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경북 영주 부석사(浮石寺) #3
10:15 약 1시간 동안 명인 도예미술관을 둘러보고 나서 부석사 경내로 이동한다.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鳳凰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2018년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676년(문무왕 16) 2월에 의상(義湘)이 왕명으로 창건한 뒤 화엄종(華嚴宗)의 중심 사찰로 삼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이 절의 창건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당나라로 불교를 배우기 위하여 신라를 떠난 의상은 상선(商船)을 타고 등주(登州) 해안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에서 어느 신도의 집에 며칠을 머무르게 되었다.
그 집의 딸 선묘(善妙)는 의상을 사모하여 결혼을 청하였으나 의상은 오히려 선묘를 감화시켜 보리심(菩提心)을 발하게 하였다.
선묘는 그때 “영원히 스님의 제자가 되어 스님의 공부와 교화와 불사(佛事)를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되어드리겠다.”는 원을 세웠다.
의상은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지엄(智儼)을 찾아가서 화엄학을 공부하였다.
그 뒤 귀국하는 길에 의상은 다시 선묘의 집을 찾아 그 동안 베풀어준 편의에 감사를 표하고 뱃길이 바빠 곧바로 배에 올랐다.
선묘는 의상에게 전하고자 준비해 두었던 법복(法服)과 집기(什器) 등을 넣은 상자를 전하기도 전에
의상이 떠나버렸으므로 급히 상자를 가지고 선창으로 달려갔으나 배는 이미 떠나가고 있었다.
선묘는 의상에게 공양하려는 지극한 정성으로 저만큼 떠나가는 배를 향해 기물상자를 던져 의상에게 전하고는
다시 서원(誓願)을 세워 몸을 바다에 던져 의상이 탄 배를 보호하는 용이 되었다.
용으로 변한 선묘는 의상이 신라에 도착한 뒤에도 줄곧 옹호하고 다녔다.
의상이 화엄의 대교(大敎)를 펼 수 있는 땅을 찾아 봉황산에 이르렀으나 도둑의 무리 500명이 그 땅에 살고 있었다.
용은 커다란 바위로 변하여 공중에 떠서 도둑의 무리를 위협함으로써 그들을 모두 몰아내고 절을 창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의상은 용이 바위로 변하여서 절을 지을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해서 절 이름을 부석사로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부석사의 무량수전(無量壽殿) 뒤에는 부석(浮石)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선묘용이 변화했던 바위라고 전한다.
창건후 의상은 이 절에서 40일 동안의 법회를 열고 화엄의 일승십지(一乘十地)에 대하여 설법함으로써 이 땅에 화엄종을 정식으로 펼치게 되었다.
특히, 의상의 존호를 부석존자(浮石尊者)라고 칭하고 의상의 화엄종을 부석종(浮石宗)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모두 이 절과의 연관에서 생겨났다.
의상 이후의 신라 고승들 가운데 혜철(惠哲)이 이 절에서 출가하여『화엄경』을 배우고 뒤에 동리산파(桐裏山派)를 세웠고
무염(無染) 또한 이 절에서 석징(釋澄)으로부터『화엄경』을 배웠으며 절중(折中)도 이 절에서 장경(藏經)을 열람하여 깊은 뜻을 깨우쳤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이 절을 선달사(善達寺) 또는 흥교사(興敎寺)라고 하였는데
선달이란 선돌의 음역으로서 부석(浮石)의 향음(鄕音)이 아닐까 하는 견해도 있다.
또, 고려 정종 때의 결응(決凝)은 이 절에 머무르면서 대장경을 인사(印寫)하고 절을 크게 중창한 뒤 1053년(문종 7)에 이 절에서 입적하였다.
1372년(공민왕 21)에는 원응국사(圓應國師)가 이 절의 주지로 임명되어 퇴락한 당우를 보수하고 많은 건물들을 다시 세웠다.
그 뒤 조선시대의 역사는 자세히 전하지 않으나 1580년(선조 13)에 사명당(泗溟堂)이 중건하였으며
1746년(영조 22)에 화재로 인하여 추승당(秋僧堂).만월당(滿月堂).서별실(西別室).만세루(萬歲樓). 범종각 등이 소실된 것을 그 뒤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962년 국보로 지정된 부석사 무량수전과 부석사 조사당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후기의 건물인 범종루(梵鐘樓).원각전(圓覺殿).안양루(安養樓).선묘각(善妙閣).응진전(應眞殿).자인당(慈忍堂).좌우요사(左右寮舍).취현암(醉玄庵) 성보전시관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범종루와 안양루는 대표적인 누각이고 원각전.응진전.자인당은 법당이며 선묘각은 부석사의 창건연기와 인연이 있는 선묘의 영정을 봉안하여 둔 곳이다.
중요국가유산으로는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과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영주 부석사 조사당벽화,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과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 1982년 보물로 지정된 영주 부석사 고려목판,
1979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영주 부석사 원융국사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원융국사비는 절의 동쪽 500m 지점에 위치하며 1054년에 건립한 것이다.
그 외에 삼층석탑 두기와 동쪽 언덕에는 1기의 고려 말 부도를 포함한 10여 기의 부도가 있다.
이 밖에도 이 절에는 석룡(石龍)을 비롯하여 대석단(大石壇).선묘정(善妙井).녹유전(綠釉塼).선비화(禪扉花).석조(石槽).맷돌 등이 있다.
석룡은 절의 창건과 관련된 것으로 현재 무량수전 밑에 묻혀 있는데 머리 부분은 아미타불상 바로 밑에서부터 시작되며, 꼬리 부분은 석등 아래에 묻혀 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이 절을 개수할 때 이 거대한 석룡의 일부가 묻혀 있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자연적인 용의 비늘 모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선묘정은 절의 동쪽에 있는데, 가뭄이 있을 때는 기우제를 드렸다고 한다.
대석단은 신라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절의 입구에 있다.
거대한 축석(築石)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면석(面石)을 섞어 쌓은 것이 특징이다.
이 석단은 3단으로서 극락세계의 구품연화대(九品蓮花臺)를 상징한다는 설이 있으나 명확한 근거는 없다.
녹유전은 가로와 세로가 14㎝의 정방형 기와로서 두께는 7㎝이며, 벽돌 표면에 0.3㎜ 정도의 녹유를 발라 광택을 내게 한 신라시대의 유품이다.
이것은『아미타경』에 극락세계의 땅이 유리로 되어 있다고 한 것에 입각하여 무량수전의 바닥에 깔았던 것이다.
문이 닫혀 있는 매표소
부석사 입장료는 2024년 5월 4일부터 무료로 전환되었다.
이는 문화재보호법 개정에 따라 국립공원내 국가지정문화재를 보유한 사찰 65곳에 대한 관람료 무료화 정책 시행에 따른 조치이다.
영주 부석사 관광지구 조성사업부지내 유적 안내도
단사면 적석리에서 마락으로 넘어가는 고치재가 대,소백산의 경계이니 재의 동은 태백산종말봉이요 시백봉은 소백산의 첫봉입니다.
고치재에서 발원한 물이 단산면의 동서를 관류하는 구계천이 되어 죽계와 남원천을 만나 영주의 서천이 되고
내성천을 만나 낙동강으로 흐르는데 동은 태백산 서는 소백산지역이니 영주는 두 백산사이에 있는 선비의 고장입니다.
한편, 종말봉은 태백산의 백미인 자계봉과 천마 대마산 지나 영,봉의 경계를 지나
영주시가지의 진산인 철탄산이 되어 금풍 곧 서풍을 삼켜버렸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고치재 동쪽 태백산맥 지역이 국립공원소백산에 편입되어 부석사를 찾는 분들이
우리 산하에 관하여 잘못 이해사실 염려가 있으리라 사료되어 이에 안내하오니 착오없으시기 바랍니다.
매표소를 지나면 은행나무길이 이어진다.
부석사 일주문
일주문에는 '太白山浮石寺(태백산 부석사)'라고 쓴 편액이 달려있다.
뒤쪽에는 海東華嚴宗刹(해동화엄종찰) 편액이 달려있는데 모두 효남(曉南) 박병규(朴秉圭)의 글씨이다.
부석사가 자리한 곳은 봉황산(鳳凰山) 자락이지만 봉황산은 크게 보면 태백산(太白山)의 한 봉우리이기 때문에
부석사는 태백산 품에 자리하고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마치 강원도 미시령 바로 북쪽에 있는 화암사(禾巖寺)도 금강산(金剛山)이 시작되는 신선봉 아래에 있어서
'금강산 화암사'라는 편액을 일주문에 내건 것과 같다.
일주문을 지키는 금강역사는 사찰 입구의 금강문(金剛門) 또는 인왕문(仁王門) 안에 봉안된
불교의 수호신상으로 부처와 불법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금강역사는 사찰이나 불전의 문을 지키는 수문신장(守門神將)으로 악귀를 쫓고 사찰의 청정함을 유지하는 신이다.
일주문 뒤쪽의 海東華嚴宗刹(해동화엄종찰) 편액
해동화엄종찰은 신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根本道場)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 해동(海東)은 우리나라를 뜻하고, 화엄종(華嚴宗)은 불교의 한 종파이며 종찰(宗刹)은 어떤 종파의 본산이 되는 절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화엄종의 본사(本寺)라는 뜻이며 이 해동화엄종찰로 가장 잘 알려진 곳은 바로 영주 부석사이다.
부석사 중수기적비(浮石寺 重脩紀蹟碑)
1963년 1월 21일 寶物 제255호로 지정된 부석사 당간지주(幢竿支柱)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의 입구에는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당간지주는 부석사 입구에 1m 간격을 두고 마주 서 있다.
마주보는 안쪽 옆면과 바깥면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양쪽 모서리의 모를 둥글게 다듬었다.
기둥 윗부분은 원을 2겹으로 경사지게 조각하였고, 옆면 3줄의 세로줄이 새겨져 있다.
기둥머리에는 깃대를 단단하게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 모양의 홈이 파여 있다.
기둥 사이에는 한 돌로 된 정사각형의 받침 위에 원형을 돌출시켜 깃대를 세우기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이 주변에는 연꽃을 장식하고, 윗면 중앙에는 구멍을 뚫어 당간의 밑면을 받치고 있다.
천왕문
동서남북의 사방에서 불법(佛法)을 지키는 수호신인 사천왕상(四天王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