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 월드컵, 비록 대한민국은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세계최강 독일을 꺾으며 한반도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이후 2019년 폴란드에서 벌어진 U20월드컵에서 사상 최초로 FIFA주관 남자 축구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하는 등 각급 대표팀에서 꾸준한 성과를 거두며 축구는 사상유래없는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이는 국내 K리그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관중증가로 이어졌고, 지난 해 전북과 울산의 끝까지 알 수 없었던 치열한 우승경쟁은 그 열기에 불을 지폈다.
축구를 좋아하는 나 역시 이 열기에 동참하고 싶었지만 개인적으로 응원하고 있었던 팀이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예전에 부천SK가 제주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팬으로서 배신감(?)을 느끼며 K리그를 끊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눈에 들어오는 한 선수가 있어 마음 속으로 응원하고 있다. 주인공은 수원삼성의 유주안이다. 수많은 K리그 선수 중 한 명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이름이 알려진 슈퍼스타도 아니니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많겠지만, 내가 그를 응원하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바로 그가 족구선수 유리안의 동생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유리안과의 친분은? 없다. 그와는 수많은 SNS상의 친구 중 한 명일 뿐이다. 처음에는 그의 특이한(?) 이름 때문에 기억에 남았지만 그의 SNS 계정을 보며 동생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에 감동을 받아 예전부터 응원해 오고 있었다. 한 번은 그의 SNS 계정에 동생과 함께 올린 사진을 보고 나는 덕담과도 같은 이런 댓글을 달았다. '저 이분 누군지 알아요. 2022년에 카타르를 누비실 그 분 이시죠?' 그러자 그는 이런 답글을 달았다. '제발 꿈 꿉니다.' 이 외에도 주위 지인들의 동생에 대한 응원에 달아 놓은 답글들은 텍스트로만 보아도 '동생을 응원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진심이구나'라는 것이 절로 느껴졌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칼럼으로 다뤄보고 싶었고, 아는 지인을 통해 이렇게 연락이 닿아 이들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리하여 이번 칼럼에서는 족구하는 형 리안과 축구하는 동생 주안의 이야기를 다뤄보도록 하겠다.
2017년 6월 25일, K리그 16라운드 수원삼성과 강원FC의 경기는 형제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이다. 바로 주안이 K리그에 데뷔한 날이기 때문이다. 만 18세의 선수가 벤치에만 앉아도 대단하다고 하는 프로무대에 데뷔했으니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벅찼을까? 주로 R리그에서 활약하던 주안은 주장 염기훈이 무릎 타박상으로 컨디션이 100%에 이르지 못한 모습을 보이자, 서정원 감독의 긴급 호출로 K리그 선발 명단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사실 서정원 감독은 신예보다는 기량이 검증된 선수들을 중용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주안의 선발은 가히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날을 절대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는 데뷔 3분만에 조나탄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생애 첫 공격포인트를 올렸고, 전반 45분에는 직접 데뷔골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사흘 뒤에 벌어진 대구 원정 경기에서도 염기훈 삼촌(실제 15살 차이)의 도움을 받아 '또' 골을 터뜨렸다. 데뷔 골도 모자라 두 경기 연속 골을 기록하며 주간 베스트에 선정되기 까지 한다. 만화나 영화로 만들어도 '주인공 버프'로 욕먹을 만한 일을 그는 현실에서 이루어 낸 것이다. 참고로 이는 잉글랜드의 전설적인 공격수 웨인 루니도 해내지 못 한 일이다. ☞유주안의 데뷔골 영상보기
어린 시절부터 형들과 공차는 것을 좋아했던 주안은 형 리안이 축구부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따라 들어가면서 축구를 시작했다. 광명광덕초등학교에서 축구를 하다가 이후 수원삼성 산하 유소년팀은 매탄중-매탄고를 거쳤다. 이곳의 선수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주안 역시 프로선수들을 직접 눈으로 보며 동경했고, 그들과 같이 수원삼성의 유니폼을 입고 '빅버드'(수원월드컵경기장의 애칭)에 서는 것을 꿈꾸었던 유소년 선수였다. U12 시절부터 각급 국가대표에 선발되었고, 2015년에는 칠레에서 벌어진 U17월드컵에서 이승우와 함께 활약하기도 했었다. 매탄고등학교에서는 백넘버 10번을 단 팀의 주 공격수였고, 수원삼성에서도 주시하고 있었던 유망주였다. [참고로 매탄고등학교의 10번 출신으로는 김종우(수원삼성), 권창훈(SC 프라이부르크), 김건희(수원삼성), 윤용호(성남FC), 전세진(상주상무)등이 있다.] 176cm로 큰 키는 아니지만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의 움직임이 뛰어나고 찬스를 놓치지 않는 장점을 가진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프로 선수인 동생 주안보다 조금 못할 뿐, 형 리안의 축구실력도 수준급이다. 고등학생 시절까지 선수로 뛰었고, 지금도 취미로 축구를 즐기고 있다. 선수출신답게 드리블, 킥 능력은 일반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고등학생 시절, 부상으로 축구를 그만두고 낙심하고 있던 그는 삼촌의 권유로 족구를 시작했다. 삼촌이 소속되어 있었던 서울의 구로 미래족구단에서 운동을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경동나비엔 팀과 연계되면서 기량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이 팀에는 전 한세대학교 감독 임종흔 감독이 있었고, 그의 권유로 한세대학교에서 족구를 배우며 족구에 서서히 눈을 떴다. 축구 선수 출신인 리안은 공 다루는 센스가 좋아 족구에도 금방 적응해 나갔다. 그리고 군 제대 후, 경동나비엔을 거쳐 지금은 직장문제로 천안SKC 일반부에 소속되어 있다. 그에게 궁금한 것이 있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아래는 리안과의 '1문 1답'이다.
Q. 족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앞으로의 목표는?
A. 부상으로 축구를 그만둘 수밖에 없어 낙담하고 있었던 저에게 삼촌이 보여준 족구의 세계는 정말 신세계였습니다. 낙담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던 저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었던 계기였죠. 이곳에서 권혁진, 천유빈 선수와 같은 최고의 수비수가 되는 것을 꿈꾸었습니다. 그래도 일단 지금은 새로운 팀인 천안SKC에서 우수비에 잘 적응하고, 팀에 잘 녹아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물론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겠죠. 그리고 나아가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 족구도 프로팀이 생겨서 축구에서는 이루지 못했던 프로선수의 꿈을 족구에서는 꼭 이루고 싶네요.
Q. 형으로서 동생이 어떤 선수가 되었으면 하는지?
A. 주안이의 데뷔는 저 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 정말 꿈만 같았던 일이었습니다. 주안이의 첫 번째 목표였던 수원삼성에서 데뷔를 했으니 이제 한 단계 더 도약해서 주전선수가 되고, 주안이의 꿈이자 최종목표인 해외 진출을 위해 계속해서 응원할 것입니다. 그래도 무엇보다 앞으로도 축구를 즐기고 다치지 않게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이어갔으면 하는 것이 형으로서 소망입니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국제제전에서 뛰는 모습을 본다면 정말 더 이상의 소원이 없을 것 같습니다.
Q. 우애가 상당히 좋은 것 같은데, 형제끼리 지내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반대로 불화가 있었다면?
A. 제 위에 형이 한 명 더 있어서 총 삼형제입니다. 우애가 좋기는 한데 어린 시절 엄청 싸웠습니다.(웃음) 형제가 돈독해진 이유는 어렸을 때, 매일 운동장에 나가서 함께 축구를 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습니다. 지금도 시간되면 함께 공 가지고 나가서 축구하고는 합니다. 감사하게도 형제끼리 이렇다 할 불화는 없었습니다. 최근에 집에 큰 일이 한 번 있었는데, 그 일 이후 더욱 돈독해 진 것 같습니다.
Q. 혹시 형제들끼리 같이 족구도 하는지?
A. 안 그래도 이 질문은 주위에서 많이 받았습니다. '형이랑 동생에게도 족구 좀 시켜봐.'라고 말이죠. 아무튼 함께 족구를 해보았는데, 형은 안 될 것 같고요(웃음) 주안이는 곧 잘 하더라고요. 나중에 서른 살 정도 되었을 때, 정식으로 시켜보려고 예전부터 슬슬 꼬드기고 있는 중입니다. 개인적으로 프로축구선수 출신들이 족구대회에 출전해 경기하는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네요.
Q.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다면?
A. 일단 이렇게 저와 동생에게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족구 경력이 짧지만 잠시나마 과거 족구를 시작한 순간 부터 현재까지의 시간들을 돌아 볼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니 현재도 그렇고 저에게 항상 감사한 날들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리는 것도 좋지만 그 가운데에 너무나도 좋은 분들을 만난 것이 저로서는 가장 감사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먼저 저를 족구라는 신세계로 이끌어 주신 우리 신동현 삼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삼촌이 아니었다면 족구를 알지도 못 했을 것이고, 지금까지도 계속 낙담하고 있는 시간만 보냈을 것 같네요. 그리고 한세대학교에서 운동을 배우게 해주신 임종흔 감독님, 제대한 이후에는 한세대학교 유니폼을 입고 뛰게 해주셔서 정말 많은 견문을 넓히게 도와주셨죠. 정말 감사드립니다. 또 경동나비엔의 김종원 단장님, 당시 경동나비엔 소속이었는데, 저의 발전을 위해 한세대학교에서 뛰는 것을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기량이 많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아 그리고, 저의 정신적 지주 세훈이 형에게도 감사합니다. 처음 족구를 시작했을 때, 성격적으로 잘 안맞는 부분이 있었는데 유일하게 세훈이 형과는 잘 맞았어요(웃음) 저랑 같이 수비하면서 정말 많이 답답했을 텐데도 화 한 번 안내시고 다독여주시고, 더 알려주셨죠. 지금은 떨어져 지내지만 좋은 관계 유지하고 있고, 서울 올라가면 항상 맛있는 것 꼭 사주시는 좋은 형입니다. 이 외에도 부족한 저를 열심히 지도해 주신 한세대학교 형들, 일세대 모임 회원들, 고향 광명에서 함께 운동한 형님들, 구로 미래족구단, 경동나비엔 선수단 전원, 저를 받아 준 천안SKC팀 선수단, 그리고 운동 열심히 하라고 용품 지원해주신 김종환, 이광재 조이킥스포츠 대표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해준 동갑내기 친구 김상현 니즈원 공격수에게도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성함을 모두 올리지 못하는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프로선수인 동생 주안과는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할 수는 없었다. 현재 주안은 K리그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R리그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이임생 감독이 수시로 직접 몸 상태를 체크하고 있을 만틈 팀에서 아끼는 유망주이다.
혹시라도 K리그를 지금이라도 시작해보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족구인의 동생 수원삼성의 NO.28 유주안으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족구인의 동생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응원할 이유는 충분한데, 형 리안은 직접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잠시나마 이야기를 나눈 것만으로도 인성이 훌륭함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동생이라면 축구실력만큼이나 인성 또한 훌륭할테니 충분히 우리 족구인들이 응원해 줄만한 선수가 아닐까? 물론 기존에 응원하고 있는 팀이 있다면 그 팀을 응원하고 말이다. 나 역시 초록색이 좋다는 이유 하나로 전북현대를 응원하고 있는 우리 아들의 마음을 돌려 함께 수원삼성의 유니폼을 입고 빅버드에서 유주안을 응원하는 그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오늘도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업무가 끝나고 열심히 족구하고 있을 형과 하루 빨리 K리그에 복귀하기 위해 연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동생, 이 두 형제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해 본다.
리안이 주안에게...
어린 시절부터 국가대표에 선발되고 월드컵도 다녀온 모습을 보며 네가 내 동생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 지금처럼 너의 중심을 지키고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너의 길을 가도록 응원하고 기도하고 있을게. 실력을 떠나서 네가 잘하든 못 하든 누가 뭐래도 너는 사랑하는 내 동생이야. 앞으로 다치지 않고 오랫동안 선수생활하고 즐겁게 생활하길 바란다. 파이팅하자! 동생아!
취재에 응해주시고 칼럼쓰는 것을 허락해 주신 유리안-유주안 형제에게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