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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글 >
무명의 순교자 앞에...
글 : 이 클라우디아(해인) 수녀
<성 베네딕도 수녀회>
오래 전에 흙속에 묻힌 당신의 눈물은
이제 내게 와서 살아 있는 꽃이 됩니다.
당신이 바라보던 강산과 하늘을
나도 바라보며 서 있는 땅,
당신이 믿고 바라고 사랑하던 임을
나도 믿고 바라고 사랑하며
민들레가 되고 싶은 이 땅에서
나도 당신처럼 남몰래 죽어가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박해의 칼 아래 피 흘리며 부서진
당신들의 큰 사랑과 고통이
내 안에 서서히 가시로 박혀 나의 삶은 아플 때가 많습니다.
당신을 닮지 못한 부끄러움에 끝없는 몸살을 앓습니다.
당신을 통해 주님을 더욱 알았고 영원의 한 끝을 만졌으나,
아직도 자주 흔들리는 나를 조용히 붙들어 주십시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거룩한 순교자여!
오래전에 흙속에 묻힌 당신의 침묵은 이제 내게 와서 살아있는 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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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영적지도신부 훈화 >
9월의 하늘 아래 무상(無常)의 길에서...
글 : 윤 클레멘트 (양호) 신부님
<전주교구 소속 지도 신부>
우리는 생(生)의 길을 가다가 찬미와 감사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고통과 아픔의 시간을 맞기도 한다.
어느 시절에는 기쁨과 고마움, 어느 계절에는 슬픔과 눈물로 힘겨워하며 어떻게 해야 할 지도 알 수 없어서 혼돈과 아픔으로 밤을 지세우기도 한다.
어느 때는 빛과 희망의 시간들, 어느 날은 어둠과 절망의 순간들이 우리네 삶을 차지하거나 비춘다.
마음과 영혼은 방황을 하고, 하늘을 우러른 채 홀로 눈물을 짓기도 한다.
다 새우지 못하고, 다 태우지 않은 인간과 인생의 미완성 길이기에...
우리는 살아가는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일들을 만나며 행복하거나 불행하기도 한다.
기뻐하거나 슬퍼하기도 한다.
지금은 지금은 슬픔과 아픔의 노래를 부르는 시절, 어둠과 절망의 노래를 부르는 계절...
무례(無禮)한 힘의 폭력이 푸르른 풀밭위에 머물고, 다가온 무지(無智)의 어둠은 고요한 영혼들의 호수에 풍랑을 일게 한다.
지금껏 도우며 노를 젓던 그 활기찬 손목들은 힘을 잃고, 푸르러 오는 9월의 하늘을 슬픔으로 우러른다.
지금은 지금은 혼돈과 방황의 시절, 슬픔과 아픔의 계절, 고독과 애련의 시간...
살아온 작은 날들의 어둠은 지금만이 아니었고, 머물러 온 작은 인생의 시련은 어제와 오늘의 일들만은 아닌데...
나는 오늘 여기에서 9월이 온 하늘을 우러르며, 우리들 인간의 삶과 무상(無常)함을 바라보며 아픈 이 가을의 노래를 부른다.
시편의 시인은 노래했는데...
“ 우리 인간은 풀과 같고, 인간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아서, 바람 한번 스치고 지나가면 모든 것들은 다 쓰러지고 마는 것을... ”
“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년, 근력이 좋아서야 팔십년인데, 그나마 거의가 고생과 슬픔뿐인 것을, 우리들 인생의 날 수를 셀 줄 알게 하소서... ”
손길들의 무례(無禮)함은 지금과 오늘이 모든 것이고,
주어진 날들이 영원인 듯 무존중(無尊重), 무인격(無人格)으로 다가와 9월의 노래를 아프게 한다.
어제와 오늘은 찬탈(簒奪)과 비애(悲哀)다.
어둠과 혼돈(混沌)이다. 절망(絶望)과 슬픔이다.
무상(無常)한 생의 길이여, 슬픈 인간 삶의 노래여, 아픈 시절의 고독(孤獨)이여...
우리네 삶이 그러할지라도, 우리네 생애가 그러하다 해도,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 인간 무상의 노래를 부를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하느님의 자녀, 하느님의 사람들로서 복음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하는데...
‘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와야 하느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고... ’
오, 주여 !
미움이 오더라도 미움을 살지 않게 하소서.
사랑의 혼돈이 오더라도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모든 것 다 비우고 내어준 채 자신을 십자가에 바치신 당신을 우러르며,
지금껏 쌓아오던 모든 이와 모든 것들이 다 사라져가고 소멸(燒滅)해 가더라도 십자가에 달리신 당신을 우러르고,
십자가에서 나신(裸身)으로 매달린 채,
자신을 아버지께 바치시던 당신을 묵상하며 그렇게 우리들 자아와 자신들도 다 살라 봉헌할 수 있게 하소서.
다 바쳐 기도할 수 있게 하소서.
지극히 작은 우리 인간의 생애, 참으로 조촐한 우리 인간의 삶들...
당신께서 바라시고 원하시면 그렇게 우리도 십자가에 달려,
당신을 따라 당신과 함께 십자가에 죽어서 당신 무덤가에서, 새롭게 부활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지금 여기에서의 우리 작은 생애가 삶으로써 죽고, 죽음으로써 사는 영원의 길을 걷게 하소서.
영원의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우리들 작은 생(生)의 이 무상(無常)한 길에서도...
신부님의 ‘순례자의 노래’ 中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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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22주일
2020. 9. 6
마태오 18, 15 ~ 20
♠ 복음 공부 : 형제의 죄를 깨우쳐 주어라
들어가기 전 : 이 단락은 잃어버린 양을 찾아나서는 12-14절의 원칙을 교회 현장에 구체적으로 적용한 사례인 동시에 공동체 회원들 중에 죄를 지었을 경우의 처신을 다룬다는 점에서 21~22절과도 연결된다. 그리고 이 부분은 마태오 복음 저자가 속했던 시리아 지역 교회의 규범으로서 교회와 교회의 권위에 대해 말하고 있다.
* 15~17절 : 죄를 지은 이를 인도하는 방법을 알려주신다. 교회 공동체를 이루면 그들 중에 질서를 어지럽히며 공동체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도 생길 것이다. 이럴 때 예수님께서는 형제의 그릇된 행동을 공개하기 전에 우선 개별적으로 만나 충고를 해주어야 한다. 비방이 아니라 사랑에 근거를 두고 타일러 그가 죄를 뉘우치고 돌아오면 형제 하나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들어있는 회개와 용서의 개념은 원래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회개하고 하느님이 용서해준다는 신앙에 근거한 것이다.
자기중심으로 생활하던 사람이 회개하여 하느님 중심으로 살아갈 때 회개와 용서라는 개념이 설명되고, 성서는 이를 구원이라 말한다. 그렇게 해도 말을 듣지 않은 경우에는 두 세 사람의 증인이 함께 가서 대화할 것을 바라신다. 이스라엘에서는 두 세 증인이 있어야 죄로 확정(신명19.15)되므로, 이를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다.
그래도 행동을 고치지 않으면 교회에 알리고 공동체에서 축출할 수 있다. 교회공동체에서 축출을 결정하거나 취조하는 것은 베드로에게 주셨던 권한으로 (16.19)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땅에서 매고 푸는 권한을 공동체의 책임자에게 위임하신다.
* 18~20절 : 결정하기 전에 교회 공동체는 형제가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 올 수 있도록 공동의 청원기도가 우선이다. 개인의 기도보다 공동의 청원기도를 기뻐하시는 이유는 기도하기 위해 모인 곳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현존하시어 함께 기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 복음 요약 및 대화 방향 : 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대도시사람들은 이웃에 대해 무심하다. 그것이 자기에게 직접적인 해가 되지 않는다면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러면서 사회는 점점 죄에 물들어 가고, 권력과 금권이 결탁되고, 부정과 부패가 독버섯처럼 변해가는 결과를 개인적인 일로만 생각하고 공동체의 잘못은 쉽게 잊는 듯하다.
☞ 우리 사회가 개인의 일로만 축소시키려는 시각이 바뀌지 않는 한 사회구조를 합리화시키는 정치적 희생으로 몰고 가는 오늘의 현실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들려주실까요?
♠ 참고 문헌 : ▪ 여정 ▪ 마태오복음서 ▪ 생활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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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24주일
2020. 9. 13
마태오 18, 21 ~ 35
♠ 복음 공부 : 형제의 죄를 용서해 주어라.
들어가기 전 : 앞 단락에서 ‘죄지은 형제’가 주제로 형제애를 기반으로 한 충고와 대화에 대한 가르침이라면, 본 단락은 ‘내게 죄지은 형제를 용서함’은 마음에서의 진정한 용서에 초점을 두고 있다. 베드로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은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통해 용서의 한계를 다룬다. 대화에서 용서의 양과 비유에서 용서의 질이 검토된다.
* 21~22절 : 용서, 베드로가 제안한 ‘일곱 번’은 완전함을 의미하여, 되풀이 되는 잘못을 기꺼이 용서함으로 충분히 되겠느냐는 질문이다. 예수님의 답변은 77번 또는 7☓70으로 번역할 수 있는 숫자를 제시한다. 구약에 카인을 헤친 자가 일곱 곱절로 앙갚음을 받는다(창세4.28). 일흔일곱 곱절의 복수를 맹세했던(창세 4. 24) 라맥과는 달리, 예수님은 끝없는 복수의 사슬을 끊고 무한히 용서하라 하신다. 가톨릭 전통은 고해성사로 당사자가 책임지는 모습을 요구한다.
* 23~35절 : ‘무자비한 종’의 비유는 앞 단락의 가르침을 설명하기 위한 예문으로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에 대하여 가르치신다. 일만 탈렌트나 되는 큰 빚을 진 사람과 셈을 하는 임금이 있다. 일만 탈렌트는 육천 데나리온으로 노동자가 20년 가까이 일해야 벌 수 금액이다. 그러므로 빚진 종은 주인의 자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당시에는 빚을 갚지 못하면 빚진 자신과 가족까지 노예로 팔려갔다. 주인은 종이 애원하자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 많은 부채를 탕감해 주고 그를 놓아준다. 그런데 그는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만나 빚을 갚도록 다그친 나머지 감옥에 가둔다.
이 두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 그리고 인간의 비정함이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비유에서 임금은 하느님이시고, 그분이 베푸시는 용서와 자비를 깨닫지 못하는 인간들에 대한 종말 심판을 보여준다. 35절은 이 단락의 결론 부분으로, 21-22절과 비유를 마무리 하면서 형제들에게 용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마태오가 덧붙인 말씀이다.
♠ 복음 요약 및 대화 방향 : 인간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와는 다른 하느님 나라의 원리는 조건 없이 용서하라는 말씀으로 깨우쳐 주십니다. 우리는 쉽게 용서하지 못하고, 나에게 부당한 해를 입힌 사람이라면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닫혀진 마음이 우리를 용서해주시는 하느님을 깨닫고 주님의 기도를 정성으로 할 때 나에게 가한 이웃을 용서할 수 있음을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깨닫게 됩니다. 마태오에게 용서란 구원의 문제와 직결되는 행위로 이런 용서의 가르침이 교회 공동체 설교 규범 맨 마지막에 나온 이유는 겸손, 관심, 충고. 설득 등 온갖 노력을 했음에도 아직까지 형제들 사이에 갈등과 불목이 남아 있다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용서야말로 공동체를 구원으로 이끌 온전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허나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체험 때문에 그분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 살아오면서 용서에 관계 깊은 경험을 나눠보고, 지금의 회원 공동체는 어떠한지요?
♠ 참고 문헌 : ▪ 여정 ▪ 마태오복음서 ▪ 생활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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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2020. 9. 20
루카 9, 23 ~ 26
♠ 복음 공부
* 23절 : 자신을 버리고, 이제 예수를 따르는 자들도 예수의 삶의 방식을 따라야함을 말해준다.
첫째로 자기 부정이 요구된다. 둘째로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셋째로 이러한 자기 부정과 십자가를 지는 삶이 지속성 있게 전개되어야 한다. 일시적 결심으로만은 부족하며 일관된 신앙 훈련이 요구된다.
* 24절 : 진리를 위해 세상에서 소중하다고 여겨지는 것들도 기꺼이 포기할 때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잃음이 아니요, 얻음이라는 이 역설적 진리를 깨닫는 사람만이 예수의 참 제자라 할 수 있다.
* 25절 : 사람들이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가치의 문제를 가르친다. 세상이 제공하는 부와 명예와 쾌락을 아무리 많이 차지하고 누려본다 한들 자기의 영혼과 본성을 잃게 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 26절 : 적극적 의미에서는 복음 증거시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 반응을 의식하지 말라는 당부이며, 소극적 의미에서는 박해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런 말씀을 주셨을 것이다. 즉 예수의 부활, 승천 후 교회에 핍박이 닥쳐올 때 예수께서 가르쳐준 삶의 방식이 무기력해 보이며,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실패자의 모습처럼 사람들의 눈에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 복음 요약 : 103위 순교 성인들 :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하신 분들 중의 70명과 1846년 병오박해 때 순교하신 분들 중의 9명은 1925년 7월 5일에 복자품에 오르셨고,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하신 분들 중의 24명은 1968년 10월 6일에 복자품에 오르셨다. 그리고 이 103위 복자들이 함께 1984년 5월 6일, 200주년 신앙대회 본 미사에서 교황 요한바오로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오르신 것이다. 103위 중 성직자는 11명(주교 3명, 신부 8명), 평신도는 92명(남자 45명, 여자 47명)이며, 한국인이 93명이고 프랑스인이 10명입니다.
특별히 감동을 주는 순교자들을 꼽아 보면 다음과 같다. 하느님을 위해 동정을 지키며 살다 순교하신 유 요한과 이 누갈다 동정부부. 13세의 어린 나이로 용감히 순교한 유대철 베드로. 그 당시 사회 환경 속에서 숱한 제약을 받던 여자의 몸으로 맹렬한 활동을 하다 순교한 여회장 강완숙 골롬바. 선교사를 모시기 위해 5천리 북경 길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아홉 차례나 왕래한 정하상 바오로. 16세에 장원 급제하여 임금과 뭇 사람의 총애를 받았으면서도 하느님을 알고 세상의 모든 명예와 영광을 헌신짝처럼 버리며 순교의 대열에 함께 한 황사영 알렉산더.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지혜 3,9)
♠ 대화 방향 : 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 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순교의 의미와 연관 지어서 매일 져야 하는 자신의 십자가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② 환난 속의 빛 ---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 지금까지 나의 신앙을 위협했던 일들은 무엇이었습니까?
♠ 참고 문헌 : ▪ 성경주석집 ▪ 보득솔 (청년 성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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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26주일 / 이민의 날
2020. 9. 27
마태오 21, 28 ~ 32
♠ 복음 공부
* 28~31절 :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율법학자들과 지도자 대표들이 예수님에게 시비를 걸려고 찾아온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두 아들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고 그들에게 물으신다. 그들은 맏아들이라고 대답한다.
* 32절 : 끝까지 생각을 바꾸지 않은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요한이 왔을 때 이미 생각을 바꾸고, 요한을 통해 요한을 믿고, 그가 준비하는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유다지도자들 율법학자들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신다.
♠ 복음 요약 : 예수님의 말씀에서 유대아인들은 하느님의 불림을 먼저 받았고, 그들이 배척하는 세리와 죄인들은 후에 불림을 받았다. 그래서 예수를 믿지 않고 배척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누차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된다」고 경고하셨고, 유명한 탕자의 비유에서 맏아들은 집에서 일을 잘하는 것 같지만(율법은 잘 지키지만) 마음은 딴 곳에 두고 있었고(아버지를 믿기보다는 유산에 마음이 있었다), 작은 아들은 처음에는 방황했으나 종국에는 아버지를 믿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돌아와 환대를 받는다. 여기서 첫째는 형이며 유대아인들, 특히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가리키고, 둘째는 동생이며 세리와 죄인들을 가리킨다. 「잔치 초대손님」의 비유에서도 먼저 불린 사람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며, 나중에 불린 사람들은 막 살던 서민층을 가리키며, 그들은 최후 잔치상에 손님 대접을 받는다. 이렇게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역설적인 이치는 하느님의 구세사의 역사적 전개 법칙으로 되어 있다. 사도 바오로도 이 점을 강조하면서 구원은 먼저 유대아인들에게, 그리고 후에 이방인들에게 제시되었다고 강조하였다.
오늘 비유에서도, 하느님의 선민을 자처하던 유대아인들은 율법을 입으로 부르짖으면서 하느님이 보낸 요한이 올바른 길을 가르칠 때에 그 말을 듣지 않았고, 하느님의 아들이 와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도 그들은 이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세리와 창녀들은 과거를 뉘우치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나라에 먼저 들어가고 있다. 이로써 본다면 우리의 비유에서 먼저 번 사람은 맏이이고 그는 유대아인들을 가리키며, 나중 사람은 세리와 죄인들이 틀림없고, 이 경우 첫째는 불순종하는 큰 아들이며, 둘째는 순종하는 동생이다.
그러면 왜 우리 성서에는 내용이 뒤바뀌었는가. 그것은 원문 비판학의 문제로서, 첫 번째 아들을 순종하는 사람으로 하는 원문 사본과 첫 번째 아들을 불순종하는 사람으로 하는 원문 사본이 있고, 이 두 종류의 사본들의 수가 각각 많은 수가 있어서 그 어느 것도 결정적으로 채택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현행 성서의 사본들이 먼저 교회에서 사용되어 오늘날까지 전통을 이루고 있다.
♠ 대화 방향 : 사실은 두 아들 모두 죄인이다. 하지만 뒤늦게 깨닫고 실천한 큰아들이 훌륭한 점은 뉘우침이다. 아버지 마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을 것 같다. 내가 조금 손해보고, 내가 조금 참고 희생하면 될 것을 자기논리를 주장하다가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으니...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그 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혹시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하고 옳고 행복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순종하는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겪었을 마음의 전쟁이 있었다는 사실을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할 것이다. 뉘우침이 가장 큰 은혜였다. 자신을 돌아보아 "아, 이래서는 안되지." "이것은 아니로구나.“ 하는 판단이 들게 하시는 것이 은혜이다. 자기 고집과 주장을 내려놓는 것이 은혜이다. 뜻밖의 많은 사람들이 정말 모르는지, 아니면 판단력이 부족한지, 성장과정이 이상한 것인지, 착각하는 것인지, 뉘우침을 모르고 살아간다. 사실은 우리 각자도 모를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뉘우침을 위한 깊은 기도가 필요하다.
♠ 참고 문헌 : ▪ 백민관 카톨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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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1 >
마태오복음 사가를 통해서 증언하는 주님의말씀...
안산 원곡본당 F・B / 권 토마 (순)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 마태오 복음 23, 27~28 >
찬미 예수님 !
아야! 다시 한 번 우리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예외적으로 직접적인 방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을 정죄하시는 데 전혀 주저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백색"과 "무덤"으로 묘사됩니다. 그들은 외관상 거룩해 보이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에서 하얗게 칠해져 있습니다. 그들은 더러운 죄와 죽음이 그 안에 산다는 의미에서 무덤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더 직접적이고 더 정죄 하셨는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한 가지는 예수님이 가장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부르고, 그의 말을 섞지 않는다. 그리고 거짓 칭찬을 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 모든 것이 괜찮은 척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요? 완전히 정직하게 행동 할 수 있습니까? 아니요, 예수님이 하신 일을 행하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행동에서 배우고 그것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야합니다! 당신은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부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당신은 영혼의 상태에 대해 자신과 하느님께 정직할 준비가 되어 있고, 기꺼이 기꺼이 있습니까? 문제는 우리가 종종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모든 것이 괜찮은 척하고, 우리 안에 숨어있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오물” 을 무시합니다. 보기에 예쁘지도 않고 인정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자신의 영혼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보이는 것에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까? 바라건대 당신은 선과 덕을 보고 그 안에서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또한 죄를 보게 될 것임을 확신 할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인들이 ‘온갖 종류의 오물’을 가지고 있는 정도까지는 아니길 바랍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직하다면 청소해야 할 먼지가 보일 것입니다.
오늘 당신이 얼마나 기꺼이 1) 당신의 삶에 있는 오물과 죄의 이름을 정직하게 말하고, 2)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할 것인지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화 나 있다!” 라고 외칠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주님, 매일 제 삶을 정직하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당신이 내 안에 형성된 선한 덕목뿐 아니라, 내 죄의 결과로 거기에 있는 오물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내가 당신을 더 온전히 사랑할 수 있도록 그 죄에서 깨끗해지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나는 당신을 신뢰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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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2 >
F․B 설립 50주년을 준비하면서... - 제 14 부 -
안산 원곡본당 F・B / 권 토마 (순)
< ‘사랑하는 아마존’ 교황 권고문 >

+ 찬미 예수님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0년 2월에 ‘사랑하는 아마존’ 교황 권고문을 반포했습니다
그중의 일부를 발췌하여 인용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외침 듣기...
“우리가 합시다. . . 들리는 목소리 중 하나를 들어보십시오. '우리는 목재에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상인, 목장주 및 기타 제3자. 우리 영토로 모형 외계인을 수입하는 경제 행위자들에 의해 위협을 받습니다. 임업을 착취하기 위해 목재 산업이 영토에 들어오고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숲을 보호하는 반면, 고기, 생선, 약초, 과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11번)
“대화를 원한다면 먼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들은 그저 이길 수 있는 또 다른 정당이나 동등한 테이블에 앉은 또 다른 개인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입니다.
주요 대화 파트너, 우리가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는 사람, 정의의 의무에 대해 귀를 기울여야 하는 사람, 제안을 제시하기 전에 승인을 받아야 하는 사람" (26번)
“대화는 빈곤층, 소외 계층, 소외 계층을 대신하여 우선적인 선택을 선호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존중해야 합니다.” (27번)
☞ 질문
1>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마존 지역에서 환경 및 경제적 착취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러한 음성을 “듣게”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입니까?
2> Pan-Amazonian Ecclesial Network (REPAM)의 이 간단한 비디오 ( https://youtu.be/C-o-pCaJ7GY ) 를 시청하십시오. 어떤 놀라움이나 도전이 있습니까?
3> 가난한 지역 사회가 해야 할 “주도적 인 역할”을 인정하라는 요청은 아마존 지역의 형제자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일하는 미국에서도 적용됩니다.
그리고 예배, 빈곤층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리는가? 대화가 부족한 곳은 어디입니까?
** 위 내용 영상 시청 url : https://tv.kakao.com/v/rvo30j10xh35afnhhs3b0pnbx@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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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3 >
교황 성 요한 23세의‘평정의 십계명’
서울 당산동 로고스 팀 FB
자료 제공 : 남 파비올라 (은정)
☞ 교황 성 요한 23세의 평정의 십계명 '놓아두며 살기' 라는 책을 읽다가 공유하고 싶어서 글을 옮겨봅니다.

▣ 오늘 하루
나는 내 삶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들지 않고,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해 노력하겠다.
▣ 오늘 하루
나는 행동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 품위 있게 행동하고 아무도 비판하지 않으며 오직 나 자신만을 바로잡겠다.
▣ 오늘 하루
나는 내가 행복하기 위해 창조되었고, 다른 이들을 위해서 뿐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해서도 그렇게 창조되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행복하게 지내겠다.
▣ 오늘 하루
나는 상황이 내가 바라는 대로 맞춰지기를 바라지 않고 상황에 나를 맞추도록 하겠다.
▣ 오늘 하루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 가운데 10분만이라도 좋은 책을 읽는 데 쓰겠다. 육신을 위해 음식이 필요하듯 영혼을 위해 건전한 독서는 꼭 필요하다.
▣ 오늘 하루
나는 착한 일을 한 가지를 하겠다. 그리고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
▣ 오늘 하루
나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 무언가를 하겠다. 혹시 불쾌하더라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조심하겠다.
▣ 오늘 하루
나는 명확한 계획을 세우겠다. 지키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반드시 세우겠다.
그리고 '조급함' 과 '우유부단함' 이라는 두 가지 악을 조심하겠다.
▣ 오늘 하루
나는 상황이 어떻든지 하느님의 자애로운 섭리가 마치 세상에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나를 돌보고 계신다는 것을 굳게 믿겠다.
▣ 오늘 하루
나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겠다. 아름다운 모든 것에 기뻐하고, 두려움 없이 하느님의 호의를 믿겠다. 선을 행하라고 내게 주신 시간은 12시간뿐이다.
평생 쉼 없이 선을 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선을 행해야겠다는 용기마저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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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쉼터 >
향기로운 마음
임 숙희

그 고운 얼굴 찌푸리지 마요.
머언 훗날
거울에 비칠 얼굴을 상상해 보세요.
그 고운 입술로 험담 하지 마요.
시기심, 질투심의 말은 가시 돋친 꽃은 피우고,
상냥하고 부드러운 말은 향기로운 꽃을 피어요.
부정적인 말로 기운 빼지 마요.
긍정적인 말은 샛별보다 빛나고 가슴엔 희망의 별이 뜬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상처 입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살아갈 용기를 주기도 해요.
진심 어린 말 한마디는
누군가에게는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되기도 해요.
언제나
아름다운 언어로 좋은 말을 하며,
향기로운 마음으로 살았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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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재정 회계 보고 >
♠ 2020년 7월분 입출금 내역
☧ 매월 보내주시는 의연금은 본당별로 보내지 말고, 각 팀별로 회계 정산하시어,
금액이 많든 적든 매월 꾸준히 보내주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