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켜간 삶들
어제는 7080 포크 가수들의 공연 실황을 보기 위해 고양 어울림극장에 들려봤다.
포스터를 보니 유익종의 사랑의 눈동자, 채은옥의 빗물, 소리새의 그대 그리고 나,
강은철의 삼포로 가는 길, 박장순의 겨울아이를 소개하고 있었다.
원래 음악에서 클래식으로 편식을 해오던 터라
포크 가수들의 공연을 가까이해 오진 않았는데,
주변의 권유에 의해 가볍게 들려봤던 것이다.
하지만 사회자의 진행 멘트에 따라 순차적으로 공연을 즐기다가
채은옥의 하얀 나비와 빗물을 들으려니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옛일들이 생각났던 것이다.
하얀 나비는 원래 타계한 김정호의 노래인데,
채은옥은 그가 생각 나 첫 곡으로 이걸 부른다는 것이었다.
1952년생인 김정호는 1973년도에 데뷔해 하얀 나비와 이름 모를 소녀 등을 열창하게 되고,
채은옥은 그보다 3년 뒤인 1955년에 태어나 1976년에 데뷔하면서
빗물을 히트송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데뷔와 히트를 3년 차로 이어나간 시대적 공감대로 인해 특별히 김정호가 생각 나
하얀 나비와 빗물을 차례로 부르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1년여의 약혼기간에 이어 결혼을 했던 1973년도, 1974년도에 지금의 아내 집에 드나들면서
김정호의 하얀 나비를 듣게 되었다.
그때까지 라디오의 혜택밖에 누리지 못한 터에 아내의 집에서 티브이를 통해 엿듣던 하얀 나비는
호기심에 더해 무언지 모를 불안감도 뒤따랐었는데
왜였는지 모르겠다.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음~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임인데...”
그렇다고 당시 나에게 지난날의 비련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숨겨 놓거나 떠나보낸 여인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긴 시골태생으로 서울의 여자를 아내로 맞자니 은근히 문화의 충돌도 걱정했을 터요,
빈한했던 나의 가정형편을 처가에 견주면서 일말의 열등감도 느꼈을 터이지만
양양한 나의 미래를 확신하면서 애써 침착하려 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아지 못할 불안감이 뒤따랐던 기억이다.
1974년도에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생활을 하기 시작한 지 3년 뒤엔
혼수품으로 장만한 티브이에서 채은옥의 빗물이 흘러나왔다.
“조용히 비가 내리네, 추억을 말해주듯이, 이렇게 비가 내리면 그날이 생각이 나네...”
당시엔 내가 추억을 반추할 겨를도 없었다.
그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신혼살림을 꾸려나가는 데에 온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요,
또한 부임 초기의 가뿐 공직생활을 견뎌내랴,
야근을 밥 먹듯이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짧은 결혼생활에서 문화의 차이가 현실로 드러나면서
가끔은 갈등국면도 맞았었고,
공직생활에서도 나의 이상과 조직의 윤리 사이에 괴리가 보여 가슴앓이 하는 일도 있었지만
시대의 큰 흐름에 큰 호흡을 하면서 자위해왔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제 와서 채은옥의 흘러간 노래 두 곡을 들으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곁을 비켜 간 삶들이 참으로 많았던 것 같다.
그동안의 세월이 그렇게 먼 곳으로 실어 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걸 하나하나 꼽아서 무얼 하랴.
지난날에 써뒀던 못난 시 한 편 가만히 꺼내볼 뿐이다.
청산에서 띄우는 편지
순아
들길 산길 거슬러 그 옛날로 돌아가면 안 될까?
간밤에 배인 눈물자국 아침 햇살로 지워내며
수줍게 고개 드는 두견화 꽃길 따라
물레방아 휘돌던
억새 울도 지나고
서낭당 고개 너머
상여집도 지나
그 먼 옛날로 돌아가면 안 될까?
삼신(三神) 메 떠놓고
정화수 올리던 곳
가다가 가다가
속곳 걸칠 것도 없이
흙바닥에 질펀히 앉아
입술만 달막이던
그 먼 옛날로
순아
그 먼 먼 옛날로 돌아가면 안 될까?
모롱이 돌아 돌아 산길 숲 속에 사라지고
물길도 구름 속에 머흐는 그 먼 먼 옛날로
아, 순이는 풀잎이 되거라
알 수 없는 태상노군(太上老君) 주문을 외듯
밤바람에 속살대는 풀잎이 되면
이슥토록 별을 담아 안겨주고 싶구나.
2016. 1. 10.
위 글은 2016년도에 썻던 내용이다.
이 글을 다시 올린 이유는 호가정 방장 때문이다.
그네가 엊그제 가객 김정호에 얽힌 비사를 소개했는데
그걸 읽지 않고 비껴갔다가
오늘 아침에야 이를 읽고 못난 나의 글로 화답해본다.
음악은, 특히 가요는 시대의 물결을 탄다.
그래서 그 음악을 들으면 당시 유행했던 시대상이 떠오르고
자신의 추억도 더불어 떠오르게 된다.
허나 나는 실상 가요를 열애하진 않는다.
그건 아마도 지난날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인 것 같다.
그럼에도 가요에 얽힌 나의 못난 글을 꺼내본건
무슨 까달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방에 불이 꺼진 때문일 거다.
2024. 4. 29.
첫댓글 굳모닝
노래 음악을 사랑 하시고 좋아 하시니 건강행복 99팔팔
기원 드림니다 하하하
제가 52년생 입니다 70년대 국립 폴리스 공직에 입문하여 365일 주말 휴일도 없이 출근하고 야근에 밤샘근무 불철주야 사명감에 불타는 최일선 수사관으로 범죄와 전쟁을 30년 넘게 치열하게 하였 습니다
매일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사고 수사와 살인적인 과중한 업무량 스트레스를 오직 노래 음악 술로 풀고 해소 하였습니다
노래 음악 술이 업무스트레스 과로사를 면해준 훌륭한 구세주 구원자 임니다 감사드림니다 하하하
하여간 끝까지 마지막까지 최후까지 노래 음악 하나더 술, 유괘 상쾌 통쾌 건강 행복하게 즐긴다고 다짐함니다 이상 감사함니다
장반장 잡으러 다닌 자벨경감역 하느라 수고 많았겠네요.ㅎ
늘 즐겁게 어울리는 모습 잘보고 있는데 앞으로도 즐겁고 건강하게 지냅시다.
일순간 지난 시절에 누군가에게
깊은사랑을품었던
20대초반의 ''그시절이
그리워 지는 글 입니다
가요에는 관심도 없고
당시 포크송이 유행했던 시절에도
별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헤비메탈에 빠져 있던
건방진 시절에 유일하게 들었던 음악이 김정호의 주옥같은 음악 이였지여
석촌님의 글을보며
마음의 문을 열어주심에
감사드리고
잠시 그시절에 잠겨봅니다
세월 ~ 참 빠릅니다
그랬군요.
지난일들은 지난일들로 품고
앞으로 건강하게나 지냅시다.
그런데 인생이 노래대로 간다고도 하니 깊은사랑도 생각하면서 즐거운 노래를 부릅시다.
저도 문득 젊은시절을 반추해 봅니다
종종 들르시어 좋은 글
남겨주셨음 하는 바람도
가지며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이라 할 것도 없지만
혼자 온라인 오프라인 너무 애쓰는 것 같아 잠시 노크해보면서 못난 글 하나 올려봤다네요.
저는 군산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오빠가
방학 때 내려와서 소개해준 노래가
바로 하얀나비입니다.
당시 서울에서 가장 유행하는 노래라고 하더라구요.
석촌님의 글을 읽고 보니
빗물과 하얀나비 다시 들어봐야겠네요.
좋은 글, 감동의 글 감사합니다.
시가 정말 아름답고 가슴에 와 닿네요.
그렇군요.
가요엔 그렇게 자신의 추억이 깃들게 되지요.
이장희에 불꺼진 창 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석촌님의 글을 읽습니다.
첫반주에 쿵짜짝 쿵짜.쿵짜짝 쿵짝!
지금 나는 우울해 왜냐고 묻지말아요...
네박자속에는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는
가요는 삶의 사연이 가득하죠.
오래전 쎄시봉공연을 고양아람누리에서
관람 했는데.
이상벽이 사회를 보고 윤형주 김세환 송창식의7080노래에 그옛날 그시절로 돌아가
뗏창으로 스트레스 날리고 온 기억이 납니다.~^^
같이 가자고 좀 초대도 하시지
혼자 즐기고 자랑만 하셔?
하긴 쿵짜작 쿵짝에는 서러운 사연도 많이 숨어 있겠지요.
특히 여성들에겐 그런데
그걸 부르면 카타르시스도 느끼지만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