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覇業의 章
패업(覇業) I
날씨는 음습(陰濕)했다.
겨울의 문턱을 예고하는 듯 한낮인데도 묵직한 한랭함이 주점(酒店)안까지
깔려있다.
이런 날씨라면 바람막이 문을 닫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주점(酒店) 주인 장우백(張牛白)은 그럴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 다.
주점은 장우백의 모든 것이다.
온갖 고생끝에 이 주점을 사들여 그는 주점장사에 전 인생의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돌려 주점 안을 둘러본다.
한 가운데 험상궂게 생긴 사나이가 박도(薄刀)를 탁자에 기대놓은 채 술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다.
장우백이 문을 닫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사나이 때문이었다.
그는 이곳 산동(山東) 노룡구(魯龍丘) 일대의 소문난 파락호다.
잘못 비위를 건드렸다가는 그 날로 장사는 끝장이다.
조금전 장우백이 문을 닫으려 했을 때 그가 말했다.
"그냥 나둬."
그걸로 끝이었다.
이제는 그가 제발로 나갈 때까지는 좋든싫든 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
장우백의 눈길은 이번에는 구석진 자리로 향한다.
철탑(鐵塔). 그렇다.
앉아있는 모습이 마치 하나의 철탑같아 보이는 흑포 사나이가 묵묵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손님은 이들 두 사람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점 안은 납덩이같은 무거운 공기가 칙칙하게 깔리고 있었다.
만일, 철탑같은 사나이가 문을 닫는 것을 원했다면 정말 곤란한 일이 생겼을것이다.
다행인 것은 그가 문이 열려 있는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또 한가지 다행한 것이 있다면, 소문난 파락호인 황대웅(黃大雄)이 철탑같은 사
나이에게 시비를 걸지 않는드는 것이다.
아마도 만만치 않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장우백은 두 사나이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내심 기도하는 기분이었다.
어서 그들이 나가주기를... 그리고 무사히 오늘이 지나가기를...
그러나 인간의 운명이란 엉뚱한 곳에서 반전이 일어나는 법이다.
주점 안의 적막은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에서 깨어졌다.
새로운 손님이 들어온 것이다.
찬바람을 맞으며 들어서고 있는 손님은 1남 1녀였다.
장우백은 눈앞이 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한 쌍의 봉황(鳳凰과 같은 젊은 남녀였지 때문이었다.
여자는 17~8세 가량의 꽃같은 미인이었고, 남자는 20세 가량의 영기발랄한
청년이었다.
천상의 한쌍 신인같다. 그들의 기도는 범속하지 않았다.
아닌게 아니라 둘 다 허리에 검을 차고 있어 보통 사람이 아닌 무림인이라 는 것
을 알 수 있었다.
"아아! 사형. 결혼식을 앞둔 운하(雲霞) 언니의 심정이 어떨까요?"
여인은 다소 흥분한 듯 총기어린 눈망울을 반짝이며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청년은 싱긋 웃었다.
"후후... 아마 잠을 이루지 못하겠지. 더욱이 이번 낙성장(落星莊)과 무 당문(武
當門)의 사돈지간이 맺어짐은 전 무림이 축복하는 가화이니 하객들 도 많겠지."
"호호... 아무튼 무당속가 제자 중에 발군이라는 군사언(君司彦) 사형은 복도 많
아요. 그렇게 아름다운 신부를 맞이하게 되니 말이에요."
청년은 문 득 여인을 지그시 응시하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부럽지 않은걸?"
여인은 긴 속눈썹을 치켰다.
"아니... 왜요?"
"후후... 내게는 임매(林妹)가 있는걸."
"어머...!"
여인의 얼굴이 발그레 상기되었다. 그것은 추위의 탓만은 아니었다.
이들 청춘남녀의 가슴은 뜨겁게 타고 있었다.
그들은 종남파(終南派)이 젊은 사형매지간이다.
이번에 노산(老山)에 있는 낙성장의 혼인식에 참관하기 위해 나란히 여행 을 하
게된 것이다.
사랑하는 남녀의 동행은 달콤한 꿈이 있는 법이다.
그들은 동문 사형매간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었고,
특히나 이번 여행에서 은밀한 애정을 몇 차례에 걸쳐 확인까지 한 사이다.
음식이 날라왔다.
음식을 드는 동안에도 그들이 눈길은 서로에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이 도란거리는 모습은 주인 장우백이 보기에도 눈부실 정도로 부러웠 다.
그러나 장우백의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것은 파락호 황대웅의 눈에서 질투와 탐욕의 사나운 눈빛이 번뜩이고 있 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씨발... 이거 눈 꼴 시려서 못보겠군! 누군 왕년에 사랑타령 한번 안해 봤나?
퉤엣...!"
주점 안의 공기가 불현듯이 그이 욕지거리로 파동친다.
청년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는 홱 고개를 돌려 황대웅을 쏘아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와 경멸의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고개를 가로 젓더니 시선을 돌려 버렸다.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시비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뭘 봐? 대가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놈이 어르신을 꼬나보다니, 눈깔을 확 뽑아
줄까?"
황대웅은 제 풀에 화가 치밀어 느닷없이 탁자에 있던 술벙을 냅다 집어 던 졌다.
와장창!
술병은 바닥에 팽개쳐져 박살이나 사방으로 파편이 퉁겨 나갔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청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여인이 재빨리 그의 소매를 잡아 당겼다.
"참으세요. 사형... 저런 하류배를 상대할 필요가..."
"뭐라고? 하류 배? 이런 찢어죽일 년...!"
휘익!
황대웅은 그렇지 않아도 꼬투리를 잡지 못해 안달이 나다가 잘 되었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냅다 남녀가 있는 탁자로 달려갔다.
오늘 그는 기분이 몹시 나빴다.
마작을 하여 무려 은자 300냥을 잃어버린 것이다.
가뜩이난 울분을 달래고 있는 판국에 제법 반반해 보이는 계집과 빤들거리 는
사내 놈이 히히덕거리는 것을 보니 눈알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더욱이 계집은 깔아 뭉개면 기가 막힐 것 같은 몸매를 하고 있지 않은 가?
(흐흐... 잘 걸렸다. 그렇지 않아도 아랫도리가 근질거리던 차 에...)
그는 한 걸음에 달려가 청년을 향해 솥뚜껑만한 주먹을 냅다 뻗었 다.
위잉!
비석은 못 깨어도 한 자 두께의 담장에 구멍을 냈던 자랑스런 주먹이었다.
청년의 면상이 가루가 되는 것을 상상하며 황대웅은 큰 입을 떡 벌렸다.
"으헤헤..."
그러나 그의 웃음은 도리어 돼지 멱 따는듯한 비명으로 바뀌고 말았다.
펑!
"크웨에에엑...!"
꽈당탕... 탕!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적어도 장우백이 보기에는 그랬다.
소문난 파락호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던 황대웅이 청년이 슬쩍 흔들어 보 인 손
짓에 저만치 붕 떠서 날아가더니 주점벽을 뚫고 밖으로 내팽개쳐 진
것이 아닌가?
황대웅은 한 방에 기절을 했는지, 아니면 아예 죽어 버렸는지 쭉 뻗어 다시 는 움
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청년은 코웃음을 쳤다.
"흥! 같잖은 놈 같으니."
그때 여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사형. 우리 떠나요. 이곳은 기분이 나빠요."
청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낙성장이 멀지 않았으니 차라리 지금 떠난 일찍 당도하는 것이 낫겠어."
그는 여인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아닌게 아니라 음식을 먹을 기분을 잡쳤다.
그런데...
이때 어디선가 으스스한 음성이 들리는 것이 아닌가?
"잠깐. 여자는 두고 가 라."
"...!"
청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는 그 말이 구석 자리의 흑포 사나이에게서 나온 것임을 알았다.
"형씨. 지금 우리에게 한 말이오?"
흑포인은 여전히 딴 곳을 보고 있었다.
"네 놈에게 명령한 것이다."
"뭐...뭐라고? 명령...?"
청년은 기가 막혔다. 그러나 그의 인내도 한계가 있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흑포인을 향해 걸어갔다.
조금 전 황대웅의 참사를 보지 않았는가?
그러나...
결과는 너무나도 상상 밖이었다.
청년이 뭐라고 화를 내면 다가서고...
흑포인은 여전히 자리에 않아 있었다.
그들 사이는 대략 두어 장 반 정도였다.
문득 흑포인이 청년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그것은 전혀 가당치도 않은 동작으로,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헉!"
돌연 청년의 입에서 경악에 찬 신음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청년의 몸은
마치 보이지 않는 밧줄에 묶인듯이 주르르 흑포인에게 딸려가고 있었다.
청년은 공포에 질린 채 안간 힘으로 끌려가지 않으려 버둥거리는 것 같았으 나
그것은 힘없는 아우성에 불과한 것이었다.
눈 깜박할 사이에 청년은 흑포인에게 끌려갔다.
그리고 흑포인의 커다란 손이 청년의 목을 움켜잡았다.
우드득... 뚝!
실로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흑포인이 간단히 손아귀를 틀어 청년의 목은 힘없이 한 바퀴 빙글 돌아가며 꺽여
버린 것이었다.
청년의 입에서 비명이 나올 틈도 없었다.
그의 눈알이 툭 튀어 나오고 혀가 한 자나 삐어져 나왔다.
아주 간단히 청년의 목을 꺽어버린 흑포인은 슬쩍 손을 저었다.
휙!
청년의 시신은 곧장 일직선으로 날아가 문밖으로 내던져졌다.
어찌나 멀리 날아갔는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아이쿠... 저럴수가... 사...사사...사신(死神)!)
장우백은 머리를 회 계대에 파묻었다.
그때였다.
"아아아악!"
귀청을 찢는듯한 여인의 비명 소리가 울려 장우백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다가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찌된 셈인지 혼자 남게된 여인이 흑포인에게 안겨 있는 것이 아닌가?
흑포 인은 여전히 제 자리에 있었다.
북...! 부욱... 북!
눈 깜짝할 사이에 흑포인의 손에 의해 여인은 옷이 모두 뜯겨져 나갔다.
순식간에 알몸이 된 것이었다.
여인은 전라가 된채 공포의 비명을 울부짖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알몸으로 흑포인에 의해 탁자에 눕혀지고...
흑포인이 그녀의 두다리를 벌린 것이다.
"아아악... 아악... 아악...!"
장우백은 귀를 틀어 막았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그 여인의 비명은 계속 고막으로 파고들어 왔으며,
그는 마왕(魔王)처럼 여인을 유린하는 흑포인에게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 다.
여인의 다리는 하나는 허공으로 쳐들리고 하나는 탁자 아래로 늘어져 있었 다.
늘어진 새하얀 허벅지로 새빨간 피가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아아악... 아악..."
여인의 눈이 부릅떠지고 입에서는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흑포인은 전혀 개의치 않고 몸을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억겁(億劫)의 시간이 흘렀다.
...
흑포인의 몸이 굳어지는가 싶더니 여인의 목이 비틀어 꺽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사정(射精)을 끝낸 흑포인이 옷을 추스르는 것이 보 뉠다.
그러나 장우백은 환전히 혼백이 달아난 표정이었다.
그의 바지는 흥건히 젖어 있었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뚜벅, 뚜벅...
흑포인이 걸어왔다.
장우백은 멍청히 그를 올려다 보았다.
흑포인이 말했다.
"짐은 불쌍한 백성을 괴롭히지 않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흑포인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문 쪽으로 걸어나가고 있었다.
삭풍이 불고 있었다.
삭풍은 주점 안으로 몰려 들어왔다.
"...!"
장우백은 부르르 떨었다.
그는 주점 안을 돌아 보았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왠지 정기가 없었다.
장우백은 미친것이다.
"헤헤..."
그의 입에서 바보같은 웃음이 헤프게 흘러 나오고 있었다.
낙성장은 북적대고 있었다.
혼례일이기 때문이다.
대문에는 축등이 걸리고 여러 사람들의 웃음소리, 환담하는 소리가 시끌벅 적하게
담장 밖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금도 많은 하객들이 줄을 이어 대문 안으로 들어 가고 있었다.
대문에는 총관인듯한 중년인이 하객들의 선물을 접수하고 방명록을 적고 있 었다.
이곳에 오는 하객들은 대부분이 인근의 무림명문의 고수들이다.
그런데...
멀리서 한 사나이가 다가오는 것을 본 총관은 흠칫했다.
그자는 일신에 온통 검은 옷을 걸쳤으며 키가 팔척이 넘는 거구였다.
흡사 하나의 철탑을 연상케하는 우람한 몸집을 지녔다.
한 손에는 사나이의 몸집에 어울리는 거검(巨劍)을 쥐고 있었는데 그 검의
길이는 무려 6척에 가까운 것이었다.
일반적인 장검보다도 두배나 긴 것이었다.
하객으로 오는 차림으로 그런 모습은 어딘가 불경했을 뿐더러 기분나쁜 느 낌을
준다.
총관은 그가 다가오자 눈살을 찌푸렸다.
"어느 방면에서 오신 고인이신지?"
그러나 사나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어 실례지만 초청장은 가지고 오셨...?"
총관은 흠칫했다.
사나이가 무작정 안으로 들어가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당황했다.
오늘같은 길일(吉日)에 소란은 금물이다.
어떻게든 그는 사나이를 설득하려 했다.
"저어... 초청장을 주셔야..."
사나이는 걸음을 멈추며 차갑게 말했다.
"짐은 초청장이 필요없는 사람이다."
"...!"
총관은 어이가 없었다.
짐이라니...
그는 그런 칭호를 쓰는 인물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짐이라면 황제나 스스로 쓰는 자존의 칭호가 아닌가?(미친 놈...?)그는
그렇게 단정했다.
그렇다면 달래어 돌려보내는 것이 상책이리라.
그가 막 입을 열려는데,
"이곳이 낙성장이 분명한가?"
사나이의 질문은 미친 사람답지 않게 명확했다.
"예. 폐장은 분명 낙성장이 맞..."
그는 입을 다물었다.
사나이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그는 앞을 가로막았다.
순간...
"무엄한 것."
철탑 사나이의 손이 움직였다.
...
성대한 혼례식이 진행되고 있다.
하객의 숫자는 500인이 넘었고, 그들은 모두가 싱글벙글하며 신랑신부를 향 해 박
수를 치고 농담을 던졌다.
그런데 일각의 소요를 일으키면서 물결이 갈라지듯 사람들이 물러서는 것이 아닌가?
"으악!"
"아아악...!"
즐겁고 유쾌해야할 혼례식장에 느닷없이 처절한 비명이 울림으로써 하객들 의 안
색은 급변하고 말았다.
이곳에 모여있는 하객들은 대부분이 무림의 고인들이다.
그들은 볼 수 있었다.
한 명의 철탑같은 거한이 가로막는 무사들을 한 손으로 휙휙 내저으며 대청 으로
향하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가 가볍게 손을 저을 때마다 한꺼번에 4,5명씩 붕떠서 날아 간다는
것이었다.
낙성장주 낙성신군(落星神君) 교번두(交燔斗)는 크게 놀랐다.
그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대청 가까이 괴사나이가 나타났다.
휙!
교번두는 신형을 날려 그의 앞을 가로 막았다.
"여보시오. 대체 무슨 일로 신성한 혼례식장을...?"
사나이는 그를 노려 보았다. 교번두는 부르르 떨었다.
사나이의 철나한 같은 각진 얼굴에서 번개처럼 번뜩이는 안광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비수로 심장을 찌르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저년이 필요하다."
사나이의 말이었다.
교번두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 무례한 놈!"
위잉!
그는 낙성장법으로 알려진 무림고수다.
그의 장력이 열 여덟개의 수강을 이루며 뻗었다.
그러나...
펑!
분명 사나이의 가슴에 적중되었으나 사나이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으으... 이럴 수가...!"
금강불괴가 아닌 이상 그럴 수가 없는 일이었다.
사나이는 검집으로 교번두를 그었다.
"으아악!"
교번두는 처참한 비명과 함께 날아갔다.
사나이는 뚜벅뚜벅 걸어 혼례복을 입은 신부에게 다가갔다.
"멈춰라!"
가로막은 것은 신랑인 무당 속가제자인 군사연이었다.
그러나 그도 눈앞에 검집이 찔러오자 항거 한 번 변변히 하지 못하고 날아 갔다.
"아아..."
신부 교운하(交雲霞)는 산동일미(山東一美)라는 미명으로 불리울 정도로 아름
다왔다.
그녀는 사나이가 지척에 이르자 백지장같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너무나 창졸지간의 일이었고, 사나이의 패도적인 기세에 눌려 수백
명의 하객들은 아무도 감히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사나이의 손이 움직였다.
"악!"
교운하는 비명을 질렀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두 다리를 잡혀 거꾸로 쳐들린 것이 아닌가?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혼례복을 입은 채 혼례식장에서 낯선 사나이에게 거꾸로 들리다니...!
뒤늦제 무림고수들이 대청으로 뛰어 들었으나 신부 때문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포위할 뿐이었다.
사나이는 추호도 개의치 않고 물었다.
"남일주(南一周)란 자를 아느냐?"
그 말에 교운하는 한 청년의 얼굴을 떠올렸다.
남일주는 과거 그녀와 사랑을 나누었던 청년이었다.
그녀 자신도 좋아했고, 남일주는 목숨바쳐 그녀를 사랑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남일주를 버린 것은 무당 출신의 군사언이 더욱
조건이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교운하가 남일수를 배신한 것이다.
"그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청부(請負)했다. 너같은 더러운 계집년의 가랑이를
찢어 달라고."
그의 말을 하객들은 모두 들었다.
그리고 설마... 하는 사이에 누가 말리거나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엄청 난 참변
이 벌어졌다.
"아아아아악...!"
파아아아...
오오!
일찍이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렇게 잔인한 일이 일어난 적은 없었 다.
혼례복을 입은 성장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것도 거대한 체격의 사나이 에게 거
꾸로 들린 채 정말로 믿어지지 않게 가랑이가 찢겨 죽은 것이었다.
하객들은 머리가 띵해지는 충격을 받았다.
잠시 동안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거의 동시에 분노가 터졌다.
"죽여라!"
"이... 인간도 아닌 악마를 죽여라!"
수백 명이 일제히 신형을 날리며 철탑 사나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나이는 유유히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사나이가 낙성장을 완전히 빠져 나갔을 때는 이미 살아있는 사람은 단 한명 도
볼 수 없게 되었다.
공포의 시작(始作)...
그것은 다만 시작에 불과했을 따름이다.
패업(覇業) II
사천 당가(四川唐家)는 420년 간이나 무림제일의 암기가문으로 명망을 떨쳤 다.
당가의 인물들은 어릴 적부터 각종 암기를 다루는 법을 배우며 또 스스로
갖가지 암기를 제작하는 습관을 키운다.
당가가 무림에서 꺼림칙한 존재로 아무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이유는 당 가의
암기가 절대로 파악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항상 사용하는 암지를 계속 사용한다면 당가도 그리 무서울
것은 없었다.
그러나 당가의 인물들은 언제나 새로운 암기를 개발하고 무서운 암기술을
창안하므로 영원히 암기에 관한한 당가를 이길 방법은 없는 것이다.
제 18대 사천 당가가주 당문표(唐文票).
그는 당대에 이르러 28종의 새로운 암기를 개발함으러써 더욱 더 명성을 떨 친다.
그로인해 사천 당가가 무림사가(武林四家)라는 굳건한 위치에 들게 된다.
당문표는 지금 자신의 침소에서 암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
그가 세상에서 가장 믿는 것이 바로 암기다.
암기만 손에 쥐면 천하에 겁날 것이 없었다.
그는 여러가지 비장의 암기를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양피로 된 포단을 깔고, 그 위에 수백 종의 암기를 늘어 놓는 그의 입가에 는 미
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는 암기를 볼 때마다 새삼 가문의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문득...
그는 하나의 화전표(花箭표)를 닦으며 한 여인을 떠올린다.
죽은 아내가 사용하던 암기다.
그는 쓸쓸함이 가슴을 저미는 것을 느꼈다.
"너무... 일찍 갔어..."
당문표의 나이 42세.
그는 삶이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얼굴이 아내 얼굴 위에 겹쳐지며 떠오른다.
아주 아름다운 젊은 여인의 얼굴이었다.
동시에 그녀가 그에게 속삭이던 음성이 귓전에 울리는 듯 했다.
'사랑해요... 절 버리지 말아 주세요. 전... 당신이 버리면 아마 죽을 거예요...'
당문표의 눈 속에 아쉬움이 떠올랐다.
(몹쓸 짓을 했어.)
당문표는 가슴이 뭉클해 지는 것을 느꼈다.
잠시 그녀와 불태웠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는 그녀와 사랑을 속삭였었다.
그러나 당가 가주라는 체면 때문에 그는 그 사랑을 한때의 불장난으로 돌리 고
여인을 버렸었다.
지금 그는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언제... 그녀를 한 번 찾아 보아야겠어...)
이때다.
바로 등 뒤에서 한가닥 차가운 음성이 들리는 것이 아닌가?
"그대가 당문표 인가?"
"...!"
당문표는 꿈에도 믿을 수 없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바로 등 뒤까지 오는 동안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니!
그 는 부르르 떨면서 돌아 보았다.
팔척(八尺).
그렇게 큰 사람은 흔치 않다.
비쩍 마른 몸에 일신에는 청포(靑袍)를 걸치고 있었다.
손에는 한자루의 섭선을 쥐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은 마치 얼음을 깎아 만든 듯 하고 두 눈빛은 투명한 수정이었 다.
으시시한 한기가 당문표의 가슴을 찔렀다.
"누...누구냐?"
사나이는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메마른 입술만을 움직였다.
"숙하(菽河)의 부탁을 받고 왔다. 너의 목에 구멍을 내 달라는군."
당문표는 다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는 대답대신 마침 자신의 손에 들고있던 화전표를 날렸다.
아내가 사용하던 암기였다.
그러나...
이미 눈앞의 상대방은 유령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목이 따끔했다.
"...?"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자신의 목을 만져본다.
무엇인가 뜨끈한 액체가 분비되고 있었다.
"이것은... 말도... 안돼..."
그는 의식이 희미해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의 몸은 모로 쓰러지고 있었다.
...
다음날 아침..
당문표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의 목에는 국화모양의 상흔이 나 있었다.
아니, 좀 더 자세히 본다면 그것이 바로 국화꽃잎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 다.
사천 당가의 가주.
천하제일의 암기명인인 당문표가 어이없게도 누군가의 절묘한 암기술에 정 확히
목숨을 잃은 것이다.
당가는 발칵 뒤집혔다.
암기의 천하제일가에서 그것도 가주가 누군가의 암기에 죽음을 당하다니...
희생자는 당문표만이 아니었다.
당가 서열 18위까지에 해당하는 고수들이 몽땅 죽은 것이다.
그들은 침실에서, 혹은 측간에서, 혹은 회랑에서 발견되었다.
그들 역시 목에 국화꽃잎이 박힌 채 눈을 부릅뜨고 죽어 있엇다.
폭풍...
폭풍의 시작이었다.
패업(覇業) III
강남7우(江南七友).
사람들은 누구나 그들이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많은 강호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에서 다시 없는 우의(友義)를 가지고 있는 사이이기 때문이었 다.
그들은 각자 태어난 날이 다르고, 가문이 다르고, 사문도 틀렸다.
그러나 그들이 한 날 한 시에 죽을 것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하늘에 맹세한 의형제였기 때문이다.
단 한명의 지기(知己)만 사귀어도 남아의 일생은 행복하다 하였다.
그런데 강남7우는 도합 일곱 명의 의형제로서 서로를 자신보다 더 아끼고
존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웃음이 그치지 않았고, 타인들의 부러움을 샀다.
만일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못할것이 없을 것이다.
그들의 우정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이들에게 한 명의 서생(書生)이 찾아왔다.
시론(詩論)을 담소하기 위해서였다.
7우는 특히나 시서금기예를 즐기는 인사들이었으므로 이 서생이 가지고 있 는 여
러가지 재능에 반하여 사흘 밤낮을 담소하고 고담준론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나...
사흘 후 엄청난 비극이 벌어졌다.
서생이 그들에게서 떠난 후...
강남7우는 서로 싸우고 죽이는 참극을 벌인 것이다.
믿을 수 없게도 그들은 동귀어진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명의 서생.
그가 대체 어떤 말을 했길래 그들이 서로 상잔하는 사태가 벌어졌단 말인 가?
서생의 신분내력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그의 키가 무척 크고, 일신에는 백의문사의를 입고 있었다는 것 밖에
밝혀진 것이 없었다.
7우의 죽은 모습은 너무나 극명하게 이유를 말해주고 있었다.
두 명은 바둑을 두다가 바둑판을 엎고 서로의 가슴에 손을 박아 넣었으며..
두 명은 시를 쓰다가 역시 서로의 머리를 으깨어 버렸다.
두 명은 한 권의 경서(經書)를 놓고 토론하는 모습으로 죽었다.
마지막 한 사람은 그들 두 사람 사이에 죽어 있었다.
이 모습으로 미루어 볼때 7우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풍류를 논하다가 말다툼 이
벌어져 서로 상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누군가?
대체 누구이길래 다만 세 치 혓바닥만으로 소문난 우정의 강남7우로 하여금 서로
상잔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이것은 강남무림을 한동안 의문과 공포로 몰아넣은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 었다.
또한...
혈막(血幕)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것이 삼패의 탄생이다.
그로부터 4년 후...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즐~~~감!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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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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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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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세치혀로 서로를 죽이는 ~`삼패가 출현한다~~
즐감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
살벌 하네요 ?
즐독이랍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