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과 부족함이 주는 최고의 선물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묵상하게 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온몸으로 느끼게 합니다. 결핍과 부족함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중 가장 위대한 역설이 있다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팔복’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여덟 가지 복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부족함’입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마음이 텅 비어 있고, 핍박받는 사람들이 어떻게 복 있는 사람일까요?
그 이유는, 그 부족함은 그냥 부족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채우실 공간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하게 되면, 하나님은 그 부족한 공간에 천국을 채워 주십니다. 마음을 비우고 청결해지면 하나님은 그 공간에 하나님 자신을 채워 주시죠. 그렇기에 부족함은 하나님이 깃드시는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임하시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것들로 채워진 것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이 찾아오실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팔복은 하나님이 머무실 공간이 충분한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복입니다. 우리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이 채우시는 진정한 배부름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부족함과 낮아짐이 어떻게 귀결되는지를 같은 본문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 8:16).
우리의 부족함이 하나님이 채우시는 만족함으로 바뀔 때까지 하나님은 우리 속에서 쉬지 않고 일하실 것입니다.
고 강영우 박사는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유학을 가서 미국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차관보까지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입니다.
강영우 박사에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그중 큰아들 진석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강영우 박사는 어느 날 우연히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 진석의 일기장에 담긴 내용을 아내로부터 듣게 됩니다. 그 일기장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우리 아빠는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입니다. 그래서 나랑 자전거도 함께 타지 못하고, 공 던지기 놀이도 하지 못합니다. 나는 우리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내용이 못하는 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강영우 박사는 책 한 권을 들고 침대에 누운 아들의 머리맡에 앉았습니다.
“진석아, 아빠가 신기한 거 보여 줄까?”
“뭔데요?”
“아빠는 깜깜한 데서도 글을 읽을 수 있지.”
그러고는 불이 꺼진 깜깜한 방에서 점자로 된 동화책을 아들이 잠들 때까지 읽어 줬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들이 신기해하며 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자랑했습니다.
“너희 아빠는 눈감고 책 읽을 수 있어? 우리 아빠는 불 꺼진 방에서 내가 잠들 때까지 책을 읽어 주셔. 한 자도 안 틀리고.”
친구들의 반응은 하나같았죠.
“와~ 너네 아빠 진짜 멋지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바라보는 친구들의 부러운 눈빛을 보면서 진석은 한없이 뿌듯했습니다.
강영우 박사는 자신의 약점과 부족함을 오히려 강점으로 사용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오히려 활용해서, 깜깜한 방에서 아들이 잠들 때까지 한 자도 틀리지 않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죠.
그렇게 어둠 속에서 동화를 듣고 자란 진석은 미국 최고의 대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대학에 진학 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에세이를 쓰는 것입니다. 진석이가 쓴 대학 진학 에세이의 제목은 이것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들려주는 동화 이야기”(Bedtime story in the darkness).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 에세이가 사정관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진석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학교에 입학합니다. 그 후 아버지처럼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을 치료해 주기 위해 의사가 되죠.
그리고 3만 번 이상의 눈 수술을 집도해서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가 선정한 ‘2011년 최고의 슈퍼 닥터’에 뽑힙니다.
하나님은 강영우 박사의 보이지 않는 눈을, 3만 명 이상의 사람들의 눈을 뜨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들려주는 동화 이야기는 시각장애인이 눈을 떴다는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부족함 속에서 찾아낸 보물 이야기이기에 우리의 가슴을 더 크게 울립니다.
우리는 시각장애인이 눈뜬 성공 스토리에 익숙해져서 시각장애인만이 할 수 있는 진짜 보물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눈이 떠지기만을 소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을 보지 못하는 이상 언제나 불행하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진정한 행복과 감사는 부족함 속에 숨겨 놓으신 하나님의 보물을 발견할 때 찾아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은 《팡세》(Pensées)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망원경을 들고 하늘을 보면 별이 보이지만, 눈을 감고 하늘을 보면 하나님 나라가 보인다.”
강영우 박사는 육신의 눈이 멀었기에 오히려 매일 하나님을 봤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그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향한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부족함은 더 큰 것을 보는 눈을 열어 주니까요.
수천 곡의 찬송가를 지은 화니 제인 크로스비(F. J. Crossby) 여사에게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크로스비 여사님, 만일 하나님이 당신의 눈을 뜨게 해 주신다면 무엇을 보고 싶으세요?”
크로스비 여사는 이렇게 대답했죠.
“저는 주님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신다고 해도 거절할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어차피 시각장애인이 없을 텐데, 제가 눈을 뜨고 제일 먼저 보는 얼굴이 우리 예수님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때까지 제 눈을 간직하고 싶어요.”
크로스비 여사는 날마다 주님을 보면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런 찬송가를 지어서 불렀습니다.
“주 안에 기쁨 누림으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새찬송가 288장).
그녀는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구원하신 예수님을 날마다 영의 눈으로 보면서 살았습니다.
부족함 | 최병락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후 12:9,10)
약한 나로 강하게 by 호산나싱어즈
https://youtube.com/watch?v=tLOOySh0PpE&si=KN_i4E1vdESCc_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