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자리에 선다. 빛바랜 수채화처럼 희미한 기억 속 아른거리는 옛집은, 내가 아동기부터 청년기까지 꿈을 키워온 집이다. 도심 속에서 시골 분위기를 자아내는 집은 진한 향수를 담고 때때로 나를 그리움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마을 어귀에서 골목을 돌고 돌아서면 나이도 모를 아름드리 아까시나무는 5월이면 그 꽃향기로 그윽한 대문 앞, 평상은 어른들의 쉼터요, 우리는 소꿉놀이 장소였다. 소꿉놀이하느라 호박꽃을 다 따서 놀다 아버지에게 혼이 나기도 하고, 꽃이 없으면 호박이 안 열리었는데 철부지들이 그것을 알 리 있겠는가. 흰둥이는 애처롭게 늘 매여서도 꼬리 치며 오는 사람을 반겼다. 집 뒤 곁에는 어머니 자존심인 듯한 장독은 닦고 또 닦아서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시도록 반짝인다. 여름이면 얼음물을 토해내던 녹슨 펌프는 수십 미터 깊은 암반수를 퍼 올려 수박도 담가놓고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막걸리도 차게 하는 냉장고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 차가운 물로 샤워하면 시원한 정도를 지나쳐 놀래 펄쩍 뛰기도 했다.
부엌에는 어머니와 늘 한 몸이 되는 대가족 끼를 책임질 큰 가마솥이 부엌의 대장처럼 버티고 앉아있고 솥뚜껑은 기름으로 닦아 장독 항아리처럼 반짝인다. 어머니께서 그만큼 가마솥을 귀하게 여셨다. 부엌 한구석에 모여앉아 어머니만을 애타게 기다리던 땔감, 불을 지피시다 눈물을 닦으시며 연기 때문이라고 피해 가시기도 하신다. 고구마나 감자도 구워 먹고 그렇게 아궁이는 여러 가지 역할을 하였다. 그 옆 연탄불 석쇠 위 조기는 식성이 까다로운 아버지만을 기다렸다.
담장 안에는 우리 집 외 몇 집이 함께 살았다. TV가 귀하던 시절, 축구나 드라마도 시간이 되면 말없이 모여들어 함께 보면서 즐겼다. 점심때가 되면 밥과 반찬 한 가지를 들고 우리 집 마루에 모여서 먹곤 했다. 어머니는 별식을 하면 나눠 먹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내가 집마다 가져다주기도 했다. 어머니의 별식은 팥칼국수와 콩국수인데 손이 많이 갔다. 아침부터 콩을 불려 해가 질 때쯤 삶아 맷돌에 한 숟가락씩 넣고 갈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요즘처럼 믹서기가 있으면 쉬울 텐데, 국수는 밀가루 반죽하여 홍두깨로 밀어 썬 칼국수, 온종일 소요되었다.
아버지께서는 동식물을 좋아하여 그리 넓지 않은 화단에 옹기종기 식물들을 많이 심었다. 감, 밤. 배등을 비롯하여 꿀맛 같은 무화과, 새콤달콤한 석류, 향기도 그윽한 치자나무 외에도 이런저런 꽃들로 가득했다, 벽돌로 담을 쌓기 전에는 철조망으로 울타리를 해놓았을 때는 철조망 따라 코스모스를 쭉 심어놓아 가을이면 내가 참 좋아했다. 그래서 지금도 코스모스를 좋아한다. 6가구가 한 가족처럼 나눠 먹고 큰일이라도 생기면 서로 의논하고 도우며 지냈다.
그렇게 20여 년을 지낸 집이 도시개발 계획에 따라 사라진다니 세입자들도 아쉬운 마음으로 다 흩어졌다. 우리 집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사하던 날 사용하시던 가마솥, 맷돌, 절구 등 어머니 손길 많이 간 가사 도구들을 두고 돌아서며 어머니는 눈물을 훔쳤다. 나도 울컥하는데 어머니 마음은 오죽하랴. 이 집에서 사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부모님 회갑 잔치부터 아홉 형제 결혼도 했다.
손주들이 여럿 태어나고, 노인들 쉬실 곳이 없다며 아버지는 마을 유지들과 국회의원의 도움을 받아 노인정도 만들어 놓았다. 동네 노인회 회장을 맡아 일하다 허리를 다쳐 하늘나라로 가시기까지 희로애락이 참 많은 집이다. 요즘 같으면 허리 다친 것쯤은 병원 치료받으면 완쾌할 수 있었을 텐데 그 당시는 침 맞고 지압하고, 오래 누워있어 다리 근육이 약해져서 걷지를 못하였다. 6개월을 그렇게 가실 때까지도 어머니를 힘들게 하셨다.
옛 추억을 더듬어보려고 2년 전에 가 본 적이 있다. 많이 변해서 어디가 어딘지는 잘 모르지만, 아직도 노인정은 그 자리에 꿋꿋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반가워 안을 살짝 들여다보다 어느 어르신과 마주쳤다. 나를 알아보시고 정 회장님의 막내딸이 아니냐고 물으셨다. 그 당시 어르신 중에 나이가 제일 어려 아직 생존해 계신단다. 한 분이라도 아버지를 알고 나를 알아보는 분을 만나 좋았다. 주변은 다 달라져 모르겠는데 노인정만 그대로였다.
50년이 넘게 흘렀는데 노인정이라도 흔적이 남아 있으니 훈훈한 마음이다. 살아오면서 있었던 자리에서 사라지고 만 것이 얼마나 많은가. 영원히 함께할 줄 알았던 부모님도 우리를 두고 떠나셨다. 어릴 적 추억이 서린 옛 동네를 둘러보고 오는 길에 푸른 하늘을 쳐다보니 문득 감사한 마음이 솟구친다. 잃어버린 나에 대한 향수를 일깨우는 옛집이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음에 새삼 감사한다. 옛집을 떠올릴 적에 위로가 되는 시 편이 문득 생각난다.
꿈속에 들어가 잊지 않으려 자꾸만 자꾸만 동화처럼 기억하고픈 내 어린 시절 꿈을 키워온 눈물 핑 도는 고향 초가집
-권수현 시 <고향초가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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