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9년 5월, 10년이나 내 정열을 쏟았던 모임에서 떠났다.
내 좁은 의견인지는 모르지만 문학생활 40년 동안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만은 못참는 성격 때문이다.
경기도 용인에 거주하시는 박문신(수필가) 선생님의 <혜안의 길을 걷는 사람> 산문집,
'긍정적인 사고(생각하고 궁리하다)' 글에서
내 정곡을 찌르는 글귀가 있어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분명 노년의 사람에게 더더욱 바람직한 마음가짐이다.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내린 상황에서 부정하는 생각은 있을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비울 수 있을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누구나 인지하고 어려움을 감지한다.
신부나 목사도, 승려도 아닌데 철학이나 종교에 심취한 사람도 아닌 처지에
일상의 삶에서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생각은 마음을 비운다 해도 욕심이 먼저이고 자기 이익을 우선시하는
이기주의가 금세 비운 마음을 채우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음을 비우고 긍정의 마음을 갖추려 중무장하고 있어도 상대가
너무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심한 억지를 부린다든가, 또는 말도 안 되는
상말로 강한 스트레스를 줄 경우, 긍정의 마음은 바람과 같이 사라져
화(火)가 용솟음치며 이내 부정의 마음으로 돌변하고 만다.
스트레스를 몹시 받다가 얼굴에 화기를 띄우고는
역으로 상대에게 스트레스성 말로 반응하고 만다.
싸움까지는 안 가더라도 화를 삭이면서 한참 숨을 몰아쉬고 마음을 진정시킨다.
누구나 서로 화가 나게 하는 스트레스성 말을 주고 받으면 각자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이런 마음의 상처는 바로 몸의 상처로 전이되고, 이게 바로 병의 단초가 되고 만다.
이쯤 되면 '내가 뭐 예수나 되냐, 석가모니도 아닌데....
당신을 이해하고 용서해, 다시는 보기 싫다.
네가 나오는 자리엔 앞으로 안 나갈 것이다.
보고 싶은 사람도 다 못 만나는데 너를 만난다는 것은 도저히 나로선 용서 안 되는 일이야.
너와는 이제 끝장이야'라는 결심을 한다.
아울러 너에게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나의 사치요,
생뚱맞은 허상의 잔치일 뿐이다'라는 마음가짐에
동의하고 결의를 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