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 신오쿠보에서
이환종
안녕하십니까?
이번 한일무교회 교류 모임을 환영해주시고, 완벽하게 준비하여 수고해주신 양국의 운영위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저는 신앙에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무교회 신앙인인 일본인과 한국인은 한 가족이라는 친밀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번 일본을 방문하면서 하고 싶은 말은 많습니다만, 저는 고려박물관과 신주쿠 신오쿠보역에서 보고 느낀 소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신오쿠보역
우리는 고려박물관에 가기 위해 신주쿠 신오쿠보역에 내렸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벽에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 씨와 일본인 카메라맨 세키네 시로 씨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는 비문이 돌판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2001년 1월 26일 일어난 사건입니다.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신오쿠보을 향해 전철이 진입하고 있는데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발견한 이수현 씨와 세키네 씨가 그 사람을 구하려다 고귀한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이 일은 한국에서도 전국에 알려져 많은 사람이 충격과 안타까움을 갖게 했습니다.
이번 고려박물관을 가던 도중 이 비문을 소개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이 의인들의 사건현장과 비문을 보리라고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저희 일행을 이곳으로 인도하셨을까? 어떤 이유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가?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은 이 두 분의 의로운 죽음을 보면서 젊은이들이 죽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사람을 살리기 위해 뛰어들었다는 것은 위대한 행동이며 존경받아야 한다고 모두 생각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당연히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목숨까지 바쳐가며 그렇게 행동할 필요가 과연 있는가, 나 같으면 바보처럼 그런 희생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실은 저도 그런 생각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서 제일 큰 계명으로, 첫째는 하나님을 향하여 말하였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라(Love God first).” 둘째는 인간을 향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Love Neighbor as self)” 이는 마태복음 22장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인류의 모든 죄를 용서받게 하기 위해 귀하신 하나님의 독생자이면서도 가장 잔혹하고 치욕적인 십자가 위에서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 뒤를 이어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열 명이 십자가 위에서 순교하였고, 요한은 전도하다가 밧모섬으로 유배되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를 팔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톰슨성경, 열두 사도의 행적 참조)
초대교회 이후 현재까지 기독교인들이나 가톨릭 교인 중에서 순교자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절정은 순교라 주장하는 성서학자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순교가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권장해서도 안 됩니다. 다만 십자가에 죽을 각오를 하며 신앙인으로 의롭게 산다면 하나님께서 칭찬해주실 것입니다.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 씨나 일본의 카메라맨 세키네 시로 씨가 기독교인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해도 하나님은 이 두 분의 의로운 죽음을 안타까워하시고 슬퍼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면서 이 두 분의 영혼을 위로하시고 평안을 주시고 큰 상도 주실 것입니다.
저는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신 뜻이 수현 씨나 세키네 씨의 의로운 죽음 현장과 기념비를 보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순교할 각오로 치열하게 살라는 깊은 뜻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각오와 결단이 언제까지 지켜질지는 모릅니다. 지금의 저의 생각을 그렇습니다.
참고로 신오쿠보역 벽에 새겨진 비문을 소개하겠습니다.
“한국의 유학생 이수현 씨, 카메라맨 세키네 시로 씨는 2001년 1월 26일 오후 7시 15분경,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발견하고 자신들의 위험을 무릅쓴 채, 용감하게 선로에 뛰어들어 인명을 귀하고 귀한 목숨을 바쳤습니다. 두 분의 숭고한 정신과 용감한 행동을 영원히 기리고자 여기에 이 글을 남깁니다. 동일본 여객철도 주식회사”
2. 고려박물관
신오쿠보역을 지나 고려박물관을 향해 걸어가는 도중 ‘코리아타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음식점 간판과 식사 메뉴를 한국어로 표기한 식당이 많았고, 한국의 남자 요리사(쉐프)의 대형 사진도 걸려 있었습니다. K-팝 영향인지, 일요일이어서인지 남녀 젊은이가 맣았습니다. 한국 젊은이들의 옷차림과 많이 닮아보였습니다.
고려박물관에 도착하니, 전 이사장을 지낸 하라다 교코 여사님과 직원 세 분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고려박물관은 8층 건물 중 7층에 있으며, 면적은 약 20평정도 되는, 크지 않은 공간이었습니다. 박물관에는 많은 책과 그림 신문 등 귀한 자료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고려박물관은 1990년에 준비위원회가 발족하였고, 2001년 12월에 신주쿠에서 개관하였습니다. 발족의 동기는 한국에서 반일감정이 강했던 1990년경 도쿄의 이나가시에 사는 한국여성이 일본에는 한국의 문화재가 많으니 그 문화재와 자료를 전시 공개할 미술관을 설립하자는 것과 강제 동원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위령탑 건립의 바람을 신문에 발표하였습니다.
‘고려박물관을 만드는 모임’의 고문이었던 강덕상 전 히토츠바시대학 교수의 제자가 신오쿠보에 큰 빌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강덕상 선생과 한국민주화운동 후원자로 활동했던 쇼지 츠토무 선생 두 분의 수고로 2001년 12월 7일 현재 장소에서 고려박물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고려박물관은 일본에서 재일 코리안(한국인과 북조선인)의 생활과 권리의 확립을 바라며 차별 없는 공생 사회의 실현을 지향합니다.
고려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마침 ‘관동대지진 100년, 은폐되었던 조선인 학살’이라는 제목의 기획전을 열고 있었습니다. 지난 7월 5일에 시작하여 12월 24일이라고 합니다.
그곳에는 한국 전통의 자개장롱이 있고, 한복과 풍물놀이 악기가 있었습니다. 악기는 길광웅 선생께서 기증하셨다고 합니다. 일행 중 한 분인 김인호 여사가 하모니카로 아리랑을 연주하여 박수도 많이 받았습니다.
앞으로 한국의 무교회인이나 풀무학원 학생 등 일본에 가실 기회가 있을 때 꼭 들러서 격려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 시민박물관이어서 전적으로 회원의 기부로 운영된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은 적은 금액이라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교코 여사는 성서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 아닌가 하였습니다. 최근 여사님이 쓰신 일본어 책 ‘나와 한국’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그 책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하라다 여사는 정년퇴직을 하고 꽃동네와 광명 사랑의 집에서 2년간 헌신적으로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왜냐면 아버지와 시아버님이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일하며 편히 살았다 하여 늘 미안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직접 만나서 뵙고 말씀을 듣고 보니, 일본의 양심이라 생각하였습니다. 특히 환영회 때, 고려박물관은 일본이 한국을 침범하여 강점하고, 한국인에게 저지른 잘못을 일본인에게 알리는 것이라 말씀하였습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저도 수긍하였습니다.
고려박물관은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해방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서로 불편한 관계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불행했던 과거사 문제를 정치가나 정부에 맡기지 말고 민간이 나서서 자발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도 이제는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우는 견학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사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공적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공적인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계명, 하나님을 사랑(공경)하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입니다. 이 두 계명은 철저한 공적인 삶입니다. 이 계명을 철저히 실천하면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께서는 이뤄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고려박물관의 설립 목적이 꼭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일무교회인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동참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