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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 전등록 1700 공안에서 100칙 발췌
10권. 본이름은 불과원오선사벽암록(佛果圜悟禪師碧巖錄). 또는 벽암집(碧巖集)이라고도 함.
송나라의 설두중현(雪竇重顯, 980~1052)이 불교 참선에 도움이 되는 글 100개를 뽑아 시로 만든 것을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 보기 쉽게 주석을 붙이고 풀이한 책이다. 이후 원오극근의 제자인 대혜선사가 편집하여 간행하였다.영미권에서는 《Blue Cliff Record(푸른 절벽의 기록)》라는 명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임제종(臨濟宗)에서 중요시 하던 책으로, ≪종용록(從容錄)≫과 함께 선문(禪門)의 쌍벽서(雙璧書)로 일컬어짐.
역사
중국 선종5가(禪宗五家)의 일파인 운문종(雲門宗)에 속하는 설두(雪竇) 중현(重顯)이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1,700칙(則)의 공안 중에서 선(禪)의 전통적 사상에 의거하여 달마선(達摩禪)의 본령(本領)을 발휘하여 학인(學人)의 판도(辦道: 수행)에 중요한 지침이 되는 100칙을 골라서 그 하나 하나에 종지(宗旨)를 거양(擧揚)하는 격조 높은 운문(韻文)의 송(頌)을 달았다.[1]
후일 임제종의 원오극근(圓悟克勤)이 이 송(頌)에 대하여 각칙(各則)마다 서문적인 조어(釣語: 垂示), 본칙(本則)과 송고(頌古)에 대한 단평(短評: 著語), 전체적인 상평(詳評: 評唱)을 가하여 10권으로 한 것이 《벽암록》이다.[1]
즉, 설두스님이 저술한 설두송고(雪竇頌古)에 대한 원오스님의 주석서가 벽암록이다.
1125년 원오극근은 예주(澧州)(현재 후난성 창더시 리현) 협산(夾山)에 위치한 영천원(靈泉院)에서 벽암록을 지었다. 기거하던 방안에 벽암(碧巖)이라고 쓴 액자가 걸려 있어서 책 이름을 벽암록이라고 지었다.
원래 최초의 책이름은 불과원오선사벽암록(佛果圓悟禪師碧巖錄)이다.
보조(普照)에 의하여 1128년(建炎 2)에 처음으로 간행되었으나 원오극근의 제자인 대혜종고(大慧宗杲)는 이것이 선(禪)을 형해화(刑骸化)하는 것이라고 하여 간본(刊本)을 회수해서 소각해 버렸다.[1]
1297년 원나라 때 장명원(張明遠) 거사가 "종문제일서 원오벽암록"이란 이름으로 재출판하여 오늘날 일반에 유포되었다. 종문제일서란 임제종의 최고 서적이란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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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전등록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Transmission of the Lamp)은 송나라 북송 진종 경덕(景德) 원년(1004년)에 황제의 명으로 고승 도언(道彦)이 출판한 불교 서적이다. 1700칙(則)의 공안이 기록되어 있다. 전등록이라고도 한다.
역사
30권으로 되어 있으며, 중국 선종(禪宗)의 가장 대표적인 역사서로 널리 읽히고 있다.
1251년 완성된 고려 팔만대장경에 수록되었다.
1971년 동국역경원에서 한글대장경으로 출판했다. 3권의 책으로 판매되었다.
2016년 현재 한국불교의 압도적 주류인 임제종 간화선 수행에서, 명상의 대상으로 정신집중을 하는 화두는 1700개라고 하는데, 전등록에 실린 화두가 1700개여서 그렇게 부른다.
벽암록
1125년 원오극근이 저술한 벽암록은 임제종의 종문제일록으로 불린다. 운문종 설두중현이 경덕전등록 1700칙 공안 중에서 중요한 100칙을 골라서 송을 붙여 설두송고(雪竇頌古)를 저술했다. 설두송고를 임제종 원오극근이 다시 주석을 달아 벽암록이라고 하였다.
전등록의 1700개 화두가 모두 활구는 아니라서, 사구가 상당히 포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원오극근은 천축 48대, 중국 21대 조사스님이라서, 벽암록의 100개 화두가 좀더 가치 있다고 평가받는다.
혜거국사
전등록에는 고려 최초의 국사인 도봉산 혜거국사의 공안이 실려있다. 서울 도봉산 망월사에서 오래 살아서, 도봉산 혜거 국사라고 부른다. 전등록 제25권에서 청양문익 선사의 법을 이은 고려 도봉산 혜거국사를 서술하고 있다. 1066년 혜거국사가 망월사를 중건했다. 도봉산 망월사 근처에 경기도 유형 문화제 제122호인 혜거국사부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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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선종의 옛스님들의 화두를 모아놓은 책. 남송 무문혜개(無門慧開)가 지었다. 총 4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에는 설명을 덧붙였는데, 평론하여 길게 해설해 놓은 것을 평창(評唱)이라 하고, 간단하게 외우기 쉽도록 시 형식으로 표현한 것을 송(頌)이라 한다. 《종용록》, 《벽암록》과 함께 선종을 대표하는 주요 3대 책자라고 볼 수 있다. 간화선을 하는 스님들이 화두를 얻기 위해 많이 읽혀진다.
대도무문(大道無門): 큰 길에는 문이 없어서
천차유로(千差有路): 천 개의 다른 길이 있으니,
투득차관(透得此關): 이 관문을 꿰뚫을 수 있다면
건곤독보(乾坤獨步): 하늘과 땅을 홀로 걸으리.
《무문관》 첫문장
여기서 나온 대도무문에서, 《무문관》의 이름이 나왔다.[1]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문이 없는 관문'이라는 뜻. 따라서 통과하려는 문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통과할 수 없는 관문이 되는 셈이다.
2. 내용
내용의 형식은 크게 3단계이다.
1. 물건, 권위, 진리에 대한 집착으로 발생한 생각임을 인식.[2]
2. 그 집착에 충격을 줘서 없애버림.[3]
3. 집착이 없어진 그 자리에, 자신만의 자유로운 생각을 온전히 펼침.[4]
대략적인 구조는 1 - 2 - 3 의 차례로 이루어진다.[5] [6] 물론, 이 형식 자체도 하나의 집착이니 여기에 얽메이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화두들은 말장난이며 무한 사고를 유도하고, 결론이 없고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무의미한 생각들 자체가 공(空)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화두의 역할이라고 기존의 해설서들은 말한다. 특히, 일본 쪽 선불교에서 간화선을 말한 때 그런 말들을 많이 한다. 우리나라도 그 영향을 받아서 이 얘기를 하는 스님들이 많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사실이 아니다.[7] [8] 곰곰히 생각해보면, '결론없는 사고(思考)'가 괴로움을 벗어나는 방법이 될 순 없을 것이다.
무문관의 내용을 잘 살펴보면, '집착을 단칼에 끊어버리는, 결단을 내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집착을 한순간에 끊어버리는 결단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고, 집착이 사라진 그 자리에 자신의 자유로운 생각을 마음대로 펼쳐라는 것.
이 결단을 유도하기 위해서, 화두에 나오는 스님들은 제자들을 위해서 충격요법을 쓰기도 한다. 예를 들면,
구지 선사는 누가 무엇을 물어 보든지 오직 손가락 하나만을 들어 보였다. 어느 날 외부 사람이 와서 선사의 제자인 한 동자에게 물었다.
“스승께서 어떤 법을 중요시하여 설하던가?”
동자 역시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후에 구지 선사가 이 말을 듣고 급기야 칼로 동자의 손가락을 잘랐다.
동자가 아파 통곡하며 달아나는데 구지 선사가 동자를 불렀다.
동자가 머리를 돌린 순간 구지 선사가 말없이 손가락을 번쩍 들어 보이니 동자가 곧 깨우쳤다.
구지 선사가 세상을 떠나려 할 때 대중에게 말하였다.
“나는 천룡의 한 손가락 끝 선(禪)을 배워 일평생 쓰고도 남았느니라.” 그리고는 열반하였다.
《무문관》 구지수지 [9]
여기서 구지선사를 따라한 동자의 손가락은
1 '깨달음이 없는 단순 흉내내기이자, 모르는데도 스승의 권위를 이용해서 가르쳐 주고자하는 헛된 명예에 대한 집착'이라고 볼 수 있다.
2 구지선사는 동자에게 그런 집착을 단칼에 끊어버리는 결단을 내리라고 충격을 준다. 동자의 손가락을 자르는 것이다.
3 집착이 사라진 그 자리에, 구지선사는 다시 손가락을 세운다. 이 의미는 자신의 손가락(생각)을 세우라는 것.
아무생각없이 따라하지 말고, 자신만의 온전한 생각을 자유자재로 펼쳐라는 뜻이다. 1 - 2 - 3 의 구조. 동자는 그제서야 구지선사의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운문 선사에게 한 선승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운문 선사가 대답하였다.
“마른 똥막대기니라.”
《무문관》 운문시궐 [10]
1. 부처에 대한 질문은,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집착이다. 자신이 스스로 부처가 될 생각을 하지않고, 부처가 무엇인지 말해달라고 닥달하고 있는 셈. '스스로가' 깨닫는 것[11]이 부처가 되는 길인데, 부처가 무엇인지 '남에게' 묻고 있다. 2+3. 마른 똥막대기라는 충격을 줘서 그런 생각이 집착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줌과 동시에, 스스로 진리를 구하지 않고 남에게 물어보는 행위 자체는 '똥막대기'일 따름이라는 자신만의 자유로운 해석을 하고 있다.
부처의 이론을 배운다고, 삶의 괴로움이 사라질까? 아니다. 자신의 집착과 습관을 끊어버리고자 하는 결단력에, 그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이다.
결단하지 않으면, 불교이론을 백날 배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당장 자기자신의 주인은 자신이라고 선언하고 결단을 내려라.
이것이 교종과 선종의 차이점이다. 불교이론을 단순히 이론적으로 배우는 것이 교종이고, 충격을 통해서 단박에 결단을 내려서 깨닫게 하는 것이 선종인 셈. 이를 돈오(頓悟: 갑자기 깨달음)라고 한다.
3. 관련 고사
대도무문
백척간두 진일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12]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4. 수행법
위 책에서 모티프를 따와 실제로 방문을 걸어잠그고 일정기간 시행하는 참선수행이 있다.
도봉산 천축사에서 처음 시작됐으며 이후 여러 사찰에서 무문관 선원을 세우고 인원을 모집해 짧게는 3개월(100일), 길게는 3년(1,000일)간 시행한다.
다만 '하안거, 동안거를 그냥 길게 하는것뿐인게 아닌가'하는 비판[13], '수행을 빙자한 자기고문'이라는 비판[14], '역사와 유례가 없는 어거지 수행'이라는 비판[15], '간화선 자체에 대한 회의론'[16]등의 비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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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용록 - 고칙 100칙
《종용록(從容錄)》 또는 《종용암록(從容庵錄)》은 중국 불교의 선종의 선어록(禪語錄)으로, 원명은 《만송노인 평창 천동각화상 송고 종용암록(萬松老人評唱天童覺和尙頌古從容庵錄)》이다.[1]
중국 선종5가(禪宗五家)의 일파인 조동종(曹洞宗)에 속하며 묵조선(默照禪)의 시조인 천동산(天童山)의 굉지정각(宏智正覺: 1091~1157)이 고칙(古則: 후인의 수행의 규범이 될만한 옛 사람(古人)의 언구) 100칙을 골라 여기에 송고(頌古)를 붙였는데 이것이 〈굉지송고(宏智頌古)〉이다.[1]
그 후 같은 조동종의 만송행수(萬松行秀: 1166~1246)가 1223년(嘉定16)에 〈굉지송고〉의 하나하나에 대하여 시중(示衆) · 저어(著語) · 평창(評唱)을 가한 것이 본서이며, 그 평창을 쓴 장소가 종용암(宗容庵)이었기 때문에 《종용암록(從容庵錄)》이라고 이름지었다.[1]
〈굉지송고〉가 《벽암록(碧巖錄)》의 〈설두송고(雪竇頌古)〉를 본받은 것처럼 만송(萬松)의 평석(評釋)도 원오(圓悟)의 것을 본뜬 것으로 간주되며, 옛날부터 《종용록》과 《벽암록》의 두 저서는 선문(禪門)의 쌍벽으로 존중되어 왔다.[1] 특히 〈굉지송고〉의 묘미(妙味)있는 시와 만송의 뛰어난 저어(著語) · 평창에 본서(本書)의 생명이 있다고 할 수 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