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강
생각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성찰
탐식, 음식을 많이 드시나요?
에바그리오는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겪은 세 가지 유혹이 탐식, 탐욕, 허영이라고 진술한다. 성경에서 탐식은 하와와 에사우 그리고 홀로페르네스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에바그리오는 탐식이야말로 열정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카시아누스는 “우리의 마음이 신적인 것들을 관상하는 데에서 큰 기쁨을 발견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음식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는 것을 경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라고 말했다. 그는 수도자들의 탐식을 정해진 식사 시간보다 앞서 먹는 것. 과식을 조장하는 것, 맛있는 것들을 살핌 등으로 구분하였다.
간음, 육이 이끄는 열망을 느끼나요?
간음의 악마는 허영의 악마와 공존할 수 없다. 에바그리오는 간음을 육에 따른 열망으로 규정한다. 다시 말해서 간음은 본성적인 움직임이고, 과식과 간음으로 야기되는 몸의 움직임이며, 악마에게서 비롯되는 육의 움직임이다. 에바그리오는 "악마가 일으키는 생각들에 열정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우리가 하느님을 관상하는 데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믿었다.
인색, 나누는 삶 힘 드세요?
고백자 막시모는 "돈을 좋아하는 데에는 세 가지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쾌락을 좋아함, 허영, 그리고 믿음과 자신감의 부족이다. 믿음의 부족은 다른 두 가지보다 더 나쁘다."고 했다.
홀로 살아가는 생활을 하거나 두세 명이 모여 수도생활을 하던 수도자들이 인색의 유혹에 빠질 위험이 크다. 에바그리오에 따르면, 실상 '누구에게나 돈과 애덕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울하시나요?
우울은 감성적으로 일어나는 기쁨을 박탈당하거나, 노여움의 결과로 나타난다. 그래서 자신이 먼저 무엇과 누구한테 좌절감을 당하는 지를 알아차려야 한다. 그것이 '하느님과 관련된' 참회인지, '세속적인 것을 대상으로 삼는 육적 좌절감'인 결국 죄에서 오는 우울함인지를 구분해야만 한다. 원도우
영성생활에서 우울함보다 더 나쁜 악은 없다. 그것은 의지를 깨뜨린다. '그것은 몸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공격한다... 영혼의 힘을 빨아먹는 멈출줄 모르는 처형자다.' 우울함의 영이 당신에게서 모든 힘을 빼앗기 위한 모든 사냥 장치를 설치해 놓는다. 우울함을 이겨내도록 신앙인은 그리스도인다운 인내심을 갖도록 초대되었다. 바로 하느님과 관련된 슬픔인 참회(penthos)로 제안 받게 된 것이다.
화나세요?
분노란 어떻게 발생하는가? 우리의 성급함이 끓어오르는 것이 분노다. 분노는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 혹은 상처를 줄 것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에 대해 끓어오르는 어떤 것이다. 슬픔과 마찬가지로 분노는 성급함에서 출발하는 자연스러운 작용이고 또 우리 본성에 반대되는 작용으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분노의 착한 모습도 있다. 곧 노여움의 역할'은 '악마와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다. 성급함이라는 힘이 '악한 생각을 파괴하는' 위대한 힘으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분노를 인간에게 해로운 것 으로만 보아서는 아니된다. 하지만 분명히 상황을 구분해야 한다. 자비롭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행동해야 한다. "노여워하여라. 그러나 죄짓지는 말아라."(시편 4.4)
분개에 따른 네 가지 표징들이 일어난다. 분개는 영혼을 하루 종일, 특히 기도 중에 짜증나게 하며 눈앞에 상처 준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게 하고 밤중에 끔찍한 꿈과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도 분노는 마음의 정상적 활동인 관상을 방해한다. 이것이 바로 노여움에 대한 기억이 기도에 장애가 되는 이유이다. 증오와 연결된 분노는 영성생활에 대한 거짓된 열망을 일으킨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화해의 수단인 환대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힌다.
'당신 노여움에 위로의 해가 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는 뜻은 무엇일까? 악덕의 뿌리, 우리 자신이 이웃보다 월등하다고 여기는 그 마음이다. 먼저 그것을 잘라내야 한다. 혼탁한 노여움은 시편을 노래하고 인내심을 연습하고 자선을 베풀면서 진정된다.
심리적으로 권태를 느끼나요?
'마음의 권태'라는 말, 낙담의 덫에 걸린 자를 모사할 수 있다. 오직 깊은 평화의 상태와 형용할 수 없는 기쁨만이 이 투쟁을 벗어나게 해 준다. 낙담과 슬픔을 구체적으로 구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낙담은 은수자적 생활방식과 연관이 있으며, 독방 안에 머무르거나 독거자적 삶에는 반대된다. 낙담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치료는 슬픔에 대한 치료와 같다. 참회(penthos)이다.
허형, 언제 느끼나요?
성경은 영광을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가치들에 연결시키는데, 그 중 가장 확실한 것은 하느님이다(시 편 62,6; 62,8), 따라서 인간의 존경을 받고자 덕행의 보상을 요구할 때 영광은 '무의미한' 것이 된다. 덕행에 나아갈수록 허영 또한 증가하면서 미덕의 가치를 소멸시킨다. 부정적인 뜻에서 솔직함이나 지나친 당돌함은 모두 상대방에게 무례하다는 면에서 허영을 드러내는 것이다. 허영에 대항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의 우월함이나 탁월함을 스스로 자만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인정받으려 하지 않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에 동의하는 것, 이른바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니, 이를 체득한 자는 참된 '앎', 즉 참된 가치를 관상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교만, 모든 죄와 악습의 뿌리요 시작이다.
성경의 맥락에서 볼 때, 교만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반대하는 자의 악덕이다. 하느님을 망각함은 바로 허영심의 표출이다. 혹자는 그것을 보다 덜 심각한 형태의 교만이라고 보기도 하였다. 그 구분의 근거는 무엇에서 존중감을 찾는가 하는 데에 있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헛된 것들, 곧 아름다운 머릿결, 고운 목소리 등에서 찾는가? 아니면 은총과 거룩함이라는 하늘다운 선물에서 찾고 있는가? 전자의 경우 그들은 '하느님이 그를 도와주신다.'는 것을 부인한다.
교만의 악마는 이중적 사악함을 갖는다. 그 악마는 신앙인으로 하여금 덕망 있는 행동을 자신에게로 돌리게 하거나... 불완전한 형제들을 경멸하도록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완덕에 가까워진 사람이 겪는 위험이다.
교만은 모든 죄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인데 악마가 일으키는 가장 주된 죄라고 교회의 전승은 보고 있다. '그것은 죄의 근원이며 원천이고 어머니이다.' 그러나 바야흐로 '열정이 활동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결국 선행하는 7가지 악덕들을 극복하면 교만 또한 종말을 맞게 된다. 교만은 우리가 올바른 행동을 하느님께로 돌릴 때, 그리고 보다 일반적으로는 겸손에 의해 제거된다.
악마는 우리가 실제로 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선행을 흉내 낼 수 있지만, 사랑과 겸손의 힘 아래에서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교만의 분명한 징표는 신성모독이니,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하느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칭송에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만이라는 악마의 난폭성과 당돌함은 익히 지적 되어 온 바이다. 교만은 기도의 정반대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야 한다. 악마는 마음속에 일종의 '망령'을 일으키는 것이다. 사고, 이성, 거짓논쟁은 단지 이미지일 뿐이다. 악마와 싸우는 전쟁은 다음과 같은 곳에서 일어난다.
생각, 상상으로 만들어진 환상의 세계, 거짓 위로, 모든 종류의 책략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식별을 통하여, 그리고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그들과 싸운다. 행복의 가장 큰 적, 자포자기, 자기포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열심 안에 있는 교만의 죄를 바라본다.
고해소는 죄를 고백을 할 때 사제를 통해 하느님께서 자비와 용서를 베푸는 은총의 거룩한 장소가 된다. 은총의 매력은 우리가 자격은 없지만 죄인에게 필요이상의 과분한 것을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루카 18. 11)라고 고해하는 바리사이의 기도에서 교만이 잘 드러나고 있다.
전통교리서는 일곱 가지 무거운 죄, 7죄종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죄의 뿌리가 되는 가장 큰 죄가 교만이다. 7죄종은 교만, 질투(시기), 탐욕(인쇄), 음욕, 폭식(폭음), 분노, 나태(게으름)이다.
동방그리스도교회는 죄 목록에서 교만이 반대로 마지막에 위치한다. 교만이란 하느님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최악단계를 뜻한다. 하지만 교만은 허영 또는 헛됨과 구별된다. 자만으로 나타나는 허영과 헛됨은 하느님과 사람들의 눈에 가치 없는 특이한 것에 과도한 중요성을 두고 있는 것이다. 겸손과 가장 멀리 있는 죄가 마음이 가난하지 못한 교만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아름다움에 대한 지나친 욕구 곧 성형, 웰빙 미용.... 특이한 목소리, 좋은 옷, 귀족태생, 부유함, 힘과 능력 등 이러한 것들은 교만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가볍고 귀엽게 나타날 수 있는 허영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허영과 헛됨이 과연 죄일까? 일반적으로 허영과 헛됨이 다른 이에게 조소와 비웃음으로 갈 때 교만을 향해가는 죄의 범주에 든다. 그렇지만 교만은 매우 무거운 죄이다. 교만한자는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 은혜까지도 자만한다. 교만은 다른 것들보다 우월하다고 그 가치를 나타낸다. 3세기 사막의 교부 에바그리오에 따르면, 우리가 일곱 가지의 죄악을 아무리 몰아낸다하더라도 여덟 번째 교만의 영이 남아 있다면, 교만의 영은 또다시 7가지의 죄악을 만들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루카 18, 9-14) 도스토예프스키의 유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조시마 큰 사부 수도자가 말씀을 남긴다. "사랑스런 아들들아, 죄를 두려워하지 마라." 감동적이고 열정에 가득차서 우리의 직관력을 일깨우는 문장이다. "죄를 지었음을 자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께서 용서하시고, 그분께서 하늘에 계신 자비로운 아버지이시고 당신나라가 이미 이 땅 위에 현실로 나타났음을 다시 비추시리가. 이것을 발견하도록 힘쓰시오." 교만의 치료제는 죄를 뉘우치고 자비와 용서를 청하는 겸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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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회개하는 사람
자신의 마음과 영혼을 알아차려야 행복하다. 곧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떨쳐야 한다. 행복의 가정 큰 적은, 자포자기이다. 그보단 자기포기의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에서 회개의 본질적인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속죄, 회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