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원 金正元 (미상 ~ 1907)】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항일 활동을 펼쳤던 의병장"
출생 연도와 출신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1907년 경상북도 북부지역 일대에서 소규모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항일 활동을 펼쳤던 의병장이다.
1907년 8월 한일신협약에 따른 군대해산으로 해산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의병투쟁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11월에는 이강년(李康秊)·신돌석(申乭石) 등의 의병장이 일월산(日月山)을 중심으로 경북 북부지역 일원에서 적극적인 항일전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 11월 11일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 약 200명과 신돌석(申乭石) 의병부대의 300명이 경북 순흥군(順興郡)을 습격하여 관아와 분파소의 건물 등 180호를 불태우는 등 경북 북부지역 일원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1907년 11월 15일 일본군 남부수비관구(南部守備管區) 사령관은 보병 제14연대 제1대대장 아카시(赤司安一郞) 소좌를 파견하여 의병의 탄압에 나섰다. 11월 18일 경북 풍기군(豊基郡)에 도착한 아카시 소좌는 보병 제47연대 1중대의 지휘권을 넘겨받아 고토(後藤) 중대의 중대장이 지휘하는 1소대는 예천군(醴泉群), 니나가와(蜷川) 소위가 인솔하는 1소대는 안동부(安東府), 고노(河野) 중위가 인솔하는 1소대는 영주군(榮州郡)으로 가서 수비하도록 하고, 주력부대는 영주에 집결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때에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경북 북부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이 지역에는 이강년을 비롯한 그 예하 부대장들이 일본군의 탄압에 대응하여 처절한 항전을 벌이고 있었다. 통감부의 의병탄압이 강화되자 의병부대를 이끌고 경북 울진군(蔚珍郡) 일대의 산간 지대로 이동하여 유격전으로 일본군을 괴롭혔다. 1907년 12월 16일 울진군 탕실(湯實)에서 일본군 수비대의 급습을 받고 교전하다가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