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추(倭酋) → 왜의 추장 또는 우두머리, 임진왜란 당시 풍신수길.
왜적(倭賊) → 왜 도적, 임진왜란 때 침입한 왜군이 군대(敵)가 아닌 도둑의 무리라는 뜻.
이충무공전서(1795년 발간)에 나오는 단어입니다. 이충무공전서는 이순신(1545~1598)의 공적과 일대기를 널리 알리고자 정조 19년 국가사업으로 편찬한 서적입니다.
시간이 지나 일제강점기인 1930년, 이순신의 후손 이민복 선생과 대전에 살던 서장석 선생은 이충무공전서의 내용을 면밀히 조사하고 보강해 이를 재발간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일제는 검열에서 ‘왜추(倭酋)’, ‘왜적(倭賊)’등의 단어를 삭제하라는 처분을 내렸는데요. 이들 표현은 이충무공전서에 매우 많이 나타나는 단어여서, 이를 삭제하라는 것은 곧 간행 자체를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서장석 선생 등 편집인들은 4년 뒤 내용을 더욱 보완하면서도 일제의 검열처분 내용을 반영한 것처럼 보이는 이충무공전서를 발간했습니다.
[1934년 발행된 이충무공전서]
하지만 이 때 발간한 이충무공전서는 기존의 내용을 보완한 속편까지 있음에도 오탈자가 많고 일본의 침략구절을 임의로 가감했다는 이유로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폄하됐습니다.
대전시 학예연구사, 이충무공전서의 비밀을 밝히다
“본서(本書) 중간(重刊) 허가시 ‘적(賊)’자를 삭제하라고 한 까닭으로 부득이 허가한대로 인쇄하여 펴내나 또한 표시가 없어서는 안 되겠으므로 ‘적(賊)’자 위의(글자를) 반흘림으로 썼으니, 혹 반흘림 글자에서 글 뜻이 분명하지 않아 풀이가 안 되는 곳은 모두 ‘적(賊)’자를 첨가해서 보시라.”
대전시 양승률 학예연구사가 1934년 발간된 이충무공전서의 오탈자가 일제의 출판 검열을 피하기 위해 초서(흘림체) 등으로 숨겨 본뜻을 알리는 방법으로 발간됐다는 사실을 밝혀내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적추(賊酋)와 ‘왜적(倭賊)’ 중 ‘賊’자와 ‘酋’자 생략 부분(붉은색 □) 비교 / 왼쪽이 정조본, 오른쪽이 1934년 발행본]
양승률 학예연구사는 연구를 통해 이충무공전서 정조본과 1934년 발행본을 면밀히 대조한 결과, 당시 일제가 검열한 왜추(倭酋)에서‘추(酋)’와 왜적(倭賊)의 ‘적(賊)’을 삭제하면서 바로 앞 글자를 행서나 초서로 표기해 독자로 하여금 이들 글자가 생략된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는데요.
이 같은 사실은 최근 일부 소장본에서 발견되는 별지인 ‘注意(주의)’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1934년 발행된 이충무공전서의 별지]
또 1934년 발행본의 판권지에는 당시 일왕 히로이토의 연호인 ‘소화(昭和)’가 뒤집혀 있는데요. 이는 일제의 몰락을 기원하며 의도적으로 했을 것으로 양승률 학예연구사는 추정했습니다.
[1934년 발행된 이충무공전서의 뒤집힌 판권지]
발간의 숨은 뜻을 펴낸다
양승률 학예연구사에 연구에 따르면 1934년 이충무공전서 발간은 이순신의 후손 이민복과 대전의 학자 서장석 선생이 주도했는데요.
이민복 선생은 총 14권으로 구성된 이충무공전서 정조본에 속편 2권을 더한 16권으로 편집했고, 여기에 서장석 선생이 편집 및 발간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습니다.
아울러 이충무공전서 정조본이 ‘충무공가승(忠武公家乘)’을 바탕에 두고 있다면, 1934년 발행본은 ‘충무공가승속편(忠武公家乘續編)’을 근거로 했음도 입증했습니다.
속편 2권 중 1권은 정조본 발간 이후 충무공 관련 기록을 모은 것이고, 또 다른 1권은 충무공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지들의 기록인 ‘동의록(同義錄)’입니다.
양승률 학예연구사는 이번 연구를 통해 밝혀낸 이충무공전서의 편집 과정과 교정 및 영인(影印) 내용을 담은 책을 펴낼 예정인데요.
당시 일제의 검열로 삭제된 글자와 보충 교정한 글자를 복원해 이민복 선생과 서장석 선생이 당시 간행하고자 했던 의미를 담을 계획입니다.
첫댓글 기대됩니다^^
공개강좌때 살짝 말씀해 주셨었는데...정말 기대됩니다.
정 선생님!
귀한 글 감사합니다. 책이 나오면 소개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