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친구 K....
오늘 K의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가라앉아있지만, 나는 아직도 K의 전화를 받으면 마음이 설레는것을 어쩔수가 없다.
벌써 30년이나 된 K와의 인연을 나는 결코 잊을수가 없다.
중학교 2학년이 거의 끝나가고 겨울방학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친구가 되고싶다는 글과함께 겨울방학동안 건강히 잘 지내라는 편지를 받았다.
남들앞에 잘 나서지도 못하고 말주변도 변변찮은 내게
K의 편지는 큰 용기와 행복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다림....
그렇게 해서 나의 K에 대한 기다림은 시작되었다.
요즘처럼 그 흔한 핸드폰도 없었고, 집전화도 귀하던 때로 그저 엽서나 편지가 아니면 서로 소식을 전할수가 없던 시절이었다.
집주소를 묻는 K에게 알려주면서 K의 다정하고 따뜻한 글을 기다리고
K의 소식을 기다리고 나에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지기시작했다.
우리는 그해 겨울방학동안 자주 만났던것같다.
K나 나나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우리는 더욱더 친해질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K에게는 친한 친구가 두명이 있어서 삼총사라 부르며 함께 어울려 다니던 친구들이 있었다.
K는 나를 그 삼총사 모임에 꼭 데리고 다녔는데 그친구들은 나를 썩 달가워 하지 않았다.
K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자기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서울로 올라와서도 그후까지도
그 삼총사들과 계속 만났던것을 보면 K의 나에 대한 마음을 충분히 짐작하고 남음이다.
K는 고등학교 1학년때 근교 도시학교로 전학을 갔다.
지금도 '아침일기'를 들으면 그때의 일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르면서 K가 내게 전학을 가게 되었다고 하던 말이 생각이 난다.
나는 아주 많이 많이 울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당시 나의 성적표를 보면 나에게 있어서 K의 전학이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를 잘 알수가 있다.
전학을 가고나서 안정을 찾은다음 K가 나를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K가 전학을 가기전보다 훨씬 자주 만났던것 같다.
아마도 서로 다른 도시에 살고 있다는 마음에 그렇게라도 하지않으면
보고싶다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K가 전학을 가고 나서 내가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을무렵
동네 초등학교 동창생의 소개로 K가 사는 시의 남학생과 펜팔을 하게되었다.
물론 나는 K에게 펜팔얘기를 하지 않았으나 나중에 우연하게 K가 내가
그 남학생과 사귄다는것을 알고나서 매우 서운해하면서 그 만남을 그만두었으면 하기도 했다.
K와는 하루가 멀다하고 매일 만나고 K가 한시간가까이 버스를 타고 와서 나를 데려다 주고 가고 하기를 반복하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나는 초등학교 동창생이 소개해준 펜팔친구는 한번도 만나지를 않았다.
K는 그곳에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으며 그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
꼭 나를 데리고 다니기를 좋아했다.
그 덕분에 나는 K의 삼총사 친구들에게 미움을 톡톡히 받았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내게 무슨 용기가 있어서 그런 미움과 질시를 모두 이겨내었는가 싶을 정도로 나는 꿋꿋하게 K를 만났다.
대입학력고사를 보고나서 펜팔친구를 만났다.
K는 나에게 절대 화를 내는 친구가 아니어서 뭐라고 하지는 않았으나
나를 만날때마다 사사건건 언제쯤 그 친구와 헤어질거냐고 물어오고는 했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때 서울로 왔고, K는 그 도시에 계속 살았으므로
우리의 만남이 차츰 뜸해질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그 펜팔친구가 서울에서 대학교에 합격을 하게되면서
당시 나는 그 친구를 서울에서 만나고 있었다.
가끔 고향에 내려가면 가는날부터 서울로 다시 올라오는 날까지
K만 만나고 오는 날도 있었다.
차를 타는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던 K는 내가 보고싶다고 한마디만 해도
한걸음에 바로 서울로 나를 보러 와주었다,
K의 삼총사중에 한 친구가 서울에 직장을 구해 K도 자주 서울에 오게되었지만 서울에서는 K와 삼총사친구들과 내가 굳이 만나는 일이 생기지 않았던것같다.
당시 나는 서울에도 새로운 친구들이 있었고, 펜팔친구도 만나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그릴 달가워하지 않는 삼총사친구들 속에 내가 끼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K가 서울로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부천 어디쯤이었던것같은데 그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 지내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때쯤의 K는 내가 만나는 그 펜팔친구를 무척이나 질투아닌 질투를 해서 내가 그 친구를 만난다는 얘기도 할수 없던 때였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K와의 사이가 소원해지고 있던 때였다.
어느날 K가 내게 '보고싶다'는 단 네글자만 쓴 편지를 보내왔고
K가 내게 그랬던것처럼 나도 역시 나를 보고싶다고 하는 K를 보기위해
한달음에 그곳으로 내려갔다.
그날 K의 친구들과 아주 늦게까지 술을 마셨고
(K는 그때나 지금이나 술을 즐겨마시는 친구이다)
취한 K는 나를 꼭 데려다 주겠다며, 아니 나에게 꼭 할말이 있다면서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늦은 밤거리를 한참을 걸었다.
K나 나는 모두 걷는것을 매우 좋아한다는 면에서는 서로 닮았고,
서로에게 상처주는 말을 잘 못한다는 것도 닮았다.
그러나 그날은 K가 내게 헤어지자고 했던것같다.
나는 몇년전 K가 전학을 가던 아침처럼 많이 울었고, K도 울었다.
헤어지자고 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는데, 내가 그 펜팔남자친구를 만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남자친구하고 헤어지겠노라고 K에게 약속을 했고
그게 진심이라면 K는 나에게 그 마음을 보여달라고 해서
그날 우리는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밤을 세워 술을 마셨다.
나는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하지만 K는 대단한 애주가여서 밤세워
술을 마시면서 몇번이고 K에게 다짐을 했다.
서울로 돌아와서 나는 그 펜팔 남자친구와 이별을 했다.
물론 쉬운 이별도 아니었고, 그 친구는 내가 전하는 이별을 쉽게 받아들여주지도 않았다. 이별을 해야하는 이유를 묻는 친구에게 그냥 싫어서라고 가슴에 못을 박고 돌아섰다.
그후에도 그 친구는 내게 계속 전화를 했고 나를 찾아와서 나를 힘들게 했다. 아니, 나보다 아마 그 친구가 더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 펜팔친구와 이별을 하면서 나는 동시에 K와도 이별을 했다.
전화도 받지 않았고, 편지에 대한 답장도 하지 않았으며
한동안 나는 고향을 찾아가지도 않았다.
물론 K는 내게 계속 편지를 보내왔지만...
나는 모든것을 잊고싶었다.
그 펜팔친구와의 추억도 K와의 추억도 모두...
나는 미팅도 했고 선도 보고 친구들과 산에도 다녔다.
직장동료들과 당구며 볼링도 치러 다니고, 나이트클럽도 다니며
직장 남자동기생들과 어울려 다니기도 했다.
휴일이면 야구장으로 롤러스케이트장으로 돌아다니기 바빴고,
나는 가능하면 K에 대해 생각하지않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
그러나
안되는것은 안되는것이었다.
나는 그러면 그럴수록 K가 더욱 그리워 미칠것만 같았다.
나는 K에게 편지를 했다.
내가 K를 보고싶어하고 그래서 내가 K를 보러가겠노라고...
K는 다시 돌아올거면서 왜 그렇게 애를 태우고 속을 썩이냐고
그래서 내가 밉다고 나를 구박했지만
그게 K의 본심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잘 알고있었다.
다시 K와 만나게 되었고 그러면서 또한 K의 친구들과도 다시 어울리게 되었다.
K의 친구들은 나에게 그만 K의 속을 태우라고 했다.
나는 지금도 K앞에서도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 낳는동안 K도 결혼을 해서 아이를 하나 두었다.
서로 결혼을 하지 않을것처럼 하였으나 내가 먼저 결혼을 하고
나중에 K가 결혼을 했다.
K는 내 결혼에 와 주지 않았지만 나는 K의 결혼식에 갔다.
진심으로 K가 행복하기를 기도하였고 축하해주었다.
그렇게 30년의 세월이다.
어떻게 30년의 세월을 잊을수가 있을까.
그 동안에 서로에게 아픔도 있었고, K에게나 나에게나 이런 저런 크고작은 굴곡이 지나갔다.
올 봄에는 K의 오랜 남자친구가 K를 통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도 K에게 말하지 않았고 K도 내게 말하지 않았다.
다만 먼저 세상을 떠난 그 친구가 K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는 내가 잘 아는터라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내게도 왔다.
K가 결혼을 하고나서 내가 연락을 끊고 지내던 어느날 K가 느닷없이
전화를 해왔다. 무심한 사람이라고,...
전화번호를 바꾸고 아무와도 연락을 하지 않고 살던 시절이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K가 전화를 해왔다.
K를 만나러 K가 결혼을 해서 살고있는 집으로 찾아갔다.
K네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왔던것 같다.
사는 집은 근사했으나 참으로 미안하게도 웬지 K가 그리 행복해보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도 K는 나에대한 마음이 그대로일까?
가끔 K는 술을 한잔했다면서 늦은잠 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한다.
혹은 새벽에 뜬금없이 보고싶다는 문자를 보내오기도 한다.
그럴때면 나는 생각한다, 지금 K가 외로워하고 있는거라고...
오늘도 K가 전화를 했다.
"뭐해?"
"보고싶으니까 언제 한번 놀러와라..."
K의 전화내용은 언제나 한결같다.
보고싶으면 보고싶은사람이 오면되지하고 내가 말하면
서울은 사람살데가 아니라고 하면서 그런곳으로 갈수가 없다고 한다.
그런곳에서 사는 내가 참 대단하다고 하면서 K는 너스레를 떤다.
아이둘을 낳고 사는동안 나는 많이 씩씩하고 용감해졌으며
목소리도 커졌으나 여전히 K앞에서면 나는 말도 제대로 할수가 없다.
K를 잘 알기 때문이다.
이제는 편지보다 문자를 더 자주 보내오는 K.
옛날 그 때의 감정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나는 여전히 K를 생각하면 마음 한켠이 저릿해 지는것은 어쩔수가 없다.
나는 아주 많이 변한것 같은데 K는 옛날 그대로이다.
나도 잘 아는데 K는 전화할때마다 내게 각인시켜준다.
자기는 하나도 변한게 없는데 나는 아주 많이 변한것같다고...
조만간에 K를 보러 가야겠다.
K가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