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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사상에 의하면 석가모니 불멸 후 500년간은 정법시대라하여 누구나 쉽게 성불할 수 있는 시대이고, 이후 상법시대가 1천간 이어지는데 이때는 노력하면 성불할 수 있는 시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로부터 1만년간은 말법시대라고 하여 성불하기가 무척어렵다는 시기라고 하네요. 그러니 시기적으로 서기 1000년 전후가 바로 말법시대의 시작인 셈이지요. |
평등원이 있는 우지는 본래 주변 풍광이 수려하여 세력가들의 별장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일본 최고의 우수한 녹차 산지로도 잘 알려져 있지요.
아무튼 지금의 평등원은 아버지 미치나가 1053년에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별장을 사찰로
개조하면서 극락세계를 주제하는 아미타불을 모신 아미타당을 지은 것입니다.
그 당시에 가장 뛰어난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분야 기술자들이 동원되어 완성도가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입니다.
평등원 앞의 연못은 아미타경에 나오는 극락세계에 있다는 구품연지를 표현한 것이지요.
뵤도인이 불국사의 자하문이 좌우의 종류를 연결한 모습을 밴체마킹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불국사에도 본래는 구품연지가 있었습니다. )
뵤도인의 아미타당은 치미의 봉황이 상징처럼 되어 있어 '봉황당'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립니다.
헤이안시대 400년 중에 200년간은 후지와라시대라고 할만큼 정권은 후지와라씨가
꼭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후지와라 미치나가는 딸 넷을 모두 천황가에 시집보내 세명이 동시에
황후, 태황후, 태황태후가 되어 그야말로 천황 이상의 실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불교에서 심취하여 절도 많이 짓고, 53세에는 아들에게 실권을 갖는 관백자리를 물려주고
머리를 깍고 출가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임종 때 모습은 이렇게 전합니다.
[구체 아미타불의 손과 자신의 손가락을 오색실로 연결하고, 극락이 있는 서쪽을 향해 누워,
눈은 아미타불을 바라보고, 귀는 염불을 듣고, 마음은 극락에 두고 있었다.]
창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는 평등원은 목조건축물 답게
여러차례 수리를 거쳐 전해집니다. 최근에는 2001년부터 구품연지에 대한
대대적인 발굴조사가 있었으며, 몇년간 대수리를 하여 2014년 4월 1일 재개관을 했다고 합니다.
정면에서 당겨본 모습입니다. 아미타불이 보이시는지요?
한밤에 실내에 붉을 밝히고 저 창으로 아미타불의 모습 비치는 것이 매우 아름답다고 하네요.
이러고 보니 불국사의 자하문과 큰 틀에서 많이 닮아보입니다.
어쩜 그리 자꾸자꾸 찍게 되는지요.
뵤도인의 보물관인 봉상관으로 입장합니다.
내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는데, 건축물이 매우 아름다워 슬쩍 한컷 했습니다.
봉황당 내부에 있었다는 운중공양보살상의 절반을 이곳에 모셔놓았는데요. 정말 환상적이네요.
유홍준 선생이 부러워마지 않았던 봉상관의 휴게실입니다.
참 편안합니다.
한컷! 찰칵! ^^
자, 분홍색 우리 버스를 타고 이제 교토 시내로 향합니다.
왼쪽의 가람막이 없었으면 일본 최대 크기의 목탑이라는 동사(도지)의 오중탑이 잘 보였을텐데 아쉽습니다.
교토 도심에서 내려 우리가 간 곳은?
요런 좁은 골목길을 지나...
바로 4일차 점심을 예약해 놓은 돼지고기 샤브샤브 전문점인 '부타샤부에이'랍니다.
꽤 만족도가 높았는데, 음식 사진은 12편 후기에서 보아주세요 ^^
첫댓글 추억 한가득인 우지를 둘러보니 뭉클과 울컥입니다
뵤도인 보다도 수국 홀렸던 기억이 선명한 곳ᆢ
뵤도인을 발견이님 사진으로 비로소 자세히 봅니다ㅎ 고맙습니다~^^
뵤도인이 수국과 비슷한 시기에 피는 등나무도 정말 멋지다고 하던데요.
뵤도인을 만든 후지와라 가문의 문장이 등나무꽃이라서 일부러 많이 심었다고 하더라고요.
좋은 기억 떠오르실 수 있다니 참 보람되네요. ^^
봉상관안으로 들어가
봉황당의 아름다운 운중공양보살상중
우리 2조팀도 가장 아름다운 보살상 찾기 놀이를 했어요~..ㅎㅎ
책을 미리 보지 않았던 친구들도 있었는데
절반 이상이 그 뒷모습을 보여줬던 보살상이 가장 이쁘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구요~..ㅎㅎ
아름다움은
보여짐이 아니라
느낌이구나~..상상할 수 있는 그 것!..
보지 못 한 봉황당의 그 아름다운 내부도..
상상으로 더 아름답게 각인될 듯 합니다~~..
사진과 설명들 정말 감사합니다~~~
봉상관 건축의 아름다움도 많이 느낄 수 있었어요.
다양한 시각이 열릴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아 많이 행복했습니다... ^^
계속해서 올려주시는 멋진
사진과 글을 대하니
제가 아직도 그 곳에 머물러 있는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했던 과거에 잠시 잠깐 머물다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행복했던 시간을 저 역시 다시 음미하는 후기 작업 시간이었습니다. ^^
저는 여행가서도 사진을 잘 찍지 않는 편인데요 발견이님의 멋진 사진들을 보면서 나도 사진을 배워보고 싶다 하는 생각을 처음 해봤어요.
물론 보이는 만큼 생각하는 만큼 앵글로 잡아서 단순히 찍는다로 표현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발견이님 사진 정말 아름다워요.
많은 공부와 사유를 통해 보는 것이 다르기에 이렇게 훌륭한 사진이 나오는 것이겠지만서두요^^
사진을 처음에 너무 어렵게 공부하면 더더욱 어려워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예요. 알고보면 참 쉬운데 말이지요. ^^
스마트 폰으로도 요즘 나온 것들은 참 잘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가진 큰 카메라와 스마트폰은 각각의 장점이 있어서 서로가 따라가지 못하는 장점들이 있답니다.
즉, 저의 무거운 카메라도 스마트폰의 접근성은 따라가기가 어렵지요. 그래서 제가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또 다른 사진이 나오더라구요. ^^
평등원의 서로 다는 높이.
지붕의 모양도 각각이어서 더 아름다웠어요.
당겨 찍으신 덕분에 아미타불의
모습을 볼수 있네요.
봉황당 안의 비천상들,
비천상들은 대부분 아름답지요.
봉황당 안의 비천상들도 아름다웠지만
내게 각인되어 있는
상원사 동종의 빼어난 아름다움 때문에
온전히 빠져들지 못했던 아쉬움이...
어쩐데요. 상원사 동종 비천상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여 사진을 다시 찾아보고서야 아~! 했네요.
디테일이 참 아름답네요. 우리 것에 대한 관심도 이 기회에 더욱 커졌던 듯 싶습니다. 법륭사의 5층 목탑은 정말로 정림사지 5층석탑과 정말 많이 닮았더라구요.
어쩜 그리
자꾸 찍으셨는지요??
ㅋㅋㅋㅋㅋ
가본 사람은 알겠죠? ^^
봉황당의 비천상!!!!
을 보면서
어쩌면
아름다움이란
눈으로 드러난 것보다
제각기 내면의 눈으로 그린
심상이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뭐....
결론을 내려
하나하나 더듬어가다보면
내면에 새겨진 심상 또한
내 눈으로 본 것에다 덧입힌
그 무엇이 아니겠나....
라는 생각에
이르긴 했지만....
딱딱한 나무로
어찌 그처럼 정교하고도
살아있는듯
눈으로 보고 마치 찍어낸듯
새길 수 있었는지!!!
감동 이었습니다
정말 많은 것을 생각 더 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은사시나무님 댓글을 통해서 다시한번 떠올릴 수 있는게 좋네요.
어찌보면 모든 게 우리 모두가 덮고 잔 이불에 쓰인 반야심경처럼 공허할 따름인데도 말이지요. ^^;;
400년 가문을 지켜냈다고 했나요?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어요..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문의 지킴이"에 희생 당했을까하는..지나고 나면 덧없는 것에..
덕분에 저희야 많은것들을 보고 있지만..모든것이 그러한데..왜 여기서 더더욱 그런 생각이 났는지..ㅎ
그건 우리가 지금도 많은 희생을 강요 받기 때문일거예요.
저만해도 국정이 스톱되다보니 새해들어 사무실 운영에 큰 차질이 생길게 불보듯 뻔하답니다.
결국 이래저래 힘 없는 이들만 상처받는... 그래서 사람들은 힘을 갖고 싶어 하나봐요.
오늘 출근하는 내내 반야심경 독경 들으며 왔어요.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