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몇일동안 나는 오한과 고열이 오가는 기묘한 상태로 한참동안 병상에 누워 거동을 할수 없었고, 두주정도 흐른 다음 정신을 차렸을때는 정국은 이미 재편된 뒤였다. 섬머셋에서는 이미 예상했던대로 앙주파를 정치적으로 굴복시킨 마녀의 조리돌림 사건을 계기로 권력을 손에 쥐게 되었다. 거기에 근왕파의 자리는 없었다. 안나 왕비마저도 왕궁에서 축출되어 버틀러가의 가택으로 돌아가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녀는 떠나기 전 나를 방문하여 사과와 감사와 당부를 하고 떠났다.
"제가 부탁드린건 그런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감사합니다. 저도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겠습니다. 수모를 견디고 아이들을 위해 참고 인내하겠습니다. 부디 언젠가 서로 웃을수 있는 그날이 올때까지 자신의 몸을 해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다시한번 예전처럼 모두 모여서 피크닉을 갈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웃으며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해줄수 밖에 없었다. 에드워드 왕자는 스코틀랜드의 국경지대로 추방에 가까운 현지 부대의 지휘관으로 보내졌다. 본인의 소망도 반영된것이라 하지만 말은 많이 나왔다. 스코를랜드의 하이랜더들과 노르웨이의 야만인들이 수시로 나타나 약탈을 하고 부대에 대담하게 공세를 취하는 곳에서 왕족을 보내는 것에 대해 동정적인 여론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일어서려 하고 있다. 누군가를 위한 광대가 아닌, 자신의 발로 자신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다. 나는 그가 대견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제 다시는 그의 성장한 모습을 볼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깊이 슬픔이 밀려왔다.
앙주파는 사실상 궤멸되었다. 몽고메리나 버틀러 등의 일부 가문은 여전히 나에게 호의를 보내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영주들은 지난번 조리돌림의 사태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고 우물쭈물하는 태도로 나에게 몰려왔다. 나는 망설이는 그들의 마음이 편할수 있도록 먼저 관계의 단절과 파벌의 해체를 선언하였다. 일부러 만들지는 않았지만 한 세력의 소멸에 대해 영주들은 불안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저마다 섬머셋과 베드포드의 세력에 밑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나는 모든것을 잃었다.
마틸다의 극진한 간호 덕분에 병세가 회복되고 선왕대비와 일곱번째 왕자에게 귀환을 허락받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수 없었다. 잇달은 왕의 죽음과 의도하지 않은 봉변... 그리고 이어진 정국의 재편으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는 아무런 미련도 남지 않았다. 되려 마음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무심결에 말했다.
"사람을 잃었고, 신뢰를 잃었고, 명예를 잃었다. 이제 그저 견딜뿐인 힘겨운 인고의 시간이 흘러가겠구나... 이제야 다 끝났어."
나의 말에 겨텡 있던 루이 첩보관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다 끝났다고요?"
"첩보관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가요? 이제 더이상의 소요는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앙주파를 굴복시키고 일부 세력을 흡수한 섬머셋은 베드포드를 압도했고, 선왕의 정통 적자를 옹립하고 있는 상황이예요. 앞으로 별다른 사고가 없다면 정국은 그냥그대로 흘러갈꺼라고 생각됩니다만..."
나의 첩보관은 조금 어처구니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에... 이론상으로는 그렇겠죠. 그리고 권력을 손에 쥔 자들이 최소한 사죄하러 온 사람을 예의로 대할줄 아는 아주 기초적인 상식이라도 갖춘 자들이었다면 그럴수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권력은 양날의 칼날입니다. 그것을 가진 자는 강해질수도 있지만 동시에 자기 손에 죽을 위험도 같이 쥐게 됩니다. 그래서... 어설픈 칼잡이들에게 그런거 쥐어주면 안되는 겁니다. 제가 본 지금의 권력자들은 칼춤은 고사하고 걸음마라도 제대로 걸을수 있기를 기원해야 할것 같더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더 할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이제 근왕파의 주축이던 앙주파도 해산되었고, 왕자님과 안나 왕비님도 권력에서 소외되신 상황이고, 저도 듣자하니 제가 행한 짓으로 회복하기 힘든 정치적 타격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들의 권력다툼이 진행된다고 해도 제가 그것에 어떻게 개입할 방법은 없을것 같군요.이젠 저를 지지하는 사람조차 없는 걸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직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저를 비롯한 참사회의 모든 각료들과 앙주의 백성들은 다들 총독님을 지지합니다."
"여러분들에게는 늘 감사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요. 그리고 백성의 지지라... 앙주의 백성들은 저를 좀 이해해줄까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요? 길거리에서 알몸으로 굴욕을 당한 하찮고 문란한 여자를 지지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전에도 말씀드렸죠? 민중의 소리에 귀기울이시라고요?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얻으십시오. 확실히 나약한 백성들은 그 자리에서 알몸으로 길에서 굴욕을 당한 총독님을 보며 희희덕 거렸을지 몰라도, 민중 전체의 소리는 당신에게 경외를 느꼈을겁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할수없는 일을 하는 자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그 목적이 숭고한 것일때 스스로 복종합니다. 귀족들이 지껄이는 당신에 대한 험담에 귀기울이지 마십시오. 그것은 타인의 생명을 구할수도 구해본적도 없는 자들의 망언일뿐입니다.
백성들은 이번 일로 인해 확실하게 인식하였을것입니다. 누가 옳은지, 누가 희생을 감수하는지, 누가 영광의 자리에 어울리는 인내하는 자인지를요... 당신에게는 언젠가 백성들에게 물어야 할 시간이 올것입니다. 기억하세요. 제가 지금 드린 충고를... 당신의 질문에 대한 백성들의 대답이 당신의 운명을 결정할것입니다."
그는 알듯말듯한 평소와 다름없는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나는 그런 그의 말은 조금 어려운 위로라고 생각하며 희미하게 웃으며 앙주로 돌아왔다. 앙주로 돌오고 나서도... 한참동안을 별다른 일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방안에 멍하니 앉아서 안나 왕비님을 비롯한 지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간간히 각료들의 중간 보고를 듣고, 흘러가는 세상에 그저 한걸음 떨어져 그렇게 시간을 보내었다.
늘 그랬지만 각료들은 잉글랜드의 정국과는 무관하게 앙주 영지의 발전에 열과 성의를 다했고, 시의 재정과 주민들의 생활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덕분에 각지에서 앙주로 유입되는 인구의 증가가 골치 아파질 지경이었다. 나는 필립 재상이 소개한 아르메니아에서 온 일단의 이주민들의 거주지역을 확보하고 그들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간만에 기분좋은 소문을 들을수 있었다.
"폐하께서 그렇게 영특하시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다른 또래 아이들이라면 엄마를 보고 싶다고 울며 보챌법도 한데 의연하게도 모후의 부담을 줄수 없다며 선왕대비와 못된 숙부의 밑에서 책잡힐 일을 하지 않고 학문과 무예를 익히는데 정진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런던에서 우연히 방문했다 합류한 상인들의 말을 듣고 나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과연 윌리엄 폐하의 아드님들... 그분들이 무사히 자라주시기만 한다면 잉글랜드의 미래는 걱정이 없을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기뻐서 건배하는 나를 조금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이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첩보관님, 왜 그렇게 안좋은 얼굴이세요? 건배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기쁜 소식을 들은것 같아요."
"네에... 지금의 폐하께서 영특하시다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수는 없는 소식 같습니다. 이미 현지 첩보원들에게 관련 소식을 상세히 알고는 있었습니다만... 조금 걱정스럽습니다."
"대체 뭐가 걱정이시죠? 현재의 구도에서 선왕의 적장손인 정통성있는 폐하를 섬머셋에서 옹립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거기에 영특하신 폐하라면 무능한 왕으로 책잡힐 우려까지도 해소된것 같습니다만..."
"지나치게 현명한 주인은 신하들에게 달가운 존재인것만은 아닙니다. 거기에, 권력에 대한 야망이 넘치는 자들이 가득한 곳에서 그런 재능을 보인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협을 느낄수 있게 할 소지가 있습니다. 현재의 정치적 구도로 그분의 자리가 조금 안정적인듯 보이기는 합니다만... 주의하셔야 할것 같습니다. 정통성은 얼마든지 조작으로 뒤집어 엎을수 있는 깃털보다 가벼운 명분일 따름입니다."
나는 그의 경고를 흘려듣지는 않았다. 그래서 안나 왕비마마와 폐하에게 에둘러 돌려말하는 말로 자신의 재능을 너무 세간에 드러내는 것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보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불길한 예상은 현실이 되고, 손을 쓰려 할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 파티가 있고 얼마후 황급히 참사회에 달려왔다.
"대체... 그게 무슨소리죠? 불륜이라뇨? 안나 왕비님이 불륜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루이 첩보관은 무거운 음색으로 말했다.
"예상했던 시나리오 중에서 가장 더러운 방식을 사용했더군요. 몇일전 안나 왕비의 거처에서 왕비 마마의 침소에 잠입한 도둑을 경비병들이 잡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도둑의 정체가 버틀러 가문의 옛 집사의 아들이라더군요. 단순 범행으로 처리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현지 사법관이 그 도둑을 인계받아 런던으로 데려가 지독한 고문을 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둑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옛날 안나 왕지와 자신이 연인이었다는 주장이라고 하더군요."
"자... 잠시만요. 그 인계해간 사법관은 누구죠?"
"현재 섬머셋 공작의 장자의 가신입니다. 아무래도... 섬머셋 내부에서 돼지년의 업적에 대해 아버지 섬머셋은 그런대로 납득했지만, 아들 섬머셋은 납득하지 못한 모양이더군요. 지금 붙잡힌 도둑은 그쪽의 입맛에 맞는 각종 더러운 얘기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고 그것을 정식 증거로 채택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 망도 안되는!!! 안나 왕비님이 그럴리가 없잖아요! 그런 모함을 해서 그들이 대체 무엇을 얻을수 있는 건가요?"
그는 머리를 짚으며 대답했다.
"정통성을 흔들수 있습니다."
"......"
"아직까지 나오진 않았지만 시간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그 도둑의 입에서 현재의 국왕 폐하가 윌리엄 선왕의 아들이 아닌 안나 왕비와 그 도둑의 불륜으로 태어난 자식이라는 증언이 나오는 순간... 잠시동안 평온했던 정국은 다시 혼란으로 돌아갈것입니다. 그리고... 폐하의 입지도 위태로워 지실것 같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주저 앉고 말았다. 그런 나를 필립 재상과 에라드가 와서 부축했다. 나는 머리속이 헝크러지는 것을 느꼈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내가 그렇게 바라던 피흘리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이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악의로 인해 무너져 버리다니... 나는 복받치는 것을 느꼈다. 이제 더 뭘 더 잃어야만 한단 말인가...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주저 앉아 있을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각료들에게 소리쳤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런던에서 폐하와 왕자님과 왕비 마마를 구할 방법을 찾으세요. 앙주의 총독으로서 모든 명령에 우선해서 최우선으로 지시합니다."
각료들은 심각한 표정을 그대로 지었지만 내 명을 받들어 일사분란하게 흩어져 방법들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논의를 하고 있던 그때, 첩보부의 직원이 양해를 구하고 회의장에 들어와 루이 첩보관에게 귓속말을 하고 무언가를 건냈다. 그 말을 들은 루이 첩보관은 평소에는 볼수 없는 놀란 표정으로 뭔가를 다시 물었고 직원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침통한 얼굴로 내게 건내 받은 물건... 편지를 내밀었다.
"이건?"
"안나 왕비의 서편입니다... 지금 현지 밀사들에게 긴급으로 전해진것이 도착했습니다. 시장님께서 직접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찢고 편지를 읽었다.
'친애하는 조안 공작님... 이 편지를 받을때쯤에는 이미 전 이 세상 사람이 아닐것입니다. 말씀드리건데 저는 결백합니다. 저는 일생동안 단 한분 윌리엄 폐하 외에는 그 어떤 남성도 사랑해본적이 없습니다. 집사의 아들은 저는 만나본적도 없고 옛날 제가 아린 시절 가택의 하녀들을 건드리다 추방된 것만 어렴풋이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재정적으로 곤경에 처한 그를 찾아 저에게 보내서 터무니 없는 누명을 씌웠습니다.
지금 저는 어제 참고인 자격으로 긴급 체포되어 런던탑에 감금되어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저와 관련된 사람들이 연행되어 없는 죄를 만들기를 강요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너무나도 두렵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저를 고문하여 제가 고통에 못이겨 불륜을 저질렀고, 지금의 폐하와 왕자가 선왕의 핏줄이 아닌 내연남의 사생아라는 증언을 받아내려고 하겠죠? 저는 오늘밤이 지나고 나면 제게 가해질 고문이 두렵고 그때문에 거짓을 말할 약한 자신이 증오스럽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보려고 합니다. 돌아가신 선왕폐하와 나의 사랑하는 부군 폐하... 그리고 지금의 나의 사랑하는 두 아이들... 왕가의 여인으로서, 정숙한 아내로서, 좋은 엄마로서 저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다행히도... 당신의 밀사를 감옥에서 만날 기회를 준것을 주님께 감사합니다. 나를 위해 고난을 감수한 나의 유일한 친구... 당신께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다면 무례를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진심으로 당신을 제 유일한 벗으로 여겼습니다.
당신에게 모든것을 맡깁니다. 제가 없는 이 세상에서 부디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그렇다면 저는 죽어서도 그 은혜를 잊지 않을것입니다. 나의 친애하는 벗에게... 안나 버틀러...'
"으아아아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오열할수 밖에 없었다. 나 역시... 그녀를 마음을 터놓을수 있는 친구라고 여겼다. 그리고 이 땅에 훌룡한 현군의 아내이자 현왕의 모후로 행복하게 살아주기를 고대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없다. 나는 오열하며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수 없었다. 다정하지만 겁이 많았다는 그녀...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 진심으로 큰 용기를 내어주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감옥속에서 사랑하는 아이들을 두고 스스로의 생을 마쳐버렸다... 정신을 잃어가는 나를 마틸다와 에라드가 억지로 끌어내어 침대에 눕히고 나를 안정시키려 하였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모든것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소중한것들 마저 하나 둘 사라져간다. 이제 다음은... 그 다음은...?
그날 저녁... 당국의 발표와 같이 이미 알고 있는 소식의 확인이 도착했다. 안나 왕비는 감옥에서 스스로 허리띠를 풀어 목을 메고 자결하였다. 죽기전에 그녀는 자신의 무고함을 브로찌로 손바닥을 찢어 피로 벽에 써서 세상에 알렸다. 첫 공식 보고에서는 그녀의 유언이 언급되었지만 그 내용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자 곧, 현장에 그런건 없었다는 수정 발표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녀의 사망이 불륜 사실이 공표될까 두려워 저지른 것이라 날조되어 발표되었다. 정국은 다시 혼란에 휩쌓이기 시작했다.
의회에서는 해당 사건에 대해 당국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다. 대부분의 의견은 이 사건으로 인해 혈통이 의심되는 현재의 왕이 물러나야 한다는 것들이었다. 몽고메리 등에서 요구한 진상 조사 의원회가 수립되어야 한다는 의견은 비난속에 묻혀져 갔다. 왕의 존재는 잊혀졌다. 그 누구도 엄마를 잃은 왕에게 위로를 건내거나 안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이세상에서 둘만 남아 서로를 안고 울며 위로하고 있을 폐하와 왕자님을 생각하며 또다시 오열할수 밖에 없었다.
폐위가 결정되었다. 폐하는 폐위되었고 왕자님과 함께 런던탑에 유배되었다. 안나 왕비가 죽은 이후 당장 시행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결과였다. 일이 지연된것은 오로지, 섬머셋 내부에서 벌어진 기존의 섭정인 일곱째 왕자와 섬머셋의 장자가 미는 다섯째 왕자가 서로 왕위에 올라야 한다고 다툼을 벌이느라 시간을 끌었던 것에 불과했다. 결국 결론은 왕비를 모함하는 것을 주도했던 장자의 세력이 선왕대비와 일곰번째 왕자를 몰아내고 즉위식을 거행하기로 선포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나에게 씻을수 없는 굴욕을 주고 왕의 안전을 약속한 선왕대비는 이 일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고 한다.
"천한 년은 죽어서도 내 발목을 잡는군."
다섯째 왕자는 자신이 왕위에 오를 것을 선포하고 모든 잉글랜드의 영주들에게 즉위식에 참석을 명했다. 물론... 나는 가지 않았다. 잉글랜드에서 단 두사람, 나와 스코틀랜드 국경에 있는 에드워드 왕자 만이 이번 부당한 누명에 의한 폐위에 대해 항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그런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관식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다. 나는 항의의 입장은 표명했지만 더 이상 어떤 조치를 더 취하긴 어려웠다. 런던탑에 유폐된 두 왕자님들이 실질적인 인질과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에드워드 왕자도 마찬가지였던 듯 했다. 당장이라도 현지 부대를 이끌고 남하하는게 아닌가 했지만 그 역시 붙잡힌 왕자들의 안전 때문에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듯 하였다. 우리는 그저 각자 잉글랜드의 양쪽 끝에서 현재의 상황을 주시하며 소심한 항명을 하는 것으로 그들을 긴장 시키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조금 다행스러운 이야기라면 혈통을 문제삼아 왕위를 빼앗은 섬머셋 출신의 잔인한 다섯째 왕자가 아직은 두 왕자의 목숨은 보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조카의 목숨을 빼앗을수 없다는 그런 훈훈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부에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인질로서의 가치가 있고, 동시에 왕자들을 죽이면 그것이 선례가 되서 왕위에 오른 자신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루이 첩보관은 분석하였다. 나는 대단히 불만스러웠지만 비참하게 장례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암매장된 왕비님의 시신없는 장례식을 앙리 주교에게 부탁하여 진행하고 한동안 그녀를 추모하며 조용히 인내하였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남은 내 소중한 것들이 떠나는 것을 다시 한번 손도 쓰지 못하고 잃는 우를 범하였다. 그것은 내가 그녀를 위해 성당에서 홀로 미사를 드리고 있던 어느 날의 아침에 벌어졌다. 그날은 다섯째 왕자의 대관식 다음날이기도 했다. 누군가 성당으로 황급히 달려오는 발걸음에 나는 고개를 들었고 거기에 루이 첩보관이 손을 부들부들 떨며 망설이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부디... 마음을 단단히 먹어주시길 바랍니다. 지금부터 당신에게 전할 이야기는 조금 충격적인 이야기가 될거라고 생각됩니다.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반...란이요? 누가... 설마 에드워드 왕자님이?"
"아닙니다. 차라리 그랬다면 다행이겠지만... 반란을 일으킨 것은 넷째왕자와 둘째왕자입니다."
"그... 그런 일이...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죠?"
"베드포드가 일어섰습니다. 오랫동안 준비를 갖추고 즉위식에 모두가 방심한 틈을 노렸습니다. 기존에 공고해 보이는 섬머셋의 정권에 틈을 찾았더군요. 자신의 가문 출신인 둘째 왕자를 적장자로 내세우는 반란을 획책하였고, 그것을 위해 섬머셋에서 최근 소외된 넷째 왕자를 끌어들였습니다. 넷째 왕자는 자신을 왕위에 세워주겠다는 말에 기뻐하며 런던의 방위 체계를 혼란에 빠뜨렸고 그 틈으로 베드포드의 군대가 밀어닥쳤습니다. 즉위식에 참여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병사를 숨기기 용이했던 것 같더군요. 다섯째 왕자는 즉위식이 끝나고 벌어진 연회에서 만취한 상태로 깨어나지도 않은 채로 목이 잘렸습니다."
"맙소사... 그들의 권력욕에 한계가 어디일까요? 근데 그런 내용이라면... 확실히 놀랍기는 하지만 충격적일 것 까지는... 자... 잠시만요... 설마... 왕자님들이?"
루이 첩보관은 무릎을 꿇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번 실수를 교훈삼아 사람을 배치했지만 두분을 탈출시키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베드포드는 반란의 주동자로 바지 사장을 시킨 넷째 왕자에게 두 왕자님을 죽이라는 요구를 하였습니다. 멍청한 넷째 왕자는 그 요구를 수용하여 감금된 왕자님들을 끌어내어 목을 베어버렸습니다. 저희쪽 요원들이 결사적으로 사투를 벌였지만 병력을 상대하기는 무리였습니다."
나는... 쓰러지지 않았다. 가슴 깊이 칼날이 박히는 기분을 느꼈지만 오열하지 않았다. 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넷째 왕자는... 베드포드의 손에 처리되었겠군요."
"말씀하신대로... 친족 살해와 적장손을 죽인 뒤 쓸모없어진 넷째 왕자는 시해의 죄를 물어 처형되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왕자가 왕위에 오른다고 선포하였습니다. 그 난리통에 목숨을 부지한 섬머셋 공작과 그 장자는 고향으로 도주해 이번 반란을 역모로 규정하고 그 죄를 물어 베드포드와의 전쟁을 선언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드포드에서는 이에 질세라... 섬머셋의 일당과 클레임을 가진 왕족들, 그리고 그동안 자신들에게 반항적인 봉신들을 역적으로 규정하고 처형을 선고하였는데..."
"나 역시 그 처형 명단에 제법 상위 리스트에 올라 있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나는 잠시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멍하니 하늘을 돌아보았다. 나의 왕자님들... 구김살없이 뛰놀던 피크닉이 얼마되지도 않은것 같은데... 결국 또 나는... 그녀와의 약속도, 선왕 폐하들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그들에게 소중했던 것들은... 나에게도 역시 소중한 것들이었다. 나는 그렇게 이제는 없는 나의 가족들을 대신해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잃어야 했다.
항상... 그랬다. 네게 소중한 것은 내가 모든 것을 걸고 지키려고 해도 모래알처럼 내 손을 빠져나가고... 나에게 남는 것은 바라지 않았던 영광과 지위 뿐... 나는 지금까지 무억을 위해 살아왔던 것일까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만 하는 걸까? 나는 더이상 흘릴 눈물조차 다 말라버린것처럼 그저 멍하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을 끝낼 시간이 다가 온것 같다. 그리고 그 순간... 불연듯 나는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루이 첩보관에게 물었다.
에드워드 왕자의 명령에 각 부대는 일사분란하게 이동하여 전열을 재정비했다. 그리고 곧 전투가 재개되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가문의 영광을 위해!!!"
"부딪치려 하지마. 흘려보내. 동료들을 믿어. 혼자 날뛰는 놈들은 궁병대가 처리할꺼야! 진형 유지하고 튀려고 하지마!"
거친 하이랜더들은 거대한 클레이모어를 들고 진형을 갖춘 왕자의 군대에 난입해들어왔다. 하지만 거친 기세와는 달리 차분하게 약점을 파고들고, 공세를 흘려보내는 대응에 속절없이 피해만 가중시키고 있었다. 장교들은 조금 긴장이 풀린 얼굴로 지휘를 멈추고 전장을 주시하고 있는 왕자에게 모여들었다.
"세배나 많은 적군을 상대로 되려 압도하고 있군요. 역시, 왕자님께서 오신 이후 국경 수비대들이 강해진것 같습니다."
"부대 덕분만은 아닙니다. 왕자님의 지휘는 역시 탁월하십니다. 각 부대가 큰 피해없이 차곡차곡 적군을 몰아내고 있습니다. 평소에 자주 사용하시던 신출귀몰한 기병 전술이 아니시더라도 이런 방어전술도 역시 뛰어나십니다. 마치 선왕 폐하의 지휘를 받고 있는 듯한 기분입니다."
에드워드는 장교들의 아부에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평소대로라면 전쟁터의 미친 왕자라는 위명처럼 저질스런 농담으로 장교들의 흥을 돋았겠지만... 지금을 그럴수가 없었다. 전쟁의 상황이 워낙에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사흘전 아침에 갑작스럽게 공격해 들어온 스코틀랜드의 군대에 왕자는 신속하게 부대를 전개하여 방어 태세를 취하여 큰 피해없이 되려 우위를 점하는 전투를 이어나갔다. 일단 침공해 들어온 그들의 어처구니 없는 준비없는 공격도 의아하였지만, 그보다 더 의아한것은 그들의 태도였다. 뭔가를 기다리는 듯한... 뭔가 믿는 바가 있는 듯 피해를 감수하도서 꼐속 밀고 들어오는 공격에 그는 의아함을 느낄수 밖에 없었다. 그가 장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후방의 노섬벌랜드 기지에서 별다른 소식과 증원부대는 아직 없느냐?"
"네에... 벌써 세명째 전령을 보냈지만 아직 묵묵부답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전과라면 딱히 증원군을 청하지 않아도 현장에서 적을 모두 처리할수도 있을것 같습니다만... 괜히 늦게 끼어들어서 공이나 채가는게 아닌가 걱정됩니다."
"쓸데없는 소리... 다시 한번 전령을 보내 증원군을..."
"잠시만요! 뿔나팔 소리가 들립니다. 원군이 도착했습니다."
에드워드 왕자는 후방의 숲속에서 먼지와 새들이 날아오르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것을 본 장교들이 다들 한마디 했다.
"쳇, 정말로 다 처리해놓으니 공이나 빼앗으러 오는구만."
"경기병대들 좀 야근시켜야 겠어. 괜히 포로수랑 머리수로 공적 다투다 한일없단 소리 들을라."
그때 에드워드 왕자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전 부대 양익으로 선회."
"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면 적군의 포위가 풀리는..."
"포위된건 우리다. 저들은 증원군이 아니야. 저들은 적..."
순간 숲속에서 화살비가 쏟아져 왕자의 군대에 내리꽂혔다.
"크아아아악!!!!"
엄청난 비명소리가 울려퍼지고 우위를 차지하다 증원군의 도착에 사기가 오른 부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대체 이게 무슨 일이... 이건 틀림없는 아군의 장궁용 화살인데... 왜 저들이 반란을..."
"저들이 반란을 저지른게 아니다. 아마도... 반란군은 우리인듯하다. 뭔가 런던에서 이변이 일어난게 틀림없다. 그래... 그래서 섬머셋 공작과 혈연인 스코틀랜드가 저렇게 미친듯이 공격을 해오는 거였군. 다들 우회하여 퇴각하라. 차분한 후퇴는 도저히 무리다. 각 부대는 개별 지휘관의 선도에 따라 산개하여 후퇴한다."
"어디로... 어디로 후퇴한단 말입니까? 저들이 노섬벌랜드에서 왔다면 이미 본진도..."
장교들의 절망적인 목소리에 그는 힘겹게 웃으며 대답했다.
"지옥으로 후퇴하긴 무리겠지?"
"왕자님!"
"그래... 명령한다. 다들 앙주로 피신하라. 살아남아라. 죽지 말고 적진을 돌파하여 앙주의 조안 공작에게 가라. 그녀만이 너희들을 거두어 줄것이다. 서둘러라. 후위는 내가 맡겠다."
"안됩니다. 지금 후위에 계시는 건 자살행위입니다!"
"알고 있다... 이제 다시 만나지 않기로 약속했으니 지켜야 겠지... 그리고 부끄럽지 않은 잉글랜드의 왕자로서... 그녀의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구나..."
"왕자님... 지금 무슨 말씀을..."
"어서 가라. 내가 너희들의 뒤를 지킨다. 서둘러 이 지옥같은 땅, 왕이 없는 나라에서 도망쳐라. 잉글랜드 왕립 기병대 최후의 돌격이다 가자!!!"
왕자의 명령과 함께 부대가 쏟아지는 화살비를 맞으며 황급히 선회하기 시작했다.
처음 소식을 전한 사람은 의외로 에라드였다.
"오늘 전서구를 받았습니다. 왕립 경기병대의 전용 비둘기입니다. 전문이 들어있더군요."
"내용을... 말해주세요."
나는 애써 침착하게 대답하려 했지만 찻잔을 든 내 손은 떨리고 있었다.
"국경을 넘은 스코틀랜드군과 교전하다 아군의 공격을 받고 대참패... 왕자의 명령으로 각 부대는 산개하여 앙주로 향하고 있음. 왕자는 후위에서 퇴각을 지휘하다 적의 공격에 중상... 각 지역에서 추격부대가 난입하여 지속적인 피해를 발생시키며 도주하고 있음. 앙주에서 서둘러 구원 요청. 이상입니다."
나는 루이 첩보관을 돌아보며 말했다.
"구할 방법을 말하세요."
"총독님... 사실상 절망적인..."
"당장! 방법을 말하라구요!!!"
결국 폭팔한 나의 말에 그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지금은... 기다리는 것 외에 도리가 없습니다. 확인된 바로는 일부 부대가 천신만고 끝에 왕립 해군과 연락이 닿아 잉글랜드를 벗어나 이곳으로 향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스코틀랜드 전장에서 공격의 주체는 섬머셋이었고, 그들이 상륙할 유력한 지역인 노르망디는 베드포드의 영역입니다. 지금 섬머셋과 베드포드 양쪽에서는 우리 앙주와 에드워드 왕자님을 대역 죄인으로 몰아 그 일당까지 극형에 처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사할수 있을지 여부는... 오직 주님만이 아실듯 하군요."
나는 고개를 돌려 에라드를 바라보고 말했다.
"이미 도착해서 앙주로 오고 있는 자들이 있을지도 몰라요. 구하러 갔다 올수 있으시겠어요?"
"노르망디에 너무 접근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되지만... 어떻게든 노르망디에서 운좋게 벗어난 동료들이라면 저도 최대한 구출할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억지로눈물을 참았다. 말하는 것조차 금지된 사람...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그 사람... 이제 살아서는 다시는 보지 않기로 약속한 그 사람... 그 사람이 지금 오고 있다. 이곳 앙주로 오고 있다. 나는 간절히 주님께 기도했다. 부디... 살아서 만날수 있기를 그 어떤 모습이라도 좋으니, 약속을 깨는 것이라도 상관없으니 그를 다시 볼수 있기를 그것을 위해 내 목숨을 필요하다면 가져간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나는 기도했다.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리고 몇일 후 에라드가 돌아왔다. 그와 함께...
"서둘러, 붕대를 넉넉히 가져오고 메스와 겸자도 가져와!"
필립 재상이 소리쳤다. 그의 처음보는 의사로서, 재상으로서 가장 다급한 모습이다.
"죄송합니다... 왕자님께서 모두를 지키시려고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계시다가..."
패잔병 중에 가장 선임이었던 장교가 울먹이며 나에게 사죄했다.
"다른 병사들도 어서 옮겨! 위중한 녀석들이 너무 많아. 젠장할... 같은 잉글랜드군이었잖아. 왜 이렇게 잔인하게..."
에라드는 황급하게 사람들을 모으고 패잔병 중에 부상자를 부축하며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아군을 이토록 잔인하게 몰아붙인 노르망디의 병사들을 원망했다. 그리고 나는...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머리가 깨져서 거의 산 송장이 되서 돌아온 그의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을 뿐... 나는 이 상황에서 너무나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했다. 나는 지금 뭘하고 있는 걸까? 여섯시간에 이르는 대수술을 마치고 필립 재상이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나왔을때 사람들은 그에게 몰려가 왕자님의 상태를 물었다. 그는 멍하니 저너머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보며 망설이며 대답하였다.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회복의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지금 겨우 실날같은 목숨을 이어가고 계시기는 하지만... 그것도 언제 끊어질지 알수 없는 상황입니다. 모든 것은 주님과 환자의 의지에 달린것... 더 이상 의사로서 뭔가를 장담할수 있는 상황이 아닌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걸까? 결국 모든 것은 이렇게 될것이었는데... 나는 결국 내게 가장 소중한 마지막 하나까지 잃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내가 시장이 되었을때부터? 사면을 받았을때부터? 왕의 총애를 얻은 다음부터? 퍼스트레이디가 되었을때 부터? 전쟁에서 승리한 다음부터? 그 어느 시점이었든 이제는 더이상 중요치 않다. 중요한것은 이제 모든걸 정리할 시간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큰 결심을 해야 했다. 너무나도 잔인한 결심을... 그리고 그것을 실행할 시간은 예상외로 빠르게 다가왔다.
"프랑스가 이번 계승의 내전에 참전하였습니다. 섬머셋에서 스코틀랜드를 참전시킨 시점에서 어느정도 예상되기는 했지만... 베드포드의 프랑스 참전은 이미 이 전쟁에 명분을 날려버렸습니다. 그들이 진정 잉글랜드의 왕을 논하고 싶다면 외세를 끌어 들여 자국의 백성과 병사들을 공격하게 하는 것은 금기이거늘... 그들의 행동은 이미 왕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것과 다름없는 권력에 미친 귀족들의 것에 불과합니다."
평소의 온화한 태도와는 달리 유난히도 강한 어조로 말하는 필립 카페... 나의 든든한 조언자...
"그 거지 새끼들 저번에 앙주에서 트랩에 제대로 걸려서 털리고 군비 재정비하는데 10년은 걸릴거라고 예상했는데... 당장 명예와 복수에 미쳐서 대군을 동원한듯하더군. 뭐? 보급은 이곳 앙주에서 현지 조달하겠다고? 이런 죽일 놈들... 내가 어떻게 일궈놓은 풍요로운 이 땅에 더러운 군화발을 들이밀어."
유쾌해보이지만 한치의 빈틈도 없이 시의 재정을 관리하고 풍요를 선물한 안젤모 로시니... 나의 믿음직한 재무관...
"지금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목표가 이곳 앙주라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샴페인 공작이 지휘관을 맡았더군요. 그는 왕과 함께 지난번 전쟁의 복수와 이땅의 풍요를 노리고 있습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 그 놈들은 이곳 앙주만 손에 넣는다면 잉글랜드야 만신창이가 되던 말던 상관없을것입니다."
모르는게 없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드고 들려주는 루이 느베리... 나의 귀, 나의 입, 나의 눈...
"교황의 허락도 받았다고 하더군. 망할 놈들... 교황성하가 그런 더러운 전쟁을 인정하실리 없거늘... 또 어부의 반지를 뺏아 성하께서도 모르는 서류에 날인한거겠지. 오! 주여 저 무도한 자들에게 천벌을..."
늘 엄격하고 원리원칙을 중시하지만 진심으로 어려운 이들을 배려하고 걱정하는 앙리 쿠시... 나의 엄한 부친같은 분...
모두 소중하고 과분한 나의 각료들... 아직 나에게 남은 몇안되는 소중한 사람들...
그들은 연이어 에드워드 왕자의 망명 이후 그의 송환을 요구하는 베드포드의 둘째 왕자의 요구를 거절하자 그 대가로 진행된 프랑스의 앙주 침공에 대한 대책을 세우느라 분주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이렇다할 방법은 나오기 어려웠다. 프랑스가 동원한 군대는 4만 대군... 하지만 이곳 앙주의 군대는 이번에 에드워드 왕자를 따라 합류한 병사를 합쳐도 500명에 전쟁 경험이 없는 민병대가 전부였다. 승산없는 싸움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든 나를 피신시키고 앙주의 부를 그들에게 최대한 넘기지 않는 방향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각료들 사이에서는 침묵이 감돌았다. 나는 발걸음을 옮겨 창밖을 내다보았다. 펼쳐진 앙주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시장으로서 보람있게도 그동안 앙주는 풍요와 행복이 넘쳤고 그래서 나는 이곳에 앞으로 다가올 절망이 나로 인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해야 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말에 대해서도 가슴 깊이 괴로워해야 했다. 하지만... 더 망설이면 안된다. 그래서는 또다시 실수를 반복할 뿐이다. 나는 마음을 다잡으며 말했다.
"필립 카페."
"네?"
"안젤모 로시니 도제."
"것참 도제가 아니라... 엥?"
"루이 느베리."
"무슨 명하실 것이라도..."
"앙리 쿠시."
"뭘 말하려는거냐? 총독."
나는 다시 한번 깊에 심호흡을 했다.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
"앙주의 총독으로서 명합니다. 당신들을 오늘부로 해고합니다."
창밖을 바라보며 그들을 등진 나는 그들의 표정을 볼수는 없었다. 자신없었다. 그들의 얼굴을 보고 거짓말을 할 각오가... 나는 한명씩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느끼며 말을 이어나갔다.
"동시에 금일부로 당신들을 이곳 앙주에서 추방합니다. 재산과 소지품은 가지고 떠나는 것을 허락합니다. 만약 금일 이후 앙주에서 발견될 경우 강제로 퇴거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총독님... 이제 무슨?"
"그만 됐잖아!!!!!"
나의 일갈에 뭔가 말하려던 필립 재상의 말이 멈췄다.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그만 됐잖아. 잘 놀았잖아... 안그래? 영감님들? 그 정도 놀았으면 그만 할줄도 알아야지. 밑천도 없는 젊은 계집애가 같이 놀자고 하니깐 쭐래쭐래 신나게 따라와서 추태부리면서 잘놀았으면... 이제 그만 하라구. 다 늙어서 쪽팔리지도 않아?
손녀뻘밖에 안되는 갈보년 밑에서 완장하나씩 차고선 왕국놀이하면서? 이제 영업끝났어. 아침 됐다고. 업소들 해뜨면 알아서 집에 가는게 상식이잖아. 그 정도도 모를만큼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은거 아니잖아.
그러니깐!!! 다들 돌아가. 이제 지겨우니깐 그만하고 각자 제 살길 찾아서 돌아가. 어디가서 뭐라고 하면 그냥 오입질 한번 해볼려다 지갑만 털리고 망신만 당하고 왔다고 그래. 다들 좀 비웃고 말지 뭐라 욕하는 사람 없을테니깐. 이제 다 끝났어... 그러니깐 여기서 다들 꺼지라구!"
의외로 반발한것은 앙리주교였다.
"너 지금 무슨... 뭐냐?"
그를 제지한 것은 필립 재상인듯 했다. 그가 말했다.
"지금 하신 말씀 재차 확인하겠습니다. 앙주의 시장으로서 각료회의 해산 및 각 각료들의 해임을 통보하신것 맞습니까?"
나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얼굴을 보면 오열할지도 모른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말없이 솜을 들어 손가락으로 방문을 가리켰다. 필립 재상은 뭔가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만 퇴거하겠습니다.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총독님."
그말과 함께 그들은 방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들이 나가자 그제서야 주저 앉아 머리를 쥐어싸매며 오열하고 흐느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정말로 미안해요... 하지만 당신들까지 나 때문에 죽어선 안되요..."
그리고 눈물이 멈출무렵 나는 누군가 회의실로 달려오는 것을 느꼈다. 강하고 거친 발걸음 소리... 그가 오고 있다.
"어서 오세요, 에라드경..."
나는 평온하게 그를 맞았지만 그는 당황해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참사회를 해산하신다니요? 그리고 영감님들을 국외추방이요? 아니 왜 지금 이 상황에서..."
"마침 잘오셨군요. 에라드 경도 준비하세요."
"무슨 준비요?"
"이곳을 떠날 준비요. 원래 이곳에 오랫동안 주둔한 부하들과 이번에 합류한 경기병대를 데리고 얼른 도망치세요. 그리고 마틸다도 데리고 가세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곳을 버리고 떠나라뇨? 그래서 저 영감님들도 추방하신겁니까? 공작님, 절망적인 상황인건 알지만 지금 하실일은 도망치는게 아니라 방비를 튼튼히 하셔서..."
"위체 가문의 가족들이 베드포드의 인질로 잡혀 있으시죠? 어머님과 아버님, 형님 부부까지도... 그리고 그 소식을 전한 베드포드의 전갈이 편지와 동봉된 단검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나의 말에 에라드는 놀란 얼굴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그는 얼굴을 굳히며 대답했다.
"제가... 지금 가족들이 인질로 잡혔다고 보낸 단도를 총독님과 왕자님에게 향할 놈으로 보셨습니까?"
"아니요. 그럴리 없죠. 당신같이 고지식한 사람... 당신이 그럴리는 없죠. 그래서 떠나셔야 해요. 여기 계시는 한 그런 강요를 계속 받게 되실거예요. 저는 당신이 가족을 잃는 슬픔을 겪는걸 보고 싶지 않아요."
"아뇨, 저는 못떠납니다. 저는 이곳에 남아 지킬겁니다. 당신과 왕자님을..."
"그리고 마틸다도... 데리고 가세요. 같이 떠나세요."
"총독님 지금 저는..."
"마틸다 임신했어요."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대부분의 처녀 임신시킨 사실을 알게된 어벙한 청년처럼 버벅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저... 저 총독님 그거 딱 한번... 아뇨, 그렇다고 제 애가 아니라는 건 아니고... 그러니깐 제 말은..."
"알고 있어요. 당신이 마틸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래서 옛 아픔을 건드리고 싶지 않아 서로 사랑하면서도 안지않고 곁에 있어줬다는 것을... 그리고 왕자님이 반송장이 되서 이곳에 오셨을때 당신이 어떤 절망을 느꼈고 그걸 마틸다가 위로한 사실도 알고 있어요. 그러니깐... 당신을 탓하지 않아요. 어서 떠나세요. 아이는 살려야죠."
"하... 하지만 왕자님은... 그리고 총독님은..."
"그분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수치스럽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게... 그리고... 저도 걱정하지 마세요. 천한 출신이지만 비겁하게 살거나 불명예스럽게 죽진 않겠습니다. 제 손으로 모든것을 마무리 할수 있도록 저희 둘만 남겨주세요. 그리고 두 사람은 부디 행복해지세요. 우리 두 사람 대신 그 누구보다도 더 행복해지셔야 해요. 그게 제가 앙주의 마지막 남은 각료인 당신에게 명하는 마지막 명령입니다."
나는 무너진 그에게 다가가 그의 이마에 키스해주며 그를 축복해주었다. 그는 서럽게 오열하였다. 그렇게 나는 그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남은 각료회의의 직원들에게 명해서 프랑스군으로 사람을 보내라고 전했다. 앙주는 성문을 열고 무조건 항복을 한다는 전언을 보냈다. 이제 거의다 마무리 되었다. 나는 이제 남은 내 마지막 일을 하기 위해 왕자님이 머무는 시장 관저의 의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왕자님... 다 떠났습니다. 이제 둘만 남았네요..."
나는 왕자의 침상에 앉았다. 그는 몇주째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입으로 억지로 떠먹이는 죽으로 겨우겨우 연명하고 있지만 야위어진 팔과 머리를 감은 붕대가 그에게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강하게 상기시켜주었다. 나는 최대한 환하게 미소 지으며 왕자의 몸을 딱아주고 붕대를 갈아주었다. 그리고 다 마치자...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가장 최근의 보고에서 프랑스의 군대는 밀물같은 속도로 밀려와 이미 앙주의 영내에 진입하고 이곳 앙주시에서 하루거리에 주둔하고 있었다. 서둘러 각료들과 지인들을 대피시킨것을 다행이라 생각할수 밖에 없었다.
지금쯤 항복의 의사가 프랑스에 도착하였을 것이다. 성문을 활짝 열려있고, 앙주를 접수하러 프랑스의 선발대가 이곳으로 들이 닥칠것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뭔가를 해보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나의 운명을 이겨 내지는 못했다. 처음 앙주의 시장이 되고 죽으러 나섰던 날과 다름없는 시간속에서 나는 놓여져 있다. 그것도 그동안 생긴 나의 소중한 수많은 사람들을 잃는 슬픔과 함께... 나는 그 마음을 담아 왕자에게 말했다.
"그때 왜 저를 살리셨어요? 그러지 않으셨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냥 그렇게 한 창녀가 죽고 도시는 해방되고 왕은 위엄을 차리고 끝났다면 좋았으련만... 그래도... 원망하지는 않겠습니다. 당신 덕분에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도 많이 생겼고, 제가 상상할수 조차 없는 업적도 세웠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당신을 만나서 너무나 좋았습니다."
나는 조용히 품속에 든 에라드에게 빌린 물건을 꺼내며 말했다.
"사랑합니다. 왕자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당신을 구할수 있다면 기꺼이 그럴수 있을만큼 사랑해요. 그날 당신에게 은화를 요구한건 진심이 아니었어요. 사랑하는 나의 왕자님... 이제 일어서지 못하는 당신도 적들에게는 좋은 장난감이 되겠죠? 저는 당신을 그런 고통과 굴욕에 내몰고 싶지 않아요. 저 역시 이제 곧 프랑스군이 들이닥치면 마녀로 몰려 사형당할겁니다. 그러기 전에... 제가 당신의 고통을 덜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곧 저도 당신 곁을 따르겠습니다."
나는 단도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정확하게 왕자의 목을 겨누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칼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건내었다.
"사랑해요... 왕자님... 저를 용서하세요."
그리고 단도를 내려찌르려는 찰라... 기적이 일어났다.
"고백해 준건 고마운데... 거기 찌르면 고백에 대답 못해요."
순간 들린 목소리에 나는 팔을 멈추고 눈을 뜨고 그를 보았다. 그는 힘겹게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왕자님!!!!!!"
"좋은 아침... 아? 혹시 오후인가요? 뭐 상관없죠. 당신이 있는걸 보니 여긴 앙주인가 보군요."
"맙소사... 이걸 어떻게해... 안돼요. 지금 정신을 차리시면, 에라드경은 이미 떠났는데..."
당황한 나를 그는 힘겹게 위로하듯이 말했다.
"자, 진정하세요. 그리고 나 아직 안죽었으니 확인사살하려고 하지 말고요. 일단... 먼저 사과부터 하죠. 다시는 안보겠다고 했는데 얼렁뚱땅 다시 와버렸어요. 미안해요. 하지만 내 탓이 아니예요. 부하들이 나몰래 옮긴걸꺼예요."
"지금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예요. 맙소사... 지금 의식을 차리시면 어떻게 해요. 지금 여긴 절망만 가득해요. 4만의 프랑스의 대군이 저와 왕자님을 죽이러 몰려오고 있다고요."
"그런가요? 이런이런... 항상 당신과 함께하면 이런 소동들이 일어나곤 하죠. 뭐 익숙해진다는 사실이 두렵군요. 자 얼른 준비를 하죠. 이제 그들을 막아내는 기적을 보여줄 시간이잖아요. 늘 그렇듯이..."
나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왕자님... 말씀드리지만 이제 다 끝났어요. 기적같은건 없어요. 이제 저희들을 기다리는 건 사형대 뿐이예요."
"어라? 제가 착각했나요? 전 분명 당신인줄 알았는데... 사형대에서 모든 잉글랜드의 귀족들을 모욕하고 중지를 치켜들고도 무사히 살아남은 여성이... 아니었나요?"
"그건... 그냥 우연에 정말 운이 좋았던것 뿐이예요. 지금은 정말 정말적인 상황이라구요. 제게 그런 무리한 걸 바라지 마세요. 저는 당신도 알고 있다 시피 그냥 앙주의 거리의 여자였고 말도 안되는 행운과 주변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행운아일뿐 이것을 해결할 능력도 없고 방법도 몰라요."
나의 초조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 아직 몸의 고통이 남아 있는지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네에... 알고 있어요. 아마도 이 세상에서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저는 당신에게 기대하고 있어요. 당신이 걸은 길을... 당신이 만든 세상을... 당신이 만들어간 시간을... 이제 슬슬 솔직해질 시간도 되지 않았나요? 당신 스스로 이미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확실히 당신이 만든 기적은 당신의 손에 이뤄진것 만은 아니죠."
그는 역시나 힘겨운지 말을 끊고 다시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가다듬으며 식은땀을 송글송글 흘리며 말했다.
"아무런 미련없이 왕위를 버리고 성지를 탈환하러 가서 일생을 바치고 기독교 역사상 최강의 기병대를 이끌었던 구호기사단의 단장이 당신의 재상으로 있었습니다."
그 시간 필립 재상은 후드를 두른 레반트에서 온것으로 짐작되는 거칠어 보이는 사나이들에게 걸어가고 있었다.
"부의 독점을 경고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부가 증대될때 세상은 더 풍요로워 진다고 주장하고 실제로 전쟁없이도 베니스를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잠깐동안 열었던 천재 도제는 당신의 재무관으로 있었습니다."
그 시간 안젤모 재무관은 수로를 통해 들어가는 도시에 진입하며 자신을 알아보고 경악하는 이들에게 사나운 미소를 보냈다.
"유럽의 뒷세계를 좌지우지 하며 수많은 황제와 왕과 방백들을 잠못이루게 만든 체스마스터가 당신의 첩보관으로 있었습니다."
그 시간 루이 첩보관은 런던의 어느 허름한 퍼브로 들어가고 있었다.
"카톨릭의 최후의 양심이라 불리며 빈자와 이교도의 관용을 주장했던 주교는 당신의 교구 사제로 있었습니다."
그 시간 앙리 주교는 뭔가 왁자지껄한 소음이 들리는 수도원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저... 잉글랜드의 미친 왕자도 감히 당신의 수하라 생각합니다.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은 절대 한곳에 모일리도 모을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당신의 밑에 있었습니다. 당신에게 묻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그들은 당신의 밑에서 있었을까요? 대답해보세요."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맑은 눈빛... 고통이나 부상으로 인한 광기는 아니다. 나는... 침을 삼키며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저를... 동정하셨기 때문인가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내가 살면서 들어본 중에 가장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아뇨, 그건 당신이 왕이기 때문입니다."
한참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저는 천한 매춘부입니다."
"왕은 핏줄이 아닌 핏값으로 결정됩니다.."
"저는 명가의 출신도 아니고 그저 그런 떠돌이 평민의 자식입니다."
"왕은 누군가의 후광이 아닌 스스로 일어서는 자입니다."
"저는 모든것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수 없어요."
"왕은 반드시 자기 손으로 뭔가를 하는 자는 아닙니다."
"대체! 당신에게 있어 왕은 무엇이길래 저를 왕이라고 부르시나요? 저는 그 어떤 혈통도, 능력도, 업적도 없는 천한 여자일 뿐이라고요."
나는 히스테릭하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는 나를 달래듯이 차분하게 말했다.
"신분과 업적, 능력은 왕의 자격이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는 왕의 자격은 세가지입니다."
"그게 뭔가요?"
그가 대답했다. 그것이 내 일생에 두번째로 충격적인 말이 되었다.
"자신의 주어진 일을 충실히 수행할 하는 자가 왕입니다...
자신보다 남을 위해 사는 자가 왕입니다...
사람들 앞에 한걸음 나서길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이 왕입니다...
쉽고 간단한 이야기 처럼 들리나요? 그것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자는 지금까지 살면서 저는 단 한명 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왕도를 논하는 자들의 개소리는 무시하십시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왕은 오로지 그것을 행하는 자 뿐입니다."
나는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엄마의 입버릇... 그리고 유언이 되었던 말... 그것이 왕도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나는...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 의문에 대답을 해줄 왕자는 격한 기침을 하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왕자님... 왕자님... 정신 차리세요."
"조안... 나의 왕이여...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하세요. 왕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왕의 입장에서 행동하세요. 백성들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땅의 진정한 왕이 돌아오기를... 그리고 왕으로 일어서기를... 자신들을 이끌어주기를... 당신이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면... 백성들이 대답할겁니다. 백성들이 결정할겁니다. 백성들이 지킬것입니다. 바위에 박힌 칼을 뽑는 바보같은 서커스가 아니라 왕으로서 해야 할일을 하세요. 제가 아니라 당신만이 이 땅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부디..."
그러나 왕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고 내 간절한 외침에 대답한것은 시장관사를 박차고 들어온 다른 사람들이었다.
"저기 있다. 앙주의 마녀다. 체포하라."
그리고 갑옷을 갖춰입은 일단의 사람들이 달려와 나를 사정없이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세이버 디스하는 에드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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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2 참사회...
과연 대역전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
그나저나 주인공이 왕이 되든 백작으로 남든 상관없으니 저 광대랑 천수를 누리고 죽는 전형적인 중세식 해피엔딩 좀 부탁드립니다.
하 제발..
루이첩보관이 죄다 암살하고 안젤모도제가 용병단 왕창고용 필립카페의 홀리오더 주교가 다른주교들 꼬셔서 왕위인정 정도 될려나요. 아님. 먼바다건너 수상한 배가 보인다던가...
후후후... 설마 잔 다르크 흉내 내시려고... 앙주를 구하다 화형당한... 뭐 그런 성녀 비스무리한... 아님 에드워드의 클레임 가지고 프랑스왕에게 흥정해도 좋을 듯... 어찌되었듯 적절한 끊기로 인해 궁금해지네요... 결말 말입니다... 플레이 진행이 안되어서... 그냥 접고 나오시면 안되요~~~ 엔딩까지 필요해요...
아아 ㅠㅠ 가슴이 뭉클해지는 진행이네요. 그나저나 이거 크킹 돌아가면 이 이야기가 떠올라서 암살은 다 했네요.
클라이맥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