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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사랑방
 
 
 
카페 게시글
―‥‥세계엔n 스크랩 아내와 함께 다녀온 와인 시음회, 그리고 미국 온 지 23년이 되던 날
권종상 추천 0 조회 92 13.03.24 11:33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3월 23일. 미국에 온 지 23년 째 되는 날이네요. 1990년에 김포 공항에서 노스웨스트 항공사의 보잉 747을 타고 태평양을 가로질러 시애틀의 시택 국제 공항 내렸던 것, 그 설레임이나 낮선 땅에 대한 불안함 같은 것이 엊그제 일 같은데, 되돌이켜보면 시간은 참 '유수와 같이 흐른다'는 말이 맞는 듯 합니다. 그때 저희를 마중나오셨던 큰아버지는 그 뒤로 몇해 지나지 않아 고인이 되셨고, 대학 3학년 재학중이었다가 미국에 오게 된 저는 말 그대로 어리버리 했었습니다. 두려웠죠, 참 많이... 그리고 한 3년은 향수병으로 고생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릴 무렵에 아내를 만났죠. 그리고 결혼하게 됐고, 두 아이가 나왔고, 이제 그 아이들이 아빠보다 키도 더 크고... 원래 뉴욕에서 미술 관련 일을 하던 아내는 저 때문에 서북미에 오게 됐고, 전혀 뜻하지 않은 일을 하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도 있지만, 술꾼의 아내, 그것도 언제나 마시는 술에 대해 궁금해하며 '공부를 위해 더 마시는' 남편과 살다 보니, 아내도 귀가 트이고 눈이 열렸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와인 관련 일을 시작하게 됐죠.

 

아무튼, 아내가 와인 도매상이 여는 시음회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이런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 기회주의적인(?) 남편은 아내의 운전기사를 자청하여 따라갔습니다. (아, 사진기사 노릇도 했습니다)

 

시애틀 시에서도 서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실숄 베이. 이곳엔 골든 가든 파크라는 공원이 있고, 아주 오래 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제가 일하던 '그랜데커스'라는 이름의 주유소도 이 근처에 있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아직 아이들이 세상에 오지 않았을 때, 아내와 여기까지도 올라오곤 했고, 일요일에 성당 미사 마치고 나면 이 바닷가에서 손잡고 걸어다녔던 기억이 새록새록했습니다.

 

시음행사는 이 도매상에 와인을 대는 각 와이너리들이 납품하는 와인을 맛보고 평가하는 건데, 올해부터는 워싱턴주의 새로운 주류법에 따라서 하드리커, 즉 증류주들도 여러 가지가 출품되었고 그래서 이런저런 술들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제 목적은 와인들을 맛보는 거였고, 몇몇 재밌는 와인들도 만났습니다. 특히 페트루스를 연상케 하던 도너데이 Donedei 와인은 워싱턴 주 멀로가 보여주는 포텐셜을 거의 극한까지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유럽 와인들도 주요 시장인 미국의 트렌드를 벗어나기 힘들구나... 뭐 이런 생각도 꽤 들었습니다. 프랑스 와인들, 특히 보르도 와인들은 지난 해와 지지난 해 빈티지가 망하고 나서는 자기들 와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미국 와인에 가까운 스타일로 와인을 만들고 있다는 것도 보였습니다. 가격도 굉장히 떨어졌고... 그러나 입맛에 맞는 남불산, 특히 샤토뇌프뒤파프 등의 남부 론 지역이나 랑그독 지역의 와인들이 꽤 있었는데, 아내를 설득해서 그 와인들을 매장에 갖다 놓은 후, 세일을 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그 와인들을 가서 다 사겠다고 말했습니다. 제 의견을 들은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됐구요,"

 

아, 럼 주가 꽤 재밌는 것들이 나왔었습니다. 원래 럼은 카리브에서 사탕수수를 갖고 만들지요. 원주를 담근 후, 이를 증류한 것이 럼인데 원래는 가슴이 타들어가는 듯한 높은 알코올 도수를 가지고 있는 술입니다. 어떤 럼들은 '몰라세스', 즉 당밀을 주 원료로 해서 만들어진 것도 있었습니다. 원재료가 같은 것이긴 하지만, 이미 사탕수수가 가공되고 나서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당밀로 만들어진 럼이 더 부드럽고 날카로운 맛이 적었던 것도 특기할만 했지요.

 

아무튼, 아내와 이 행사에 참가한 후에 집에 오는 길에는 다운타운의 해안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99번 도로를 타고 왔습니다. 이 해안가 고가도로는 '알래스칸 바이어덕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이제 얼마 안 있어서 터널 공사가 시작되고 나면 사라질 운명입니다. 그 전에 이 다리 위로 함께 짧은 여행을 한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싶습니다. 늘 느끼는 거지만, 내 삶에서 빛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거의 어머니거나, 아내거나, 혹은 내 아이들 덕분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좋은 친구들도 빼 놓을수는 없겠지요. 그리고 보면 지난 23년의 미국 생활, 다 그렇게 나보다는 내 주위의 착하고 아름답고 고마운 사람들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거라는 생각도 문득 듭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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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3.25 07:10

    첫댓글 우리 삶에서 빛나던 일들이 모두 주위분들과 아름다운 인연으로 맺어졌다는 말씀에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늘 기분 좋은 날이 되었으면... ^^

  • 작성자 13.03.25 09:08

    예... 그렇지요? 그리고 보면 그 인연들이 우리를 자라게 하고, 여기까지 오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 13.04.06 12:08

    I am moving to Vancouver washington because I am trying to make the real wine in old school way without any additives, with only grape juice and airtight glass jug & nature...couldn't find the right equipment yet...in the west co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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