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 매입추심업체 추가 경매 진행 가능성…"재산권 행사, 유예 강제 못해"
매입추심업체 대상 이자 유예 ·캠코 매입 방안 거론
금융당국의 '경매 유예' 요청에도 불구하고 일부 매입추심업체(NPL)가 전세 사기 주택에 대한 경매를 강행하는 일이 벌어지자 당국이 대책 검토에 나섰다. 매입추심업체 대다수가 영세한 규모인 데다 유예를 강제할 수 없는 만큼, 경매를 늦출 유인을 만들어 주는 쪽으로 대책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권에선 이들 업체에 대해 이자를 유예해 주거나 캠코가 대신 매입해 주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관련 업계는 매입추심업체의 전세 사기 주택 경매 유예 관련한 추가 대책을 검토 중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전세 사기 주택 관련 채권을 갖고 있는 매입추심업체에 주택 경매를 유예해달라고 설득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아울러 협조에 나서는 매입추심업체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 등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기 피해자의 주거 불안 해소를 위해 경매를 늦춰달라는 정부의 요청에도, 경매가 진행된 사례가 나오자 금융당국이 나선 것이다.
정부의 요청에 따라 금융권은 전세사기 피해자 거주 주택에 대한 경매를 6개월 이상 유예하고, 매입추심업체에 이미 채권을 매각한 경우에는 해당 업체에 경매 유예 협조를 요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지난 20일 영세 매입추심업체가 보유한 4건에 대한 경매가 진행됐다 유찰됐다.
다음 날인 21일 예정된 경매는 모두 연기되긴 했지만, 경매를 강행하는 매입추심업체가 더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매입추심업체는 금융회사의 부실채권을 매입해 경매나 추심을 통해 수익을 거둔다. 대다수가 영세해 서둘러 경매를 진행하지 않으면, 이자를 내지 못하거나 유동성에 문제가 생겨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경매는 정당한 재산권 행사 행위라 유예를 강제할 수도 없다.
혹여 경매에서 낙찰이 이뤄질 경우, 전세 사기 피해자는 거주 중인 주택에서 퇴거해야 한다. 전세 보증금 손실에 이어 2차 피해가 불가피하다. 첫 경매에서 유찰이 되더라도 다음 경매 땐 낙찰될 수도 있다. 통상 1회 유찰 시 최초 가격 대비 10~20%가량 가격이 깎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의 '2022년 상반기 대부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매입채권 잔액이 있는 채권매입추심업자는 총 392개사인데, 이중 상위 30개사를 제외하면 모두 영세한 사업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사각지대를 메울 방법 중 하나로 '이자 유예'를 비롯한 금융지원 방안이 거론된다.
이들 매입추심업자는 주로 저축은행이나 캐피탈 업계로부터 사업 자금을 빌려온다.
은행에 비해 조달 금리가 높은 만큼, 잠시나마 이자를 유예해 주면 매입추심업체가 사기 주택에 대한 경매를 진행할 유인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금융회사가 매입추심업체에 팔았던 채권을 다시 매입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떠오른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인천 건축왕 전세사기 피해자 중 대책위원회 소속 주택 1787채 중 매입추심업체가 관리 중인 주택은 440채다. 상당수가 상호금융 등 2금융권으로부터 매입한 주택으로 알려졌다.
캠코(자산관리공사)가 매입추심업체로부터 채권을 매입하는 방안도 있다. 채권을 매입한 후, 경매를 유예하면 당장 전세 사기 피해자의 주거 불안은 해소할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매입추심업체가 캠코가 제시한 가격에 동의할지는 변수이긴 하나, 유찰이 거듭되면 가격이 하락할 수 있는 만큼, 차라리 캠코에 파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전세 사기 피해자의 지원 차원에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규제가 완화되면 경매 주택에 대한 우선매수권을 부여받은 피해자는 보다 수월하게 주택을 매입할 수 있다. 이밖에 추가 금융 지원 대책을 금융권과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