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뉴스 293/1107]한시漢詩 한 편과 실패한 생강生薑농사
# 붓글씨(서예)를 한번도 배워본 적이 없기에 붓 잡을 줄도 모르지만, 무료한 시간이면(무료한 적이 거의 없지만) 왜 그렇지 붓으로 한자와 한문 쓰기를 좋아한다. 졸필이지만 내 멋인 걸 어이 하랴. 먹을 가는 것은 언감생심, 붓펜을 애용한다. 이게 제법 쓸만하다. 달포 전쯤 ‘귀원전거歸園田居’라는 한시를 한지에 써 떠억허니 거실 기둥에 붙여놓았다<사진>. ‘귀거래사歸去來辭’로 유명한 도연명陶淵明의 또 다른 작품이다. 이 한시 중에 내가 특히 좋아하는 구절은 <羈鳥戀舊林기조연구림: 조롱속 새는 제가 살던 옛 숲을 그리워하고/池魚思故淵지어사고연: 연못 물고기는 제가 살던 옛 연못을 못잊어한다>와 <久在樊籠裏구재번롱리: 오랫동안 새장에 갇혀 있다가/復得返自然부득반자연: 이제야 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이다. 쪽은 팔리지만, 서예 20년의 공력을 가진 근봉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보냈더니 <오늘의 우천(필자의 호)의 모습을 그때 도연명이 그렸구만>이라는 댓글이 왔다. 한 달에 한두 번 내려오는 아내가 어제밤 거실에 앉자마자 이 한시의 뜻풀이를 물어와 한 구절씩 친절하게 알려줬더니 대뜸 “도연명이 따로 없수”라며 칭찬이니 비꼼인지 '한 말씀'하신다. 며칠 전 하루밤 자고간, 반 세기 동안 막역한 친구는 "니가 직접 쓴 것이라고? 오호 제법인데"라며 놀라기도 했다. 이런 아무튼, 뜻을 물어오는 아내가 예쁘기만 하다. 얼마 전 '전전전 직장' 친구 넷이 내방을 했는데, 우리집 편액 ‘애일당愛日堂’과 ‘구경재久敬齋’의 뜻은 무엇이고 출처가 어디인지를 묻지 않아 서운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섭섭하다고 했더니 “무식한 게 티날까 봐”그랬다는 대답을 들어 ‘그것도 그럴 것이’ 싶어 실소하기도 했다.
# 셋째형님이 원체(유난히) ‘생강 마니아mania’이다. 그 향이 체질에 딱 맞는 듯하다. 오죽하면 파릇파릇한 생강잎과 생강을 냉장고에 가득 넣어놓고 일년 내내 먹었으면 좋겠다고 하겠는가. 마니아를 우리는 ‘호주객好酒客(원래는 술을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나 무언가에 쏙 빠진 사람을 일렀다)이나 ‘사족四足(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이나 사람, 취미 등에 쏙 빠진 사람)을 못쓴다’고 했다. 하여, 4월말쯤 생강으로 유명한 완주 봉동에서 20kg를 사와 소독을 하고 두 두럭에 심었다. 둘째형은 자두를 좋아해 자두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내년에나 열리려나? 농사일을 흉내내다 보니 이제사 부모의 마음을 알 것같다. 자식들이 어느 것(생강, 참외, 자두, 옥수수, 청양고추 등)을 좋아하는지 잘 아니까, 아무리 바빠도 자식들이 좋아하는 작물을 심는 그 심정 말이다. 손바닥 두 개를 합친 것보다 더 큰 생강뭉치를 서너 개로 뚝뚝 분질러 씨가 발아할 부분을 위로 하여 꾹 눌러 심고 흙으로 묻어놓으면 된다. 5∼6주 후에 난다는 생강이 두 달이 되어도 전혀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날씨 영향이 클 듯. 퇴비도 많이 했건만, 거의 전멸수준이어서 안타깝고 아쉽고 속이 많이 상했다. 하지만 동네에서 어느 집은 또 아주 잘 됐다. 이럴 때 ‘복불복福不福’이라고 할 것인가.
더구나 20kg 생강씨 값 20만원을 셋째형이 나도 모르게 계좌로 부쳤으니, 면목이 없는 일이다. 어제는 듬성듬성 난 생강을 캤다. 악조건에서도 뚫고 나온 생강이 어찌나 귀하던지. 못해도 30키로는 될 것이다. 일단 10키로를 형님에게 택배로 보내고나니 그나마 허리가 펴지는 느낌이다. 살이 찌려다만 ‘못냉이 생강’들은 씻어 말려 조각조각 잘라 겨우내 생강차를 끓여 먹을 생각이다. 생강은 냉동실에 넣어두면 오래 먹을 수 있다. 꿀에 잰 생강청을 만들 수도 있고, 크고 넓적한 생강은 썰어 설탕을 뿌려 볕에 오래 말리면 편강片薑이 된다. 맥주 안주 등으로 제법 고급이다. 예전에 집안 어르신인 할아버지나 맛볼 수 있었다. 요즘도 편강 만드는 여성을 보면 천연기념물같아 무척 반갑다(‘혼불누님’은 명절 때마다 손수 만든 편강을 선물로 가져오는데, 천상 ‘조선의 여인’이다). 주말이라고 내려온 아내에게 생강을 몽땅 넣은 무국을 끓여 달라고 해야겠다. 입안이 틔엿틔엿 델 정도로 뜨겁게 끓여 고춧가루도 몽땅 넣어야지. 옛날엔 이렇게 먹으면 감기가 저 멀리 달아났었다. 긴 장마로 여름내 목욕을, 아니 물에 퐁당 들어앉아 살다시피 했고, 가을엔 또 가뭄, 들쭉날쭉 날씨에 이나마 올라와준 게 고맙기도 했다. “생강 하나도 안됐다며 이렇게 많이 보냈어요?” 택배를 받은 형수의 화들짝 반가운 전화다. “에이-, 그래도 그 정도는 되지요”라고 말할 수 있어 무척 다행이다.
첫댓글 '귀전원거'를 제대로 실천하는 우천이 멋져요.^^
나는 이 시에서 '守拙' 이 두글자를 가장 마음들어한다오. 비록 도시의 새장 안에 갇힌 신세일지라도 졸박拙樸한 멋은 지켜내려 노력합니다.
심신을 가다듬으면서 더욱 좋은 삶 되소서. 청심청안. 합장. ^^
아유 깜짝! 따르릉님이 이렇게 한시에 능하다니, ^ 말미에 청심청안 합장^ 뭔가 익숙하다. 아니, 여보아닌 우보.
우천의 글중 ^전전전 직장^이 내 배꼽을 잡게 만드네, 그래도 우천에겐 소중한 추억이 있는 곳.
우천의 인생2막이 나의 배를 아프게한다. 주말이면 아내랑 텃밭에 나가고 싶다.
이런 기분 좋은 생각이라도 하게 만들어준 우천이 고맙다.
우리 큰형(82)은 뭘 좋아하시드라?
닭고기?
작은형(76)은 고추전?
셋째형(68)은? 장어?
누나(71)는?
어릴적에는 제사나 명절에만 먹는 고기였으니 고기를 좋아한다고 말못하고 ㆍ뭘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형제들 뭘 좋아하는것까지 기억하는 친구는 정말 존경스럽다.
총생들아 잘있거라 인간극장을 두어번봐서 익히 친구네 화목한 가정을 기억한바 따뜻한 마음씀씀이가 부럽다.
64세 내가 막내이다보니 어느때까지는 막내야 생일 축한한다 소리를 들은것같은데
지금은 며느리.손주들의 생일 축하드려요가 더 익숙해져간다.
젖떨어진 강아지
조금있으면 음력10.19일 내 생일 그리고 11.1일 울엄마 생일 나랑 같은 닭띠이니 올해가 100살 이시네ㆍ
어휴 왜 이리 시간은 잘 도망가는지 세월호 가라앉은날 울 엄마 가셨으니 벌써 6년됐네
하필이 우리 며느리 생일이 그날 일꼬? ㅎ
새벽아침 댓글이 엉뚱하게 흘렀네
따르릉 사부님 형제들은 센 4형제,바로 윗 형님좀 나좀 연결시켜주시길 부탁! 남자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