화, 경제민주화, 문화민주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강의 중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독일 대학의 운영 방식이었다. 독일 대학은 '학문공동체'라는 개념 아래 교수와 연구자, 학생들이 대학 운영에 폭넓게 참여한다고 한다. 또한 대부분의 대학이 국공립 체제로 운영되며 교육의 공공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도 소개되었다.
문화민주화에 대한 설명 역시 흥미로웠다. 문화민주화란 계층과 지역, 성별에 따른 차별 없이 모든 국민이 문화의 창조와 향유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독일의 68혁명 이후 대학사회에서 교수와 학생 간의 과도한 권위주의가 약화되었고, 서로를 보다 수평적으로 대하는 문화가 정착되었다고 설명하였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기존 교수사회의 반발과 사회적 갈등 역시 적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반면 한국 사회는 1960년대 후반 이후 68혁명을 경험한 국가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고 분석하였다. 베트남전 파병과 1968년 김신조 사건, 냉전 체제의 강화 등으로 예비군 제도와 교련교육, 국민교육헌장 등이 등장하면서 권위주의적 국가 체제가 더욱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역사적 경험이 오늘날까지도 권위주의 문화와 낮은 인권 감수성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OECD 통계를 언급하며 한국의 높은 자살률 문제를 지적하였다. 특히 노인 빈곤과 청년 세대의 과도한 경쟁 구조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어지고 있으며, 입시 경쟁과 장시간 노동, 과도한 사교육 부담 등이 개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라고 진단하였다.
결국 김누리 교수가 강의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 핵심 메시지는 단순히 독일을 배우자는 것이 아니었다. 정치민주화를 넘어 사회민주화와 경제민주화, 문화민주화가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경쟁과 효율만을 추구하는 사회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연대, 공존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을 제기하였다.
강의를 들으며 나 역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짧은 기간 동안 눈부신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세대의 노력과 희생 또한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높은 자살률과 교육 불평등, 노동의 고통, 세대 갈등과 같은 과제 역시 우리가 해결해야 할 현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발전은 단순히 GDP 규모나 경제성장률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인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국민을 대표하여 토론하고 법을 만드는 국회의 본질은 '대의(代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치도 이제는 더 다양한 계층과 세대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국회는 특정 직업군이 아니면 입성하기 어려운 구조이며, 법조인과 언론인, 교수 출신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 그러나 진정한 민의는 청년과 노년, 노동자와 농민, 자영업자와 과학기술인, 교사와 예술인 등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이 균형 있게 참여할 때 비로소 제대로 반영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지금의 국회가 이러한 책무를 충분히 수행하고 있는지 깊은 의문을 갖게 된다. 물론 이 부분은 나의 짧은 소견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대전환은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가정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학교에서 토론과 민주주의를 배우며, 직장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사회적 약자와 미래 세대를 배려하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김 교수는 우리에게 하나의 큰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과연 어떤 나라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인가?"
과거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 바로 그것이 대한민국 대전환의 진정한 출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2026년 6월 23일. 안성환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