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시선] ‘구별’되게 사는 신앙인? / 김경훈 신부
발행일2023-04-02 [제3337호, 22면]
저는 가톨릭신문 편집주간으로 소임하고 있습니다. 신문을 만들어 여러 교구 여러 성당에 신문을 알리기 위해 다닙니다. 성전 모습은 모두 다르지만, 하나의 신앙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다양한 신자를 만납니다. 그런데 미사가 시작되고 제가 제대 위에 올라가 신자들과 얼굴을 마주하면, 신자들 눈빛(?)은 전국 공통입니다. “아, 사순 시기, 스님 특강하러 오셨나?”, “불교방송 아닌가?” 하는 눈빛…. 여러분도 그러실까요?
우스갯소리로 얼굴만 보면 스님이나 회개한 조직원(?)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어떤 선배 신부님께서 ‘가신사(가톨릭신문사) 주지 신부’라는 별명을 주셨지만, 분명 가톨릭신문에서 일하는 신부, 맞습니다. 사제복장을 통해서라도, 그리고 제가 수행하는 직무를 통해 사제로서 ‘구별’되게 살아가려 노력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실지요?
여러분은 세상 속에 세상 사람으로서 세상 사람들과 섞여 살아갑니다. 비슷한 모습으로 밥 먹고, 자고, 일어나고, 일하고, 공부하고…. 고만고만, 특별한 것 없지요. 가족과 이웃과 함께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그럼 여러분께 묻습니다.
일상 속 특별한 순간, 선택의 순간에 그리스도인으로서 ‘구별’되게 살고 있는지? 세상 사람들로부터 “아, 하느님 믿는 사람, 예수님 말씀 따라 살려고 애쓰는 사람, 성령의 위로를 받아 누리는 사람이구나, 참 희한한 사람들, 그리스도인이구나!”라는 이야기를 들으시겠지요?
“네”라고 대답해 보세요. 그리스도인으로서 ‘구별’되게,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최소한 노력하고 계시지요? (네!) 매일 끊임없이 기도하시지요? (네!) 매일 성경 말씀 조금이라고 읽으려 노력하시지요? (네!) 아, 신자구나, 어쩐지 다르더라는 이야기 들으시지요?(네!)
‘네!’라고 대답하기 어려우십니까? 뭐 어떻습니까? 일단 대답하고 오늘부터 그리 살면 되지요.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면 어떻습니까? 그럼 뻔뻔해지면 되지요. 좀 뻔뻔하게 느껴지더라도 쉽게 주눅 들지 않고 내 신앙을 살아내기 위해 용기 내면 되지요. 아!, 나는 왜 이리 같은 고해성사를 반복할까, 왜 이 습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가, 하면서 쉽게 주눅 들고 주저앉기보다는 차라리 뻔뻔해져 봅시다. 물론 습관 되면 곤란하겠지만, 그렇게라도 용기 내는 신앙 살아봅시다. 그러실 거지요? (네!)
좋습니다. 그럼 무조건 용기만 내면 될까? 무조건 열심히 많이 하고 빨리하면 될까? 물론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제대로 하느님 뜻을 알아듣고 고민하고 깨달아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노력, 그런 신앙 태도 역시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까? 신앙의 이해와 깨달음을 넓히고 깊이 있게 할 수 있을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끊어지지 않는 “기도” 그리고 성경 말씀, 성사…. 어찌 보면 이미 알고 있고 이미 누리고 있는 ‘평범한’(?) 방법이지요.
끊임없는 기도는 특히나 중요합니다. 옛날 어르신들께서 “억지로라도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기도 10분 중에 9분 분심하더라도 기도하라고. 그날 해야 할 기도를 끊어먹지 말라고. 다툼으로 속이 시끄럽더라도, 이런 마음에 어떻게 기도하겠냐 하지 말고, 기도하기 위해 앉아 있어 보라고. 그러면 그 기도가 너를 살릴 거라고. 끊임없는 기도가 너를 제자리로 데려올 것이라고.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주님의 수난기를 듣고 묵상하고 기도하며, 세상 속에 ‘구별’되는 신앙인으로서의 모습, 그리고 주눅 들지 않고 용기 내는 신앙의 태도를 다시 한번 마음에 새깁시다. 주님 가시는 그 길에 우리 발걸음도 함께합시다. 끝까지~
김경훈 프란치스코 신부(가톨릭신문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