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주의보가 내려지고... 눈 예보가 있었지만 우린 약속대로 내장산으로 떠났다
산 안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 하여 내장(內藏)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내장산은 전라북도 남서부 정읍시 내장동과 순창군 복흥면에 걸쳐 있는 높이 763m의 산이다.
금강산과 비슷하여 남금강이라고도 하며, 내장 6봉으로 불리는 신선봉 · 서래봉 · 불출봉 · 연지봉 · 장군봉 · 문필봉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살을 파고드는 매서운 한파를 무릅쓰고 오르며 겨울산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들었다
내장산에 들어서다
전주에서 21명의 회원들이 모여 승합차와 두 대의 승용차에 분승하여 내장산으로 출발하였다
정읍에 가까워지자 적설량이 많아지고, 도로에 눈이 쌓여 운전이 힘들었지만 무사히 내장산에 진입하였다
한산한 경내 셔틀버시 승강장에 내려서 스패츠와 아이젠을 착용하는 등 산행 채비를 단단히 하고 출발하였다
일주문을 넘다
전주에서는 눈 구경을 할 수 없었는데 이곳에는 제법 많은 눈이 쌓여서 길이 미끄러웠다
법(法)과 속(俗)을 가르는 일주문을 통과하는 우리들은 이미 하나가 되어 있었다
너와 내가 하나이며, 산과 우리가 하나이고, 예수와 부처가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눈길을 걸었다
산길로 들어서다
문화재관람료를 3천원이나 받는 내장사의 처사에 불평을 쏟아내며 절을 그냥 통과하였다
산으로 들어갈수록 적설량은 많아지고, 코끝을 스치는 바람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눈 위에 첫발자욱을 내며 겨울산의 속살을 향해 깊숙히 들어가는 동지들의 모습이 성스럽기까지 하였다
겨우살이를 만나다
30여분을 올라가자 아스라이 높은 가지 위에 겨우살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식물은 겨우겨우 간신히 살아간다 하여 겨우살이라고 한다거나
겨울에도 푸르다고 하여 겨울살이라고 불리다가 겨우살이로 되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겨우살이는 주로 참나무 종류의 큰 나무 위 높다란 가지에 붙어서 자라는 ‘나무 위의 작은 나무’로서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까치집이다.
모양은 풀 같지만 겨울에 어미나무의 잎이 다 떨어져도 혼자 진한 초록빛을 자랑하기 때문에 늘푸른나무로 분류된다.
겨우살이는 항암효과 있다고 알려져 채취꾼들의 표적이 되고 있지만 색이 선명한 열매까지 맺혀 있어 신비로웠다
눈을 씻고 간절하던 시간을 떠올렸다
이곳에서는 덕지덕지 가난한 이름마저 벗어버려
몸에 걸칠 쓸쓸함도 두려움도 없지만
바람은 끝내 고요 속에 들지 못하고
새들은 어찌하여 여기 누워 허공을 잊었는가
몸은 아직 세상의 화두에 발을 딛고 있으나
가야 할 곳 적멸을 묻고 싶을 때 겨울 숲에 들어야 하리
지금이 바로 그 때다
그 유혹의 곤두선 소름 끝으로
천수수천 토막이 난 채
벼랑에 선 육신을 치떨어야 하리
혼백이 둬 번은 날아가야 하리.....................................................박남준 <겨울숲에서 흔들렸다> 부분
비어 있는 숲들은 장례 행렬 같다
어떤 숲은 유아세례식 같기도 하지만
이 숲은 텅 비어 있으면서
숨이 막힐 듯이 채워져 있다
어둠이 숲을 채우면 이 숲은 무겁다
어둠이 숲을 채우면 이 숲은 무겁지 않다
숲의 형식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
이 숲에는 요염한 여인이 누워 있다
이 숲에는 성자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이 숲은 차갑지 않다..................................................................이경임 <겨울 숲으로 몇 발자국 더>부분
까치봉을 밟다
드디어 오늘 산행의 첫번째 봉우리인 까치봉(717m)에 올라서서 우리들의 깃발을 펼쳐 들었다
내장산 서쪽의 바위봉우리로 봉우리의 형상이 까치가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까치봉이라 한다.
내장산의 제2봉으로서 백암산을 연결하는 주봉이며, 내장9봉이 까치봉을 중심으로 대체로 동쪽을 향해 이어지면서 말굽형을 이루고 있다.
연지봉에 오르다
까치봉 아래에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서 자리를 물색했지만 몰아치는 눈보라를 견딜 수 없어 다시 걸었다
거센 눈보라와 혹한을 뚫고 40여분을 더 오르자 널찍한 공터가 보이는 연지봉(蓮池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지봉(6570m) 일명 연오봉이라 부르며, 망해봉에서 서남쪽으로 솟아오른 봉우리이다.
이곳에서 발원하는 물은 원적계곡을 타고 금선계곡과 합류하여 서래봉을 돌아 내장호를 이루며 동진강 줄기의 근원이 된다.
점심식사를 하다
우리 일행이 연지봉에 도착하자 먼저 온 산꾼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우리를 보자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양보하였다
이게 바로 산꾼들의 예의이며, 산에서 배운 따뜻한 사랑의 모습이다
도시락 속으로 눈발이 흩날려 쏟아지고, 등이 시려웠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맛있게 먹었다
계단, 계단, 계단...
내장산은 1971년에 백암산 지역과 아울러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크게는 백양사 지구와 내장산 지구로 나눈다.
가파르고 위험한 구간마다 철계단이 놓여 있었는데 오르내리기에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계단의 경사가 너무 가파르고 폭이 비좁으며, 발을 딛는 부분이 매우 좁아서 불평불만을 쏟으며 오르내렸다
얼음 계곡을 가슴에 품고
불덩이 하나 뜨겁게 삼킨 산,
침묵하고 침묵하는 저 산자락이
잡목들 싸리나무 함께 기르는
저 넉넉한 모성의 산자락이
이렇게도 나무들 발가벗겨
혹독한 바람 앞에 몰아세우다니
그 뿌리를 얼음에 파묻다니
기어이 차고 올라가 하늘 한 자락
저토록 선명하게 자를 수 있다니
하늘과 닿은 저 분명한 산자락. ..................................................김완하 <겨울산> 전문
망해봉을 지나다
다니엘이 망해봉에서 여인네들이 거사를 치른다고 보초를 서고 있길래 눈으로만 보고 스쳐 내려왔다
내장산 아래 용산호에서 망해봉 쪽을 올려다 보면 산 자락이 하늘을 향해 누운 여인의 머리 형상과 눈, 코, 입, 가슴선이 선명하게 보인다.
주민들은 이 형상이 백제시대 행상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됐다는 백제가요 정읍사(井邑詞)의 여인을 닮았다며 신기해하고 있다.
겨울산의 매력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겨울산에서는 헛된 욕심이나 사악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봄꿈을 키우고 있는 나무들의 뜨거운 숨결을 생각하면 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텅~ 비어있지만 충만감이 느껴지는 겨울산에 들어가면 산 만큼 커져 있는 나를 만날 수 있다
불출봉에 올라서다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불출봉에 올라서서 손이 시려워 어쩔줄 모르는 마르도니오 친구의 어깨에 기대었다
불출봉(佛出峰, 619m)은 왼쪽으로는 내장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으로 꼽히는 서래봉, 오른쪽으로는 망해봉과 이어져 있다.
사방이 탁 트인 정상에 서면 내장저수지와 정읍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내장산의 여러 봉우리가 펼쳐져 전망이 뛰어나다
예부터 불출봉에 안개나 구름이 끼면 그해 가뭄이 계속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불출암지(佛出庵址)
6.25 한국전쟁 때 완전히 불타버리고 지금은 흔적만 남은 불출암지에 도착하였다
커다란 바위 아래 동굴이 있고, 바위 옆에는 등불을 올려놓았던 자리가 있으며, 굴 앞으로는 널찍한 공터가 보였다
이곳은 고려 광종 26년(서기 975) 하월선사가 이곳의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불출암을 세웠던 자리라고 한다
마지막 휴식을 취하다
커다란 바위 지붕이 바람을 막아주는 아늑한 공간에서 마지막 휴식을 취하였다
시몬의 배낭에서 나온 여러가지 간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하며 우리가 걸어온 험한 길을 더듬어 보았다
살을 에는듯한 추위, 칼 같은 바위 능선, 시야를 가리던 눈보라, 천길 낭떠러지...이게 바로 겨울산의 치명적인 매력이 아닐까?
원적암(圓寂庵)
고려 선종3년(서기1086) 적암대사가 7동의 건물로 창건하였는데 정유재란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전부 소실되었다
1961년 법명스님이 지금의 암자로 개축했는데 초라하고 어설퍼서 을씨년스럽기 짝이없었다
인도로부터 들여온 상아로 제작한 열반상이 유명했으나 이 불상은 1910년 경 일본인에 의해 도난당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에서 아이젠을 벗고 내려갔지만 마르코 회장님은 꽈당~ 넘어지는 바람에 아이젠을 다시 착용하고 걸으셨다 ㅋㅋ
비자나무 숲
원적암 주변에는 수령이 300~500년이 된 비자나무들이 하늘을 덮고 있는데 가을단풍과 어울려 내장산의 대표적인 경관이다.
잎사귀의 모양이 한자의 아닐 비(非)자를 닮아서 비자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나무의 황제라 불리우는 비자나무는 줄기가 약간 위를 향해 자라기 때문에 하늘을 향해 뻗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내장사에 들어서다
인적이 없는 내장산 경내에 들어섬으로써 약 5시간의 산행을 끝마쳤다
내장사는 호남의 5대 명산인 내장산에 자리잡은 선운사(仙雲寺)의 말사이다
한때는 50여동의 대가람이 들어섰던 때도 있었지만, 정유재란과 6.25때 모두 소실되고 지금의 절은 대부분 그 후에 중건된 것이다.
전주로 되돌아와 소나무식당에서 김치찌게외 동태탕으로 하산주를 마시며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첫댓글 감동적이며, 사실에 입각한 산행기가 넘좋습니다. 멋진 눈산행, 올해도 무탈하게 재미나게 다녀 보시게요~~~
눈산행은 역시 내장산이지요
등로가 좀 사납기는 하지만 적설량은 타의추종을 불허하지요
그날의 풍광 다시 꺼내보며,, 즐감하고 갑니다.
역시 겨울은 시린가슴.. 시린 손.. 훌 훌 불며
혹한의 아픔을 견디는 맛,, 정말.. 멋진 산행이었습니다.
바래봉보다 더 멋진 설경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