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검다
한재범
커피는 검다 안이 보이지 않는다 개미가 날아다닌다 보이
지 않는다 개미는 검다 커피를 마신다 잠이 오지 않아서 창
밖은 검다 잠긴 핸드폰 화면 속 '잘 자'라는 문자에 답하지
않는다 들여다보지 않는다 나는 자고 있으므로
오늘 밤은 유독 적막하다 진동이 울리고 화면이 흔들린다
'초미세먼지 경보' 안에 있어 다행이구나 깨진 유리잔처럼
엎질러진 밤 커피가 마르지 않는다 오늘 일은 오늘까지 끝
내야 한다 졸려 죽을 것 같지만
잠은 죽어서 자야지 어제도 이러다 잠들었던가 눈을 떴을
때 창밖의 공사장은 다시 채워져 있었다 밤새 놓인 커피가
그대로였다 깊고 비좁은 방 안 쌓는 소리 무너뜨리는 소리
구별할 수 없다 먼지가 가득해
내 안은 검다 시커먼 잠이 점점 쏟아져서 어제 마신 커피
를 마신다 오늘은 아무 것도 먹지 않았는데 개미가 늘어난다
방 안에서 아무 것도 죽이지 않았는데 나는 종일 배가 부르
다 먼지를 게우기 위해 암막 커튼을 걷는다
밤이 보이지 않는다 방은 검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거
기 개미가 날아다닌다 커피를 휘젓듯이 검은 화면을 두드린
다 '잘 자'라는 문자가 오지 않는다 내 위로 개미가 쏟아진다
창이 보이지 않는다 창밖은 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