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4년 전 일이다.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은 2010남아공 월드컵 8강전에서 독일에 0:4로 대패했다. 메시는 귀국하면서 ‘메시의 헤어스타일을 마라도나처럼 바꿔라’는 현수막이 걸려진 것을 봤다. 메시가 마라도나에 못 미친다는 것을 비꼰 말이다.
실제 아르헨티나 국민은 소속팀 FC바르셀로나에서 빅이어(유럽 클럽 대항전인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든 메시보다, 월드컵 트로피를 든 마라도나를 더 자랑스러워 했다. 메시는 그렇게 4년을 또 기다렸다.
지난 월드컵에서의 8강 탈락을 이번엔 만회할까. 메시는 이번에도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2일(한국 시각) 열린 스위스와의 16강전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했다. 그는 이날 한 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최고 수훈선수(MOM)에도 뽑혔다. 4년 연속 세계 최고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를 수상한 그지만, 최고의 무대에서 자신의 팀을 우승시키지 못한 선수는 반쪽 짜리일 뿐이란 것을 메시는 잘 알고 있다.
메시의 축구는 아름답다
메시는 라이벌이라 불리는 크리스티안 호날두와 비교하면 화려함은 덜하다. 호날두가 가진 엄청난 스피드와 피지컬, 이를 통한 고속 질주가 메시에겐 없다. 직선으로 날아가다 뚝 떨어지는 ‘무회전 슛’ 또한 호날두의 플레이를 화려하게 보이게 한다.
-
- 메시는 호날두 보다 화려하지 않지만 더 세련됐고 효율적인 축구를 한다/뉴시스
대신 메시의 공격 방법은 좀 더 효율적이고 세련됐다. 그는 절대 필요 이상으로 공을 소유하지 않는다. 공을 1m 이상 툭 차고 뛰는 식의 드리블도 절대 없다. 짧게 치고 나가면서 방향 전환을 수시로 하며 공간을 찾는다. 축구평론가 정윤수 씨는 “메시의 드리블은 도로 주행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날렵하게 빠져나가는 스포츠카를 닮았다”고 했다. 최소한의 드리블로 공간을 만들고서 패스를 하거나 바로 슛을 하는 게 메시의 스타일이다.
슛의 순도도 진하다. 그는 지난 2012년 91골로 한 해 최다 골을 기록하며 골에 대한 이정표를 새로 세웠다. 소속팀 FC바르셀로나 득점의 40%를 메시가 책임진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4번이나 득점왕을 했다. 그는 좌우 위아래, 항상 골키퍼가 손을 쓸 수 없는 방향으로 공을 정확히 찬다. 알레한드로 사베야 아르헨티나 감독은 “골키퍼가 두 명 있어도 메시의 슛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메시의 존재는 이미 전술 그 자체기도 하다. 메시를 막겠다고 수비수가 그를 에워싸면 그는 공간을 찾아 떡 하니 동료에게 패스해 버린다. 메시만 막다간 그의 동료에게 당하기 쉽다. 메시는 이번 월드컵에서도 도움 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메시의 축구를 아름답다고들 한다. 이번 월드컵 최고의 악동인 수아레스는 메시와 호날두와의 비교에서 “호날두는 완벽한 기계(a perfect machine)와 같고, 메시는 아름답다(beautiful)”고 한 적이 있다. 조화롭게 이뤄지는 패스, 드리블, 슛과 경기 조율 능력에 대한 최고의 찬사인 셈이다. 바이에른 뮌헨을 이끌었던 명장이자 이번 월드컵서 스위스를 이끌고 메시를 상대했던 히츠펠트 감독 역시 메시와 소속팀 바르셀로나 축구에 대해 아름답다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
- 16세 메시의 1군 데뷔 경기 모습/ FC바르셀로나 제공
돌 잔치 때 축구 셔츠를 입었던 메시메시는 지난 1987년 철강 노동자인 아버지와 청소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말수가 적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키가 워낙 작아 놀림을 많이 받았던 탓도 있고, 아버지 호르헤 메시의 내성적 성격이 대물림된 면도 있다.
다행인 것은 메시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 나라의 어느 부모처럼, 메시의 부모도 축구광이었다. 메시의 첫 돌잔치가 열렸을 때 메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응원하던 뉴웰스 올드보이스란 팀의 축구셔츠를 입었다.
아버지 호르헤는 한때 프로축구 선수를 꿈꿨던 아마추어 축구 선수였다. 열세살부터는 아르헨티나의 뉴웰스 팀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메시가 뛰었던 그란돌리라는 팀에서 감독 생활을 하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축구공을 가지고 놀던 메시의 기량은 또래 중에서도 군계일학이었다. 그는 9살 때 이미 뉴웰스 팀 소속으로 칸톨라오 국제 축구대회에 나가 남미 25개 팀을 따돌리고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뉴웰스에서 메시를 지도했던 에르네스트 베치오는 “메시는 팀 동료를 위해 경기를 하면서도, 혼자서 상대팀의 절반을 개인기로 따돌리기도 했다”고 했다. 메시는 토너먼트 대회, 친선 경기 등을 합쳐 한 시즌에 100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메시, 축구를 가지고 놀다메시는 어려서부터 즐기는 축구를 배웠다. 아버지 호르헤 메시는 이기기 위한 축구가 아닌, 즐기기 위한 축구를 메시에게 가르쳤다. 호르헤는 자신이 못 이룬 꿈을 메시를 통해 이뤄야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메시에게 억지로 선수 생활을 강요하거나, 무리해서 축구 연습을 시키지 않았다.
다만 메시가 원하면 형들과 사촌을 불러 축구 시합을 열어주기도 하는 등 즐길 공간은 마련해 줬다. 전적으로 메시가 원하는 선 안에서만 축구를 즐기도록 한 것이다. 그는 후에 언론 인터뷰에서 “메시가 축구를 좋아하고 즐거워하면 그걸로 충분하다”며 “특별히 메시가 프로 선수로 성장한 것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고 했다.
메시의 훈련을 보면 이런 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메시는 훈련 때 특정 기술을 열중해서 익힌 적이 없다고 한다. 항상 공을 차며 논다는 생각으로 훈련에 임했다. 같은 팀의 대선배였던 호나우지뉴는 완벽해질 때까지 연습하는 습관을 갖고 있어, 이런 메시를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다.
물론 메시는 누구보다 경기에 지기 싫어하는 악바리이기도 하다. FC바르셀로나 카데테 B팀을 가르쳤던 가르시아 감독은 메시를 ‘두 얼굴’이라고 부른다. 축구 외엔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지만, 경기장에서는 완전히 돌변한 맹수 같은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가르시아는 “메시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여 이른 시간에 한번 교체를 했더니, 날 죽일 듯 쳐다보더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팀 동료 파브레가스 역시 “메시는 체구가 작았지만, 눈을 부릅뜨며 상대와 맞서곤 했다”며 “경기에서 지면 잠을 못 자는 것이 메시였다”고 했다.
-
- 메시는 거짓 다이빙을 하지 않는다/ 조선일보 DB
거짓 다이빙은 안돼누구보다 경기에 지기 싫어하는 메시지만, 이기기만을 위한 경기는 절대 하지 않는 원칙은 갖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이 ‘다이빙’에 대한 그의 철학이다.
실제 축구 경기는 선수들 간의 ‘몸의 대화’가 치열하다. 수비수들은 몸놀림이 좋은 공격수에 손이나 발, 어깨 등을 사용해 공격수를 차단하려 한다. 때로 가해지는 깊은 태클은 ‘우리 진영에서 까불지 마라’는 수비수들의 경고다. 상대방을 움츠러트려 골을 넣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이들의 최대 과제기 때문이다. 일부 국내 축구 지도자들은 고의적으로 반칙하는 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상대의 기를 꺾는데 영리하게 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어릴 때부터 방법을 전해준다고 한다.
이에 대한 공격수들의 방어책은 ‘다이빙’이다. 수비수와 접촉이 조금만 있어도 공격수들은 아주 크게 넘어진다. 심판을 속이려 한다는 의도를 비꼬아 ‘할리우드 액션’이라고도 부르는 이런 다이빙은, ‘날 함부로 건드렸다간 페널티 킥을 각오해야 할 거야’라는 공격수의 맞대응이다. 우리가 잘 아는 세계적인 공격수인 호날두, 드로그바, 클린스만, 히바우두 등은 모두 한때 다이버(diver)란 별명을 갖고 있었던 선수다.
그러나 메시는 다이빙을 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공격의 흐름이 끊기는 것보단 공을 사수해 골을 터뜨리는 걸 즐기기도 하지만, 굳이 일어설 수 있는 경우인데 넘어지는 것은 거짓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대신 메시는 거친 태클을 할 선수에게 어깨를 으쓱 올리거나, 엉덩이를 손으로 툭 치는 귀여운 반항만 한다.
이 때문에 동료들은 메시와 경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함께 뛰는 디 마리아와 사발레타는 “메시와 함께 뛰는 것은 큰 행운”이라고 했고, 밀리토 역시 “메시의 훈련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자랑거리”라고 했다. FC바르셀로나에서 메시와 동료였던 사무엘 에투는 “실력과 인성 모든 면에서 근접할 수 없는 선수”라고 말한적도 있다.
메시는 어려서부터 쭉 축구만을 위해 살았다. 어릴 적 숙제를 하지 않은 메시를 혼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일은 축구공을 못 만지게 하겠다’는 어머니 셀리아의 불호령이었다. 스페인 일간지 엘 문도 데포르티보와의 인터뷰서는 취미를 축구라고 말하기도 했다. 메시는 자신이 공을 매우 부드럽게 다룬다는 것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아마 그것은 내가 매 순간 공과 함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냥 온종일 공과 함께 노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한 가지로 모아진다. 메시가 아르헨티나의 전설인 마라도나를 넘어설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는 사람도 아니라는 사람도 있다. 메시는 이렇게 얘기한다. “마라도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더 나은 선수가 되려고 노력한다. 덧붙이자면 마라도나는 특별한 선수였다. 그 누구도 마라도나처럼 될 수 없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