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3234]孤山遺稿7, 江西客館次壁上韻[강서객관차벽상운] 四首
고산유고 제1권 / 시(詩)
孤山遺稿卷之一 / 詩
〔江西客館次壁上韻 四首○癸酉〕
강서의 객관에서 벽 위의 시에 차운하다 4수
○계유년(1633)
1.席帽白袍去我前。
主人仍敞綺羅筵。
小亭剩得中秋月。
何必留仙與降僊。
留仙館名。降仙樓名。俱在成川。
석모와 백포가 내 앞을 떠나간 뒤 / 席帽白袍去我前
주인이 베풀어 준 화려한 연석(筵席) / 主人仍敞綺羅筵
이 정자에도 중추의 달빛이 넘치나니 / 小亭剩得中秋月
어찌 꼭 유선과 강선을 찾으리오 / 何必留仙與降仙
유선(留仙)은 객관의 이름이고,
강선(降仙)은 누대의 이름인데, 모두 성천(成川)에 있다.
[주-D001] 석모(席帽)와 백포(白袍) :
과거 응시생들을 가리킨다. 석모는 햇빛을 가리는 전립(氈笠) 비슷한 모자이다.
송(宋)나라 이손(李巽)이 과거를 볼 때마다 낙방을 하자
고향 사람들이 “저 석모를 언제나 벗을지 누가 알겠나.〔知席帽甚時得離身〕”라며
비웃었는데, 뒤에 이손이 탁지 낭중(度支郞中)이 되어 그들에게 시를 지어 주기를
“마을의 친척들에게 알려 주노니, 지금 석모를 이미 벗었다오.
〔爲報鄕閭親戚道 如今席帽已離身〕”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여
석모이신(席帽離身)이 과거 급제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이 고사는 송(宋)나라 오처후(吳處厚)의 《청상잡기(靑箱雜記)》 권2에 나온다.
또 당나라 때에는 관직을 지닌 자는 조포(皁袍)를 입고,
관직이 없는 유생은 백포(白袍)를 입고, 서민은 포포(布袍)를 입었는데,
여기에서 유래하여 백포가 거인(擧人) 즉 입시생(入試生)의 복장으로 쓰이게 되었다.
《說郛 卷44上 臣庶許服紫袍》
참고로 소식(蘇軾)의 〈최시관고교희작(催試官考較戱作)〉 시에
“그대여 내 말 듣고 납촉을 더 태우시기를,
문밖에 백포들이 고니처럼 서서 기다리니까.
〔願君聞此添蠟燭 門外白袍如立鵠〕”라는 말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8》
2.客堂寥落小燈明。
風露翛然不勝淸。
忽憶故園今夜月。
一江煙水浩冥冥。
작은 등불 하나 밝힌 적막한 객당 / 客堂寥落小燈明
풍로가 소연하여 청흥을 가누기 어려워라 / 風露翛然不勝淸
고향 동산 오늘 밤 달빛은 어떠할까 / 忽憶故園今夜月
한 가닥 내 낀 강물 아스라이 비치리 / 一江煙水浩冥冥
3.勝槩西關問幾州。風光隨處浩難收。
山圍洞闢無如此。鶴嶺還堪聳我眸。
관서의 승경 묻노니 몇 고을인고 / 勝槩西關問幾州
도처의 풍광을 다 거두기 어려워라 / 風光隨處浩難收
이처럼 활짝 트인 산골도 없을 텐데 / 山圍洞闢無如此
학령이 또 눈을 번쩍 뜨이게 하네 / 鶴嶺還堪聳我眸
4.緱山仙子倘留茲。鶴嶺彤雲正陸離。
山鳥下階朱墨屛。却疑身世入無爲。
구산의 선자가 혹시 여기에 머무는지 / 緱山仙子倘留玆
학령에 채색 구름 찬란하게 피어나네 / 鶴嶺彤雲正陸離
주묵이 물러가고 산새가 섬돌에 내려앉나니 / 山鳥下階朱墨屛
나의 몸이 무위의 세계에 들어온 듯하네그려 / 却疑身世入無爲
[주-D002] 구산(緱山)의 선자(仙子) :
신선이 되어 구지산(緱氏山)에 내려왔다는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太子)
진(晉) 즉 왕자교(王子喬)를 말한다.
그가 왕에게 직간을 하다가 서인(庶人)으로 폐출되었는데,
피리 불기를 좋아하여 곧잘 봉황의 울음소리를 내다가,
선인(仙人) 부구공(浮丘公)을 따라 숭산(嵩山)에 올라가서
선도(仙道)를 닦은 뒤에, 30년이 지난 칠월 칠석 날에
구산 정상에 백학(白鶴)을 타고 내려와서 산 아래 가족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는
며칠 뒤에 떠나갔다는 전설이 있다. 《列仙傳 王子喬》
[주-D003] 주묵(朱墨)이 …… 내려앉나니 :
주필(朱筆)과 묵필(墨筆)을 쥐고 공문(公文)을 처리할 일도 없이
관소가 마냥 한가하기 때문에 산새들도 마음 놓고 찾아와서 섬돌에 내려앉아
노닌다는 말이다. 참고로 이백(李白)의 〈증청장명부질율(贈淸漳明府姪聿)〉 시에
“처리할 송사도 없이 조용하여 새가 섬돌에 내려앉나니,
높이 누워서 도서(道書)를 펼쳐 읽는다.〔訟息鳥下階 高臥披道帙〕”라는 말이 나온다.
《李太白集 卷8》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