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블망원경 같은 첩보위성 '키홀'
고도 200km서 5cm 단위로 영상 찍어
해상도 30cm인 상업위성보다 월등
손바닥 보듯 러시아군 움직임 탐지
'러시아의 대규모 군사 공격이 임박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계획이 없다. 그런 주장은 서방의 환상이다'
올해 초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예측과 이에 대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반박 내용이다.
푸틴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의 예측은 정확히 현실로 드러났다.
러시아는 지난달 24일 오전 5시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계획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
통신 감청 등 여러 정보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첩보자원 중 하나가 인공위성이다.
아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을 찍은 미국 군사첩보위성 사진은 공개된 바 없다.
하지만, 러시아군의 움직임은 지난해 말부터 미국 언론을 통해 공개된 민간 상업위성의 사진으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 속에는 러시아군 전투 전술단이 집결 상황, 새로 배치된 탱크와 대포 등이 낱낱이 드러났다.
미국 정보 당국은 이런 상업위성의 성능을 훨씬 뛰어넘는 고성능 첩보위성 운영을 통해
러시아군의 움직임을 손바닥 들여다 보듯 지켜보고 있었다.
실제로 바이든 미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 6일 전인 지난달 18일 '향후 수일 내로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며 '이게 바로 그간 우리가 예측(predict)해온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했다.
첩보위성의 대표적 사례가 미국의 '키홀'이다.
키홀(key hole)이란 말 그대로 '열쇠구멍으로 훔쳐본다는 의미'의 이름이다.
모양과 크기는 허블망원경과 아주 비슷하다.
단순하게 설명하면, 허불우주망원경의 방향을 지구 쪽으로 돌려놓은 형태라고도 할 수 있다.
키홀의 정확한 제원과 성능은 공식적으로 밝혀진 적이 없지만, 직격 2.4m의 반사망원경을 쓰고 있으며,
15cm급의 해상력은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대 고도 500~600km, 최저고도 200~300cm의 타원궤도를 돌고 있기 때문에, 가장 낮은 궤도에서 찍은 사진의 경우
해상도가 5cm에 달한다고 군사전문가들은 얘기한다.
해상도 5cm란 흔히 해당 크기의 물체도 구분할 수 있는 정도라고 설명하나, 정확히는 사진 파일 속 한 픽셀(화소)에 해당하는
물체의 크기가 5cm라는 얘기다.
키홀은 광학카메라 외에 적외선카메라도 장착하고 있어, 밤이나 구름 낀 흐린 날씨에도 지상을 감시할 수 있다.
3년 전 이란 로켓사고 때 '키홀' 위력 드러나
키홀의 놀라운 광학성능은 우연한 기회에 세상에 공개됐다.
2019년8월30일, 돈ㄹ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USA 224로 명명된 위성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 사진은 폭발사고가 일어난 이란의 로켓 발사대를 찍은 것으로, 불타버린 차량뿐 아니라, 발사대를 장식한 글씨까지 선명해,
흔히 보는 위성사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해상도가 화제가 되고 있다.
위성사진 분석기업 에스아이에이의 전태균 대표는 '현존하는 상업위성 중 가장 뛰어난 해상도가 30cm급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올린 사진은 그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위성사진 전문가들은 키홀이 찍은 사진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키홀이 찍은 사진은 1984년에도 한차례 유출된 적이 있다.
당시 영국의 군사 정보 전문업체 제임스가 발행하는 군사잡지 제인스디펜스 위클리는 키홀(KH-11)이 찍은
소련 키에프급 항공모함 건조 장면이라며 입수한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속에는 당시 소련 해군기지의 핵추진 항공모함 건조 풍경이 항공촬영 한 수준으로 자세히 나타나 있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 역시 인공위성을 통한 정찰이 절실하다.
하지만 현재 한국이 보유한 최고 성능의 인공위성은 해상도 70cm급 다목적실용위성 아리랑 1호에 불과하다.
정보당국은 미국이 공유하고 있는 첨단 첩보위성의 초고해상도 영상에 의지하고 있다.
한국 정찰위성 5기 띄우는 '425 사업' 진행
이 때문에 국방부는 2018년부터 독자 군용 정찰위성 5기를 우주에 띄우는 '425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고성능 영상레이더인SAR(Synthetic Aperture Radar)를 탑재한 위성 4기와 해상도 30cm급 전자광학(EO) 및
적외선(IR) 센서를 단 위성 1기를 고도 600~700km 저궤도에 올려, 북한을 2시간마다 정찰할 계획이다.
SAR 레이다 위성은 고아학카메라 위성보다 해상도는 떨어지지만, 밤이나 비가 오는 때에도 대상을 전천후로 정찰할 수 있다.
국방부는 또 425위성의 2시간 감시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해상도 1m급 초소형 군집 정찰위성 총 30여 기를 고도 510km의
지구궤도에 올리는 계획도 추가로 추진 중이다.
참여기관인 한화시스템의 관계자는 '해상도는 425위성이 높지만, 하루에 지구 저궤도를 14바퀴 이상 도는 특성상 생길 수밖에
없는 실시간 감시의 공백을 초소형 군집 정찰위성들로 상당 부분 메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찰위성은 앞으로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황진영 항공우주연구원 책임 연구원은 '앞으로의 군용 정찰위성은 카메라의 해상도를 높이는 방법과 함께, 대규모 군집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방식이 서로 보완해가며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