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菩提薩陀, 보디사트바)은 불교의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이다. 이 보살과 같은 인간형은 다른 종교에서는 그 비슷한 것도 찾아볼 수 없다. 보살은 삶이 고통이라는 사실[一切皆苦]을 잘 통찰하고 있지만 자신의 해탈을 서두르지 않는다. 많은 중생들의 고통을 껴안고 그들과 더불어 해탈의 세계로, 깨달음의 세계로 가고자 한다. 따라서 보살정신의 가장 큰 특징은 희생정신이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역사 속에서의 불교의 흐름을 소승, 대승, 금강승으로 분류하고 자신들의 불교를 금강승이라고 자칭한다. 이 셋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소승불교에서의 수행의 목표는 대부분 아라한이다. 아라한에게 자비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해탈이 우선이고, 따라서 희생정신은 강하지 않다. 아라한을 지향하는 소승불교를 극복하기 위해 대승불교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아라한을 폄하하였으며 수행의 목표를 붓다가 되는 것으로 수정하였다. 그런데 중생이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가? 육바라밀을 닦아 붓다가 되는 데에는 3아승지겁이 걸린다고 그들은 주장하였다. 3아승지겁,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금강승의 가장 큰 특징이다.
불교 역사에서 가장 나중에 출현한 금강승은 현교와 밀교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 이 중 현교의 부분은 대승불교와 다르지 않다. 다만 밀교적 수행 방법이 대승불교와 많이 다르며 티베트 불교인들은 밀교적 방식으로 수행하면 성불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가장 낮은 단계의 밀교 수행법인 소작(所作) 딴뜨라의 방법으로는 16생(生), 가장 높은 단계인 무상 요가 딴뜨라의 방법으로는 단 한생에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여하튼 금강승 불교인 티베트 불교에서도 수행의 목표가 성불이기 때문에 보살정신을 아주 강조하며, 아라한의 경지는 보살 초지(初地)에도 미치지 못하는 낮은 것으로 폄하한다. 티베트 불교에서 이 보살정신이 가장 구체적, 현실적으로 드러난 형태가 바로 환생자 또는 활불(活佛)이라고 불리우는 린뽀체들이다. 미라레빠의 법제자인 감뽀빠의 수제자 뒤숨켄빠(1110~1193, 까마빠 1대)로부터 시작된 이 린뽀체 제도는 그 뒤 티베트 불교의 가장 큰 특징이 되었으며, 오늘날의 티베트 불교는 린뽀체 제도 없이는 말할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