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앞서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에서 쓰는 글이므로 실제 사실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도 있습니다.
많은 야구팬들에게 한대화 감독님의 시작은
82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결승전인 한일전에서 8회 역전 스리런 홈런을 치면서
이름 석자를 세상에 알렸다
나이 스물 세살의 대학 4학년생이 온국민의 영웅으로 떠오른 순간이다
전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고
전국적인 야구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당시 영웅에 대한 환호와 칭송은 우리동네에서는 더욱 컸다
한대화 선수의 고향일 뿐 아니라 같은 동네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전 인동에서 사시던 한대화 선수의 부모님은 마을 잔치를 했었다
나는 그옆에서 구경하다가
떡하나 얻어먹은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아직도 대다수의 열성적인 야구팬들 사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야구 명장면 넘버1은
결단코 82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의 한대화의 쓰리런 홈런포일 정도로
이 순간의 홈런 한 방은
오늘날의 한대화감독을 있게한 결정적인 홈런포라고 할 수 있다.
83년 한대화 선수는 대전 연고팀인 오비베어즈에 입단하였다
입단 동기는 엘지 감독이였던 박종훈 선수이다
대전에서의 인기는 한대화 선수가 많았지만
그해 신인상은 박종훈 선수에게 돌아갔다.
고향에 대한 애착이 박찬호 선수보다 컸던 한대화 선수는
86년 한화이글스 창단시에 대전 연고팀으로의 이적을 강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사실상 신생팀이 기존 타팀들에서 선수들을 트레이드해서
구성되는 시스템을 통해서 볼때
가능한 일이였다
그러나 당시 오비베어즈 감독이였던 김성근 감독은
원년우승 이후 하위권을 맴도는 팀 전력 강화를 위해
현금밖에 받을 수 없는 빙그레 이글스를 외면하고,
해태타이거즈의 황기선과 양승호선수 두명을 받는 조건으로
한대화를 해태로 트레이드 시켜버린다
그리고 빙그레에는 노쇠한 홈런타자 김우열등 5명을 보낸다
이에 한대화는 고향팀인 빙그레 이글스에 보내준다던 약속을 어기고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연고도 없었던 해태 타이거즈로의 일방적인 이적 통보에
강하게 반발하며 한국 프로야구사의 최초의 트레이드 거부파동을 낳게되었다.
결국
85년 말
한대화는 끝까지 트레이드를 거부하며 계룡산으로 잠적하게되었고
1986년도 3월에
한대화의 동국대학교 은사였고 당시 해태타이거즈 투수코치였던
김인식코치가 계룡산까지 찾아가 그를 설득하여
그는 우여곡절끝에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게 되었다.
해태로 트레이드 된 한대화 선수는 혹독하고 선후배간의 위계질서가 강한 해태에서 적응을 못하게 된다
그를 괴롭혀 온 간염이라는 질병 때문에 체력적으로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86년에 해태에 입단하자
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감독이었던 김응룡감독은
OB베어스의 코칭스테프와는 달리
한대화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훈련 방법을 제시하여
해태 타이거즈의
86, 87, 88, 89년 한국시리즈 4연패를 이끌었고
(특히 88,89년도에는 빙그레와 한국시리즈에서 대결하면서
한대화 선수의 활약을 아쉬운 마음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86년부터 91년까지 6년 연속 3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며
이후 93년과 94년에도 역시 3루수 골든 글러브를 수상함으로써
도합 8회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여
단일 포지션(3루수)으로는
역대 최다 골든 글러브 수상자가 되었다.
또한
88년도엔 올스타전 MVP를 수상하였고
89년과 90년엔 2년 연속 출루율 1위를,
90년도엔 타격왕까지 거머쥐었다.
결국
해태 타이거즈로의 이적은
그의 야구 인생의 전화위복이 되었으며
86년 이후부터 90년대 초반까지가
그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때 그는 패색이 짙은 경기 후반엔
어김없이 큰 거 한방으로 역전 홈런, 결승홈런 등을 많이 때려냄으로써
'해결사'라는 닉네임을 얻으며
그야말로 레전드 중의 한 명으로 남게 되었다.
"해결사" 라는 별명에 걸맞는 활약을 펼치다가
엘지로 트레이드 되고
마지막은 만년 하위팀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97년 일년을 뛰면서 선수로서 은퇴하게 된다
물론 은퇴식은 없었다.
대전팬들은 대전출신의 걸출한 한대화라는 프랜차이즈 스타 선수를 갖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한대화 감독이라는 프랜차이즈 스타 감독을 가지고 있다.
무한한 신뢰와 지지를 보낸다
그를 야왕이라고 까지 부르고 있다
감독 부임 후 2년간 참 없는 살림의 팀 전력으로 잘 이끌어 왔다
3년 차인 올해는 지난 2년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팀 전력이 강화 되었다.
99년 우승으로 "20세기 마지막 승자는 한화 이글스" 라는 타이틀은 얻었다
21세기인 지금 그가 82년 한일전 결승전에서 날린 역전 스리런 홈런처럼
3년차 되는 해에 해결사 감독으로서 우리에게 우승이라는 선물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응원하겠읍니다
한대화 감독님.
사랑합니다
첫댓글 한대화감독님을 얻었다면 우리는 조용하지만 꾸준했던 3루수 강석천을 잃거나 외야수 강석천을 만나야했겠죠 ㅎㅎ 1루나 유격은몰라도 큰 경쟁자가없던 2루수는 가능했을지도..
흠 많이 오해 했던부분 이제 풀리네요~
동국대 감독을 지냈던 배성서 감독이 빙그레로 오며 한대화 선수에게 드러누우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요.
아무튼 그 당시에 오비가 한대화 선수를 빙그레로 보내지 않고 해태로 보내는 바람에 지금도 두산을 좋아하지 않는 1인입니다.
하여간 김성근 감독은 주는거 없이 미운게 있어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