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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제 18 장/ 하늘의 법(法)! ]ㅡ
그리고 급기야 대명 홍무(洪武) 십육 년(十六年) 이 월(二月) 초 닷새 강소(江
蘇) 대모산(大矛山) 하에 자리잡은 드넓은 대평원 백룡탄(白龍灘).....!
아직은 채 날도 밝지 않았고, 그간 내린 눈(雪)으로 하얗게 배를 깔고 드러누운
사방은 온통 괴괴한 어둠속에 파묻힌 채 오로지 살을 에이는 듯한 빙풍만이 혹독
히 불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가운데.....
대평원을 중심으로 끝과 끝부분인 동(東)과 서(西)에는 실로 괄목할 만한 광경
이 벌어져 있었다.
대체 이 황량한 밤, 눈덮힌 허허벌판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군효들이 운집해 있
었던지, 놀랍게도 이른바 평원의 끝자락이 되는 동서(東西)의 양쪽에 각기 무려
일천(一千)여에 달하는 무인들이 말을 타고 선채 병기들을 움켜쥐고 시퍼렇게 번
뜩이는 눈으로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한 상태로 학익(鶴翼)의 진세(陣勢)를 짜고
서 있었던 것!
더우기 이렇게 무려 총 이천여에 달하는 군웅들이 운집해 있었으나 평원 속에
는 가끔씩 푸르륵 대는 말(馬)의 되뇌임 소리나 들려올 뿐, 그나마 곧 세찬 바람
소리 속에파묻혀 버리고 그 어느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다.
설상가상 엄동설한의 칼날같은 바람은 연신 살을 에일 듯 휘불어 닥치며 나뭇
가지에 목메어 비명을 질러댔으나 퍼렇게 서로를 노려보는 그들의 이마에는 오히
려 이런 혹독한 날씨도 덥다는 듯 하나같이 송글송글 진땀이 맺히고 있었으
니.....
그것은 흡사 금시라도 퍽 하고 터져버릴 듯한 긴장감을 불러 보는 이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했다.
그리고 횡으로 나열된 그들의 중간쯤의 선두 부분,
여기에는 이미 오래 전 부터 눈에 익은 몇몇 인물들이 저마다 각각 냉소와 악
받힌 눈빛을 떠올리고 아득한 어둠속 서로의 진영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바로 금릉부호 신궁파오, 즉 의리를 팔아 죄를 사면받았던 지난 백사의 배신자
혈붕왕(血鵬王) 우문개로(宇文介盧)와, 이 복수를 하고자 근 이십여 년 간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온 철사자(鐵獅子) 사공척(士公尺) 등 신주삼패의 천금월 마고
신, 지은월 마후돈이었다.
이들이 급기야 결단을 내고자 이렇게 선약의 백일평에서 마주 서게 된 것.....!
사공척은 손에 지난 번 마후돈의 것과 흡사한 착골혈갑(錯骨血匣)을 끼고 한
자루 장팔사모(杖八四矛)의 장창을 움켜쥐고 있었으며 흑색갑주를 입은 우문개
로는 허리춤에 박도를 꽂고 역시 그와 유사한 방천화극(方天畵戟)의 장창을 거
머잡고 있었다.
그리고 또한 천금월 마고신과 지은월 마후돈은 각각 착골혈갑에 장검을 휴대하
고 있었는데 마후돈은 잘려진 왼손에 어느새 섬칫하게 날 세운 쇠갈고리를 끼고
있는 상태!
다만 게중 조금 기이하다 싶은 것이 있다면 사공척이 움켜잡은 장팔사모로서 두
자 가량의 섬뜩한 날 아래에 왜 이렇게 긴가 싶은 은빛의 장식용 수실이 달려있다
는 점이었는데.....!
문득, 계속 입가에 비릿한 냉소를 머금고 있던 사공척이 온통 모멸로 얼룩진 듯
한 웃음을 흘리며 급기야 아득한 우문개로 쪽의 진영을 보며 밤까마귀가 우짖듯
입을 열었다.
"히히히히..... 우문개로 놈아..... 먼 거리와 어둠 때문으로 아직 대면은 못하
고 있다만 분명히 지금쯤은 그 속에 와 있겠다?"
마치 바로 앞에 사람을 두고 이야기하듯 차분한 어조.....
하지만 또한 실로 놀랄만한 것은 바로 그의 이 크지않은 음성이었는데, 기이하
게도 이 음성은 금시라도 바람소리속에 파묻혀 버릴 듯 하면서도전혀 흩으지지
않고 자그마치 두 마장이나 떨어진 우문개로의 진영까지 또렷이 전해져 가지 않
는가?
"이것은.....!?"
이에 우문개로 진영의 인물들이 순간 흠칫, 크게 놀라움의 빛을 떠올렸는데, 사
공척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 똑같은 투의 어조로 음산하게 웃었다.
"히히히..... 그래, 네가 그간 친구들을 팔아먹은 댓가로 관의 보호를 받으며
호의호식 하더니만 소감이 어떠했더냐? 과연 기체후 일향만강하고 천세만세 행복
할 수 있을 것 같더냐?"
한 마디로 비아냥에 분명한 소리.....!
"사공..... 네놈이.....?"
순간 건너쪽 진영의 우문개로의 인상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결코 격앙
되는 심기를 드러내지 않고 어금니를 악물며 이빨 사이로 흐르는, 소름끼치고도
음산한 웃음을 흘려냈다.
"흐흐흐..... 그래..... 뱉아내는 전음(傳音)을 보니 그간 네놈의 내력(內力)이
가일층 정진되었음을 알겠구나.....! 그 정도의 내력이라면 이젠 가히 진정한 천
리전음(千里傳音)이라고 까지 있겠어.....!"
역시 사공척의 그것과 유사한, 나직한 어휘였으나 두 마장밖의 반대쪽 진영까
지 한 올도 흩어짐 없이 또렷이 전달되는 음성이었다.
한데 게중 놀라운 것은 바로 지금 그가 말한 전음(傳音)이라는 것.....!
이것은 직역하자면 소리를 전한다는 단순한 뜻이기도 하지만 내공을 연마한 무
림의 인물들에게는 실로 적지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까닭인즉 본시 대개의 사람의 음성이란 목과 뱃속의 울림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무림인들의 이 전음(傳音)이란 어떤 특정한 목적을 지니고 스스로의 음성을 가능
한 크지게 하거나 멀리까지 전하기 위해서 고안된 독특한 수법의 하나로 곧 단
전(丹田)에 뭉쳐진 내력(內力)의 힘을 이용하기 때문!
따라서 내력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멀리, 그리고 나직한 음성을 또렷하게
울려퍼지게 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 힘을 최대한으로 뭉쳐 호통을 내뱉으면 그야말로 천지가 허물어질
듯한 사자(獅子)의 포효와도 같다고 세칭 사자후(獅子吼)라고도 불리우는 무예인
것으로, 그 기원(紀元)이 되는것은 바로 복화술(腹話術)이라는 것,
즉, 입을 열지않고 뱃속의 힘과 술결만을 빌려서 말을 한다는 그 수법인 것인
데, 또한 이것이 차후에 와서는 항간의 인물들에게 와전되어, 내력이 극치에 이
르른 인물은 그 힘으로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 멀리 떨어진 어느 특정한 한 사람
에게만 음성을 전할 수 있다는 등의 낭설을 만들어낸 실체이기도 했다.
따라서 무림인들은 대접전에 나섰을 때, 스스로의 공력이 높음을 보여 맞선 상
대의 사기(士氣)를 꺽기 위해서 이 수법을 자주 전개하기도 했는데, 어쨌건 지금
사공, 우문, 이들 두 사람은 진정 천리전음이란 명칭에 부끄럽지 않게 이처럼 나
직하고도 또렷한 음성을 두 마장밖의 서로에게 보낼 정도가 되어 있었으니 비록
악한들이라고는 하나 그 내공의 정순함 만큼은 가히 괄목지경에 이르고 있었던
것.....!
"흐.....! 저 놈.....! 역시.....!"
그러자 이번에는 이 우문개로의 음성을 전해들은 건너쪽 사공척의 무리들의 표
정이 홱 돌변할 수 밖에 없었는데.....!
하나 우문개로 역시 그들의 격동따위야 아랑곳 없이 음산히 말을 계속 이었다.
"흐흐흐..... 그래..... 아무튼 그런 따위야 어쨌거나.....! 설마하니 너 늙은
것이 아직도 죽지않고 지난 때의 화(禍)를 피해 쥐새끼처럼 숨어 있었다니 실로
상상치도 못했던 노릇이구나! 하기사 내 그래도 최소한 나와 위명을 같이했던
백사(白邪)가 당시에 모조리 죽음을 당했으리라고는 믿지않고 있었다만..... 한
마디로 장하다고나 해줄까?"
역시 비아냥과 같은 것!
하지만 사공척은 그와 달리, 그럼에도 눈하나 깜박하지 않고 웃었다.
"히히히..... 귀여운 놈, 서투런 수작으로 내 심기를 건드려 보려기는.....!
그런 따위로는 백 날을 수작걸어야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그보다 오히려 너야
말로 지금 소감이 좀 어떠냐? 네가 친구를 팔아먹은 주제에 아무리 허세를 부려
봐야 지금껏 단 하루도 마음 편안할 날은 없었으렸다? 와중에 갓난것일 때부터
애지중지했던 딸년마저 비명횡사하고 말았으니 말이야?"
"이 놈이.....?"
찰나지간 한결 여유있는 모습의 사공척과는 달리 우문개로는 한 번 더 홱 크
게 안면을 우그러뜨렸다.
기실 사공척이 비록 아무리 많은 동료들을 잃고 오로지 복수를 위해 살아왔
다고는 쳐도 그는 이미 오래전에 한(恨)을 격은 인물, 반면 우문개로는 불과 얼
마전에 말마따나 애지중지했던 딸을 잃고 눈이 뒤집힌 상태였으니 설전(舌戰)으
로는 도저히 그를 당할 수 없기 마련이었다.
마음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사공척을 짓이겨 뼈를 짓씹고 싶을 것.....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어찌할 방도가 없다.
접전을 벌이기 위해 야음을 틈타 진(陣)을 구축하기는 했으나 역시 사방을
휘감은 이 어둠이 문제.
본시 이런 어둠속에서 접전이 벌어질 경우에는 적아(敵我)가 잘 구분이 되지
않기에 자칫 우군끼리의 살상이 있기 쉽고, 특히 싸움의 초반에 상대가 정공(正
攻)이 아닌, 어떤 간계를 전개해 올지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섣불리 선공(先
攻)을 개시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에 그는 빠드득! 어금니가 으스러질 정도로 소름끼치게 이를 갈았으나 감히
경동치 못하고 마치 상처입은 짐승같은 음성만을 토해냈다.
"크흐흐흐..... 씹어 삼켜도 시원치않을 가증스러 것! 어쨌건 더 말은 필요치
않다! 이제 길어야 반 시진이면 동이 터올 것! 그때 단숨에 네놈의 놈의 늙은
목을 잘라 지금껏 살아 있었다는 자체조차 후회하도록 해주지!"
그와 함께 순간적으로 그의 몸 전체에서 싸아하니 사방으로 퍼져가는 엄동의
바람보다 더 섬뜩한 기운.....!
실로 모골이 송연할 만한 살기(殺氣)였다.
* * *
또 한편 같은 시각, 항주의 중앙 관사내 한 별관.....
"섭대인, 제발..... 제발 말씀을 해주시어요.....!"
노운설은 날이 어둡기 시작하면서 섭명진을 찾아와 줄곳 애타는 심정으로 그를
채근하고 있었다.
까닭인즉 바로 지난 저녁, 그간 항주성의 팔문(八門)을 걸어 잠구고 봉쇄령을
내린 후 오리배의 숙청과 마후돈 졸개의 색출에 전념했던 영호충이 다시 진청
등 항주, 진강 양쪽의 대군(大軍)을 이끌고 한 마디 언급조차 없이 성 밖 어디론
가로 나갔기 때문.
군장을 꾸리고 관포들에게 갑주(甲?)를 입게 한 품새를 보면 분명 또 다시 누
군가와 접전을 치루러 떠난 것임에 확실했다.
또한 지난 강소태수의 목을 벤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는 계속 마후돈의 잔당들
과 접전을 치루어 왔기에 또 그 일당중 누군가를 소탕하기 위해 갔으리라 치부하
면 그만,
하지만 여인들 특유의 직감이라고 할까?
웬지 이번 만큼은 느낌이 불안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까닭인즉 지난 몇 일 사이, 실로 거의 관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의 큰
일을 치루고 줄곳 마후돈의 잔당을 뒤쫓아 동분서주하기 바빴던 영호충이었지만
그래도 관사를 나서기 전에는 반드시 자신을 찾아와 곧 돌아오겠노라는 말을 잊
은 적이 없었다.
한데 지난 저녁만큼은 어디로 간다는 일언반구의 말조차 남기지 않고 관포들을
이끌고 성밖으로 나가고 말았던 것!
게다가 주위의 말에 의하면 이끌고 나간 수하의 규모조차 지금껏 있었던 경우
의 근 두 배에 달하는 천 오백 여에 달하고 있었으니.....!
뇌리를 찌르는 듯한 불안감! 필시 무슨 사단(事端)이 있어도 분명히 있는 것이
다.
이에 그녀는 소식을 듣자말자 곧 바로 지난 흑도의 일 이후 줄곳 영호충의 일
을 도우며 자신들을 살펴주고 있는 섭명진, 이 사내를 찾아와 밤이 다 새도록 애
타게 진상을 묻고 있었던 것인데.....
하지만 섭명진 이 사내는 또 이 사내대로, 처음 영호충을 만났을 당시부터 거
의 속을 드러내지 않았을 만큼 입이 무거운 인물로서 지금껏 전혀 영호충의 종적
에 대해서 거론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니.....!
이에 노운설은 심정이 타들어가 버리는 듯한 느낌으로 이젠 음성조차 거의 호
소에 가까운 것으로 변하고 있었다.
"제발 섭대인.....! 영호장군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시죠? 말씀해 주시면 그 은
혜 결코 잊지않겠어요. 말없이 떠난 모습에 인솔해 가신 인원을 보면 필시 예사
롭지 않은 일이 있으신게 분명하온데.....! 섭대인께서는 알고 계실 것이 아니신가
요?"
벌써 수 백 번은 들었음직한 질문, 이에 섭명진은 밤을 지새워 초췌하기 그지없
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허..... 거 참..... 딱하기도 하시구료 노소저.....! 말하자면..... 내 들은
것이 있기에 솔직히 그 어른의 행적을 전혀 모른다고 할 수 만은 없소. 하지만 역
시 이는 남자들의 일인데다가 특히 무반들의 군사(軍事)인데 대체 그것을 아셔서
무엇하셨소? 오히려 심려만 더할 뿐.....!"
하지만 노운설은 계속 애타는 음성으로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그렇지 않아요.....! 기실 섭대인께서도 이젠 소녀가 집
을 떠나 이곳에 와있는 사유가 무엇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고 계시진 않으실 터
인즉, 영호님의 일거일동이 저와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님을 아실것이 아니신가
요? 더우기 그분께 입은 신세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온데 싸움터에 가신것을 알
면서도 어떤 상황인지 조차 모르고 막연히 하늘만 쳐다보는 것이 어찌 사람의
도리겠는지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튼 이제 곧 동이 틀 것..... 만약 섭대인께서 그래도 말씀을 아니해 주시
면 소녀는 소녀 나름대로 행동을 하겠어요.....! 이끌고 가신 군마의 수효가 적
지 않으니 필시 길 사방에 말발굽 자욱들이 깔렸을 것..... 혼자서라도 뒤쫓아갈
것이옵니다."
"혼자서라도 뒤쫓아가시겠다.....?"
순간 섭명진의 얼굴에 흠칫하는 놀라움의 기색이 떠올랐다.
기실 지금 한 말마따나 그도 노운설이 무엇 때문에 집을 떠나 이곳에 와있으
며 또한 흑도에 잡혀갔었는지 모르는 터가아니었다.
이미 영호충에게 대충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것!
따라서 비록 여자라 하나 그녀가 얼마만한 고집이 있는지도 능히 알 수 있을
법한 일이었기에 결코 지금 말을 단순한 농담이라고 볼수가 없다.
반면 그는 영호충에게 이니 그녀를 잘 보살피라는 언질을 별도로 받고 있었
던 터이었는데.....!
이에 그는 일순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급기야는 한숨
을 불어내며 설레설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헛허허..... 참으로 할 말이 없어서.....! 내가 졌소. 그간 수많은 여인들을
보고 격어왔지만 정말 소저같은 분이라고는.....!"
무겁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저히 어쩔수가 없구료.....! 결국 이래도 저래도 말로 끝날것 같은 일은 아
니니..... 그럼 소저께서는 어서 서둘러 여장을 챙겨 오시오. 영호장군께서는 현
재 신주삼패 등과 마침내 최후의 접전을 치루겠노라 가신것이니.....!"
최후의 접전!
"그런.....!?"
순간 노운설은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고 확 하니 얼굴에 핏기가 가
셨다.
역시 자신의 원인모를 불길한 예감이 적중하고 있었던 것! 더더우기 이것이 진
정코 그들과의 마지막 싸움이라고 한다면 그곳에는 분명 자신이 그토록이나 찾
아헤맸던 왕우진 역시 나타나리라는 것은 확실한 이치!
"여장..... 꾸릴것도 없어요! 이대로 좋으니 어서 그곳으로.....!"
이에 그녀는 다급한 심정에 그만 자신이 치마를 입고 사실조차 잊은 채 급급히
섭명진의 소매자락을 끌어당기며 실내를 나섰다.
* * *
또 한편 그로부터 약 반 시진쯤 후, 백룡탄.....!
"놈.....!"
"히히히..... 마침내 때가 되었다.....!"
칼날같은 엄동의 빙풍을 고 아득히 마주 대치한 서로의 진영을 노려보던 우
문개로와 사공척의 눈가에 마침내 소름이 쭉 끼칠 듯한 잔인의 빛이 와라락 치솟
았다.
초조와 불안의 시간..... 긴긴 어둠속에 마침내 먼 동녘이 뿌옇게 밝아오기 시
작한 것이다.
사물이 확연해 지려면 아직도 좀 더 시간이 흘러야 할것이나 칠흑같은 속에서
밤을 지새 어둠에 익숙해진 그들에게는 이 정도의 여명만으로도 접전을 치루기
에는 충분했던 것!
더우기 확연치는 않아도 이젠 멀리 상대의 진영까지 흐릿하게 보이는 상태가
된 이상 오히려 기다림의 시간이 더 무섭고도 지겹다.
"히히히..... 싸그리 죽여주겠다.....! 단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들개의 밥을 만들어 지난 형제들의 한을 풀어주지!"
"놈..... 결단코 그냥 두지 않겠다.....!"
이어, 우문, 사공 두 사람의 손이 마침내 천천히 허공으로 들려졌고 양 진영
모두의 맥박이 급격히 가빠지며 온 전신의 피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어차피 날이 밝으면 시작되리라 예상된 대접전, 희뿌옇게 동이 터오면서
부터 이미 모두는 야수처럼 흥분하고 었었을런지도 몰랐다.
호흡이 금시라도 멎어질 듯 거칠어지고 심장이 터질 듯 쿵쿵 뛰는 가운데 얼굴
이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그리고 휘불던 바람이 잠시 숨을 죽인다 싶은 어느 한 찰나,
"모조리 죽여라!"
사공, 우문 두 사람의 입에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천둥
소리를 방불케 하는 폭갈이 터져나왔다. 곧 혼신의 내공을 실어 터뜨린다는 천
리전음의 사자후(獅子吼)!
"와아아아아.....!"
콰두두두두두.....!
그러나 그 엄청난 노후도 질러낸 직후에는 천지를 진동하는 함성과 말굽소
리에 묻혀 곧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핏발선 눈으로 지금껏 양 진영을 노려보던 이천여의 군웅
들이 급기야 광란하듯 한 함성을 질러대며 말을 치달려 서로를 향해 들이쳐 가
기 시작했던 것!
"으아아아아.....!"
"크우웃~!!"
콰차창!!
그리고 그보다 더 큰 함성과 굉음속에 마침내 양익의 인물들이 백일평의 어느
한 중간에서 서로 맞 부딛쳤다 싶었을 때,
"크아아아악!!"
히히히히힝.....!
그 즉시 사방에는 처절을 극한 비명속에 피보라가 튀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십여 년을 갈아온 악한의 한(恨)과 친구를 팔아 치부하던중 딸을 잃은 배신
자의 한! 그 두 개의 분노가 결국 수 천의 인명을 앞세워 엄청난 살겁(殺劫)을
일으킨 것!
앞도 적(敵) 뒤도 적! 따라서 본의건 타의건 밀고 밀리는 이런 대접전 속에
던져진 모든 이들에게는 이젠 아무런 생각도 무엇도 있을 수 없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오로지 본능적으로 치솟는 이 삶에의 공포가 스스로
의 모든 가진 기교와 체력을 다해 서로에게 칼을 휘두르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공척 이놈ㅡㅡ! 썩 나오너라!!"
그 속에서 우문개로는 미친듯한 노갈을 터뜨리며 말을 치달려, 윙윙 거대한
방천화극을 풍차처럼 휘둘러 게중 상대의 무리가 밀집된 곳으로 파고들었다.
"으아.....!"
"크아아아악.....!"
그러자 그가 휩쓸고 지나가는 곳에는 즉시 처절을 극한 비명이 일어나고 사공
척 진영 수십여 명의 목이 한꺼번에 초개같이 허망하게 끊어져 달아나곤 했는
데.....
그것은 반대 진영을 급습하고 있는 사공척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관절 저 비쩍마른 몸의 어디에서 이런 괴력이 나오는가 싶게, 이 무렵 그
도 숨쉴틈 조차 없이 장팔사모를 휘두르며 우문개로의 수하들을 들이치고 있었
는데 그때마다 단숨에 십여 명이 넘는 인명이 피보라 속에 꺼꾸러지고 있었던 것!
가공할 신력(神力)이었다.
더불어 이를 미루어 보면 그들 둘은 이미 일반의 무림을 지나 병법(兵法)과 군
무(群武)에도 익숙해져 있다는 뜻이 되기도 했는데.....!
본시 무(武)의 원칙에는 기(氣)는 술(術)을 이기지 못하는 이치이며 술(術)은
도(道)를 능가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개별적인 접전이나 땅을 밟고서 싸울때의 경우로서, 어떤 때에
는 기(氣)가 술(術)을 지나 훨씬 더 필요할 때가 있다.
그것이 바로 이런 대접전이 벌어질 경우!
까닭인즉 어느 한 개인의 술이 아무리 오묘한 조화를 지닌것이라 할지라도,
사방이 적으로 뒤덮히고 천군만마가 밀고 밀리는 이런 대전장에서야 그것이 제
대로 활용이될리가 없다.
오히려 이런 경우는 소잡는 칼을 휘두르는 마구잡이 식의 거창한 힘과 밀려드는
적을 밀어붙일 수 있는 기력이 필요한 것!
따라서 사공척과 우문개로는 이미 일반 무림 초유의 고수일 뿐만아니라 일찌감
치 이러한 전장의 묘(妙)를 깨닫고 저 무거운 대장창을 익숙하게 휘두를 수 있을
정도로 수련한 만큼 충분한 접전의 경험까지 겸했다는 결과가 나온다.
극단적으로 지난 백사(百邪)가 얼마나 가공할 무리였던지를 확연히 보여주기도
하는 모습.....!
쿠두두두두.....!
"나오너라 이 놈! 어디에 있느냐!!"
"크아아....!"
그러한 속에 우문개로는 연신 사방으로 말을 질주하며 천둥치듯 한 호통을 터
뜨렸다.
풍차처럼 휘저어 대는 방천화극이 닿는 곳 마다에는 연거푸 처절한 비명과 잘
리워진 수급 팔다리가 피무지개와 함께 튀어오르곤 했었는데..... 이미 그 혼자
만이 참(斬)한 인명도 근 백여 명에 이르렀다.
한데 그러던 어느 일 순간,
"히히히..... 이만하면 어지간히 어지간히 몸도 풀리었고..... 바로 여기다
추접한 배신자 놈!"
돌연 수라장이나 다름없는 함성과 비명성을 고 그의 한 쪽 측면으로부터, 비
록 나직하나마 그 북새통에 전혀 휩쓸리지 않는 누군가의 역겨운 웃음소리가 또
렷이 울려왔다.
"사공척.....!?"
이에 우문개로는 흠칫, 접전이 시작된 이래 한 번도 쉬임없이 휘두르던 방천
화극을 비로소 잠시 멈추며 말고삐를 음성이 전해진 우측면으로 틀었는데.....!
동시에 그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쿵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두 눈을 찢
어질 듯 섬뜩히 부릅떴다.
그도 그럴수 밖에 없는게 육 장여 바깥으로 부터 급기야 사공척이 이젠 피로
흠뻑 적셔진 긴 은빛 장식수실이 달린 장팔사모를 움켜쥐고 서서히 그 흉칙한 모
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내백사의 마지막 두 생존자.....!
이들이 결국 이렇게 다시 재회를 하게 된것이었다.
"키히히히..... 참으로 오래간만이로군, 개로.....!"
먼저 입을 연것은 역시 보다 여유가 있는 모습의 사공척이었다.
"아주 잘 와줬다! 내가 이 날이 오기를 그간..... 진정코 피를 말리며 기다렸
었어.....!"
찰나 우문개로의 안면이 흉신악살같이 흉칙하게 구겨졌다.
"이놈..... 정말 살아있었구나.....!"
흡사 허파를 쥐어짜내는 듯 섬뜩히 노기가 뒤엉킨 신음같은 음성!
"키히히히..... 그야 물론이지.....! 죽을래야 도저히 죽을수가 없었어! 네놈
의 그 사악한 배신으로 인해 우리 우내백사의 형제들이 흘린 피를 생각하면....
.! 너를 둔채로 절대로 눈을 감을 수 없었지.....!"
반면 사공척의 음성이나 표정은 여전히 한결 홀가분해 보였다. 그저 시체와
같이 음유했던 두 눈에서 작열하듯 한 살광(殺光)이 쏘아져 나오는것만 제외하
면.....!
"히히히..... 그래서 네딸도 죽게했다! 첫 째 까닭은 이렇게 무리없이 네놈을
끌어내려 하기도 한 것이었지만 어차피 네놈으로 인해 우리 백사는 일족 천여
명이 한 줄에 엮여 참수를 당한 터! 그 복수의 일환이기도 했었지!"
천천히 힘주어 장팔사모를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히히히..... 입이 열개라도 더 할 말은 없겠지?"
뻐드득! 우문개로의 어금니가 으스러지게 갈려졌다.
"크흐흐..... 그래.....! 사실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죽여버리겠어..... 감히
네놈따위가.....!"
그리고 두 사람의 입에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천지가 허물어질 듯한
폭갈이 터져나온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네 이놈ㅡㅡ!"
"야하ㅡ!"
급기야 그들이 지금껏 태워왔던 증오와 모든 복수심을 실어 일거에 말잔등을
차고 허공으로 몸을 날리며 격돌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
콰창!!
그와함께 즉시 두 사람의 몸이 허공에서 좌우로 엇갈리며 두 장창이 부딪히고
고막이 터질 듯한 어마어마한 금속음이 일기 시작했다.
더불어 어슴푸레한 새벽의 어둠속에 연거푸 뿌려지는 시퍼런 불똥!
쾅쾅쾅쾅.....!
한 마디로 검이나 도로 격돌하는 일반의 싸움과는 규모가 틀리는 것이다.
본시 동왜가 칼(刀)의 문화이고 고려가 활(弓)의 문화라면 본시 중화는 창
(槍)의 문화를 가진 곳, 이들의 창술은 사뭇 오묘한바가 있었다.
힘도 힘이지만 저 거대한 장창을 휘두르면서 그 원심력을 충분히 이용하는
듯 전혀 거침없이 치고 찌르고 돌리고 하는 품새가 마치 두마리의 용이 꿈틀이는
듯 화려하기까지 했는데.....
하지만 거기에서 일어나는 소용돌이 같은 바람과 어마어마한 창의 환영(幻影)
들!
주위에서 접전을 벌이는 인물들은 싸우는 와중에도 행여라도 감히 그 근처로
쓸려들것을 주의할 수 밖에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앗! 하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두 장창이 환영을 뿌리는 사정
거리 안으로 들어섰다
가는 그대로 허리가 두 동강이 나기 쉽상이었던것!
"흐아아아ㅡㅡ!"
"죽어라 네놈!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너는 내 적수가 못되는 터ㅡㅡ!"
콰아앙! 쩌엉.....!
그러한 사이 눈깜박할 틈에 누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보도 못할만큼 엄청난
창영을 그리며 격돌을 일으키던 두 사람의 혼전은 일견하여 우문개로쪽의 우세
함으로 드러나고 잇는것도 같았다.
조금씩이나마 그의 창세가 힘을 더하며 점점 사공척의 장팔사모를 밀어내고
있었던 것!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밀고 밀리던 치열한 공방전의 어느 일순간,
콰창!!
"쳔! 아니.....!?"
한 번 더 고막이 터질 듯한 거대한 금속성이 사방을 진동시키는가 싶더니 돌연
유리한 위치에서 공세를 전개하던 우문개로의 경악에 찬 외침이 터지며 주위를
메우던 창영들이 싹 그쳐졌다.
까닭인즉 바로, 어쩐지 처음부터 너무길다 싶었던 사공척의 장팔사모에 매달려
있던 은빛 장식수실이 격돌과 함께 우문개로의 방천화극을 휘감은 것!
따라서 두 자루의 장창은 그 수실로 인해 단단히 허공중에서 얽혀져버린 것으
로 그것을 끊거나 풀지 못하는 이상 이제 두 사람은 피차 창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것은.....!?"
그러니 유리한 입장에서 사공척을 밀어붙이던 우문개로가 당연히 크게 놀랄수
밖에.....!
"히히히히..... 마침내 걸려들었다 이놈! 이것을 기다리고 있었지.....!"
하지만 사공척은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웃었다.
"히히히..... 그래! 솔직히 말해서 나 사공척..... 예나 지금이나 확실히 이런
거병(巨兵)의 술수로는 네놈을 꺽어내기 힘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나 반
면 단병(短兵)이나 적수공권에서는 네놈에 비해 무려 두어 수나 위! 해서 일부로
이것을 노리고 장식은사를 길게 해서 온것이야! 그러니 이젠 어쩔참이냐 이놈..
...?"
일부로.....!
"네가 간계를.....!?"
순간 우문개로의 안색이 확 핏기를 잃으며 무참히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머뭇거리고 있을 시간조차 없었다.
"어디 한 번 견뎌봐라 이놈!"
그 즉시 사공척이 사방이 쩌르릉 울리는 폭갈을 터뜨리며 그대로 착골혈갑을
낀 열 손가락을 갈쿠리처럼 구부려 용트림하듯 후욱 몸을 솟구쳐 섬전같이 우문
개로의 머리통을 찍어오기 시작한 것!
"헉..... 이게.....!?"
이에 우문개로는 크게 놀라 급급히 뒤엉킨 창을 버리고 장검을 뽑아 쏘아오
는 사공척을 번개처럼 후려쳐 갔다.
하지만 다음 순간,
"크아압!!"
콰창!!
"허억! 아니.....?"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
즐독 입니다
고맙습니다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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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보고 있습니다~~~
즐독이랍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