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대승불교의 어젠다는 일심이고 그 사상은 환원에 있다. 이것을 가장 논리적으로 체계화시킨 논서가 바로 대승기신론이다. 그러므로 대승기신론은 대승불교의 요점이고 핵심이며 정통 교과서라서 대승불교의 생명은 이 기신론에 의해 그 존망이 극명하게 갈라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자고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 대승기신론을 연구하면서 보급해 왔다. 하지만 그 내용이 호락호락하게 아무에게나 그리 쉽게 잡혀지는 논서가 아니다. 그것은 이 한 권의 책이 부처님의 45년 설법을 종횡무진으로 모두 다 꿰차고 있기에 그 깊이가 대단히 심오하고 그 넓이가 실로 방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기신론을 지칭해 천하의 대론이라고 명명해 왔던 것이다.
비중이 이렇게 대단한 논서다 보니 많고 많은 번역본들이 시절을 가리지 않고 시중으로 쏟아져 나왔다. 거기다가 해동소까지 쉴새없이 서점가를 도배해 왔다, 그런 교재들을 잡고 시류에 뒤질세라 비전문가들이 도처에서 횡설수설하면서 제멋대로 이것을 강의해 왔다. 그 폐해로 기신론이 말하고자 하는 대의는 학문이 되어 버렸고 그 내용은 공중에 뜬 희론이 되어 버렸다.
그로 인해 불교교세는 지금 눈에 띄게 점점 쇠퇴하여지고 법륜은 전륜의 탄력을 상실하면서 신행자가 배워야 할 교리는 학자들의 연구과제로 책상에 올라가 있고, 수행에 필요한 산속 사찰은 일반인들의 문화장소인 휴식공간으로 그 기능이 탈바꿈되어 버렸다.
이런 문제를 더 두고 볼 수가 없어 기신론만이 갖고 있는 지고한 가치와 심오한 내용을 정확히 해설하여, 곳곳에서 비법으로 자행되는 그 왜곡과 폄훼의 문제를 교정시켜 탈색되어 가는 대승불교의 정수를 여실히 드러내고자 이제까지 30번 이상을 원효센터에서 강의해 온 강본을 기준으로 해 감히 대승기신론혈맥기를 내놓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부디 당신이 갖고 있는 작은 소견의 잣대로 이 기신론해동소의 혈맥기를 재단하려 하지 마시라. 그것은 마치 피라미를 노리는 막대낚시로 고래를 잡으려는 것과 같이 쓸데없는 망상을 일으키는 것이고 분수를 넘어가는 무모한 도전이 되는 것이기에 그렇다.
이정표가 없고 중심추가 없으면 그 종교의 도그마는 그저 말장난에 불과해질 수 있다. 이 혈맥기는 한국불교가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교리와 신행의 문제를 정확히 해결해 주어 위축되어 가는 불교의 교세를 반드시 중흥하게 할 것이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부처님은 태양처럼 나날이 빛나고 부처님의 말씀은 천지에 고루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반딧불은 어두운 밤에 나타나 근기가 유약한 아이들의 마음을 한없이 설레게 하다가 빛 중의 빛인 태양이 뜨면 조용히 사라져 버린다. 그처럼 많고 많은 기신론 번역본들과 해석본들은 그 나름대로 반딧불의 역할을 다 해 주었다. 그것은 바로 이 혈맥기를 맞이하기 위해 제각기의 조그만한 등불이 되어준 셈이다. 그 덕택으로 이 혈맥기가 태양처럼 웅휘하게 나타나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매는 일체 중생들을 일심의 근원으로 거룩하게 회향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구도의 첫걸음은 수용의 자세에 있다. 쓸데없는 사집과 언어의 희론을 떠나 이 글의 내용을 담백하게 그대로만 수용한다면 이 혈맥기가 당신의 혈통을 범부로부터 부처로 바꾸어 줄 것이다. 그래서 마명보살의 혈통과 원효대사의 맥박을 고스란히 그대에게 수혈해 준다는 뜻으로 이 역해서를 대승기신론해동소별기 혈맥기라고 하고, 줄여서 기신론 혈맥기, 또는 해동소 혈맥기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 이 혈맥기의 위덕으로 누구든 삼계도탈을 시도한다면 천지가 개벽되는 변혁과 동시에 일심으로의 환원이 일어나는 기적을 맛볼 수 잇을 것이다.
부처님 가신 지 2562년 맹하지절에
원효센터에서
공파 識
첫댓글 일심으로의 환원.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