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얼마전 DVD로 일본에서 발매개시된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의 신작 ' 스팀 보이' 에
관련된 이야길 한 번 해 볼까 합니다. (워낙에 자잘한 추억거리들이 많아서..)
2004년... 참으로 애니팬들에게 있어선 기대에 부풀었던 한 해 였습니다. 일본의 3대거장의 작품들이 모두 동시에 개봉되는 한 해 였으니까요.. 오시이 마모루의 ' 이노센스 ' 오토모 가츠히로의 '스팀보이' 그리고..미야자키 하야오의 ' 하울의 움직이는 성 ' .. 특히나 이들 감독들을 영입한 제작사들 또한 일본의 3대 메이저 제작사 였으니까요..(프로덕션I.G, 선라이즈, 스튜디오 지브리) 하지만, 너무 기대에 부풀었던 탓일까..이 세 작품의 내용은 솔직한 제 심정을 담아 말씀드리자면, ' 최악 '.. 이었습니다. 엄청난 제작비를 투여해 발전시킨 것이라곤 단 한가지, ' 리얼리티 효과 ' 하나 뿐이라 보입니다.
각설하고, 이 중에서도 특히 ' 스팀 보이 '는 제작기간이 무려 7년 반이 걸린 작품입니다. 1996년 하반기 부터 2004년 2월..까지..으...
왜 이렇게 제작기간이 길어지게 되었을까 하는 원인은 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몇 가지만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1. 장기적 제작비 회수 계획
: 오토모의 대표적 작품은 두말할 것 없이 ' 아키라 '를 꼽을 수 있는데.. 1988년 개봉 이후 제작비의 손익분기점을 넘은 것이 1994년 입니다. 내용이 난해하고, 세기말적인 작품 분위기 때문에 초기엔 사람들이 많이 꺼린 작품입니다만, 워낙에..애니메이션의 기술적 완성도가 탁월한 작품이어서 매체 발매를 하는 한 조금씩 조금씩 팔릴 수 밖에 없었죠. 이번에 선라이즈 측에서는 스팀보이 제작 기획을 하면서 초기 제작비용을 약 3-40%정도 미리 할당하고 나머지를 회사의 수익에서 조금씩 지원하는, 플로어링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오토모의 작품은 적어도 5년 이상의 기간을 바라보고 수익성을 확보한다는 방침 때문이었죠.
이것 때문에, 작품의 질을 높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고, 아키라 이상의 리얼리티를 구현해냈지만..그러면 뭐합니까? 정작 중요한 건 내용의 짜임새인데..
CG나 애니메이션에서 리얼리티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한 가지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바로 " 차라리 그럴바엔 영화를 보지 , 뭐하러 이걸 보냐? " 하는 거죠..
여담입니다만, 전 미야자키의 ' 라퓨타 '를 , 약 20년간 몇 백번 이상을 봤습니다. 그래도..아직 찾지 못한 재미를 발견해 내곤 합니다. 요즘 메이저 제작사들이 왜 이러는지 ..그냥..안타까울 따름입니다.
2. 오토모 가츠히로
: 뜬금없는 제목이긴 합니다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생각..안나는군요..
이 사람..만화가 이자 애니메이터 입니다. 캐릭터가 그다지 이쁘진 않지만.. 그림..정말 잘 그립니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게.. 좀 이해하기 어려우실지 모르지만 , 이렇게 이해하시면 될 듯 합니다. 자기가 찍고 싶은 멋진 사진의 구도를 상상할 때, 그걸 바로 한 화면의 그림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겁니다. 사진을 수만장 이상 찍어놓고 연구하지 않으면 절대 손으로 나올 수 없는 능력, 그것이 톱 애니메이터의 능력이죠..
당연히...하부 애니메이터들의 그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선라이즈의 정상급 작화감독들..의 수정도..맘에 차질 않죠. 1998년 선라이즈 입사 당시에 스팀보이 작화감독 중 한 명이었던 스즈카모 지로씨의 ' 에피소드' 를 여기 소개해 봅니다.
스즈카모 : (제작실 문을 힘 없이 열며) " 나 ..그만둘거야 이제 "
제작데스크 : " (쳐다보지도 않고 조롱하듯이)그대는 아시나요~~누구도 듣지 않는다~~는걸~~"
스즈카모 : " .....이거..인사부에 수리시켜 줘 .." (꾸깃꾸깃 접은 한 통의 문서를 건네며)
" 잘 있어. 모두들..신세 많았어..행복해.."
제작데스크 : " (무언가를 보며 꿈적 않고 있음)................"
스즈카모 : " 안녕..." (들고 있던 가방을 가슴에 끌어안고 울먹이며 문 밖으로 나간다.)
제작데스크 : "..........................(일갈하며)잡아 ! "
< 명령 한마디에 앉아있던 수 명의 제작진행담당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며 스즈카모를 육탄으로 덮침>
- 10분 후 어둠속의 회의실-
제작데스크 : " 수법이 교묘해졌군.......날 또 긴장시키다니....."
스즈카모 : " 제발..부탁이야..보내줘...존심 상해서 더 이상 못해먹겠어 엉엉"
제작데스크 : " 보내주라는 말은 잡아달라는 말이고, 잡아달라는 건 뭔가를 해결해 달라는 뜻임을.....이 내가 모르실 줄 아나..? 이번엔 당신 수정지를 찢어버리기라도 했나? 감독님이? "
스즈카모 : " 나..나보구...크린업이나 하면 딱 어울리겠대..그 빌어먹을 영감이..엉엉..."
(이거..작화감독에게는 무엇보다 심한 욕입니다..)
제작데스크 : (스즈카모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자자..진정하고..천천히 이야길 해봐."
스즈카모 : " 스팀성을 기차들이 잡아끄는 장면 스무개 갖고 나 벌써 석달째야..OK를 안 내줘.. 당신두 생각을 해 봐. 쇠사슬이 무슨 고무줄이냐구. 잡아당기는 힘을 전달해 주는건 기차의 가속력인데..그게 끊어져 기차가 관성때문에 앞으로 달려가 부딛히는 건 당연한 거고..기차에 부착되어 있던 쇠사슬은 그 힘 때문에 약간 위로 올라갔다가 구부러지며 떨어지고..그 다음엔 땅에서 끌게 되잖아! 근데...이 영감은 ...공중에서 쇠사슬이 춤을 춘대.......리테이크만 11번 이야.. 미치겠어 정말......."
제작데스크 : " 춤추는 걸 그려주면 되지. 간단하구만 뭐. "
스즈카모 : " ............................"
제작데스크 : " 이봐, 스즈카모 씨. 당신도 이 업계 경력 올해로 벌써 12년째지만, 감독이 누구건
간에 당신은 아직 중간 스탭이란걸 잊으면 안돼. 오토모 감독이 몇 번, 몇 십번 리테이크를 내든 간에 작품의 최종적 책임은 회사와 그 감독이 지는 거야. 아직 당신은 그 책임이란 걸 등에 지고 있진 않잖아. 당신은 작품 하나 잘못되더라도 여기서든,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지만 . 감독에겐 기회..많지 않아. 조금..화가 나고 맘에 들지 않더라도 , 그 깟 프라이드 땜에 일 포기하는 건 역으로 당신 가치를 더 떨어뜨리는 것 밖엔 안돼. 원화 검토 끝나면, 둘이서 술이나 한 잔 걸쳐 보자구. 그럼 ..다 잊어버릴 수 있어. "
스즈카모 : (감동한 얼굴로) " ..____씨 .."
제작데스크 : " 자, 뚝~! 나중에 웃는 얼굴로 봅시다. "
- 스즈카모 돌아간 후 -
제작데스크 : ' 스즈카모씨..미안.. 당장이라도 보내주고 싶은데.. 지금은 업계 작감들이 다 말라버렸어...용서해...'
플라네테스님 애니매이션쪽에 종사하시나봐요. 전에올리셨던 글도 다 읽어봤는데 도움이 되는 글이 많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ㅇㅅㅇ 한국에는 애니매이션 전문 커뮤티니같은게 없는듯해서... 음음.. 그림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몇가지 여쭤볼게 있는데요 ㅇㅅㅇ;; 메일주소좀 남겨주..시면..안될까요?
첫댓글 11번;; (스팀보이가 열받으면 머리에서 스팀도는 그런..?) 하하;
ㅋㅋ 원츄ㅋㅋㅋ
플라네테스님 애니매이션쪽에 종사하시나봐요. 전에올리셨던 글도 다 읽어봤는데 도움이 되는 글이 많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ㅇㅅㅇ 한국에는 애니매이션 전문 커뮤티니같은게 없는듯해서... 음음.. 그림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몇가지 여쭤볼게 있는데요 ㅇㅅㅇ;; 메일주소좀 남겨주..시면..안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