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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입정처(入定處)이요, 유무 초월의 생사문(生死門)인 바, 천지·부모·동포·법률의 본원이요, 제불·조사·범부·중생의 성품으로 능이성 유상(能以成有常)하고 능이성 무상(無常)하여 유상으로 보면 상주 불멸로 여여 자연(如如自然)하여 무량세계를 전개하였고, 무상으로 보면 우주의 성·주·괴·공(成住壞空)과 만물의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사생(四生)의 심신 작용을 따라 육도(六途)로 변화를 시켜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으로 혹은 은생어해(恩生於害)로 혹은 해생어은(害生於恩)으로 이와 같이 무량 세계를 전개하였나니, |
[일원상 서원, 나의 서원]
일원상 서원문 두 번째 시간입니다. 일원상 서원문을 공부하실 때는 자신의 서원을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내 서원이 개인적 서원인가, 가족적 서원인가, 국가적 서원인지 생각해보세요. 대종사님은 ‘일원상 서원’을 세우라고 하셨죠. 내가 일원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영원히 행복하기 위해서는 일원상의 서원을 이루셔야 합니다.
가장 욕심이 많은 사람이 일원상 서원을 세우는 것입니다. 욕심이 적은 사람들은 일원상 서원을 세우지 못합니다. 겨우 개인적 서원, 가정적 서원을 세울 수 있을 뿐입니다.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
본문을 보겠습니다.
* 언(言): 말할언(語也), 말씀언(辭章). * 어(語) : 말씀어(告人) 좁을소(狹隘) 언어(言語) : 음성 또는 문자를 수단으로 하여 사암의 사상· 감정을 표현하여 전달하는 활동 * 도(道) : 이치도(理也), 도리도(仁義忠孝之德義), 길도(路也), 말할도(言也), 순할도(順也) * 단(斷) : 끊어질단(自絶), 끊을단(載之), 갈길단(翦자를전也), 폐할단(廢也), 조각낼단(段也) 언어도단(言語道斷) : 진리의 본체·본래 마음을 설명하는 말, 즉 진리의 본체는 언어로써 설명할 수도 없고 우리의 본래 면목 역시 언어가 끊어졌다는 뜻. 말문이 막힌다는 뜻.
* 입(入) : 들입(出之對), 넣을입(入之), 드릴입(納也), 빠질입(沒也), 받을입(受也), 들을입(聽也), 뺏을입(取也), 해칠입(侵害). * 정(定) : 고요할정(靜也), 정할정(決也), 편안할정(安也), 익은고기정, 그칠정(止也), 이마정(額이마액也), 별이름정(宿名) * 처(處) : 곳처(處所), 살처(居也), 처녀처, 처치할처, 처자처, 정할처(定也), 그칠처(止也), 구처할처(區處). 입정처(入定處) : 입정의 경지. 입정의 상태. 진리의 궁극적 경지, 또는 궁극적인 진리에 합일된 우리의 본래마음. 언어문자나 언어명상으로써는 어떻게 짐작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으며 분별사량이 다 끊어진 경지. |
일원(一圓)은 ‘언어도단의 입정처’라 하셨습니다. 일원은 언어로 뭐라 말할 수 없는, 입정된 자리입니다. 이 자리는 ‘진공평등의 자리’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보고 아는 그 자리를 무어라 말하겠습니까? 이것을 한 물건(일물, 一物)이라 부르거나, 마음이라 부르거나, 일원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사실 뭐라고 말하기 곤란한 자리입니다. 있다고 하자니 없고 없다고 하자니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있긴 한데 찾으려니 형체가 없습니다. 없다고 하기엔 작용이 있습니다. 크다고 보자면 끝이 없고, 작다고 보자면 낱이 없습니다.
이 자리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언어로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언어가 끊어져야 들어갑니다. 즉, 입정(入定)해야 들어가야 알 수 있습니다. 입정해야한다는 말은 망념이 끊어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일원의 체성에 합한 자리’입니다.
[일원은 유무초월의 생사문]
* 유(有) : 있을유(無之對), 만물유(萬體萬有), 취할유(取也), 얻을유(得也) * 무(無) : 없을무(有之對), 빌무(空虛), 아닐무(不也) 말무(勿也) * 초(超) : 뛰어넘을초 뛸초, 뛰어오를초, 빼어날초, 빠를초, 멀초. 서글퍼하다, * 월(越) : 넘을월, 넘어갈월, 초과할월, 지날월, 빼앗을월, 멀월, 어두울월 초월(超越) : ① 어떠한 한계나 표준을 뛰어넘음. ② <철학> 경험이나 인식의 범위를 벗어나 그 바깥 또는 그 위에 위치하는 일. 스콜라 철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에 들지 않는 존재, 신(神), 선(善)이라는 개념의 본연의 자세를 가리킨다. 칸트 철학에서는 초감성적인 것이 우리들의 경험에서 독립하는 일을 가리키며, 실존 철학에서는 무자각적인 일상적 존재의 입장에서 철학적 자각의 입장으로 넘어서 나아가는 일을 뜻한다. 유무초월(유무초월) : 유무의 이전 * 생(生) : 생활생(生活), 살생(死之對), 목숨생(命也), 해산할생·낳을생(産也), 날생(生也), 날것생(未熟), 익지않을생(未烹삶을팽), 어조사생(語助辭), 알낳을생, 접때생, 산것생(活物), 자랄생(成長), 늘릴생(植生), 저절로생(天然), 나생(自己謙稱) * 사(死) : 죽을사(沒也), 마칠사(終也), 다할사(盡也), 끊을사(絶也), 기운흩어질사(氣散). * 문(門) : 문문(兩戶象形人所出入在堂日戶在域日間), 집문(家也), 집안문(家族門), 가문문(門閥), 무리문(輩也孔門), 길문(其道門外漢) 생사문(生死門) : 삶과 죽음의 문. 영지의 작용으로 천지만물과 심신작용이 능히 나타날 수 있고(生), 숨을 수 있는(滅) 조화문. |
일원은 ‘유무초월의 생사문’이라 하셨습니다.
우주가 작용할 때 생생약동하게 작용합니다. 생겼다 멸했다가 온갖 조화가 일어납니다.
이 마음이 아무런 실체도 없는 것 같지만, 작용할 때를 보자면 있어졌다 없어졌다 합니다. 마음이 ‘생주이멸(生住異滅, 생겼다가 머물렀다가 떠났다가 멸함)’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요. 찰나로 있어졌다 없어집니다. 순간순간 생하고 멸합니다.
‘생멸문’에서 ‘문(門)’은 경계를 의미합니다. 문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데, 안이면서 밖입니다. 우주 모든 현상을 보면, 유는 무로 가고 무는 유로 가면서 생멸하는데, 유무초월의 생멸문은 유도 아니요. 무도 아닙니다. 유무를 초월해 있습니다.
[진공 = 묘유]
일원상 서원문의 내용은 이제까지 말씀드린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일원이 ‘언어도단의 입정처’이고, ‘유무초월의 생사문’이라는 것입니다. 일원이 ‘진공의 평등자리’로도 있고, ‘묘유의 차별자리’로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진공과 묘유가 따로 있지 않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진공과 묘유는 손의 앞뒷면과 같습니다. 진공이 곧 묘유입니다. 실체는 진공이요 작용은 묘유거든요.
게송으로 보자면, 언어도단의 입정처는 ‘구공’이고, 유무초월의 생사문은 ‘구족’입니다. 게송에 ‘구공 역시 구족이라’라고 하셨잖아요. 일원이 언어도단의 입정처이면서, 유무초월의 생사문인 것입니다.
[일원은 천지·부모·동포·법률의 본원]
위 두 내용을 ‘천지·부모·동포·법률의 본원’이요, ‘제불·조사·범부·중생의 성품’으로 다시 설명하셨습니다.
일원이 ‘언어도단의 입정처’, ‘유무초월의 생사문’, ‘천지·부모·동포·법률의 본원’, ‘제불·조사·범부·중생의 성품’ 4가지로 설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어도단의 입정처’와 ‘유무초월의 생사문’ 2가지 내용으로 설명되고, 다시 ‘천지·부모·동포·법률의 본원’과 ‘제불·조사·범부·중생의 성품’ 2가지 내용으로 설명되는 것입니다.
* 본원(本源)근본본. 근원원. :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 현상, 이치의 근원이며 실재, 전체. (同氣連契) |
일원이 ‘천지·부모·동포·법률의 본원’이라는 부분을 보겠습니다. 일원은 천지의 본원이고, 부모의 본원이고, 동포의 본원이고, 법률의 본원입니다. 그것이 내 참 마음입니다.
본원 즉 실재입니다. 천지·부모·동포·법률이 내 참 마음에서 나왔다고 보셔도 되고, 천지·부모·동포·법률이 곧 내 참 마음이라 보셔도 됩니다.
[일원은 제불·조사·범부·중생의 성품]
* 제불(諸佛):모든제.깨달을불. =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 조사(祖師):개조조(開祖). 스승사 = 어떤 학파의 개조. 개산조사(開山祖師)의 준말. 불교에서 한 종파를 세워서 그 종지(宗旨)를 열어 주장한 사람의 존칭. 선교양종(禪敎兩宗) 중 특히 선종에서 조사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함. * 성품(性品, 禀)성품성, 성질품·줄품 : 본성(本性), 곧 태어나면서부터 본래적으로 지닌 성질을 말한다. 성품은 인간의 마음을 통하여 우주의 본체를 밝히려는 입장에서 심체(心體)라고도 한다. 비고(空) ·밝고(圓), 조화로운(正) 마음. (同源道理, UR) |
마음자리로 보자면, 일원은 ‘제불·조사·범부·중생의 성품’이라 하셨습니다.
제불의 성품, 조사의 성품, 범부의 성품, 중생의 성품이 본래 같습니다. 누구든 성품은 일원상 자리로 똑같습니다. 그 자리는 선악업보가 끊어진 자리입니다. ‘불사선 불사악 (不思善 不思惡)’입니다.
우리가 선악이 끊어진 자리에 근간해서 선악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선악이 끊어진 자리에 근간한 선악으로 보지 않고, 선/악의 색을 칠해버리면, 분별세계에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차별의 세계, 변화의 세계는 ‘불변의 자리’를 떠나서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변으로부터 분리된 변화는 없습니다. 불변과 분리하여, 변화만 보는 사람을 중생으로 봅니다. 육안으로 거짓 세계만 보는 것입니다. 꿈의 세계를 보는 것이지요.
눈을 감아 보십시오. 차별세계가 닫힙니다. 그것이 일원입니다. 차별세계는 일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일원에서 나온 차별세계를 알지 못하고, 일원과 분리하여 차별세계만 봅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물론, 제불·조사·범부·중생의 성품은 같지만 심법은 다르지요. 제불조사는 깨끗하지만, 범부들은 때가 끼어 있지요.
수양을 많이 한 사람은 기운이 맑고 배꼽 위에 기운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을 마감할 때 툭 뜰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색욕, 탐욕이 많기 때문에 기운이 탁하고 배꼽 아래 기운이 강합니다. 그러면 생을 마감 할 때, 뜨지 못하고 땅의 세계나, 습한 세계로 가거나 심하면 몸을 못 받을 수도 있습니다.
[능이성유상, 능이성무상]
* 능(能) : 능할능(勝任), 착할능(善也), 곰능. * 이(以) : 써이(用也), 까닭이(因也), 할이(爲也), 거느릴이(率也), 생각할이(思也). * 성(成) : 이룰성(就也 畢也), 될성(爲也), 편안할성(平也), 거듭성(重也), 마칠성(終也). * 상(常) : 항상상(恒也), 오랠상(久也), 떳떳할상(庸也). 능이성(能以成) : 진공묘유의 조화, 공적영지의 광명을 말함. 능이성 유상(能以成有常) : 일원의 진리가 항상 그대로 영원히 변하지도 않고 없어지지지 않는다는 말. 여여 자연한 불생불멸의 진리를 표현한 말이다. 무상(無常) : ①진리를 변하는 불변의 진리로 나눌 때 변의 진리를 무상, 불변의 진리를 유상이라 한다. 무상은 곧 인과 보응의 진리요 우주의 성주괴공, 만물이 생노병사.... ② 현상 세계의 모든 것은 고정된 것이 없이 끊임없이 변화하여 영원히 존속하는 것이 없다는 말. 곧 우주 만물은 생멸 변전하는 것이요, 인생의 모든 일이 다 덧없고 부질 없다는 말. |
“능이성유상하고 능이성무상하여”라 하셨습니다.
‘능이성(能以成)’이라는 말은 ‘능히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기가 막힌 표현인데요, 교전에 나오는 ‘무위이화’, ‘무위자연’, ‘자재’, ‘돌고돈다’, ‘조화’라는 표현과 같은 의미입니다.
‘유상(有常)’, ‘무상(無常)’이라는 말은 조금 어렵지요. ‘유상’은 ‘불변(不變)’, ‘무상(無常)’은 ‘변(變)’이라고 이해하면 좋습니다. 일원상의 진리를 두 가지로 설명하라면, 하나는 ‘불변의 진리’이고 다른 하나는 ‘변의 진리’잖아요. ‘불변의 진리’는 불생불멸, 무시무종입니다. ‘변의 진리’는 인과보응, 유시유종이지요.
[유상으로 보면, 무상으로 보면]
“유상으로 보면”이라 표현하셨습니다. 아래에는 “무상으로 보면”이라는 표현이 나오고요.
여기서 ‘보면’이라는 표현은, 유상의 세계와 무상의 세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세계를 유상으로 보면 이러하고 무상으로 보면 저러하다는 의미입니다. 유상을 깊이 들어가면 무상이고, 무상을 깊이 들어가면 유상입니다. 유상에 바탕해서 무상입니다. 변의 세계와 불변의 세계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유상(불변)]
* 여(如) : 같을여(若也), 그럴여(然也), 부처이름여(釋迦如來), 이를여(至也), 어조사여. * 연(然) : 그럴연(言如是), 그렇다할연, 헐락할연, 그러나연, 이렇다할연, 그렇게연. 여여자연(如如自然) : 과거 현재 미래 삼세를 통하여 영원한 세월에 우주 대자연 그대로 존속해 있다는 말. 곧 진리 그 자체가 불생불멸하고 부증불감하며 불구부정하다는 말. |
“유상으로 보면 상주불멸로 여여자연하여 무량세계를 전개하였고”라 하셨습니다.
‘유상으로 보면’은 ‘항상하는 것으로 보면’, 즉 ‘불변하는 것으로 보면’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불변합니다. 살아있을 때는 ‘영혼’이라 부르고, 죽으면 ‘영가’라 부르지요. 우주만유 전체로는 ‘대령’이라 부르고, 한 개인에 대해서는 ‘개령’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영혼이 생멸 없는 가운데 인과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지은 바에 따라 모습 등이 달라지지요.
[무상(변)]
무상으로 보면 우주의 성·주·괴·공(成住壞空)과 |
“무상으로 보면 우주의 성주괴공과 만물의 생로병사와”라 하셨습니다.
‘무상으로 보면’이라는 말은 ‘항상하지 않는 것으로 보면’, ‘계속 변화하는 것으로 보면’이란 뜻입니다. 무상으로 보면 우주는 성주괴공하고, 만물은 생로병사합니다.
[우주의 성주괴공]
우주는 성주괴공으로 계속 변화합니다. 성주는 양 시대이고 괴공은 음 시대입니다. 크게 봐서 성주괴공하는 중 성겁기(成劫基)에도 성주괴공의 변화가 있고, 주겁기·괴겁기·공겁기에도 성주괴공의 변화가 각각 있습니다.
크게 보자면, 지금 우주는 성겁기입니다. 대진급기이지요. 대종사께서는 그 기점이 1924년 갑자년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시대를 보시지요. 육지가 넓어지고 있고, 인구가 늘어나고, 수명이 연장됩니다. 사람들 키도 점점 자라고요. 인권이 존중되어 갈수록 평등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지구촌이 되고 있고요.
아직, 과거의 어두운 생각이 조금 남아 있어서 거짓과 사기가 난무하긴 하지만, 곧 바뀔 것입니다. 이제 길에 떨어진 돈도 줍지 않는 시대가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견성은 집에서 각자 알아서 하고, 성불을 하기 위해 스승을 찾는 시대가 올 것이라 말씀하셨어요.
대종사께서 이 회상을 여신 이유는 우주가 이제 대진급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처럼 한 지역을 맡는 법으로는 안 되겠다, 세계 전체를 맡을 수 있는 법을 내놓아야겠다고 생각하셔서 이 교법을 내놓으신 것입니다.
[만물의 생로병사]
만물의 생·로·병·사(生老病死)와 |
만물을 또 어떻게 하느냐. 만물은 생로병사합니다. 여러분도 만물 중 하나지요. 생하였다가 늙고, 병들고, 곧 죽으실 것입니다.
생로병사 하는 게 아쉬우신가요? 제가 생로병사를 제대로 적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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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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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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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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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死) 다음에 다시 생(生)이 옵니다. 마치 춘하추동 계절이 바뀌는 것과 같습니다.
[사생의 심신작용]
사생 [四生]: 불교에서 모든 생명체를 출생방식에 따라 태ㆍ난ㆍ습ㆍ화 4가지로 분류. ① 태생(胎生): 인간ㆍ야수 등과 같이 모태에서 태어난 것, ② 난생(卵生): 새와 같이 알에서 태어난 것, ③ 습생(濕生): 벌레ㆍ곤충과 같이 습한 곳에서 생긴 것, ④ 화생(化生): 천계나 지옥의 중생과 같이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과거의 자신의 업력(業力)에 의하여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사생은 언제나 육도에 차례로 윤회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 심신작용 : 신·구·의 3업의 작용. (정기일기 : 심신작용의 처리건을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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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의 심신작용을 따라 육도로 변화를 시켜”라 하셨습니다.
만물 중에 사생(四生)이 있습니다. 사생은 태란습화(胎卵濕化)의 네 가지의 출생 방식으로 일체 생령을 분류한 것입니다.
①태생(胎生)은 포유류의 출생방식으로 나오는 생령입니다. ②난생(卵生)은 알로 태어나는 생령입니다. ③습생(濕生)은 모기, 귀뚜라미, 쥐며느리처럼 습한 곳에서 나는 생령입니다. ④화생(化生)은 나비, 매미처럼 애벌레, 번데기로 변태하는 생령입니다.
사실,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습생이나 화생도 난생에 포함된다고 봐야지요. 곤충, 벌레도 알에서 나니까요. 그러나 과거 불교에서 과학적 지식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곤충이나 벌레가 태어나는 방식에 대해 잘 모르다보니, 태란습화 네 가지의 출생방식으로 일체 생령을 분류한 것입니다.
[육도로 변화]
육도(六途)로 변화를 시켜 |
사생은 육도(六道·六途)로 변화합니다. 육도는 ①천상, ②인도, ③수라, ④축생, ⑤아귀, ⑥지옥을 의미합니다.
천상의 세계는 수행을 많이 하고 복을 많이 지은 사람이 몸을 안 받고 쉬기도 하는 곳입니다. 여기서는 복을 추가로 짓지는 못합니다. 복진타락(福盡墮落)이라 하여 복이 다하면 인도로 내려오게 됩니다.
수라와 아귀는 몸을 못 받는 영혼인데요, 둘을 구분하기 쉽지 않아요. 중음, 영계에 있는 대상입니다. 자살한 영가는 수라보를 받게 됩니다.
지옥보를 받은 생명은 땅속에서 햇빛을 받지 못하고 사는 생명 등입니다. 여러분 몸 속에서 수많은 생명이 있는데, 그것들이 지옥보 받은 생명들입니다.
천상, 인도, 수라는 ‘삼선도(三善道)’라 부르는데, 여기서는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진급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축생, 아귀, 지옥은 ‘삼악도(三惡道)’라 부르는데, 여기서는 부처님의 법문을 들어 진급할 가능성이 적습니다. 개한테 법문을 들려줘도 못 알아듣잖아요.
사람은 복을 지으려면 엄청난 복을 지을 수도 있고, 죄를 짓자면 큰 죄를 지을 수도 있기 때문에, 육도변화가 쉽게 될 수 있습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내생에 축생보나 지옥보도 받을 수 있습니다. 수양을 별로 안한 사람은 내생에 수라보나 아귀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으로]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으로 |
“사생의 심신작용”을 자세히 말하자면, ‘신(身)/구(口)/의(意) 삼업(三業)’입니다. 구(口, 입)는 사실 신(身, 몸)에 포함되지만, 구업이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따로 두었죠. 내가 신업, 구업, 의업의 삼업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나에게 육도로 진강급의 변화가 생깁니다.
업은 3업으로 분류하는 것 말고도, 다른 방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i)선업/악업으로 나뉩니다. (ii)알고 짓는 업/모르고 짓는 업으로 나뉩니다. (iii)혼자 짓는 업, 함께 짓는 업으로 나뉩니다. 함께 짓는 업을 공업(共業)이라 합니다. 자동차 사고로 여러 명이 함께 다치는 것은 공업 때문입니다.
선업/악업의 분류와 알고 짓는 업/모르고 짓는 업의 분류로만 보자면, ①알고 짓는 선업, ②모르고 짓는 선업, ③알고 짓는 악업, ④모르고 짓는 악업으로 나뉘겠지요. 이중, 모르고 짓는 악업이 가장 큽니다. 알고 짓는 악업은 참회의 기회라도 있지만, 모르고 짓는 죄업은 참회 없이 뻔뻔하게 짓기 때문에, 계속 반박하다가 습이 되어서 계속 짓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랍들이 인과를 받으면서 왜 억울하다 생각하냐하면 자기가 지은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생에 지은 업이 모르고 짓은 업일 수 있고, 알고 지은 업이지만 기억을 못할 수 있습니다. 전생에 지은 업은 몸이 바뀌었기 때문에 기억이 없지요. 이생에 지은 업도 잘 기억 못하는데, 하물며 전생에 지은 업이 기억날까요.
[인과와 나]
‘현실의 나’뿐만 아니라, ‘전생의 나’도 있고, 그 전 전생의 나가 수없이 있습니다. ‘내생의 나’도 있고, 그 다음 ‘내생의 나’도 있고 또한 수없이 있습니다. 나는 상주불멸로 여여자연합니다. 나는 사실 없지만, 대령 속에 개령으로 있거든요. 그 가운데, 내가 짓는 바는 내 자유이지만, 받을 때는 법신불 사은의 인과 이치에 따라 필연으로 받게 됩니다..
“왜 이렇게 불공평합니까? 누구는 저렇게 잘생겼고, 누구는 저렇게 부유하게 태어났는데, 누구는 저렇게 똑똑하고, 누구는 남들에게 환영받는데, 나는 왜 그렇습니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생만 보자면 불공평해보이지만, 전생까지 보자면 지극히 평등한 것입니다.
이생뿐만 아니라 전생이 있고, 전생뿐만 아니라 그 전의 전생이 있고, 다시 그 전의 전생이 있습니다. 수많은 생을 통해 현재의 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생긴 모습, 재력, 지혜, 인연, 법력 모두 여러분이 지은 결과입니다. 여러분이 지은 바에 따라 법신불 사은님이 공정하고 광대하고 응용무념하게 과를 주시지요. 이를 ‘필연’이라 부릅니다. 이것을 ‘감수’, 즉 달게 받으라 합니다.
그렇지만 인과는 숙명론이 아닙니다. 나에게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자유의지의 비율이 4~50% 정도 됩니다. 내가 신/구/의로 심신작용을 하는 것은 내 자유의지에 달린 것입니다. 내가 법력이 부족하고, 지혜가 어두울 지라도, 한 마음 내서 심신작용처리를 잘하면 법력이 올라가고 그 순간 진급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업도 중요하지만 지금의 자유의지도 중요합니다. 이 찰나에 내가 과거의 인과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내가 이 찰나에 자유의지로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업을 지을 것인가에 따라, 내가 내 자유의지로 내생의 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미래는 이 순간순간의 모음입니다. 마음도 한 번 적공하고, 한 번 기도하고, 한번 선할 때 마다 좁쌀마다 영단이 쌓입니다. 그러면, 해가 뜬 줄 모르고 해가 뜨듯, 나도 모르게 영혼이 맑아지고 세상이 보이게 됩니다. 깨닫는 순간만 보면 ‘돈오’라 부르지만, 사실 돈오는 없습니다. 수많은 적공이 쌓였기 때문에 돈오로 밝아지는 것이고, 그 밝아지는 순간을 돈오라 표현하였을 뿐입니다. 육조대사도 전생에 수많이 공을 들였기 때문에 돈오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닦은 바는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가 닦아온 인연의 복뿐만 아니라 삼대력(수양력/연구력/취사력), 간절하게 염원하는 서원과 신심은 내가 내생에도 가져가는 것입니다. 내생에 잘 살고 싶으시지요? 지금 어떤 마음을 지키고 쓸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혹은 은생어해로, 혹은 해생어은으로]
* 은생어해(恩生於害) : 은혜는 해에서 나옴. * 해생어은(害生於恩) : 해독은 은혜에서 나옴. 상대적 현상세계에 있어 모든 존재와 현상은 음양상승의 원리에 따라 한시도 쉬지 않고 변화하고 있으므로, 영원한 은과 영원한 해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은과 해는 서로 반복 되고 순환되지 않을 수 없다. |
‘은생어해’는 ‘은혜는 해독에서 생긴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해는 고통인데, 고통이 정당한 것이라면 그 고통에서 은혜가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해생어은’은 ‘해독은 은혜에서 생긴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은혜는 낙을 의미하는데, 그 낙이 부정당한 낙이라면 거기서 해독이 생기는 것입니다.
은혜를 계속 은혜로 돌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은에 나눌 줄 알아야 합니다. 사은 속에서 은혜를 받으므로, 그 은혜를 사은에 나누어야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돈을 벌면서 나도 내 생활에 쓰고 저축도 해야하겠지만, 일부는 반드시 사은에 나누어야하는 것입니다. 인과를 아는 사람, 중도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합니다.
[육도의 변화에 대한 법문]
육도 변화에 대한 법문 참고하십시오.
요훈품 44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사람으로서 육도와 사생의 세계를 널리 알지 못하면 이는 한 편 세상만 아는 사람이요, 육도와 사생의 승강되는 이치를 두루 알지 못하면 이는 또한 눈 앞의 일 밖에 모르는 사람이니라.] |
한울안 한이치에 제1편 법문(法門)과 일화(逸話) 9.오직 한 길 3절 "육도 사생에 대한 말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것인데 대원사에 있을 때 우연히 육도 사생의 변화하는 이치가 나타나더라." |
선외록 교화인연장 1 김대거(金大擧)는 어려서부터 기개가 호방하고 국량이 광활하여, 일찌기 일생을 천하에 방랑하며 농세(弄世)로써 소일할 뜻이 있었다. 하루는 조모 노덕송옥(盧德頌玉)의 인도로 만덕산에서 대종사를 처음 뵈었다. 대종사 말씀하시었다. "이 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각기 기국대로 일을 할 세상이다. 뜻 없이 방랑하면 세상에 빚이 되는 것이다. 불보살들은 시방 세계를 자기의 일터로 삼고 육도 사생을 자기의 권속으로 삼아서 그들을 제도하는 것으로 자신의 복락을 삼으시는 것이다. 어찌 넓고 크지 아니하냐. 이것이 곧 세상을 참으로 크게 즐기는 길이 되는 것이다." 김대거 그 후 얼마 아니하여 출가하였다. |
‘전무출신의 도’ 1조에도 이 내용이 나오지요. “시방세계 육도사생의 전 생명이 나의 생명이요 전체의 행복이 나의 행복임을 알라.”
천도품 5장 부처와 조사는 자성의 본래를 각득하여 마음의 자유를 얻었으므로 이 천업을 돌파하고 육도와 사생을 자기 마음대로 수용하나 |
천업은 ‘우주의 성주괴공’과 ‘만물의 생로병사’입니다. 불보살들은 이러한 법칙의 원리를 알고 해탈합니다.
한울안 일원의 진리 86절 "불교의 법신불이나 도교의 무위자연이나 유교의 무극이나 천주교의 하나님이 다 진리의 체는 밝혔으나 그 내용에 있어서 논리가 정연하지 못한 감이 있는데 일원상 서원문은 전무 후무한 원만한 대법이며, 또는 유교에서 말하는 심, 성, 이, 기 (心性理氣)가 대체는 옳으나 개령(個靈)과 육도 윤회는 설명할 수 없는데 비하여 영, 기, 질은 과거에 밝히지 못한 점을 밝혔다." |
한울안 지혜단련 10절 한 제자가 여쭈었다. "불교의 목적은 육도 사생을 다 제도하자는 것인데 불법이 극도로 보급되면 중생의 세계는 없어지고 부처의 몸을 받거나 영단만으로 허공에 주하는 세계만 있겠습니까?" "아무리 극락 세계가 전개된다 하더라도 육도는 그대로 있다. 다 제도할 능력은 없다." |
경의편 52장 학인의 육도 사생에 대한 질문에 답하시기를 [육도 사생으로 건설되는 이 세계는 우리의 마음의 차별심으로 부터 생겨서 나열된 세계니라. 천도란 모든 경계와 고락을 초월하여 그에 끌리지 아니하며 고 가운데서도 낙을 발견하여 수용하는 세계요, 인도란 능히 선도 할만하고 악도 할만하여 고도 있고 낙도 있으며, 향상과 타락의 기로에 있어 잘하면 얼마든지 좋게 되고 자칫 잘못하면 악도에 떨어지게 되는 세계요, 축생계란 예의 염치를 잃어버린 세계요, 수라란 일생 살다 죽어버리면 그만이라고 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망히 살기 때문에 무기공에 떨어진 세계요, 아귀란 복은 짓지 아니하고 복을 바라며, 명예나 재물이나 무엇이나 저만 소유하고자 허덕이는 세계요, 지옥이란 항상 진심을 내어 속이 끓어올라 그 마음이 어두우며 제 주견만 고집하여 의논 상대가 없는 세계니라. 이와 같이 육도 세계가 우리의 마음으로 건설되는 이치를 알아서 능히 천도를 수용하며 더 나아가서는 천도도 초월하여야 육도 세계를 자유 자재하나니라.] |
심중육도라 하여, 마음에도 육도가 있습니다.
천상의 마음은 맑은 마음입니다. 인도의 마음은 도심이 반이고, 욕심이 반인 마음입니다. 아귀의 마음은 탐심입니다. 아귀는 배는 엄청나게 큰데 목구멍은 바늘구멍 같은 귀신을 의미하잖아요. 축생의 마음은 치심입니다. 축생들은 염치가 없잖아요. 지옥의 마음은 진심입니다. 얼굴이 발개져서 화내는 사람은 지옥에 있는 것이지요.
이생에 마음의 육도를 어떻게 사용하였는지에 따라, 내생에 현실육도를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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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배성해,김지원교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