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당은 율법의 실체이고 예수님은 구원의 실체인가? (롬6장에서)
바울서신 로마서 6장 해설
<롬6:1-5>
* 그러면 "은총을 풍성히 받기
위하여 계속해서 죄를 짓자" 고 말할 수
있겠읍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읍니다. 우리가 이미 죽어서 죄의 권세에서
벗어난 이상 어떻게 그대로 죄를 지으며 살 수 있겠읍니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과연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분과 함께 묻혔읍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죽어서 그분과 하나가 되었으니 그리스도와 같이 다시
살아나서 또한 그분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은총을 받기 위하여 계속해서 죄를 짓자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라고 했는데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예수님은 우리의 죄가
드러난 후 우리죄를 사해주시는 은혜의 주로 다시 오시기 때문이다(재림주때).
그런데 지금 바울은 “죄의 실체” 를 자기의 동족 유대인으로 하고
“은혜의 실체” 를 초림주로 말하고 있다. 그것이 심각한 문제로다.
하지만 바울시대는 최종적 은혜의 실체이신 재림주가 오시기 전이므로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즉
이천년전 그 시대의
최고의 빛은 초림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말은
분명히 해야 한다.
바울은 또 세례와 부활 등을
말했다. 예수님(초림)과 함께 세례를 받아서
묻혔고 예수님과 함께 그 죽음에서 부활받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받은 그 당시의 세례는 물세례였고
예수님과 함께 받은 그 당시의 부활은 무덤에서 육체가 다시 살아나오는
육체의 예법들이었다.
육체의 예법들은 모두 오늘날 영적으로 이루어질 것들에 대한 비유였다.
비유였기 때문에 무덤에서 살아나온 나사로도 다시 죽고 없는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재림주와 함께 최종적으로 받을 영적인 세례와
영적인 부활은 무엇일까?
영적인 세례는 물속에 몸을 담그는 물세례가 아니고 하나님과 성경을 온전히
깨닫고 통달케 되는 말씀세례, 즉 성령세례가
된다.
그리고 영적인 부활은 무덤에서 죽은 시신이 다시 살아나오는 단순한 육체의
부활이 아니다.
영적인 부활은 지금 살아 있는 우리의 육체속에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성령,
혹은 천사들의 신들이 들어와서 인간과 합일해줌으로써 우리의 죽을 몸이
죽지않고 썩을 몸이 썪지않게 되는 불후의 몸을 입게 됨을 뜻한다.
하나님의 본체영을 받으실 분은
오늘의 재림 예수님이시고
천사들의 신들을 각각 기국에
맞게 받을 자들은 오늘의 144000이 된다.
<롬6:6-10>
* 예전의 우리는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서 죄에 물든 육체는 죽어 버리고
이제는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읍니다. 이미
죽은 사람은 죄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는 죽는 일이 없어 죽음이 다시는 그분을
지배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 죽으심으로써 죄의 권세를 꺾으셨고 다시 살아나셔서는 하느님을
위해서 살고 계십니다.
예전의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서 죄에 물든 육체는 죽어버리고
그렇게 이미 죽은 자는 이제는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고 죄에서 해방받았다고
바울은 말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번의 죽으심으로써 죄의 권세를
꺾으셨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유대제단 앞에서
상대적으로 예수님의 높으심을
말한 것일 뿐이다. 예수님의
희생을 상징했던 유대제단의 수많은 동물제사들이
폐하여지고 이제는 예수님이 그 모든 것을 실상으로 이루신 단 한번의
육체의 피흘림이 있었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 될뿐이다.
여기서도 오늘날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할 점이 있다. 유대제단의 그 수많은
동물제사들을 단 한번만에 실상으로 이루신 분이 예수님이긴 하셔도 예수님의
그 육체의 피흘림으로는 죄의 권세를 진정으로 꺾으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죄의 권세를 꺾을 수 있는 능력은 육체의 피가 아니고 예수님의 재림 때
"말씀의 피"로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육체의 피는 의문의 피이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죄인임을 자복케 하며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죄인임을 법정에서 크게 소리쳐
알려주는 율법의 피가 된다. 죄의
권세를 꺾는 구원의 피가 절대로 아니다.
<롬6:11-15>
* 이와 같이 여러분도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어서 죄의 권세를 벗어나 그와
함께 하느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므로 결국 죽어 버릴
육체의 욕망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죄의 지배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또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기어 악의 도구가 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으로서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지체가 하느님을 위한 정의의 도구로 쓰이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율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은총의 지배를 받고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지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고 은총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해서 죄를 지어도 좋다는
말이겠읍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읍니다.
예수님의 육체의 피흘림으로는 우리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절대로 벗어
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바울은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 문제가 심각하다.
바울시대는 성경이 풀어지는 때가 아니고 성경이 비밀로 기록되는 창조미완의
때가 되는데, 마치 창조완성인양 우리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세
벗어난다고
했기 때문이다.
율법이란 구원을 주시기 전에 인간이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임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가 되는데, 예수님은 초림
때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비유로
주심으로 인하여 인간이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임을 드러내기 위한
율법주로 오셨던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그 사실을 모르고 유대제단은 율법이고 예수님의 육체의
피 흘림은 은총의 구원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유대제단은
예표와 모형과
예언이 되는 그림자 율법이라면, 예수님은
그 모든 것들을 실상으로
이루실 참 율법인데 그 사실을 바울은 몰랐다.
바울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지금까지 그 점을 알지 못했다.
오늘의 재림주가 오셔서 그 점을 알려주시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며, 부끄럽게도 옛뱀 바울의
가르침만 믿고
예수천당 불신지옥만 외쳤던 것이다.
때문에 우리 모두는 그동안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구원을 다 받았다고
믿었으나, 그렇게 믿으면 믿을수록
하나님은 계속 우리에게서 멀리 계시며
우리가 교만한 죄인이니 어서 회개하라고 다그치고 계셨던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생각은 서로 판이하게 달랐으니 동상이몽이라고나 할까.
<롬6:16-23>
*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남에게 내맡겨서 복종하면 곧 자기가 복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죄의
종이 되어 죽는 사람도 있고
하느님께 순종하는 종이 되어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는 사람도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지만 이제는 진실한 가르침을
전해 받고 그것에 성심껏 복종하게 되었으니 하느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죄의 권세를 벗어나서 이제는 정의의 종이 되었읍니다.
여러분의 이해력이 미치지 못할까 하여 이렇게 인간사에 비추어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온 몸을
더러운 일과 불법의 종으로 내맡기어
불법을 일삼았지만 이제는 온 몸을 정의의 종으로 바쳐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죄의
종이었을 때는 여러분은 정의에 예속되지
않고 제멋대로 놀아났었읍니다.
그 때에 여러분이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들밖에는
없지 않았읍니까? 그런 생활은 결국
죽음을 안겨 줍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종이 되었읍니다. 그 결과로 여러분은
거룩한 사람이 되었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읍니다. 죄의 댓가는
죽음이지만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바울은 계속 말한다. 죄에 복종하는
종이 되었을 때와 진실과 정의에 복종하는
종이 되었을 때를 말한다. 죄의 권세아래
있는 종의 때와 죄의 권세에서
벗어난 자녀의 때를 대조해서 말한다. 물론
우리는 후자편에 서야 한다.
하지만 바울이 믿었던 것처럼 유대제단이 죄의 권세아래 있는 전자이고
초림주의 육체의 피흘림이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안겨주는 후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라고 한다. 알파는 천국의 시작이고 오메가는
천국의
완성이다. 유대제단은
천국의 시작인 알파도 아니며 천국의 완성인 오메가도
아니다. 유대제단은 천국개념조차 없었다.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복락을
누리며 살게 된다는 천국의 개념은 예수님의 초림 때부터 도입된 신개념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외치셨는데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은 천국의 시작이지 천국의 완성은 아니다.
천국의 완성은 재림 때에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은
초림 때는 구원과 천국의 알파로 오셨고 재림 때는 구원과 천국의 오메가로
오신다는 뜻이다. 죄의 종인 전자는 예수님의 초림
때이고 생명의 자녀인
후자는 예수님의 재림 때임을
알자.
수없이 반복하거니와 유대제단은 초.재림주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
대한 그림자이지 어떠한 실상도 아니다. 물론
유대제단이 사실로 이루어졌던
유대민족의 역사기록물임엔 틀림없으나 하나님은 그들의 역사를 들어서
오늘날 온 세계 우리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를 기록케 하셨다.
그러므로 유대역사 이야기는 곧 우리들의 실상 이야기로 해석해야 한다.
실상에서 초림주의 복음은 율법이고
재림주의 진리의 새말씀은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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