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첫 번째로 맞는 뱀날.
내용
정초십이지일의 하나이며, 또한 무모일(無毛日)에 속한다. ‘첫뱀날’이라고도 한다. 상사일의 풍속은 주로 뱀의 침입을 예방하기 위한 금기속(禁忌俗)과 주술적 의례행위로 이루어진다. 이 가운데 뱀을 쫒아내기 위한 주술적 행위는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기도 한다.
『경도잡지(京都雜志)』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정월조에 따르면, “사일에는 이발을 하지 않는다. 뱀이 들어오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이러한 풍속은 전국적으로 보이는데, 뱀날에는 뱀이 들어와 화를 입는다고 하여 머리를 빗거나 자르지(깎지) 않는 것은 물론 머리도 감지 않고 머리카락을 버리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새끼줄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곳도 있다. 이러한 금기속이 뱀의 침입을 막기 위한 소극적인 방법이라면, 이날 뱀막이를 위한 적극적인 방법으로 뱀부적붙이기와 뱀치우기(뱀지지기, 뱀끄슬리기)가 있다.
뱀부적을 지역에 따라서 뱀뱅이·뱀방·뱀입춘·배암막이·뱀축·뱀첩이라고도 한다. 뱀부적은 전날 미리 준비해 두거나 아침 일찍 해 뜨기 전에 쓴다. 한지를 조그맣게 잘라 붓으로 뱀 ‘사(巳)’자를 쓰거나 청사(靑巳, 靑蛇), 백사(白巳), 황사(黃巳), 紅巳(홍사), 黑巳(흑사) 등의 뱀 종류와 청룡(靑龍), 백룡(白龍), 황룡(黃龍), 적룡(赤龍), 흑룡(黑龍) 등 용의 종류를 써서 붙인다.
또는 뱀에게 물려죽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뱀을 많이 잡아 죽였다는 이삼만(李三晩), 뱀을 죽이기로 유명했던 적제자(赤帝子) 그리고 항우검(項羽劒)·패왕검(覇王劒)이나 동사(冬巳)·용의방(龍義方), 그 밖에 뱀이 사방 멀리 사라지기를 바라는 뜻으로 ‘사방무일사(四方無一巳), 동서남북 속거천리(東西南北 速去千里), 사공천리거(巳公千里去) 등 뱀이 무서워하는 글귀를 쓴 뱀뱅이를 써서 마루·기둥·장독대·담벽 등 집안 곳곳과 우물이나 샘 등 뱀이 나올 만한 곳 또는 나와서는 안 될 곳에 거꾸로 붙인다. 거꾸로 붙이면 뱀이 올라가다 떨어진다고 한다. 이때 쑥과 무명씨, 고추를 넣어 뱀불을 피우기도 하는데, 독한 냄새로 인해 뱀을 쫒는 주력(呪力)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뱀치우기’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주까리대나 깻대 또는 나무작대기에 새끼줄을 길게 묶어 뱀줄을 만들어야 한다. 뱀줄에 한 해 동안 모아둔 머리카락이나 고추·솜 등을 함께 달아매어 불을 붙이면 고약한 냄새가 난다. 이 뱀줄을 가지고 뱀이 나올 만한 곳이나 집안 곳곳을 끌고 다니며 “뱀 끗자(뱀 끄슬리자), 뱀끗자!”(전북), 또는 “뱀 짓자(뱀 지지자), 구랭이 짓자!”(전남), “뱀 치자(뱀 치우자), 뱀 치자!”(경북)라고 외치면서 뱀을 쳐내는 시늉을 한 후 집 밖에 내다 버리거나 불태운다. 뱀줄은 헌 새끼줄이나 불에 그을린 새끼줄, 또는 왼새끼를 꼬아 만든 새끼줄을 쓰는 등 일정하지 않으며, 아무 것도 달지 않고 새끼줄 자체만 사용하기도 한다.
정월 첫 뱀날에는 다른 정초십이지일과 마찬가지로 일을 하지 않으며, 바깥 출입을 삼가고 무엇이든 조심한다. 이날 일을 하면 뱀이 나온다고 하여 우물물을 긷지 않고, 산에 나무하러 가지 않으며, 또 탈이 난다고 하여 물건을 손대거나 옮기지도 않는다. 어촌에서는 배가 뱀처럼 미끄러져 전복(顚覆)된다고 하여 이날 출어를 하지 않는다. 뱀날에는 특히 물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는데, 농사철에 일할 때마다 비가 온다는 속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뱀날에는 용날과 마찬가지로 전날 미리 물을 길어다 놓으며, 빨래도 하지 않고, 물을 버릴 때도 소리 나게 버리면 일 할 때 비가 온다고 하여 조용히 물을 버리거나 한곳에 모아두었다가 다음날 버렸다.
한편, 뱀날은 불길한 날로 인식되어 이날 장을 담그지 않는다. 옛날에는 장맛을 매우 중요시했기 때문에 좋은 날을 가려 정성을 다해 담그는데, 일반적으로 진사일(辰巳日, 용날과 뱀날)에는 장을 담그면 장맛이 없다고 한다. 혹은 뱀이 나오거나 장 속에 뱀이 빠져 좋지 않다고도 한다. 이러한 풍속은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그 밖에 무모일(털이 없는 짐승날)에 속하는 뱀날이나 용날이 그해 먼저 들면 농사가 흉년이 든다고 하는가 하면, 설날이 무모일이면 그해 길쌈이 잘 된다고도 한다.
지역사례
첫 뱀날에 우물물을 긷지 않는 풍속은 전라도 지역에서 조사된 자료가 많은데 비해 경상도 지역은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반면에 뱀치우기(뱀지지기)는 거의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나, 경기도에서는 조사된 자료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경기도 고양에서는 뱀날에 머리를 빗으면 샘풀(밭에서 자라는 가늘고 노란 풀로 다른 식물을 감아 올라가서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하게 함)이 잘 자라 농작물에 해를 끼친다고 한다. 전북 고창의 경우 근래에는 ‘이삼만’이라는 뱀뱅이를 붙이는 대신 들깻대를 태우는데, 들깻대가 타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기 때문에 뱀을 쫒는다고 한다.
경북 문경에서는 썩은 새끼줄에 오줌과 재를 묻혀서 온 집안을 끌고 다니면서 뱀 치우기를 하는가 하면, 이날 주부가 빈 디딜방아를 찧으면서 “뱀 대가리 깨자, 뱀 대가리 깨자.”고 말하면서 세 번 찧기도 하고, 또한 빈 도마에 아무 음식이나 가져다 놓고 칼질을 하는데 이렇게 하면 뱀에게 물리지 않는다고 믿는다. 예천에서는 뱀날에 바늘을 만지면 손이 곯는다고 하여 바느질을 하지 않으며, 이날 생인손을 앓으면 손이 뱀 대가리처럼 된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사불원행(巳不遠行)’이라 해서 뱀날 먼 길을 떠나지 않는다. 또 ‘출행파일(出行罷日)’이라고 해서 무엇이든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날이라고도 한다. 뱀은 구멍 속에 사는 짐승이라 해서 무슨 일이 잘 이루어지기 어렵고, 손해가 있다고 말한다.
그 밖에 충남에서는 일반적인 뱀날에 뱀을 죽이면 뱀이 많이 생긴다 하여 뱀을 죽이지 않는다. 전라도에서 뱀날은 불길한 날이라 하여 씨나락(볍씨)도 물에 담그지 않고, 또 사람도 뱀날 죽으면 극락에 가지 못한다는 속신이 있다.
의의
뱀날은 일반적으로 좋지 않은 날로 인식되고 있다. 외형상 뱀이 혐오스런 동물로 인식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산이나 밭은 물론 초가지붕 속에도 뱀이 많이 살고 있어 뱀에 의한 피해를 많이 입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뱀날에 뱀과 관련된 금기속과 의례행위가 행해졌고, 특히 뱀으로 연상되는 머리카락이나 긴 새끼줄과 함께 뱀부적(뱀뱅이) 등이 주로 뱀 예방의 주술적 도구로 이용되었다. 한편, 뱀날과 용날의 금기속이 일부 겹친 것은 비(물)의 신(神)인 용과 뱀이 경우에 따라 동일시되기도 함으로써 수신신앙(水神信仰)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은 생태계의 변화와 함께 남획(濫獲)으로 인해 뱀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시대의 변화로 인해 첫 뱀날의 풍습은 거의 사라졌다.
참고문헌
張籌根. 韓國의 歲時風俗. 螢雪出版社, 1984
京都雜志, 東國歲時記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 1969~1981
진성기. 南國의 民俗. 교학사, 1980
세시풍속, 2001~2003
任東權. 韓國歲時風俗. 瑞文堂, 1973
韓國民俗大觀4-歲時風俗·傳承놀이,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