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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태풍(颱風) ..2
"헉! 대주군! 지금 막 이주군의 항주이세가와 태사조(太師祖)님께 각각 전갈과
서찰이 하나씩 도착했사옵니다만.....!"
"전갈과 서찰.....?"
이에 막 배후인에게 포권을 취하다 말고 고개를 돌린 마고신은 순간 한 번 더
안색이 홱 돌변하고 말았는데.....!
"혈첩(血帖)!"
기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지금 막 당황스런 모습으로 뛰어든 수하
의 손에는 뜻밖에도 하나의 피처럼 검붉은 서찰이 하나 쥐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피처럼 검붉은 봉투의 서찰(書札)!
그러했다. 본시 이것을 무림인들은 흔히 혈첩(血帖)이라고 불렀다.
아울러 그 내막을 살펴보자면, 보통 중화인들은 어떤 경사로운 일이 있을 때
대개 부정을 막기위해 붉은 색의 첩지(帖紙)를 즐겨 사용하긴 하나 그것은 화사한
선홍색의 것으로 이처럼 짓붉은 첩지와는 또 성질이 틀리는 것이었다.
특히 무림인들에게 이런 짓붉은 첩지란 곧 사생결단을 내자는 뜻의 도전장과
같은 것!
따라서 이는 분명 누군가가 자신들에게 정면으로 싸움을 걸어온 것이니만치 그
의 안색이 변하지 않을수가 없는 것이다.
그와 함께, 좌르륵! 별안간 대(臺) 위 태사의 쪽의 주렴이 걷히며 실로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 일어났다.
배후인!
바로 그러했다! 지금껏 주렴 뒤에 스스로를 감추고 음성만을 전해왔던 그가 마
침내 그 실체를 드러낸 것!
나타난 그의 모습은 육 척 가량의 키에 바싹 마른 모습을 한 오십여 세 가량의
초로의 중늙은이였다.
몸에는 짙푸른 청의문삼을 걸치고 머리에 역시 문사건(文士巾)을 쓰고 있었으
며 피부는 거의 대추빛처럼 붉었다.
또한 세모꼴의 두 눈은 흡사 죽은 자의 그것인양 흐릿한 듯도 했으나 감히 남
이 함부로 마주볼 수 없을 만큼 음유한 기운이 스며나오고 있었는데.....!
"천세(天歲)ㅡ! 천세! 천천세ㅡ!"
그러자 찰나, 그 즉시 대전이 통째로 허물어져 나갈 듯 찌렁찌렁한 외침이 터지
며 지끔껏 대전의 좌우에 즐비하게 열지워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던 인물들이
일제히 머리를 바닥에 쳐박으며 오체복지(五體伏地)를 했다.
"속하들 태사조(太師祖)의 신위를 알현하나이다!"
이후로도 외침은 계속 이어졌다.
하나 적면인(赤面人)은 그들에게로 눈길 한 번 던지지 않고 곧바로 그 특유의
까마귀가 우짖는 듯한 음성과 함께 손을 나타난 수하에게로 내밀었다.
"히히히..... 혈첩을 이리 내놓거라. 어디 누구의 것인지나 보자꾸나."
이에 수하가 들고온 붉은 첩지를 내밀자 적면인은 즉시 그것을 뜯어 내용을 촉
어본 후 다시 그에게 물었다.
"키히히히..... 역시.....! 하다면 다음, 후돈의 이세가에서 보내져 왔다는 전갈
이란?"
"그..... 그것은.....!"
그러자 수하는 난처한 표정으로 꿇어 엎드린 마후돈과 마고신의 눈치를 잠시
살핀 후 이윽고 우물쭈물 말문을 열었다.
"실은 항주에 난변이 벌어졌다는 나쁜 소식이옵니다.....! 대충 전해진 기별에
의하면 지난 저녁 무렵 부터 느닷없이 항주관사와 진강관사의 관포들이 연합공
격으로 이세가를 급습하여 그곳의 형제들이 현재 지리멸렬하고 있다는 소식이온
데.....!"
"관포들이 이세가를.....!?"
순간 마고신의 가뜩이나 흰 얼굴에 더더욱 핏기가 가셔졌고 이에 놀란 듯 지
금껏 고개를 쳐박고 꼼짝않고 있었던 마후돈마저 흠칫 몸을 떨며 다시 얼굴을 쳐
들었다.
"그럴리가.....! 대체 관포들이 왜? 그곳의 인물들이라면 태수를 비롯, 위에서
아래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뇌물을 안챙긴 자가 거의 없었던 터인데무슨 연유로?
더우기 진강관사의 관포들까지라고 하면.....?"
그러나 소식을 가지고온 수하는 여전히 난색을 표하며 망설이며 대답했다.
"자세한 내막은 속하역시 잘.....! 하오나 소식으로는 난변이 벌어지기 전에 강소
태수 서문천을 비롯한 대부분 관리들은 벌써 목이 잘려져 성 복판에 효수가 되거
나 삭탈관직 당한채 투옥되었다는 소문이.....! 항주관사에서만도 잘려진 목이
사십이 넘고 투옥자가 칠십여에 이른다 하더군요.....!"
불과 하루 아침에 참수된 자가 마흔에 투옥자가 일흔.....!
"뭐가 어쩌고어째.....!"
찰나지간, 마고신, 마후돈을 비롯한 대전내 모든 인물은 확 하니 안색이 돌변
해 그만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것은 실로 그 누구도 도저히 꿈에서 조차 상상할 수 없는 노릇!
기실 당연히 그도 그럴수 밖에도 없는 것이, 처형된 자들이 이미 극형을 언도
받은 일반의 죄수라 할지라도 한꺼번에 마흔이란 목을 베어 효수를 한다는 것
은 거의 예가 드문 경우인데 참수된 자들이란게 어처구니 없게도 관료, 그것도
지금껏 이 강소를 좌지우지 했었던 태수(太守)를 비롯한 그 직속들이란 말이 나
왔을 때에야.....!
더우기 설상가상으로 여기에 칠십여의 관속들이 투옥됐다고 한다면 항주 중앙
관사의 거의 모든 관속들이 한 줄에 묶여 끝장이 났다는 뜻과 전혀 진배가 없으
니 어찌 그 누구인들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설혹 황제가 이 자리에 있었다해도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던 것
이다.
이에 한 동안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수하를 바라보던 마고신이 이윽고 더듬
더듬 아연실색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도데채가 그 무슨 말도 않되는..... 하다면..... 만약 네 말대로라면 그것은
자그마치한 나라가 뒤바뀔 때의 관변(官變)이나 똑같은 엄청난 삭번(削飜)에 속
한다.....! 그것도 하루 아침에 그런 난변이 일어났다고 하면 재판이나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고 일벌백계로서 처형을 감행했다는 뜻이 되는데 대체 세상에서
감히 어느누가 그런 짓을.....! 혹시 항주에 황제라도 나타났었다는 뜻이냐....
.?"
하지만 자세한 내막에 대해서는 소식을 받아온 수하역시도 다 알 수 없는
일.....
그는 낭패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요..... 그 역시 속하로서는 잘.....! 그저 전해진 소식이 그런것이라서..
...! 어쩌면 혹시 잘못된 연락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앞서더군요..... 실로 이는
속하 역시도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소식이오라.....!"
그러자, 그와 함께 그에게 일 차 질문을 던졌던 태사조라 불리웠던 적면인이
다시 목에서 흡사 가래가 끓는 듯한 역겨운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키히히히..... 됐으니 그만 치우거라! 까짓 썩어질 관리들이야 사십이 죽건
사백이 죽건..... 아무튼 이젠 우리에게 하등의 상관이 없다! 히히히..... 마침
내 때가 온거야!"
"때.....!?"
순간 마고신은 다시 한 번 만면에 흠칫 경악의 기색을 떠올리며 적면인을
향했다.
"사부님! 혹시 그 말씀은.....?"
그러자 적면인은 다시 죽은 자의 그것인양 흐릿하고도 기운없는 눈에서 음산
한 빛을 흘리며 쥐고 있던 짓붉은 첩지를 그에게로 내밀었다.
"키히히히..... 바로 그러하다! 역시 내 짐작대로..... 지금껏 금릉에서 관의
비호를 받으며 웅크리고 있었던 우문개로 그 배신자 놈이 마침내 정면 도전을
해왔다! 앞으로 칠 일 후다!"
"놈이....!?"
찰나 마고신은 순간적으로 두 눈에서 무쇠라도 녹여낼 듯한 시퍼런 살광(殺
光)을 와라락 흩뿌리며 서찰을 펼쳐 보았는데.....!
그러자 짓붉은 혈첩의 가운데에 눈을 쑤실듯이 파고 드는 다음과 같은 글과
서명(書名)!
ㅡ네놈..... 철사자(鐵獅子) 사공척(士公尺)에게 고(告)한다! 열흘 후, 대모산
(大茅山)의 백룡탄(白龍灘)에서 우리 해후를 하기로 하자꾸나! 어차피 양자가 불
공대천지수(不共對天之讐) 임은 네놈이 더 잘 알 터! 줄이겠다!
ㅡ혈붕(血鵬) 우문개로(右文介盧).
실로 놀랍기 그지없는 이름들! 이로서 결국 모든 사건의 진상이 백일하에 밝
혀진 것이었다.
우선 그 첫 째! 과연 영호충이 처음 예상했었던대로 금릉의 부호 신궁파오는
지난 날 천하에 무수의 피를 뿌려냈던 저 가공할 흉적 우내백사(宇內百邪)의 한
사람이었으며, 또한 지금껏 주렴뒤에서 행세해온 이 적면인 역시 그 중의 하나인
철사자(鐵獅子) 사공척(士公尺)임이 분명하다는 것!
또한 그는 우내백사의 배신자인 우문개로를 끌어내기 위해 지금껏 도처에서
사악의 터를 닦던중 마침내 때가 이르자 그의 딸을 죽이겠끔 백루에 청부를 했
으며, 왕우진은 이들 두 마귀의 장단에 휩쓸려 지금껏 춤을 추어온 청년이었다
는 영호충의 모든 추리가 한꺼번에 맞아 들어가는 순간이었으니.....!
실로 어처구니 없기조차 한 노릇.
그러나 사공척은 죄의식이라고는 눈꼽만치도 비추지 않는 표정으로 계속 까마
귀가 우짖는 듯한 음성을 흘려냈다.
"히히히..... 따라서 칠 일 후, 우리는 일단 대모산에서 우문개로 그 놈의 목을
자른 후, 그간 세워온 계휙대로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치외법권을 떠
나 돈황으로 가버리면 그만인게야! 축적해둔 금자로 터를 닦은 후 무림의 패자
(覇者)로 군림하는 것이지. 따라서 이제야 까짓 썩은 관리놈들이 죽건 농장이 타
버리던 무슨 상관이 있느냐?"
히죽, 동시에 마고신의 입가에도 한 줄기 스산한 웃음이 걸렸다.
"흐흐흐..... 하기사, 샘이 있는 한 물이 마를리는 없으니 까짓 농장 따위야
또 세우면 그만.....!"
사공척 또한 다시 웃었다.
"히히히..... 바로 그러하다! 하니 이젠 그런 써잘데 없는데다 심기를 소모할
필요도 없이 서둘러 휘하의 모든 아이들을 끌어모아라! 후돈도 일어서도록 하고
..... 어언 이십 년을 기다려 마침내 칠 일 후로 닥쳐온..... 백룡탄의 대회전(大
會戰)에 대비하는 것이다!"
"천세! 천세! 기필코 배신자의 심장을 도려낼 수 있도록!"
찰나지간 마문기를 비롯한 장내의 모든 인물들은 기다렸다는 다시 한 번 대
전이 떠나갈 듯한 외침을 토하며 연거푸 사공을 향해 쿵쿵 이마를 바닥에 찧어대
었다.
그와함께..... 지금껏 한 올의 빛조차 없이 음울하기만 했던 사공척의 눈에서
갑자기 도깨비 불같이 시퍼런 귀화(鬼火)가 훅, 일어나며 길길이 춤을 추기 시작
했는데.....
"히히히..... 그래그래.....! 우리 칠 일 후를 다같이 생애최고의 날으로 만들어
보자꾸나! 내 기필코 그 배신자 놈 패거리의 시체로 산을 쌓은 후 그 피를 마
시고 살을 씹으며 축제를 벌이리라!"
여전히 까마귀가 우짖는 듯 가래끓는 소리가 뒤섞인 모골이 송연한 음성! 흡
사 마(魔)와 귀(鬼)가 함께 뒤섞여 살을 섞는 듯한 끔찍한 기분이었다.
* * *
또 한편 같은 시간, 하남 개봉부에 위치한 금의위의 중앙도찰원(中央都察院)!
이곳에서는 그 기도가 가히 만인을 압도할 만한 두 명의 사내가, 극도로 긴장
된 모습으로 한 집무실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바로 영호충에게 처음 신궁희연의
사인을 캐보라고 명령한 금의위의 도지휘사와 그의 부친인 영호청평.....!
친구 사이라 했었던가?
두 사람이 모두 상처입은 짐승마냥 신경이 곤두선 모습으로 격분한 눈빛을 이
글거리고 있었다.
"세상에 언어도단도 유만부득이지 진정코 어찌 이런 일이.....!"
먼저 도지휘사가 입을 열었다.
"내 솔직히 처음 자네 아들을 보낼 때..... 금의위의 즙포사신으로서 가진바
힘을 모두 이용하라는 말을 그에게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세! 알다싶이 이 일이
지난 백사인 우문개로 그 놈과 관련된 것이고 보니분명 위험천만 할 수도 있겠
다 싶었었기 때문이지!"
음성은 분노와 갈등 등이 뒤섞여 사뭇 떨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설마하니 황실 정 이품의 관직을 가지고 있는
강소태수 서문천에다 휘하 사십여의 목을 불과 하루아침에 잘라 효수를 하고 칠
십여 관료들을 삭탈관직해 옥속에 처넣는 등의 엄청난 사건을 일으키다니.....!
이건 실로 오군도독의 하나인 나로서도 감히 상상치 못할 일일세! 한 마디로 정
난(政難)인 것이야 이건!"
분명 영호충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임에 확실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영호청평이 흠칫 가볍게 한 번 진저리를 일으키며 말을 꺼냈
다.
"솔직히 이 일에 관해서는 나로서도 무어라고 할 말이 없네.....! 설마하니 녀
석이 이런 정신나간 짓을 하리라고는.....! 더우기 이야기 듣자니 서문천은 그
연줄이 마황후(馬皇后) 전하에게 까지 미치고 있다 들었는데.....!"
"틀림없네! 촌수까지야 말할 수 없지만 이종이 되는 인간일세. 뿐만아니라 위
인이 워낙 간교하게 그 연줄을 이용했기에 우리 도위부의 대도독 합하에게 까지
그 영향력이 미치고 있을 만큼 모르는 관료가 없을 정도이지! 한데 그런 인간을
..... 그것도 그 당사자 하나라면 또 모르되 무려 일백이 넘는 대소 관료들과
함께 자네 아들이 처단을 했으니.....!"
"미친 녀석이.....!"
영호청평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하다면 이젠 더 이상 살았다고 볼 것이 없겠군. 마황후 전하만 해도 홍무폐
하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시는 분인데, 행여 그 진노를 피한다 하더라도 설상가
상 여기에 또 대도독 합하까지 버티고 계시니.....!"
지휘사 역시 피가 흐를만치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아마도 우리 모두 화(禍)를 피하기 어려울것일세.....!"
그러나 말인 즉 확실하다고 볼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앞서도 일렀지만, 기실 현 정세로 미루어 볼때 금의위, 즉 친군도위부의
그 막강한 위세는 확실히 가히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만 한 것.....
하지만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금의위의 수뇌급도 아닌, 비록 암행감찰을 일임
받은 즙포사신이라고는 해도 영호충의 경우는 한갖 천호소의 대한장군 직급으로
사전에 상부의 허가 조차 없이 일개 성(省) 태수의 수급을 베어 효수를 한것이었
으니.....
더더우기 그 휘하 사십여 관료의 목을 함께 자르고 칠십여의 옷을 벗겨 옥중에
투옥을 했다함은 도저히 있을 수 조차 없는 관난(官難)인 것이다.
결국 이는 하극상(下剋上)의 모반(謀反)에다 월권(越權)으로서 일단 화를 부르면
영호충 개인은 물론이지만 자칫 일족(一族)이 한줄에 묶여 죽음을 면치 못할수도
있는 사태였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그의 부친과 감찰을 명한 직속상관인 지휘사가 신경을 곤
두 세우게 될것은 자명한 이치.....!
결국 이래저래 일은 계속 시시각각 숨가쁘게 꼬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휘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 미칠것만 같은 눈빛으로 초조하
게 말을 이었다.
"더우기 문제는 그뿐만이 아닐세.....! 그래서 내 실은 이 소식을 듣고 놀라
오전 녁 일찌감치 그에게 급히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전갈을 인편으로 보냈었
지! 한데 어이없게도 보낸 사람은 항주의 성문안으로 들어서지도 못했다 하더구
만. 이는 그 아이가 소항 팔문(八門)을 모두 봉쇄하고 필시 뭔가 또 일을 꾸미
고 있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그 여파가 항주관사에서 끝나지 않을 조짐일세
. 경험으로 비춰봐도 분명히 또 수월치 않은 피 냄새가 나고 있어.....!"
수월치 않은 피냄새.....!
"일차에 보내온 전갈을 보면 배후에는 지난 백사의 사공척이 버티고 있었어!
놈이 신주삼패라는 제자들과 함께 복수를 도모하기 위해 도박, 인신매매, 아편 등
을 취급하며 갖은 악행이란 악행은 다 저지르고 있었던 모양인데..... 일단 권선
징악이라는 대의명분은 서네! 하지만 천하에는 엄연히 법이라는 것이 있는데 아
무리 금의위라고는 해도 일개 대한장군이 이런 엄청난 일을 벌인다는 것은 실
로 있을 수 조차 없는 일이라..... 다행히도 그 아이가 팔문을 막아 아직은 이
일이 상부에 알려지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나마저도 목이 위태로와져버린 것일세."
이에 영호청평은 급기야 허탈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허허..... 정말 도저히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서.....! 어차피 나야 자식을 잘
못 키운 죄라고나 하지만 불똥이 자네에게 까지.....!"
극도로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다면 이제 방법은 하나 뿐이군.....! 녀석이야 자신의 뜻으로 문을 봉쇄하
고 있다니 죽건 살건 제 명에 달렸지만..... 내 자네를 죽일수야 없으니.....!"
한 번 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네.....! 우선 함께 그곳으로 가세나."
"가면.....?"
"서둘러 그 정신나간 녀석을 만나야지. 그런 다음 이쯤에서 관난(官難)을 중지
시킨 후 함께 북평(北平)의 연왕(燕王) 전하를 알현하러 가세나! 어차피 살길은
그뿐일세."
"연왕 전하.....!?"
흠칫, 순간적으로 지휘사의 눈이 한 줄기 불을 뿜었다.
기실 그도 그럴수 밖에 없었던 것이 연왕(燕王)이라 하면 현재 북평(北平)에
대군(大軍)을 이끌고 주둔중인 명태조(明太祖) 주홍제의 스물여섯 아들 중 네 째
인 주태를 일컫는 것이었는데.....
본시 그는 홍무제의 여러 비(妃)중 하나인 공비의 몸을 빌려 태어난 인물로서,
모친 공씨는 고려(高麗)의 여인(女人)으로 홍건적의 난(亂) 당시에 납치되어온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차후 홍무제의 눈에 들어 비(妃)로 책봉된 것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하나 그럼에도 홍무제는 네째 아들인 그를 지극히 아끼고 사랑했다.
모친 공비를 닮아 남달리 뛰어난 용모에 일찌기 부터 지녀온 높은 문무의 조
예를 겸비했을 뿐더러 어떤 난관에 닥쳐도 눈하나 깜박하지 않는 담대하고도 호
방한 기개를 지녔기 때문.....!
하지만 또한 이것이 작금에 이르러서는 크게 화(禍)를 부르고 있었는데, 우선
그는 모친 등의 출신 성분 조차 어딘지 확연치 않은 의문에 가려져 있었던 상태
에서 홍무제의 사랑을 독차지 했기로, 주위의 왕자들이 질투를 일으켜 점차 그를
반역자 처럼 몰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그러나 그는 중원의 가장 요충지인 북평을 지키며 맡은바 책임을 게을리 하지
않아 더욱 그 강군(强軍)을 키우고 있었고, 주위에는 계속 천하이인(天下異人)들이
모여들어 이에 근자에는 항간에는 누가 퍼뜨린 것이지는 모르나 이같은 해괴한 노
래까지 아이들 사이에 떠돌고 있을 지경이었다.
ㅡ제비(燕)를 쫓지마라
제비를 쫓지마라
제비를 쫓으면 날로날로 높이 날아
제기(帝畿)에까지 오르라.
결국 이는 본의 아니게 키우는 강군과 몰려오는 측근의 기인들로 인해 반역을
조성한다는 뜻처럼도 되어버린 내용이고, 또 한편으로는 그의 높은 기개를 칭찬
하는 내용이기도 한 것이었다.
한데 이런 상태에서 중원 최대의 막강한 대세가라도 해도 과언이 아닌 영호세
가 가주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나왔으니 제 아무리 오군도독의 하나인 지휘사라
해도 일순 긴장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
이에 지휘사는 계속 놀란 기색으로 한 동안 머뭇거림을 보이더니 곧 더더욱 긴
장되는 가는 기색으로 목소리를 낮췄다.
"자네 설마..... 연왕 전하라니.....? 그 분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러자 영호청평은 극도로 침울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일이 어찌될지 모르는 어지러운 세상 아닌가? 어쩌면 이로서 우린 노구
(老軀)에 또 한 번 저 처절한 정변(政變) 속으로 휩쓸리게 되겠지만 도저히 어쩔
방도가 없으니.....!"
무겁게 계속 말을 이었다.
"자네나 나나..... 어쨌건 우린 법복(法服)을 입었던 몸으로 지난 한 때 크나큰
실수를 했던거야. 아무리 계속되는 더 큰 희생을 막고자한 심정으로 한 일이기
는 했었만..... 처음부터 그런 악당놈과 타협을 해서 백사를 잡았다는 자체가 잘
못되어 있었던 것이지.....!"
쭈욱! 지휘사의 눈에서 다시 한 번 시퍼런 불줄기가 쏟아져 나왔다.
"흐흐..... 그것은 옳아.....! 사실 그로인해 오늘의 이 자리에 오르게는 되었
었지만..... 나역시도 그간 못내 가슴에 걸리지 않았었던 일은 아니였었네.....!
차라리 모른채 하고 죄를 물어 그때 목을 베어버려야 했었던 것인데.....!"
역시 찔리는 점이 있었던 것이다.
이에 영호청평은 씁쓸히 고소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허..... 맞아. 결과로 이미 오래전에 옷을 벗은 나마저도 또 다시 그 후환에
휩쓸리고 있으니..... 인과응보인 셈이지. 아무튼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으니 어
서 가기나 세나. 가면서 이야기를 하세."
이어 두 사람은 침울한 웃음을 머금고 급기야 집무실을 나섰다.
이는 더 이상 영호충의 관란이 확산되기 전에 막자는 의도이기도 했으나, 또
한 상부나 조정에 이 일이 알려지기 전에 서둘러 몸을 사리자는 의미이기도 했
으니 결국 영호충의 분노는 대 금의위 오군도독의 옷마저 벗기고 만셈이었는데
......!
아니, 어쩌면 이런 경우는 영호청평의 말마따나 인과응보로서, 아비의 지난 업
(業)으로 인해 오히려 자식인 그가 휘말려 들었다고 볼 수도 있었던 것인데.....
결국 이렇게 일은 점점 종국(終局)으로 치달려가고 있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즐독 ㄳ
고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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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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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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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오늘도 잘보고 있습니다~~~
즐독이랍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