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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수없는밤의기묘한이야기
두번째
12
"길 좀 가르쳐 주세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골목길에서 말을 건넨 건 키가 큰 여자였다.
다리가 이상하게 가늘고 아픈 사람처럼 안색이 좋지 않았다.
몇 번이나 한숨인지 호흡인지 모르는 숨을 내쉬고는,
나에게 말을 건네면서 시선은 완전히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네? 어디로요?"
아무래도 수상한 사람 같아서
빨리 대답하고 떠나려고 했다.
"**아파트 102동 1002호……."
여자가 말한 주소는 우리 집 주소였다.
몇 동 몇 호까지 정확했다.
"몰, 몰라요."
나는 연관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여자는 허리가 구부러질 정도로 과하게 인사를 하고는 휘청거리며 골목길로 사라져 갔다.
정말 수상해 보였다.
혼자 살아 마중 나올 사람도 없기에 일부러 우회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찜찜한 기분에 서둘러 문을 열고 들어간다.
"길 좀 가르쳐 주세요……."
어두운 방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13
소년은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평소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입학하자마자 사진부에 가입했다.
사진부는 활동이 활발했는데,
3학년들은 활동이 거의 드물고 1,2학년이 중심이었다.
대학입시 명문으로 유명한 곳이라,
3학년은 입시 때문에 활동을 못 하는 거라 생각했다.
2학년 선배들은 모두 상냥하고 친절하게 가르쳐줘서
소년의 실력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특히 A선배는 신경을 많이 써주었는데,
출사에 자주 데려가서 소년에게 많은 걸 알려주었다.
형제가 없던 소년에겐 친형과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 날, A선배가 사진대회에 응모한 작품이 우수상으로 선정되었다.
소년은 자신의 일처럼 기뻤고 자랑으로 생각했다.
선배도 기뻐했는데, 이상하게도 상을 받고 나서부터는 사진부에 오는 게 뜸해졌다.
사진을 굉장히 좋아하는 선배였기에 소년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가 오랜만에 사진부에 얼굴을 내밀었다.
소년은 굉장히 반가웠지만 선배의 손에는 퇴부 신청서가 있었다.
"선배 무슨 일 있는 건가요? 이제 사진 그만 두시는 건가요?"
선배는 슬픈 눈으로 소년을 쳐다보며 말했다.
"너도 나중에 알게 될 거야……."
그 말과 함께 선배는 사진부를 나섰다.
소년은 선배가 수상이라는 나름대로의 결과를 얻었기에 수험공부를 일찍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친한 선배가 나갔지만, 소년은 매일 사진을 찍어 점점 능숙해졌다.
일 년 후에는 여러 사진대회에서 입상도 하였다.
어느 날, 평소처럼 소년은 암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사진대회에 응모할 작품이었는데,
사진 속, 창문에 노란 우산을 쓴 여자아이가 보였다.
"이런, 사진이 엉망이잖아."
소년은 사진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다음 날, 소년은 거리에서 사진을 찍었다.
암실에서 사진을 현상하고 있는데, 빌딩 사이로 보이는 노란 우산에 시선이 멈췄다.
비가 오는 것도 아닌데, 노란 우산이 매우 눈에 띄었다.
다음에는 공원 호수에서 사진을 찍었다.
암실에서 보니 호수에 있는 보트에 노란 우산을 쓴 소녀가 이쪽을 향해 앉아 있었다.
소년은 등골이 오싹하는 기분을 느꼈고,
서둘러 다른 사진을 현상했다.
동네 공터, 오토바이, 공원, 모래사장 등등…….
소년이 찍은 모든 사진의 한쪽 구석에서는 노란 우산을 쓴 그 소녀가 계속 보였다.
소년은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서 A선배가 찍은 마지막 앨범을 펼쳤다.
짐작대로 사진에는 노란 우산을 쓴 소녀가 있었다.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제야 선배들이 사진에 능숙해질 무렵에 사진부를 그만 두는 이유를 알았다…….
14
후…….
정리해고 되었다.
창립부터 몸과 마음을 바친 회사였다.
모든 게 사라진 것 같다.
죽고 싶다.
하지만 혼자서 죽을 용기가 없었다.
자살 사이트에서 사람들을 모았다.
세 명의 남녀에게서 메일이 왔다.
며칠 뒤.
우리들은 시골의 작은 펜션에서 모였다.
이유는 한 가지.
자살하려고.
죽기 전에 술을 마시기로 했다.
살아왔던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 뜨겁네. 시끄럽고, 냄새도 나."
라고 여자아이가 말해서,
드라이브나 하기로 했다.
뭐, 음주운전이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죽을 거니까.
드라이브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왠지 죽는 게 싫어졌다.
"역시 자살하는 거 그만 둘까?
우리, 서로 좋은 친구들이 될 수 있을 거 같아."
솔직하게 말하자,
모두들 울기 시작했다…….
이윽고 누군가 말했다.
"……혹시 눈치챘어?"
15
시험을 앞두고 새벽까지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한참 공부를 하고 있는데,
두시쯤에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야식 가져왔으니까 문 열어~"
엄마가 야식을 가져오신 것 같다.
평소 엄마가 갑자기 들어오시는 게 싫어서 문을 잠그고 있었다.
한참 집중하고 있는 터라, 나중에 먹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가 안방으로 가시는 것 같다.
세시쯤 되었을까?
다시 엄마가 노크를 하신다.
"간식 가져왔으니까 문 열어~"
시험도 얼마 남지 않아 초초한 마음에,
엄마에게 신경질을 냈다.
"엄마 이따가 먹을게! 나 공부하자나~"
그러자…….
"시끄러워! 어서 문 열어! 열어! 열어! 열으라고!"
갑자기 이상한 사람처럼 엄마가 소리쳤다.
위축되어 문을 열려고 했지만,
왠지 이상한 느낌도 들어서 열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은 울먹이는 소리로 말한다.
"제발 부탁이야. 문 열어……. 문 열어……."
평소 엄마답지 않은 간절한 목소리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문을 열지 않았다.
쳇 하고 엄마가 혀를 차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생각났다.
오늘 부모님이 제사로 시골에 가셨던 것이…….
16
6월 어느 날.
자취 하던 대학생이 부패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평소 이웃을 포함하여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없어서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것 같다.
경찰은 죽은 대학생의 형을 불러 신원 확인을 했다.
방에는 별 다른 교류의 흔적이 없었다.
다만 자동응답기에 메시지들이 남겨져 있었다.
메시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3월 12일 : 어머니가 어렸을 때 추억을 이야기한다. 도중에 끊어진다.
3월 17일 : 대학 친구가 학과 MT 권유.
3월 29일 :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하신다고 집으로 오라고 함.
4월 15일 : 대학 친구가 학교에 자주 오라고 함.
4월 20일 : 어머니가 형에게도 연락하라고 함.
테이프는 여기서 끝났다.
"부모님의 전화는 언제나 밤 두 시 이후에 걸려 왔습니다."
라고 형사가 중얼거리자, 형은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부모님은 저희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습니다."
17
매일 아침 할아버지께서는 동네 뒷산으로 개를 데리고 산책하신다.
오늘도 산책하고 오셨다.
그런데 개의 입을 보니 희미하게 피가 묻어 있었다.
할아버지께 물어보니 숲에서 뛰어놀다가 긁힌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조금 걱정하면서 입을 타월로 닦아주었다.
다행히도 다친 흔적은 없는 것 같다.
이틀 후.
동네 뒷산에서 아이가 죽어 있는 게 발견되었다.
할아버지께선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겠지?' 라고 귀엣말하셨다…….
18
"곤충이 싫습니다."
그는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약하고 옹졸하고……. 본능에 기대어 사는 하등생물."
그는 나에게 옹호를 요구하는 것처럼,
또는 설득하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때리면 더러운 체액을 토하고, 방치하면 냄새나고……."
눈이 빛나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 같다.
"사실 저는 벌레를 잡으면 가능한 괴로운 방법으로 죽입니다."
"어떤 방법이죠?"
"우선 손발을 뿔뿔이 흩어놓습니다. 그리고 해부합니다."
나는 혐오감을 참으면서 이야기를 재촉했다.
"배를 찢으면, 그런 추악한 생물이라도 깨끗한 것들이 보입니다."
그는 기쁜 표정으로 말한다.
"나와 그렇게 다르지 않구나……."
남자는 그 광경을 생각해냈는지,
넋을 잃고 허공을 응시한다.
나는 조서에,
'용의자는 살인을 자백. 방법은 사지 손상 후에 배를 가른다고 진술.
현장 및 피해자의 상황과 일치한다.'
라고 적었다.
19
한 달 전.
쇼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음에 드는 옷들을 한껏 사서 기분이 좋았었다.
그런데 집으로 오는 골목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키득키득'
어린 여자아이의 웃음소리였다.
소름이 조금 끼쳤다.
돌아보니 골목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순히 골목길에 아무도 없어서 소름이 끼친 게 아니었다.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기 때문이다.
위를 올려다 볼 용기는 없었기에 빠른 걸음으로 향했다.
작은 언덕을 넘어 우회전하면 바로 우리 집이다.
5분도 안 걸리는 시간이 무척이나 길고 무섭게 느껴졌다.
이제 우회전하면 집이다.
조금 안심되어 과감하게 위를 올려보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순간, 뭔가 머리가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들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찾았다. 엄마!"
나는 독신이다.
당연히 아이도 없다.
하지만 정체불명의 소리에 무서워져서 온 힘을 다해 집으로 달렸다.
그리고 그 날부터 한 달 동안.
밤마다 여자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정신병원에도 가보고 점집에도 가보았지만 해결책은 없었다.
웃음소리 때문에 신경이 쓰여 밤에는 거의 잘 수 없었다.
어젯밤. 참다못해 그 소리를 향해 외쳤다.
"오해야! 난 아이가 없단 말이야!"
그러자 크게 화가 난 듯, 여자아이는 소리쳤다.
"태어나기 전에 죽였잖아!"
20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은 도시에서 떨어진 시골이다.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계셔서인지,
배회노인이나 미아가 나오면
관공서에서 확성기로 방송을 한다.
"70세 할아버지께서 **에서 행방불명되었습니다."
하지만 발견되면,
"방금 전 방송된 할아버지께서 무사 발견되었습니다."
라고 하는 방송이 나온다.
특히 겨울이 되면,
이런 방송이 자주 나온다.
오늘 아침도 마찬가지.
78세 할아버지께서 아침 9시부터 행방불명되셨다고 한다.
치매이셨던지 얇은 옷차림으로.
그런데 저녁 쯤 되자 방송이 나왔다.
"아침에 방송한 할아버지께서, 발견되었습니다."
21
중고매장에서 청바지를 사니 주머니 속에서 2cm 정도 작게 접어진 종이가 나왔다.
주머니에 뭔가 들어있는 건 드물지 않은 일이라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버렸다.
다음 날,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고 있었다.
계산하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전에 나왔던 종이가 또 나왔다.
이 시점에서 상당히 무서워졌기에 친구에게 종이를 건네주며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이런 일에 관심이 많아 좋아하며 종이를 받았는데,
종이를 열어보자마자 얼굴이 조금 새파래지면서 이렇게 말했다.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게 좋아. 이건 내가 버릴게."
나는 무서운 이야기라면 딱 질색일정도로 겁쟁이라,
굳이 종이의 내용은 묻지 않기로 했다.
다음 날, 친구는 오토바이에 치어 오른쪽 다리를 골절.
미신 같은 건 믿지 않지만, 왠지 그 종이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병문안 가서 본 친구는 평소라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기운이 없어 보였다.
그런 친구에게 종이의 내용에 대해 물어보는 건 미안했지만,
사고까지 일어났으니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는 사고는 자기가 부주의해서 일어난 일이라며 종이랑 상관없다는 것처럼 말하고는 좀처럼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신 부탁하자, 결국 하는 수 없다며 종이의 내용을 알려주었다.
종이에는 조그만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난 죽었는데, 왜 넌 살고 있어?"
22
방학 동안 운전면허학원을 다녔다.
처음에는 혼자 다녀서 심심했지만, 면허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끼리 친해져서
지금은 면허시험이 끝난 후에도 종종 모임을 갖곤 한다.
어느 날, 여섯 명이서 불꽃축제가 열리는 해변으로 가기로 했다.
내 차에 나를 포함한 셋.
다른 한 명의 차에 셋.
둘 다 면허를 취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심스럽게 운전하고 있었다.
버스보다 오히려 더 오래 걸렸던 것 같다.
해변에 도착해서 모두들 불꽃축제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 보고 있는데, 갑자기 격렬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소나기 같아서 다들 차를 세워둔 터널 근처로 가기로 했다.
터널로 향하는데, 차 앞에 누군가 서있는 거 같았다.
우리처럼 비를 피하러 온 사람인 것 같았다.
하지만 터널 근처에 와선 차라리 해변에서 비를 맞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 앞에 얼굴이 심하게 뭉개지고 한쪽 팔이 덜렁덜렁 거리는 아이가 서있었다.
아이는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은 그저 비를 피하는데 집중할 뿐이었다.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을 본 나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몸이 굳어진 채로 그저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자 아이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친구해줘……."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난 사람들에게 어서 돌아가자고 했다.
어떻게 운전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며칠 뒤.
모임이 이상하게 끝나서 사람들과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한명이 좀처럼 오지 않는다.
저번에 운전했던 사람이었다.
걱정이 되어서 전화를 했다.
그런데 전화 저 편에서 믿을 수 없는 말이 되돌아왔다.
"며, 며칠 전에 우리 아들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아들이 차에 아이가 뛰어 들었다고 하는데…….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아이는 어디에도 없었다고 하고……."
며칠 전, 해변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났다고 한다.
급히 병원에 실려 갔지만, 안타깝게도 응급실에서 사망.
내 머릿속에선 터널에 봤던 아이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친구해줘……."
23
우리 공장에도 신입이 들어왔다.
신입의 대부분은 점잖고 성실한 사람들이 많지만,
매년 한두 명 정도 문제 있는 사람이 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A군 역시 처음에는 성실하게 일하고 있었다.
말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기 힘들었지만,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생각하여 다들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자신에게 영혼을 보는 능력이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화장실에서 작업복을 입은 유령을 봤다든지,
자재를 두는 곳에서 여자의 유령을 봤다든지,
기이한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부서 내에서 이야기하는 것까지 괜찮았지만,
우리 공장이 묘지를 철거한 곳 위에 지어진 일을 알고 난 후부터는 다른 부서 사람들에게까지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것이 계기로 A군은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하지만 나가는 날에도 멈추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일하면 모두 저주 받을 겁니다.
흠, 좋겠습니다. (유령이) 안 보이는 사람은……."
마지막으로 말을 마치고 나가는 A군.
하지만 문 앞에 서있는 피투성이 남자의 유령을 눈치 채지 못하고
통과하는 것을 부서 사람들은 어이없게 쳐다만 볼 뿐이었다.
24
올해로 84세 되시는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옛날에, 뭐 지금도 그렇지만. 운동도 공부도 잘 하지 못했단다.
외모도 별로여서 친구도 없고, 언제나 외톨이.
아무도 날 필요로 하지 않았단다.
그래서 자살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지.
하지만 죽으면 장례식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민폐라고 생각했다.
도움도 안 되는 나 때문에 (장례식에) 쓸데 없는 돈을 쓰게 하기 싫었지.
그때 생각했지.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지금은 죽지 말자고.
계속 살아서 내가 폐를 끼치는 사람들이 모두 죽었을 때 그때 죽자고.
하지만 내겐 부모님이 있고, 형제가 있었지.
형제는 결혼하고 아이를 가졌어.
나도 운 좋게 결혼할 수 있었고,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단다.
난 소중한 아내, 그리고 아이를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지.
그리고 내 소중한 아이의 아이가 바로 너란다.
고맙구나. 네가 있어서 난 살아있단다."
병원에서 사고로 입원하고 계셨던 할아버지께서 나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장레식장에서,
"미안하구나."
라는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식구들은 전부 들었다고 한다.
25
시골, 인적 드문 곳이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
남자는 막차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막차버스는 이미 떠났을지도 모른다.
불안한 마음으로 그저 버스가 남아있기를 바라며 기다릴 뿐이다.
집은 멀지 않지만,
걸을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남자는 계속 기다렸지만 좀처럼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이젠 오지 않을 거라 단념하자, 돌연 버스가 나타났다.
남자는 허둥지둥 버스에 탔다.
버스에 타자 문득 위화감이 느껴졌다.
한밤중의 버스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좌석 하나가 비어있었다.
사람이 많은데도 아무도 그 자리엔 앉지 않고 쳐다만 보고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비어 있는 자리에 앉을려고 하자,
근처에 서 있는 젊은 여자가 다가왔다.
여자는 남자에게 다가가 귓가에 이렇게 속삭였다.
"당신은 이 버스에 타면 안 돼요……."
남자는 이상한 소리에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 버스는 저승으로 가는 중이에요.
당신처럼 살아있는 사람이 왜 여기 있는거죠?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저승으로 가고 싶지 않아요.
당신은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잡혀 그 사람 대신 저승으로 가게 될거에요."
남자는 무서운 나머지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온 몸을 떨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그녀가 말했다.
"괜찮아요. 내가 도와줄게요!"
그리고는 다음 정류장에서 문이 열리는 순간, 그의 손을 잡아 뛰어 내렸다.
버스의 승객들이 도망쳤다! 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둘은 한참동안 달렸다.
주변을 돌아보니 어디인지 모르는 곳, 어두컴컴해서 주변이 보이지 않았다.
일단 남자는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입가에 살며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젠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을 뺏기지 않겠네요."
26
아- 잘잤다-
얼마나 잤을까.
오랜만에 푹 잔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일어나니 영혼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왜 그렇게 생각했냐면,
십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가 거실에 앉아 계시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기가 막히셨는지 무반응.
그 뿐만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해도 모른 척.
방금 전에 학교에서 돌아온 동생이나 일에서 돌아온 아버지도 같은 태도다.
아무리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고 해도 이렇게 무시당할 일이 있는 건가…….
27
하버드대 교수가 의료 봉사하러 어느 오지마을로 갔다.
사람을 치료하는 나날을 보내던 중, 다른 마을사람들보다 머리가 탁월하게 좋은 청년을 발견했다.
교수는 재능이 있다고 생각되어 자신의 제자로 삼아 의술을 배우게 했다.
몇 년 뒤, 훌륭한 의사가 된 청년은 교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향에서 의술을 펼치기 위해 돌아왔다.
그런데 고향으로 돌아간 청년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다.
교수가 다시 가보니, 청년은 보이지 않는다.
마을사람에게 물어보니,
"머리가 좋아서 마을사람끼리 먹었다."
라고 했다.
주술사가 그를 먹으면 모두들 머리가 좋아진다고 했다고…….
28
녀석은 오늘도 학교에 가지 않았다.
부모님이 주무신 새벽, 부모님 지갑에서 꺼낸 돈으로 마음껏 놀고 있었다.
사실 흔한 일이었다.
이미 집에서 포기했던 것일까.
어느새 해가 지고 밤이 깊었다.
집을 향해 걷고 있는데,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코트를 입은 남자가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지나치면서 둘은 어깨가 부딪쳤다.
녀석은 눈은 뜨고 가는 거냐. 라고 고함치려고 했지만,
그 날은 여러모로 기분 좋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쳤다.
녀석은 집으로 돌아가 곧바로 이불에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텔레비전을 보니 동네에 살인이 있던 게 보도되고 있었다.
살해당한 건 친한 친구였다.
같이 수업을 자주 빠지던 친구였다.
인터뷰에 나오는 건 죽은 친구와 같이 있었던 친구였다.
"밤 11시 경에 (죽은) 친구와 같이 가고 있는데,
코트를 입은 남자가 어깨를 부딪쳤습니다.
친구가 화가 나서 남자에게 고함치자,
남자는 바로 품속에 숨겨둔 칼로 얼굴과 가슴을 찔러…….
그리곤 바로 도망쳤습니다……."
녀석은 얼어 붙었다.
29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밤이 깊어서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어두운 골목길에 들어서는데, 앞에서 두 명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한 명은 정상적으로 걷고 있었지만, 다른 한 명은 휘청휘청 걷고 있었다.
오면서 보니 한 사람은 조폭 같은 스타일의 남자였고, 휘청휘청 걷는 다른 사람은 긴 머리의 여자였다.
아무래도 여자가 취한 것 같았는데, 남자에 의지하는 것처럼 걷고 있었다.
휘청휘청 거리고 있었지만 비교적 남자의 발걸음을 맞춰 걷고 있었다.
남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이상한 커플이라고 생각하며 지나치는데, 더 가까이서 보니 여자는 허공을 응시하는 것처럼 초점이 없는 눈이었다.
아무래도 술에 약이라고 탄 것인지, 수상하다고 생각되어 서둘러 골목길을 나섰다.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봤지만 두 남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골목길을 나와 계속 걷고 있는데, 터무니없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앞에서 남녀 둘이 걸어오고 있었는데,
남자는 다른 사람이지만, 여자는 아까 그 여자였다.
남자는 학생인 것 같은데, 아까 조폭 같은 남자보다 빠르게 걷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자는 거기에 보조를 맞추는 듯이 나름대로 발걸음을 맞춰 걷고 있었다. 여전히 휘청휘청 거리고 있었지만.
분명 소름끼칠 정도로 이상한 일이지만, 집으로 가는 길은 이 길 밖에 없었다.
그저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걸음을 재촉하며 빨리 걸었다.
여전히 여자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치는 순간 나를 쳐다봤다.
그녀는 나를 보고 싱긋 미소지었다.
나는 깜짝 놀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졌다고 생각하고 뒤를 돌아봤다.
그 학생 옆의 여자가 보이지 않는다.
학생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왠지, 옆을 돌아볼 수가 없을 것 같다…….
귀신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