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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겸손과 인내와 전도는 우리가 마땅히 감당할 사명입니다.(출5:19-23)
2026, 3/1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출 5:19-23절 말씀으로“겸손과 인내와 전도는 마땅히 감당할 우리의 사명입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우리와 함께하길 원합니다.
저 지난주에는 대동강 얼음이 녹는다는 우수였고, 이번 주는 개구리가 동면을 끝내고 밖으로 나온다는 경칩입니다. 이 말은 이제 겨울은 끝났고 봄이 왔다는 뜻입니다. 봄이 오면 푸릇푸릇 새싹이 나고, 산과 들에 봄꽃들이 피어 사람들 마음을 포근하고 새 희망을 품게 해줍니다. 경칩에 개구리가 땅을 뚫고 나오듯이 우리도 겨울 내내 움추렸던 몸과 마음을 떨쳐내고 새봄에 맞게 우리 신앙도 다시 세워가야 합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자신의 무능을 아는 자를 통해 역사를 이루십니다.(22절)
둘째로, 신앙인은 오래 참음으로 다툼을 피해야 합니다.(22절)
셋째로, 신앙인은 고난을 받더라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23절)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쓰실까요? 자신의 무능과 한계를 아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주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덕목이 무엇일까요? 바로 오래 참음입니다. 어떤 의견 조율이나 다툼에서 참지 못하고 쏟아내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신앙이든 일상이든 삶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참고 이해하고 섬기는 것은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게 되는데, 그러나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색깔을 뚜렷하게 드러나는 전도에서는 고난이 따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일상 삶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행실을 어떻게 하는가와 상관없이 고난이 따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생명이자, 내세를 보장해주는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라 48대 경문왕의 귀가 당나귀 귀라서 큰 모자로 가렸는데, 이 비밀을 알고 있던 이발사는 이걸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어 숲속에 가서‘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더니 그 후 바람만 불면 갈대가 흔들리면서 그 말을 따라 했답니다.
세상이 아무리 우리의 입을 막아도 우리는 옳은 말을 하고 황홀한 천국의 비밀을 전해야 합니다. 옳은 말과 복음을 통해 사람을 살리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을 따라가면서 겸손과 인내로 고난 중에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자신의 무능을 아는 자를 통해 역사를 이루십니다.(22절)
본문 2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아멘.
이스라엘 백성의 노동량 기록원들이 바로에게 노동량을 줄여달라고 읍소했다가 본전도 못 찾고 쫓겨나와 마침 길에서 모세와 아론을 만나 그들에게 원망과 비난을 쏟아냅니다. 백성들의 원망과 비난을 들은 모세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라며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렇게 기도한 것은 자신에게 사명을 주셔서 고통과 아픔을 당하게 한 것을 원망하고 따지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막중한 일을 자신 같이 무능한 자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냐는 겸손한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해방을 요구하라는 명령에 받고 보무도 당당하게 요구했을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만왕의 왕이시고, 만 주의 주가 되시며, 인간의 역사와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그야말로 가늠조차 안 되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으로부터 사명을 받았으니 무엇이 무섭고 두렵겠습니까?
그런데 막상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 뜻을 전하며 백성들의 해방을 요구하자 바로는 더욱 강퍅해져 백성들에게 더 많은 고통과 아픔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여 백성들의 고통만 더 가중되는 상황에서 모세는 자신의 힘으로는 이 중대한 일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과 이 세상의 일은 내 힘과 능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나, 일상 삶 속에서 마치 내가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고, 또 바벨탑의 경우처럼 함께 힘을 모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업하고, 직장 다니고, 전도하고, 말씀 가르치고, 교회를 섬기고 하는 것들이 다 나의 능력과 재주 때문이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가진 재주와 힘은 분명 일을 이루는데 중요한 플러스 요인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다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병원에서 의사가 최선을 다해 환자를 수술하고 나와 가족들에게‘최선을 다했으니 결과는 지켜봅시다.’이런 말을 많이 하는데, 이 말인즉슨 내 의술이 아무리 좋고 약이 좋아도 결과는 나의 능력 밖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의사의 실력이 화타처럼 뛰어나면 고칠 확률이 높아지겠지만 이게 다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의사가 수술을 해도 그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이 영역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본능적으로 신을 찾는 것입니다.
사람은 한 치 앞을 못 봅니다. 세상을 다 얻을 것처럼 잘 풀려도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불과 11년 만에 마케도니아와 아시아, 애굽과 페르시야 인도까지 전 세계를 장악한 알렉산더가 불과 32세에 갑작스럽게 죽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또 가늠도 안 될 큰 제국이 그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당시 모세도 당시 세계 최고의 제국인 애굽에서 왕자로 40년의 교육을 받았으니 어떤 지도자로 나서도 꿀리지 않는 이력을 갖췄습니다. 거기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으니 두려울 게 무엇이겠습니까? 실패는 더더욱 예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은 모세에게 납득도 용납도 안 됐을 것입니다.
때문에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는 나의 한계를 알고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의사가 수술로 환자를 살렸다고는 전적으로 의사의 능력이라고 말할 수 없듯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이루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라는 사실을 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뛰어난 재주와 능력이 있어도 내 힘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말을 하는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했으니 그 다음은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며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한 말입니다.
여러분!!! 모세가 자신의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나왔는데, 이건 아주 바람직한 자세며,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신앙생활에서든, 세상에서든 성공의 결과를 만들어내길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 앞에 나의 재주와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시고,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야만이 이룰 수 있다는 자세를 가지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자신의 무능함을 겸손히 고백한 모세를 사용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이루신 것처럼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고 고백하는 여러분을 통해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런 복을 경험하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둘째로, 신앙인은 오래 참음으로 다툼을 피해야 합니다.(22절)
본문 2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아멘.
벽돌 생산량 기록원들로부터 원망과 비난을 들은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우리는 여기서 모세의 놀라운 인내를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기록원들이 모세에게 퍼부어댈 때 얼마나 황당하고 화가 났겠습니까? 모세가 바로를 찾아가기 전에 먼저 백성들에게 이 일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했고, 이 일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진행된다는 것을 알렸으며, 이 일의 최대 수혜자는 누구도 아닌 바로 스라엘 백성들, 자신들이라는 것도 알렸습니다.
그래서 저들도 모세와 아론을 믿고 동의했었는데, 이제 와서 일이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마음이 돌변하여 모세를 원망하며 이 모든 책임을 모세에게 돌리고 있으니 그들의 뻔뻔함에 화도 나고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세는 어떻게 처신합니까? 기록원들에게 화를 내며 한바탕 할 것 같은데도 싸우지 않고 조용하게 돌아와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금 모세는 처신을 정말 잘했습니다. 만약 그 자리에서 감정대로 화가 난다고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같이 싸웠다면 모든 일을 망쳤을 것입니다.
백성들과 분열은 더욱 악화되었을 것이고, 모세에 대한 불신과 원망도 더욱 커져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 이걸 회복하려면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이 들겠습니까? 그래서 신앙인들은 절제하고 오래 참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잠15:18절에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도 살면서 교회나 사회, 인간관계가 이루어지는 곳에는 어디를 막론하고 다툼과 마음 상하는 일을 겪습니다. 가장 사랑하고 가까운 부부간에도 갈등과 다툼 때문에 두 쌍이 결혼하면 한 쌍이 이혼하지 않습니까?
만약 모세가 길에서 백성들과 잘잘못을 따지며 싸웠다면 문제가 더 악화됐을 것입니다. 이걸 봐도 문제가 있을 때 잘잘못을 따져 갈등을 악화시키기보다는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 최선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됩니다.
여러분!!! 만약 모세와 백성들이 분열하면 누가 좋을까요? 보이는 애굽왕과 보이지 않는 사단이 좋아합니다. 바로 왕은 이걸 노리고 백성들을 더 억압했을 것입니다.
모세는 순간의 화를 참고 인내함으로 다툼을 피하고, 백성들의 불신을 가라앉혔으며, 나아가 백성들의 분열을 획책하려는 바로의 계획을 무산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든 가정이든 직장이든 사회든 간에 참고 인내함으로 사단의 계획을 무산시키고, 사람들과 관계도 원만하게 유지해 가야 할 것입니다.
주변에도 조금만 기분 나쁘면 바로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이런 사람은 신앙인으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물론 당장은 마음이 언짢을 수는 있지만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다면 억울할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서로 오해와 갈등이 생기면 참고 인내하는 것이 이기는 길입니다. 상대방과 싸우지말고 오늘 모세처럼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결국 참고 인내하는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모세처럼 오래 참음으로 다툼을 피하고 최후의 승자가 되는 행복한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로, 신앙인은 고난을 받더라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23절)
본문 23절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아멘.
본문 말씀은 모세가 백성들의 원망과 비난을 듣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한 내용인데,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바로에게 가서 백성들을 보내달라고 말하면 바로 따를 것으로 생각했을지 모르나 바로는 그때부터 백성들을 더 학대하고 못살게 굴었고, 그럼에도 하나님은 꼼짝도 않고 잠자코 계신다고 하소연합니다.
사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과 명령을 전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까지 고통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의 고통과 아픔은 모세가 바로에게 하나님의 이름과 명령을 전했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여러분!!! 그때나 지금이나 바른말을 하거나, 하나님의 이름과 복음을 전하는 것에는 고통과 아픔이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많은 핍박을 받아 순교자들이 속출했고, 지금도 사단을 따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PC주의자들은 이슬람이나 불교 토속종교 등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유독 기독교에게 만은 적대적입니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이나 교회 폐쇄와 재산 몰수 등의 법을 제정하려 하는데, 이게 제정되면 교회는 크게 위축될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바른말을 하고 복음 전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갈수록 왜 이런 악법들이 횡행하고, 왜 바로왕 때나 지금이나 복음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세상은 적대적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원수인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이 이 세상 공중 권세를 잡고(엡2:2), 하나님의 이름이 전파되는 것을 막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전파되는 곳에는 그걸 방해하려는 사단의 세력도 함께 활동하기 때문에 바른말을 하고, 복음을 전하는 성도는 고난을 당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기독인들이 세상에서 악한 일을 했습니까? 오히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돌보고, 바르고 정직하게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 왔습니다. 상을 줘도 모자라죠.
사도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주님께 사로잡혀 정말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해 교회의 초석을 세웠지만, 그가 가는 곳마다 사단의 추종 세력들의 방해와 핍박으로 수많은 고통을 당했고, 심지어 그들이 던진 돌에 맞아 가사 상태에 빠질 정도로 정말 큰 고통과 환란을 겪습니다. 사도바울 뿐만아니라 우리 믿음의 선배들도 단지 기독인이란 이름 때문에 많은 불이익과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복음 전파가 멈추어지지 않았던 것은 복음 전파가 예수님이 우리에게 유언으로 맡겨주신 지상 명령이었고, 또한 주의 이름은 부르는 자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약속 때문입니다. 행2:21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대로 살고, 복음을 전하는데 열악한 상황일지라도 기도하면서 영혼을 살리는 일에 힘을 내야 할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한 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힘을 내서 바로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여 결국 출애굽의 목적을 이루어 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은 굳이 세상에서 인정받고 사랑받으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그러니까 막 살아라 이런 뜻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만 바라보며 오늘 모세와 아론처럼 하나님이 기뻐하는 옳은 말과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히13:15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이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바로에게 담대하게 바른말을 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값진 찬송이며, 입술의 가장 큰 열매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그날까지 결코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전파하여 사단의 세력을 몰아내고, 또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온 땅에 충만할 수 있도록 힘쓰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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