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서
학고재(學古齋)에서 고미술품을 감상하고 나오는데, 원성(圓性) 스님의 동자전(童子展) 포스터가 보였다.
뉴욕 파리에서 개인전을 연 다음, 국내에서 순회 전시할 작품이다.
작품 사이 공간에도 파격(破格)이 필요한지? 이질적인 포인트가 있어야 작품이 돋보인다. 그래서 모서리마다 연꽃이 고즈넉이 놓여있었다.
한 손님이 자기 작품은 보지 않고, 연꽃만 바라보고 있어 이상했던지.
원성 스님이 청아한 음성으로.
“연꽃이 마음에 드시는 모양입니다. 잘 포장해 드리세요.”
연꽃이 떠난 자리는, 스님의 미소로 채워주겠지!
나는 고마운 마음을 한 아름 안고, 인사동 거리를 활보했다.
만보완상(漫步玩賞)하는 문화유객(文化遊客)들이여,
느긋하게 와유(臥遊)하라!
고려청자가 막사발이 된들, 통영반이 닭 다리 소반이 된들,
문화는 장사꾼에게 맡기고
목포집으로 친구들을 불러내, 홍어가 얼마나 잘 익었는지,
코 좀 풀고 와야 쓰겠다.
눈이 호강했으니 다음은 뱃속을 채울 차례다, 그래서 사찰음식 전문식당 산촌(山村)으로 갔다.
산촌은 육류, 생선을 사용하지 않고, 산채만으로 5색 6미를 만든다.
산사에서 승려 생활을 한 적이 있는 사장은, 병무청 차장을 지낸 허상구 형과 친구 사이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좋아 찾은 것인데, 같은 식탁에 낯선 외국인과 마주하여 술을 마셔야 한다니 떱떠름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뜨리는 것은 권주(勸酒)가 제일이다, 그래서 곡차(막걸리) 한 동이를 시켰더니, 바로 화기애애한 술좌석이 되었다.
영국에서 온 젊은이는 의류 디자이너였다.
동양의 신비한 아름다움을, 유럽 패션에 접목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검은색 정장에 흰 와이셔츠 차림이었다, 말로만 듣던 영국 신사들의 세련된 풍모다.
그런데 내 넥타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한 젊은이가, “예술이야! 예술”하면서 찬사를 쏟아냈다.
그래서 우리 바꾸어 맵시다! 했더니, “와! 브라보! 쌩큐 써”
화가인 친구가, 실크 천에 보라색 등나무꽃을 날염(捺染) 한 것이다.
곡주(穀酒)를 단번에 들이키니, 취기가 알딸딸하게 밀려왔다.
헤어지기 섭섭해서 따라온 젊은이들과, 밥 먹고 숭늉 마시는 다반사(茶飯事)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벽에 화살표와 함께 여인의 나상(裸像)이 그려져 있었다.
그 아래는 많을 다, 부처 불, 놀 유, 때 시, (多彿游時) 넉 자가 붓글씨로 쓰여 있었다.
부처님도 여성과 어울리는 모양이죠?
저희 식당 오시는 손님 수준이라면 바로 압니다!
의아해하는 기미를 느꼈는지, 힌트 하나 더 드리죠!
세상에 가장 급한 사람이 가는 곳이라, 보폭(步幅)이 석 자는 되어야지요!
큰 소리로 몇 번을 읽고 나서, 신라 시대 사용하던 이두(吏讀) 문자를 빗댄 것을 알았다.
먹고 마시는 정갈한 곳인데, 그것이 해우소(解憂所)가 있다고 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첫댓글 좋은시 감사합니다
좋은시 추천합니다
좋은글 감사 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머물다 갑니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