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개량단소를 연주하다가 느끼는 불편이 몇 가지 있는데,
1. 단소의 음역이 작다는 거지요. 개량단소는 "파솔라시도레미 파솔라시도레미 파솔"로 두 옥타브보다 조금 넓어서 웬만한 곡은 소화가 가능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악보 중에 포기한 것도 많이 있습니다. 아래나 위로 약간 벗어나는 경우에는 조 옮김을 통해서 가능하긴 하지만, 반음이 끼어드는 문제가 생기지요. 특히, 가장 낮은 음이 미(mi)인 곡이 제일 귀찮지요. 한 음 때문에 통째로 옮겨야 하니까.
2. 반음 키가 없다는 거지요. 반규법이나 교차운지에 의해 어느 정도는 해결이 가능하지만, 역시 불편... 요새 반음 연습하느라고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연습중인데... 으... 장난이 아니네요. 특히, 조옮김에 결정적인 장애로 작용...
3. 가장 큰 문제는 단소의 음정이 평균율에 맞지 않는다는 거지요. 국악의 선법은 완전4도와 완전5도를 번갈아가면서 쌓아 만든, 소위 삼분손익법에 의한 음계인데... 예전에 피타고라스가 사용했던 방식이지요. 피타고라스는 대장간의 망치소리를 듣다가 배음의 원리를 깨달았는데, 두 음이 간단한 정수비가 될 때 듣기 좋은 화음이 생긴다는 걸 알았지요. 1:2는 한 옥타브 위(완전8도), 2:3은 완전5도(도와 솔의 관계), 3:4는 완전4도(도와 파)의 관계를 갖지요. 순정율도 비슷한 방식. 이렇게 쌓은 음계는 화음을 이루기는 하지만, 음간의 간격(산술적 간격이 아니라 기하적 간격임)이 일정하지 않게 되는 문제점이 있지요. 이렇게 되면, 조옮김이 불가능해집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채택한 방식이 음간의 간격을 일정하게 나눈 평균율입니다. 평균율은 한음과 배음간의 간격을 12등분해서 온음 7개와 반음 5개를 배치한 거지요. 이렇게 되면 완전4도나 완전5도가 완벽한 화음이 되지는 않지만, 다행히도 웬만한 귀로는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비슷해집니다. 예를 들어, 평균율에 의한 완전5도(도와 솔) 간격은 2^(7/12)=1.498이니까 3/2=1.5와는 조금 다르지만, 뭐 거의 같지요. 주파수가 4:5:6이 되어야 하는 도미솔의 으뜸화음도 4:5.04:5.99가 되기 때문에, 특히 미음이 조금 높게 들립니다. 따라서, 오케스트라에서 화음을 정확히 내기 위해서 종종 미음을 조금 낮게(20cent 정도일거에요. 아마도..) 맞추기도 합니다.
4. 단소는 이조 악기입니다. 보통 중임무황태를 솔라도레미로 맵핑해서 연주하지만, 사실 단소의 음정은 평균율에 의한 것보다 한 온음(장2도) 정도 높지요. 이용구식 개량단소는 제가 튜너로 재보니까 한 온음보다는 약간 작은 정도로 평균율보다 높습니다. (대신 음간의 간격은 훨씬 일정한 것 같아요. 조옮김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이런 상태에서는 MR반주를 틀어놓고 연주를 해보면 정말 안 어울립니다. 합주도 조옮김 하기 전에는 불가능하구요... 아니면 다른 악기, 특히 현악기가 단소에 맞춰줘야 합니다.
이제 이런 문제를 최대한 해결하기 위해서, 아래와 같은 단소를 한 번 디자인 해 봤습니다. 중임남무황태에 해당하는 구멍을 솔라시도레미 실음에 맞게 위치를 변경하구요, 단소의 길이를 더 길게해서 전폐음이 미(E)가 되도록 하고 대신, 현재의 단소 길이에 해당하는 위치보다 조금 위에 파(F)음을 내는 구멍을 뚫습니다. 그런데 이 구멍은 오른손 새끼손가락으로 막기에도 너무 멀기 때문에 키를 답니다. 그리고 시 아래와 파 위에 각각 시플랫과 파샾을 낼 수 있는 구멍을 뚫습니다. 용도는 각각 바장조와 사장조로 조옮김했을 때 사용하기 위한 것입니다. 시플랫은 왼손 새끼 손가락으로, 파샾은 오른손 새끼 손가락으로 막을 수 있도록 완전히 옆쪽으로 돌려 냅니다.
봉우공방의 주구석 선생한테 주문 제작을 의뢰했더니만, 흔쾌히 허락하시네요. 키까지 달아 주시겠다고... (사실 못쓰는 플룻 하나 구해서 키를 떼어다 달려고 그랬었는데... ㅎㅎ) 다만, 이런 단소는 처음이라서 정확한 위치를 잡기 위해서는 시행착오를 좀 겪어야 할 것 같다구... 일단 하나 만들어 불어보면서 크로스핑거링에 의한 반음이 정확히 나도록 지공의 위치와 크기를 찾아내는 것은 제가 직접 하려고 합니다.
이 단소의 이름을 뭐라고 불러야할지 잘 모르겠는데, 음계가 전통단소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의 단소라고 부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쨌든 모양은 단소랑 같으니까 일단은 평규율 단소 또는 전폐음에 따라 E조 단소라고 부르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계면 단소를 Eb조 단소라고 하는데, 이것은 삼분손익법에서 처음 시작하는 기음(基音)인 황이 Eb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겁니다.)
이 단소의 목적은 물론 평균율에 의한 서양악곡을 연주하는 거지만, 음... 이걸로 영산회상을 연주하면 어떤 느낌일까요? 양복입고 앉아서 판소리 하는 거랑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ㅎㅎ
첫댓글 비나이다. 천지신명시여 .... 우리 고래님의 장인정신에 힘을 보테시어 지구땅 최고소리통 하나를 선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
저도 음악 공부좀 해야 겠네요....!
요거 오늘 제가 나름대로 지공위치 맞춰서 연주 해보려 하니까 ...운지가 장난이 아니던데....여러가지로 연구해서 운지가 편하게 해야 할듯싶네요...... 저도 그냥 단소에 C,G음 지공만 뚫어서 만든것을 피리처럼 완전히 아래에서 부터 순서대로 지공을 열면 되도록 약간만 조정해서 일직선으로 지공을 배치한 단소를 만들어 보았는데 아주 쓸만하더군요. 보통 무태음은 맞으나 한옥타브 올리면 음정이 뚝 떨어지는 현상이 깨끗하게 해결 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