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남을 통해서만 살아갈 수 있는 인격은 기생하면서 썩어갈 운명이다. 과격한 문구를 툭 하고 던져본다. 어릴 때 신데렐라 꿈을 꾸었다. 왕자가 나타나고..내가 돋보이고.
문제는 알려진 결말 그 이후만 생각하려고 하면 흐지부지 되는 거다. 마치 신데렐라가 왕자님을 만나고 나서 영원히 이세상을 떠나 자라지 않고 보석이 된 것처럼...
그 이야기의 끝은 늘 완전한 결말로 여겨졌던 것이다. 신데렐라의 스토리가 내 삶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다. 삶을 찾는 대신, 내 이미지만을 숭배하고 살아가면 내 미모(허헛;;)와 그속에 잠든 영혼을 인정해줄 누군가가 나타나 내 결핍을 모조리 채워 주리라고..
내 몸은 남자를 통해 욕망을 달성시키고 연명하리라. 그 남자는 보통남자가 아닌 왕자님일 것이므로..하지만 나는 신데렐라가 아니고, 교묘히 욕망을 채우려는 의지로 온몸이 달아오른 욕심많은 한 인간에 불과했다. 깨달음은 순간이지만 착각의 터널이 길었던 만큼 나는 자신을 낭비하고 오해한 세월들이 조금 원망스럽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세상에 대한 불만이자 주정이다.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은 내가 통과한 터널을 체감할 수 있는 소박하고 쓸만한 드라마이다. 1950년대 미국의 보수적인 여대생과 진취적인 여교수 간의 소통은 첨에 공포분위기를 자아낸다. 결혼이라는 두글자만 나오면 여학생들은 그대로 쓰러진다. "쏘 로맨틱."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비교적 자유가 큰 캘리포니아에서 뉴잉글랜드의 명문대학 웰슬리에 미술사 교수로 초빙된 캐서린 교수는 희망에 가득차있지만, 보수적인 학생들은 캐서린의 개방적인 사상을 배척한다. 그러나 결혼만이 여성의 존재증명이 아니라는 캐서린교수의 진정한 목소리는, 학생들에게 조금씩 전달된다. 보수적인 고전 주의 회화처럼 딱딱하게 굳어진 권위에 의존하던 여학생들의 목소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추상화같은 색깔을 띠게 된다.
그들은 여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형성하는 그 무엇인가를 스스로 찾아내고자한다. 교과서에 의존하던 앵무새에서 스스로 사유할줄 아는 목소리가 된 것이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대중적이고 평범하며, 주제역시 이제는 누구나 다 체득했을 법한 원론이다. 말하자면 여성의 정체성은 고정된 성역할에 얽매여 있지 않고, 후천적으로 경험을 통해 욕망을 완성시켜 나아가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여성주의가 들어설 수 밖에 없는 까닭을, 평범한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주기에 순수한 마음을 움직인다. 줄리아 로버츠의 얼굴 붉어지는 열연은 여성주의를 몸안에서 자각한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하다.
그녀처럼 "결혼하고 주부가 되는 것이 너희들의 전부냐고..." 라고 외친건 나였다.
그 외침을 받은것도, 그리고 그 외침을 무시하고 배척하려는 여자들도 모조리 나였다.
마치 본능처럼 골수에 스민 여자라는 거짓된 관념.. 그속에서 진정한 나는 숲을 지나치는 기차처럼 조금씩 드러나고 사라졌었다. 아직도 나는 초심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기에
모나리자 스마일처럼 단순한 여성주의 원론에도 마음이 뭉클하다.
첫댓글 무지 반가워요~ 건강은 좋아졌는지... 잠수함도 떠오를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