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대구에서 외가가 있는 예천까지는 완행열차로 4시간 반이나 걸렸습니다. 보급-보통급행-이라고, 몇 역을 무정차로 가는 기차는 4시간여 걸렸습니다. 멀리 홍익회 아저씨의 손수레가 지나가면 어머니는 제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셨답니다. 없이 살 때라 사이다 한 병, 삶은 달걀 2개 묶음 하나 사는 것도 부담스러웠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물론 제 기억엔 없었지만... 그래도 형편이 서서히 나아져, 대학 다닐 때는 외가 가는 길에 김천에 정차하면 가락국수 한 그릇 사 먹을 정도는 되었습니다.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김천역에서는 5분 정도 쉬었던 것 같은데, 역에 정차하면 바로 호객하시는 분이 5분 남았다 하며 가락국수 한 그릇을 권하는데, 발차할 때가 되어도 5분 남았다 하기에 참 이상한 시계다 싶었던 것도 기억납니다. 굵은 면에 파, 김 가루, 고춧가루 얹고 우동 국물에 내주던 그 가락국수, 먼저 익혀 놓은 탓에 면은 불었지만 그래도 별미였습니다. 이때 먹었던 가락국수 한 그릇은 어느 산해진미 부러울 게 없는 맛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더 어린 시절로 가면, 초등학교 6학년 때, 동급생들은 대부분 도시락을 싸 왔는데 혼분식 검사를 한 후 먹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총각이셨던 담임선생님께서 배달시켜 교실에서 드시던 가끼우동 한 그릇은 왜 그리도 맛나 보이든지... 그 시절, 선생님이 어느 학생과 마주 앉아 점심을 같이 먹느냐에 따라,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으로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과 가끔 함께 먹으며 그 귀한 가끼우동을 곁눈질해 보던 기억이 아직도...
가끼우동은 일본에서 건너왔기에 가케우동으로 불리다가 각기우동, 가끼우동으로 불렸고, 대전, 김천에서는 가락국수로 불렸지요. 지금은 거의 우동으로 통용되어 불리지만, 아직도 대전역 포장마차에서는 각기우동으로 부르고, 김천, 구미에서는 가끼우동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런 변천사 혹은 역사와는 별개로, 거의 명칭이 통일되다시피 한 우동은 수십 년 전부터 장우동, 클우동, 용우동 등 전국적인 우동 전문 체인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쉽게, 가볍게 접할 수 있고 가성비 좋은 한 끼 식사였습니다. 그런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제일 편하게 먹을 수 있던 우동이 이젠 추억의 장으로 넘어갈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재료비가 오르면서 수년 사이에 가격이 많이 올라간 걸로 기억되는데, 그저께 서울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렀더니 6,500원이나 하더군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의 우동 가격은‘23년 8월 기준 2년 전 대비 11% 올랐다는데, 이번에 충청도 모 휴게소에서는 천원, 18% 올랐으니 3년 사이에 29%나 오른 겁니다. 휴게소 판가가 높은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만, 그래서 매년 국회에서 지적이 되고 개선안이 나오지만 만족스럽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휴게소에서 1만 원짜리 돈가스를 팔면 4,100원이 휴게소 영업사업체에 수수료로 가고 그중에 2,000원이 도로공사로 귀속되는데, 도로공사 퇴직자 단체인 도성회가 출자회사를 만들어서 휴게소 사업을 하고 있기에 손대기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까지 알게 되니, 이제부터 휴게소에서 우동 먹을 일은 없을 것도 같아 많이 아쉽습니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가끼우동이건, 대학 시절 간간이 먹었던 가락국수건, 이후 휴게소에서 즐겨먹었던 우동이건 잊어보려 합니다. 대체할 음식은 주변에 널렸으니까요. 추억과 맛을 함께 즐기려 했던 우동, 이제 아쉽게도 잠시 작별을 할까 합니다. 우동은 이제 추억으로 가슴에 남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아~ 우리 집 옆, 형곡도서관 앞 분식점에서는 아직도 냄비우동 한 그릇이 2,500원입니다. 여기는 예외입니다.
자연을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값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빛나는 시절이건, 아니건... 그래서 더욱 자주 가까이 하게 됩니다. 며칠 전 금오산 솔숲 맥문동의 보라에 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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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머리로, 추억은 가슴으로(모셔온 글)===============
기억은 싫다.
왠지 논리 정연한 것 같아 거부감이 든다.
너 그거 기억해? 그 말속엔 강압이 들어 있는 듯하다.
기억 못하면 알아서 해. 어쨌든 반드시 기억해서 내 앞에 모든 것을 다 털어 놔.
꼭 취조 받는 느낌이다.
기억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닌데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니?
이렇게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여하튼 기억에 관한 내 느낌은 그렇다.
그래서 기억이 싫다. 기억한다는 것.
추억은 좋다.
추억, 단 두 글자인데 그 글자 안에 깔깔대는 아이의 목소리며
모래알을 밟으며 걷는 연인의 발자국이며
술주정하다 어깨에 기댄 채 잠든 선배의 콧소리가 담겨져 있다.
추억, 이 단어를 입술에 올려놔봐라.
얼마나 달달한가.
설탕가루를 묻혀가며 먹던 도넛 같은, 그 이상이다.
얼마나 므흣한가.
손에 잡히지 않지만 눈이 절로 감길 만큼 아련하다.
추억 속에는 나쁜 기억은 살 수 없다.
나쁘다면 그건 이미 추억이 아니다.
현실이 고달픈 사람이 추억에 집착한다지만 절대로 그건 아니다.
추억은 심심할 때 꺼내먹는 간식이랄까,
언제 어디서나 꺼내먹어도 참 맛나다.
질리지 않고 촉촉하다.
기억하는 건 머리를 써야하지만
추억하는 건 가슴으로 느낀다.
그래서 추억이 좋다.
오늘은 기억을 잠시 멈추고 추억을 달리자.
-----김이율의「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