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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곽원섭님
주 안에서
잘 지내시는지요.
님께서
성찬식의 형식에 대하여 질문을 올리신 후,
이제까지 기다려 주심에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졸필의 답글이나마
님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고
님이 궁금해 하며 알고자 하는 것에
도움이 되며 유익했으면 좋겠습니다.
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질문해 주셨습니다.
" "성찬은 몇 번 행하여 갖는가에 그 중요성이 있지 않으며, 또한 성찬을 갖는다면 어떠한 형태로 갖는가에도 그 중요성이 있지 않습니다. 성찬은 이것의 필요성을 가지고 이것을 행하는 성도들이 이것을 행하게 하신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성찬이 갖는 본질적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서 그 인식과 믿음에 있는 것에서 올바르게 행하는 것인가에서 그 중요성이 말해집니다."
이 말씀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최근에 경험해보지 못한 성찬식의 형식을 겪었는데,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질문을 드립니다.
즉, 떡 덩이와 큰 그릇에 담긴 포도주를 준비해서 한명씩 나와서 떡을 떼서 포도주에 찍어 먹는 형식이 성찬식이었습니다.
어떠한 형태로 성찬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에는 이렇게 떡을 포도주에 찍어 먹는 것도 포함되는지 궁금합니다.”
님의 이 질문에서 보듯이, 님은 성찬의 정의라든가, 내용이나, 이것이 갖는 의미라든지에 대하여 알고자 한 것이 아니라, 모교회에서 성찬식이 행해지는 것에서 본 성찬식의 형태에 관한 것이며, 이러한 형태로서의 성찬식이 행해져도 괜찮은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이에 님은 성찬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실 것이라 여깁니다만, 님이 질문한 내용에 필요한 설명을 드리면서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님이 성찬식의 시행에 있어서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그러나 최근에 경험한 것은“떡 덩이와 큰 그릇에 담긴 포도주를 준비해서 한명씩 나와서 떡을 떼서 포도주에 찍어 먹는 형식이 성찬식이었다.”는 것이었으며, 이에 있어서“어떠한 형태로 성찬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에는 이렇게 떡을 포도주에 찍어 먹는 것도 포함되는가?”하는 궁금증을 가졌습니다.”
님이여,
성찬은 세례와 함께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있는 교회가 공적으로 행하는 예식에서 그 중요성을 갖습니다. 여기서 성찬(聖餐)은 ‘주의 만찬’(主의晩餐, Lord’s Supper)의 성격을 갖습니다. 만찬이란 저녁 식사의 자리를 갖는 것입니다. 유월절이 시작되는 날이 저물 때에 유월절 잔치의 만찬을 들게 되는데, 예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그동안 희생되어온 유월절 양의 마지막이 되시는 것에서 새로이 있게 되는‘주의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가짐으로써, 마지막 잔치가 될 만찬의 자리를 갖는 것을 통해서 이제 새로운 날의 잔치가 시작 될 만찬의 식사를 갖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주의 만찬을 떡을 떼어 나눠 주는 것에서, 그리고 잔을 돌리는 것에서 하셨습니다.
이렇게 새롭게 시작되는‘주의 만찬’은 오늘날 교회가 시행하는 것에서 갖는 ‘예식’의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몸으로서의 연합으로 모일 때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음에 있으면서 기쁨과 감사에 넘쳐 음식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행 2:3).
이때 주의 만찬이 성찬의 성격을 띠는 것은 믿음의 형제들이 주님의 식탁을 가지면서 떡을 떼고 음료를 마실 수 있게 된 것이 주께서 이 만찬의 식탁을 가지면서 말씀하셨던“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하시고,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라고 하신데 따라서,“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다.”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주의 만찬’을‘성찬’으로 가져나가는 것은 여기에 있는 떡을 가지고 주께서는 자신의 몸을 말하고자 하였으며, 이 몸을 주님을 따름에 있는 제자들을 위하여 주는 것이라며, 주님의 몸을 드러내 주는 것에 있는 이 떡을 먹음으로서“나를 기념[기억]하라.”라고 하신 것에 있는 것에서입니다. 만일 이것이 아닌 다만 함께 모여서 음식을 먹는 것이라면 이것은 성찬이 아니라 그냥 먹고 마시는 것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떡에서 행했던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교회가‘주의 만찬’을‘성찬’으로 가져나가는 것에서 음료[포도주 잔]를 나누어 함께 마심에 있게 하시는 것에서 주께서는“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제자들이 마시는 음료는 그들을 위하여 흘리는 주님의 피를 드러내어 말해주기 위한 것이라며, 이것을 가지고서 주님의 피로 맺는 새 언약으로 삼는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주님의 죽으심이 갖는 구속 사역과 함께 하는“나를 기념[기억]하라.”에 있게 해 주었습니다(고전 11:20-26).
예수께서는 유월절 잔치의 만찬에 제자들이 있게 하는 것을 통해서 그들의 주님이 되시는 예수님이 그들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하시는 것인지를 행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구약 시대를 통해서 매년 행해져 왔던 유월절 희생 양의 마지막이 되시는 것에서 새로운 것의 시작이 되는 일을 하시는데, 자신의 몸을 제자들을 위하여 주시는 것을 통해서 여기에서 그들을 위하여 흘리는 주님의 피로 새 언약을 맺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이 새 언약 안에 두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는 믿음에 있는 모든 자들이 이 새 언약 안에 들어올 수 있게 하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이 새 언약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언약이 그들에게 가져다주는 은혜인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주님의 피, 곧 언약의 피의 부어주심을 받음에 있습니다(마 26:28).
예수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유월절에 희생될 것이기에, 이것에 앞서 이것이 갖는 구속사적[구원론적]인 의미를 제자들에게 가르침으로 주시기 위해서 떡을 떼어 나눠 먹게 하시고, 음료[포도주 잔]를 돌려 마시게 하는 순서에 따라 행하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주께서 주시는 떡을 먹음에 있고, 주께서 주시는 음료를 마심에 있는 제자들과 앞으로 이들의 복음 전파를 통해서 세워질 교회가 이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떠올리며 주님을 믿는 믿음에 굳건히 있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에 따라서 믿음의 형제들인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교회로 함께 모여서 주님의 죽으심이 준 복음의 진리의 가르침을 받는 것에 있는 것에서도 그리고 함께 나누는 식사를 가질 때에도 이것을 단지 먹고 마시는 자리로만 가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신 주님의 피로 맺어진 새 언약의 백성이 갖는‘주의 만찬’으로 가져나갑니다.
그러한‘주의 만찬’인‘성찬’은 사도 시대의 교회에서는 예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떡을 나눠 떼어 함께 먹고 음료를 돌려 함께 마시는 것은 예식에 따른 순서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믿음의 형제들이, 주님과 연합하여 그분의 몸으로 하나 된 믿음의 형제들이 함께 떡을 먹고 음료를 마시는 식탁의 자리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주의 만찬’이 세례와 함께 성례의 하나가 되어서‘성찬’을 행함에 있고, 그래서 떡을 나눠 떼어 함께 먹고 음료를 돌려 함께 마시는 것이‘분병’과 ‘분잔’의 예식으로 행하게 된 것은 이것이 그리스도의 교회가 공인된 후 예배를 드리는 공적인 처소가 되는 교회당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나와‘(공)예배’에로 들어오게 되면서입니다. 공적인 교회 모임에서의 예배에 세례와 함께 성찬을 행하는 성례전은 예배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이 예배에서 행하는 성찬은‘주의 만찬’에서 가르친 의미를 상징성을 띠는 예식으로 가져나가게 됩니다. 그에 따라서 주의 만찬에서 갖는 먹는 떡이 상징하는 것과 마시는 음료가 상징하는 것을 기념하는 예식을 갖는 것이 되어 왔습니다.
오늘날에서‘성찬’은 이것이 의미하는 바의 상징성을 띠고서 예배의 요소로 가져나갑니다만, 모든 교회가 주님의 교회로 모여 공예배를 가질 때마다 가져나가지는 않습니다. 매주일에 세례와 함께 성찬을 행하였던 그 형식 그대로 유지하고, 따라서 지속해 나가는 교회도 있으며, 매주일에 교회 모임을 갖되 필요에 따라서 세례와 성찬을 행하기도 합니다. 그에 따라서 매월 또는 분기별로, 또는 기타 다른 방법으로 세례와 성찬을 행합니다.
세례와 성찬을 행하는 성례전을 교회가 어떤 방법에 의해서 가져나가든지 간에 성찬은 이것의 이해를 갖는 것에 따라서 로마카톨릭교회는 화체설, 루터파 교회는 공재설, 쯔빙글리의 개혁교회는 기념설, 칼빈의 개혁교회는 영적 임재설 등의 다양한 성찬이 존재해 왔습니다.
칼빈에 의해 세워진 개혁교회는 로마카톨릭교회의 칠성례와 이것의 하나인 성찬을 화체설로 가져나가는 것을 반대하며, 오직 세례와 성찬만을 인정하며 이것이 갖는 의미에 이 두 가지를 행하는 성례전의 성격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성찬은‘분병’과‘분잔’에 의한 예식에서 행하여 왔습니다.
이‘분병’과‘분잔’으로 나누어 행하는 성찬 예식은 지금까지 교회가 가져온 전통이었습니다. 오늘날에서는‘분병’과‘분잔’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가에서는 변화가 있어 왔습니다만, 그래서 교회에 따라서 아주 작은 떡을 통해서, 아주 작은 음료의 잔을 통해서 성찬을 행하기도 하고, 먹음직하게 큼지막한 떡을 통해서, 그리고 큰 음료의 잔을 통해서 성찬을 행하기도 하고 합니다만, 먼저‘분병’을 행하고, 그 후에‘분잔’을 행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님은 다음과 같이 질문해 주셨습니다.
" ‘성찬은 몇 번 행하여 갖는가에 그 중요성이 있지 않으며, 또한 성찬을 갖는다면 어떠한 형태로 갖는가에도 그 중요성이 있지 않습니다. 성찬은 이것의 필요성을 가지고 이것을 행하는 성도들이 이것을 행하게 하신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성찬이 갖는 본질적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서 그 인식과 믿음에 있는 것에서 올바르게 행하는 것인가에서 그 중요성이 말해집니다.’이 말씀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최근에 경험해보지 못한 성찬식의 형식을 겪었는데,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질문을 드립니다. 즉, 떡 덩이와 큰 그릇에 담긴 포도주를 준비해서 한명씩 나와서 떡을 떼서 포도주에 찍어 먹는 형식이 성찬식이었습니다. 어떠한 형태로 성찬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에는 이렇게 떡을 포도주에 찍어 먹는 것도 포함되는지 궁금합니다.”
이 질문에서 님이 궁금해 한 것은, 교회가 성찬식을 시행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성찬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인식과 믿음에 있는 것이며, 성찬식을 어떠한 형태로 갖는가에 그 중요성이 있지 않다면, 그래서 성찬이란 것의 본질에서 벗어난 다른 것인 이런 저런 것에 논쟁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성찬식은 어떤 형태로 행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그러니까 문제거리가 되지 않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실예로 님이 최근에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성찬식의 형식을 겪은 것을 들었습니다. 님은 최근에 겪은 이 경험을 대하면서 이렇게 하는 것에 대하여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성찬식을 이렇게 행해가도 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던 듯 합니다. 그것은 떡 덩이와 큰 그릇에 담긴 포도주를 준비해서 한명씩 나와서 떡을 떼서 포도주에 찍어 먹는 형식의 성찬식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진‘주의 만찬’은 유월절 잔치 음식을 드는 자리를 갖는 것을 따랐을 것으로 보이며, 유월절 잔치에서는 통상적으로 네 번의 잔이 돌려진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떡을 나눠 떼어 함께 먹고 음료를 돌려 함께 마시는 것이 한 번의 순서에 걸쳐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기록이 먼저 떡을 먹게 하심이 나오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마시게 함이 나오는 반면에 누가복음의 경우는 먼저 잔을 돌려 나누게 하시고 또한 그와 같이 떡도 나누게 하셨으며, 다시 잔을 돌려 나누게 하신 것에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마 26:26-28, 막 14:22-24, 눅 22:17, 19, 20 ).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가 공예배에서 갖는 성찬식은 식사를 가져나가는 것에서가 아니라,‘주의 만찬’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를 좇아 예식을 행하는 것에서 한번의‘분병’과 한번의‘분잔’을 행합니다. 성찬예식을 이렇게 ‘분병’과‘분잔’으로 각각 가져 나가는 것에는 이렇게 행하는 외에 다르게 달리 가져나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님이 최근에 겪은 것은 성찬예식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제까지 가져온 이러한 전통적 형식[방식]과는 다른 형태의 것이었습니다. 님이 겪은 바인, 떡 덩이와 큰 그릇에 담긴 포도주를 준비해서 한명씩 나와서 떡을 떼서 포도주에 찍어 먹는 형식의 성찬식이 옳은지 아니면 그른지에 대해서는 시비의 문제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성찬예식을 시행하는 형식[방식]은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께서 님이 최근에 겪은 형식으로 주의 만찬을 가져나갔다면, 이렇게 성찬예식을 시행하는 것에 대해서 그 누구도 의문을 갖고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유월절 잔치의 만찬을 가져나갔던 방식 그대로를 따라서 주의 만찬을 가져나갔습니다. 이 형식을 바꿔 달리 다른 방법으로 굳이 주의 만찬을 가져나갈 이유가 결코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말입니다. 사도들의 복음 전파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고 성찬을 가져나갔을 때에 모여서 기쁨과 감사에 넘쳐 음식을 나누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는 것에서 말해지고 있지, 어떠한 방법으로 떡을 떼어 먹고 잔을 돌려 마셨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단지 믿음의 형제들인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모임을 가질 때 함께 나누는 음식, 곧 식사는 그냥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각각 배고픈 자기 배만 채우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떡을 들어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에 떼어 제자들에게 나눠 주시며 이것이 무엇으로 있는 것인지를 알려 주셨으며, 또 식사 후에 음료[포도주 잔]을 들어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에 돌려 마시게 하면서 이것 또한 무엇으로 있는 것인가 하는 그 의미를 알려주시면서,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를 이루고 있는 믿음의 형제들은 주님의 죽으심을 전파하는 것에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분의 몸으로 하나 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이것에 의한 성찬예식의 참여가 아니면, 한 차례의 순서에 의한‘분병’과‘분잔’을 행하든, 그 이상의 순서에 의해서‘분병’과‘분잔’을 행함에 참여하든, 그래서 몇 차례에 의해‘분병’과‘분잔’의 예식을 가져나가는 것이든지 간에 그것 자체로서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성찬예식이 갖는 떡과 음료가 상징하고 있는 구원의 의미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갖고서 그 인식과 믿음에서 참여를 하는 것이라면,‘분병’과‘분잔’을 각각 나눠서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님이 겪은 바인 떡을 포도주에 찍어서 먹는‘통합형’의 성찬예식으로 가져나간다고 해서 이것이 제대로 행하고 있는 옳은 것인지 또는 잘못하고 있는 그릇된 것인지를 논할 것이 아닙니다.‘분병’과‘분잔’을 각각 시행하는 것이 주님의 뜻을 좇아 옳게 행할 수도 있고, 주님이 뜻하신 것과는 다르게 그릇되게 행할 수도 있으며,‘분병’과‘분잔’을 통합형식으로 시행하는 것이 주님의 뜻을 좇아 옳게 행할 수도 있고, 주님이 뜻하신 것과는 다르게 그릇되게 행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님이여.
그렇기는 하지만,‘분병’과‘분잔’을 각각 시행하는 것에 성찬의 본질적 의미가 달라진다거나 성찬예식의 문제점이 있는 것이 아닌 한에는, 굳이 님이 겪은 형식의 성찬예식을 가져나가야 할 필요성을 갖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러한 형식으로 성찬예식을 갖는 것에서 주께서 가르치시며 알게 하셨던 성찬[주의 만찬]의 뜻을 따르기에 어떤 문제점도 없으며, 이것에서 달리 해야 할 어떤 불편함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그동안 가져온 성찬예식 그대로를 따름에 있는 것이 교회가 지녀온 좋은 전통을 보전하는 것에 있는 합당할 것입니다. 더욱이 말이죠. 각 교파와 교단에서는 성찬예식에 대한 교회 입장이 교회헌법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것에 잘못된 점이 없다면, 그래서 어떤 문제점도 없다면, 그렇다면 공교회의 일치됨과 그 통일성에 의해서 그대로를 따르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교회가 굳이 님이 겪은 바대로의 형식상의 필요성을 갖고서 성찬예식을 가져나가고자 한다면, 그 교회는 그렇게까지 하면서 가져나가는 것을 통해서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정체성의 분명한 인식 속에서 행하여 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님이여.
이상으로 답글을 마칩니다.
본 답글이 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님이 성찬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의해서 성찬에 참여하는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유익이 있기를 바랍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것에 있는 주께 대한 님의 믿음이 성찬을 행하는 형식이란 틀에 의해서 제한되고, 억압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님의 믿음을 성찬예식에서 갖는 형식이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첫댓글 저의 짧은 질문에 성심성의를 다해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떡을 떼서 포도주에 찍어 먹는 성찬예식도 성찬식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고 행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동안 교회가 지켜온 전통적인 형식을 지키는 것이 좋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