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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와 『젠드 아베스타』
信天함석헌
이것은 에드먼드 보르도(Edmond S. Bordeaux)의 『아시아의 예술』(The Art of Asia)의 서문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부산 여름 모임에 짜라투스트라의 종교 이야기를 하면서 읽었던 것이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순전히 그의 상상으로 된 것이고, 우리가 가지는 짜라투스트라에 관한 역사적 자료는 오직 배화교(拜火敎)의 『젠드 아베스타』 경전이 있을 뿐인데 그 경전은 본래는 아주 큰 것이었는데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정복했을 때 그만 불타버리고 오늘 남아 있는 것은 그 타다 남은 부분을 모아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에드먼드 보르도는 그 파르시 말의 고전을 직접 영문으로 번역한 것이라고 하는데 글 속에는 현대말로 풀어서 한 것이 많은 줄 안다. 그리고 그의 말에 의하면 짜라투스트라 자신도 또한 갑자기 생긴 인물이 아니고 오래고 오랜 수메르의 신화 전설을 받아 그것을 집대성(集大成)한 것이라고 한다.
메테를링크의 조그만 걸작인 『파랑새』 안의 두 아이 칠칠과 미칠은 파랑새(행복의 상징인)를 찾아 하늘⦁땅 사이를 두루 뒤타며 환상 같은 갖은 탐험을 다하고 난 뒤, 결국은 그것이 자기네 집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이야기는 인류가 여러 천년을 두고 역사의 모든 시대에 있어서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을 상징한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가지가지의 경험을 다 겪어보았다. 그들이 밟아온 진화의 과정 안에는 가지각색의 사회 제도와 풍속과 문명이 있다.
짜라투스트라의 기본적인 태도는 영원히 깨어 지키는 마음을 가지고 생생한 힘과 행복과 지혜를 찾자는 데 있다. 이것은 마호메트교의 견해와 같은 운명론이 아니다. 거기서는 모든 것이 미리 결정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변경시켜보려고 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또 중세기 기독교가 그 특색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같이 현실 세계를 낮춰보자는 태도도 아니다. 거기서는 현세 살림은 장차 오려는 살림의 대기실밖에 되는 것이 없었다. 또다시 그것은 불교나 힌두교의 교리에서 보는 것 같은 혼돈한 세속에서의 초연한 은둔도 아니다. 그러한 사상들에서 보면 이 세상은 아무 가치 없는 현상뿐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또 인생의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현대인이 가지는 것과 같은 피상적이요, 무관심한 태도도 아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영원히 깨어 지키는 능동적 태도를 취했다. 그것은 악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고, 설혹 악이 몰래 기어들어오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싸워서 그것을 부숴버리고야 마는 것이었다. 짜라투스트라를 따르는 사람은 그것이 영웅적인 일생의 임무임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악은 우리 자신의 몸속에, 사회 속에, 온 지구 위, 전우주 안에 막대한 위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또 이 영광스러운, 끊임없는 투쟁에서 자기는 거대한 병기창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 병기창이란 곧 인간과 자연과 우주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온가지 형태의 에너지와 조화(調和)와 지식이다.
우리가 오늘날 세계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볼 때, 우리가 일향 그 영원한 목적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달성하기에는 아직도 조금도 가까워진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 각 대륙에서 날마다 시간마다 전쟁과 혼란과 기근과 불의와 학대와 미워함과 유구한 역사적 가치의 파괴와 무지한 이기주의의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그것이 다 오늘의 세계를 뒤덮고 있는 전반적인 혼란의 징후다. 메테를링크의 『파랑새』의 두 어린이와 같이 이 인류는 그 파랑새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것, 벌써 몇천 년 동안 이미 가지고 있어왔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 파랑새는 인류가 맨 첨의 가장 위대한 백과사전인 짜라투스트라의 『젠드 아베스타』를 받았을 때 이미 그들에게 왔다. 그 우주에 뚫린 영원한 진리는, 인류가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진 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듣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 상태다. 그런데다가 그것은 너무도 단순하고 너무도 분명한 것이기 때문에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또 이 『젠드 아베스타』의 가르침이 인류에게 지금같이 긴요한 때는 없다. 그것을 나는 가장 오랜 배화교의 전설에 따라 설명해보려고 한다. 즉 짜라투스트라의 전설이다.
오래고 오랜 옛날 페르시아의 임금 비슈타스파(Vishtaspa) 왕은 전쟁에서 개선해 돌아오는 길에 짜라투스트라가 그 제자들을 가르치며 살고 있는 곳엘 가까이 오게 되었다. 그는 당시 페르시아 모든 사람 사이에 이름이 높은 이 유명한 인물을 찾아 자기 조정에 있는 여러 어진 사람들이 대답해주지 못하는 가지가지의 어려운 문제들을 그가 대답해주나 물어보기로 결심을 했다. 왕과 그 신하들이 짜라투스트라 있는 곳을 바라보았을 때, 그들은 선생 다와보이는 한 사람이 한 물 커리의 제자들을 데리고 섰는 것을 보았다. 모두들 과원에서 분주히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선생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는 듯싶었다. 왕이 가까이 가자 제자들은 뒤로 물러났다.
왕은 짜라투스트라를 보고 말했다. “위대하신 짜라투스트라 선생이신 줄로 압니다. 자연과 우주의 법칙에 대해 설명하여 주시기를 바라서 왔습니다. 선생께서 과연 우리 모든 백성들이 인정하는 대로이시라면, 이것은 길게 수고하실 것 없이 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나는 오래 머물 수가 없습니다. 방금 전쟁에서 돌아오는 길이고 궁중에는 중요한 나랏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임금을 바라보고 나서 땅에서 밀알 하나를 주워서 그에게 드리며 “이 조그만 밀알 한 톨 속에 전우주의 법칙과 자연의 모든 힘이 다 들어 있습니다.” 했다. 왕은 그 대답을 듣고 매우 놀랐다.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모두 빙긋빙긋 웃고 있는 것 아닌가? 그는 모욕을 당했다는 생각에 노여움이 치밀어 그 밀알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는 짜라투스트라를 향해 “나는 그대를 어진 이요 훌륭한 철인으로 믿었소. 그러나 이제 보니 당신은 완고하고 무지한 사람이구료. 모르는 것을 과장으로 덮어버리려는 것 아니오? 시간을 허비하고 여기까지 온 내가 어리석었구먼”하고는 돌아서 말을 달려 자기 궁성으로 가버렸다.
그것을 보고 짜라투스트라는 그 밀알을 다시 집어든 다음 제자들을 보고 말했다. “이 밀알을 간수해두어야지, 어느 땐가 가서는 왕은 이 밀알이 다시 소용이 될 것이고, 그러면 그때 이 밀알은 왕의 스승이 될 것이다.”
세월은 흘렀다. 왕은 정치와 전쟁으로 성공적인 치적을 올리었고, 호화한 생활 속에 겉으로 보기에는 만족한 살림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밤이 되어 자리에 누울 때면 이상한 생각들이 일어나 그 마음을 괴롭혔다.
나는 호사와 풍성으로 이 화려한 궁중에 살고 있지만 조금만 나가면 무수한 씨들이 바참과 궁핍 속에 살며 주리고 떨고 있다. 왜 나는 임금이 됐을까? 왜 나는 내 나라 안의 모든 사람과 물건을 다스리는 권력을 갖게 됐을까? 왜 씨은 가난하고 고통 받아야 하는 것인가? 나는 이 풍성과 권세를 언제까지나 누릴 수 있으며 내가 죽은 후에는 어떤 일이 있게 될까? 내 권력과 부는 나를 병과 죽음에서 건져줄 수 있을까? 내가 무덤 속에 들어간 다음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 죽어 몸이 흙으로 돌아가서 버러지의 밥이 되면 일이 어떻게 될까? 이 생명에서 무엇이 남는 것이 있을까? 그렇지 않고 죽으면 다여서 아무것도 없을까? 만일 재가 저승엘 간다면 그때도 나는 나일까? 아니면 아주 딴것일까?
이것 말고 다른 생이 만일 있다면 거기서 나는 어떤 일을 당하게 될까? 이승의 부와 권력을 나는 계속 가질 수 있을까? 그렇지 않고 아주 거지가 되어, 머리 둘 곳도 없고, 자연의 갖은 혹독한 고난을 당하며, 내일의 양식을 구할 돈도 없을까? 이승에 오기 전은 내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나는 이 나라에 살았던가, 혹은 다른 나라에 살았던가? 그렇지도 않고 첨으로 이승에 온 것일까?
이 세계는 어떻게 있게 됐으며 생명이 시작되기 전엔 무엇이 있었을까? 우주가 창조되기 전에는 무엇이 있었나? 우주는 누가 창조했나? 그것이 하나님인가?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을까?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 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영원은 있나?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생각할 수 있을까?
이런 따위 의문 때문에 왕은 괴로운 밤들을 지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밝히는 일이 많았다. 그 의문에 대답을 해주는 사람은 온 조정안에 한 사람도 없었고, 반대로 짜라투스트라의 명성은 더욱 높아만 갔다. 세계 각 나라에서 제자들이 몰려오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왕은 아무래도 누구보다도 더 잘 자기 문제에 대답해줄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됐다.
그래서 자기의 교만한 마음을 누르고 값진 보물을 실은 한 무리 대상과 사자를 파견하면서 오기를 요청하는 글을 짜라투스트라에게 보냈다. “내가 젊었을 때 깊은 생각 없이 성급히 존재의 큰 문제를 몇 분 안에 대답해달라고 했던 것은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이제 그전과는 달라져서 불가은한 것을 원치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우주의 법칙과 자연의 힘들을 알고 싶다는 깊은 관심은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젊었을 때보다도 더합니다. 내 궁으로 와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실 수가 없으시거든 제자 중 가장 어진 분으로서 나의 그 문제에 대해 대답해줄 수 있는 이를 꼭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얼마 후 그 대상들과 사자들은 돌아와서 복명하기를, 짜라투스트라를 만났는데 그는 왕께 감사하며 보냈던 보물을 다시 돌려주면서 하는 말이 자기 같은 동산지기에게는 그런 보물은 소용이 없다고 했고, 그러나 그 쌌던 껍데기만은 추운 겨울나무를 싸주는 데 쓸 수 있으므로 두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더라고 했다. 그리고 그뿐 아니라 짜라투스트라는 나뭇잎에다 싼 선물을 임금님께 보내드리면서 말하기를 이것이 자연의 여러 가지 힘과 우주의 법칙에 대해 임금님께 대답을 해드릴 스승이라고 아뢰라고 하더라고 했다. 짜라투스트라의 말은 이러했다. “저는 제자 중 하나를 보내는 것이 아니오라, 생명의 모든 법칙에 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제게 가르쳐주신 바로 제 스승님을 보내드리옵니다. 제 스승님이 기꺼이 가르쳐드리듯이 임금님께서도 기꺼이 배우실 줄을 굳게 믿습니다.”
그 말을 듣고 왕은 그 스승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사자는 거기 대한 대답으로 그 나뭇잎에 싼 것을 드렸다. 왕이 그것을 펴보니 그 안에는 전에 짜라투스트라가 자기에게 주었던 그 밀알이 들어 있었다. 왕은 그 밀알을 보고 어리둥절해서 필시 그 안에는 어떤 신비로운 마술적인 것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 그것을 황금상자 속에 넣어서 자기 보물을 두는 속에 감추어두었다. 그리고는 매일같이 그것을 열어보면서 어떤 기적이 나타나서, 자기가 알고자 하는 모든 것을 가르쳐줄 어떤 물건이나 사람으로 변해 나타나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몇 달이 지나도 아무 변화도 없었다. 마침내 왕은 참다못해 터졌다. “짜라투스트라라는 자가 또 나를 속였다. 그놈이 나를 농락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는 내 물음에 대답할 자격이 없는 놈이다. 그놈이 아니고도 나는 내 대답을 찾아내고야 만다는 것을 내가 그놈에게 보여 주고야 말 것이다.” 그래서 왕은 세계 각지에서 제자가 찾아든다는 인도의 철인 쳉그레가챠(Tshengregacha)에게 대상들을 보내었다. 그리고 그 대상들과 함께 전에 짜라투스트라에게 보내었던 사자들과 찬란한 보물들도 보냈다.
여러 달 후 그 사자들은 인도로부터 돌아와서 임금께 복명하기를 그 철인은 임금의 스승으로 오기를 쾌히 승낙했고, 이제 멀지 않아 이 도성에 도착할 거라고 했다. 왕은 기뻐서 그를 환영하는 큰 잔치를 차리라 명령을 내리고, 그가 도착하자마자 그 먼 데서부터 온 수고를 진심으로 치하했다.
그런데 쳉그레가챠는 왕을 보고 말하기를 “저를 스승으로 대해주시옵는 것은 큰 영광입니다. 그러하오나 솔직히 아뢰어서 제가 귀국에 온 것은 무엇보다도 짜라투스트라를 뵙기 위해서이옵니다. 그의 굉장히 높은 소문을 저는 듣고 있습니다. 그를 이렇게 가까이 두시면서 왜 저를 부르셨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사옵니다. 그는 물론 저보다도 더 잘 말씀해드릴 것입니다” 했다. 그러자 왕은 그 밀알이 들어 있는 황금 상자를 내놓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짜라투스트라에게 나를 가르쳐줄 것을 간청했소. 그런데 보시오, 이것이 그가 내게 보내준 것이오. 이것이 내게 우주의 법칙과 자연의 힘을 가르쳐줄 스승이라는 거요. 그러니 우습지 않소? 그래 선생 같은 위대하신 분도 짜라투스트라가 이런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리라 생각을 하실 수 있습니까?”
쳉그레가챠는 한참 동안 그 밀알을 들여다보았다. 그가 명상을 하고 있는 동안 온 왕궁은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는 몇 달을 걸려 여기까지 온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러리라고 믿었던 짜라투스트라가 참말로 위대한 스승이란 것을 이제 깨달았습니다. 과연 요 조그만 밀알은 우리에게 우주의 법칙과 자연의 힘들을 가르쳐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 자체 안에 그것들을 다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왕께서 만일 마음을 괴롭히는 중대한 문제에 대한 대답을 정말 알기 원하신다면, 그래서 지혜와 깨달음 안에서 자라시기를 원하신다면, 이 밀알을 금 상자 속에 가두어두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대왕께서 만일 이 작은 밀알을, 그것이 본래 그 속에서 나온, 저 땅 속에 심으신다면 그것이 흙과 비와 공기와 해⦁달⦁별의 빛과 접촉을 하는 동안 그것은 제 속에도 하나의 우주를 가지고 있는 듯이 점점 자라 크기 시작을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대왕께서도 만일 지식과 깨달음에서 자라시기를 원하신다면 이 대왕의 인위의 궁실을 떠나 대왕의 동산으로 나가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거기서 대왕께서는 모든 자연과 우주의 힘, 즉 만물의 궁극에 가까워지실 것입니다. 땅 속에 심기운 씨를 향해 무진장의 에너지의 근원이 끊임없이 흘러들 듯이, 그렇듯이 지식의 이루 헬 수 없는 근원이 대왕을 향해 열리어 흘러들어, 마침내 대왕께서는 자연과 살아 있는 우주와 하나가 되게 될 것입니다. 대왕께서 만일 이 씨의 자라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신다면, 대왕께서는 그 속에 불멸의 신비의 힘이, 즉 생명의 힘이 있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만일 더 오래도록 기다리신다면 대왕께서는 그 곡식 알은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고, 그 대신 하나의 큰 식물이 서서 모든 장애와 방해를 이기고 점점 더 높이 자라는 것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속에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돌을 만일 공중에 던진다면 그것은 다시 땅으로 떨어져 내려올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것이요 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는 식물로 하여금 자라고 또 자라 죽음을 이기게 하는 그 신비의 생명의 힘이 없습니다. 종자 하나가 아구를 트는 순간에는 아니 그뿐 아니라 식물이 햇님을 향해 자라는 찰나마다 거기는 죽음에 대한 승려가 있습니다.
“다 옳은 말씀입니다.” 왕은 대답했다. “그렇지만 식물은 결국은 시들어 죽어 땅 속에 썩고 말지 않습니까?”
철인은 대답했다. “그렇지만 아닙니다. 하나의 창조적인 활동을 마치어 개개마다 당초의 것과 같은 몇 백의 알로 변하지 전에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조그만 곡식알은 하나의 식물로 자라는 동안 제 모양을 잃는 것이고, 대왕께서도 자라면 자람에 따라 어떤 다른 사람으로 변합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큰 진리도 겉으로 보기에는 사라져 없어지는 듯이 아주 다른 무엇으로 변하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다만 보다 더 큰 형체로, 마치 한 알 대신 수백 알이 되듯, 나타나기 위해서입니다. 대왕께서도 어떤 날 가서는 지금의 몸으로 계시기를 그치지 않으면 안 되는 날이 옵니다. 그리하여 보다 풍성한 인격이 되셔야 합니다. 생명은 언제나 보다 많은 생명을 창조하고, 진리는 언제나 보다 충만한 진리를 창조하고, 씨은 언제나 보다 더 많은 씨을 창조하는 그 법칙을 따라서 그렇게 되셔야 합니다. 이것이 밀알에 의하여서 대왕의 문제에 대해 주어진 하나의 대답입니다. 그 의미는 모든 것은 운동 속에 있어서 끊임없이 변하고 자라고 있다는 것, 그리고 생명과 그 밖의 모든 만물은 서로 반대되는 두 힘 사이에 있는 싸움의 결과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대왕께서 만일 대왕의 동산으로 나가셔서 흙과 비, 하늘과 해⦁별들을 주의해 들여다보신다면 그것들은 그런 종류의 더 많은 진리를 가르쳐드릴 것입니다. 밀알은 과연 한 위대한 스승입니다. 그것을 보내주신 데 대하여 우리는 짜라투스트라에게 감사하여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각가가 돌아가 쉬고 밝은 날에는 짜라투스트라를 향해 길을 떠나기를 제의합니다. 그리하여 그런 것들을 더 많이 그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그는 대왕의 마음을 괴롭히는 모든 일에 대하여 알고 싶어하시는 것을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저도 그의 지혜에서 유익을 얻을 것이 많을 것입니다.”
왕은 쳉그레가챠의 말에 크게 감동되어 그의 제의에 기꺼이 동의했다. 며칠 아니 되어 그들은 짜라투스트라의 동산에 이르렀다. 그를 보자 곧 그는 자기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그 방법을 깨달았다. 그의 단 하나의 책은 ‘자연’이라는 것이었고, 그는 이것을 제자들이 스스로 읽도록 가르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방문객은 짜라투스트라의 동산에서 또 다른 큰 진리를 배웠다. 즉 목숨과 일, 공부와 여가는 하나라는 것, 또 살아가는 올바른 길은 간소한 자연적인 생활, 곧 창조적인 생활이라는 것이었다. 그 창조적 생활 안에서는 개인의 성장이란 것이 단 하나의 총체적인 원동력이다. 그들은 그 동산에서 일년을 지내며 자연의 큰 책에서 존재의 법칙, ‘생명’의 법칙을 읽기를 배웠다. 기한이 되자, 왕은 자기 성으로 돌아갔고, 짜라투스트라에게 그의 위대한 가르침의 알짬을 조직적으로 써주기를 간청했다. 짜라투스트라는 그대로 했고, 그렇게 하여서 이루어진 것이 『젠드 아베스타』(Zend Avesta)의 성전인데, 왕의 명령으로 그것은 페르시아의 국교로 제정이 됐다. 그 동안에 쳉그레가챠는 인도로 돌아가서, 시인이요 철학자인 그는 짜라투스트라의 동산에서 얻은 모든 것을 요약하여 아름다운 시를 엮어냈다. 그것이 또 다른 하나의 동양의 성전인 『리그 베다』(Rig Veda)이다.
페르시아는 짜라투스트라의 깊고도 단순한 교훈을 지키는 동안, 그리고 그 씨알들이 젠드 아베스타교훈에 따라 간소 자연한 창조적 살림을 하는 동안 점점 굳센 나라로 자라 위대한 국민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제국들이 다 그러했던 것같이 페르시아 사람들이 자기네의 간소한 족장(族長)제도의 살림을 떠나 지나친 부와 권력으로 게으름에 빠졌을 때 그 새로 일어나는 군국주의 나라의 무력에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그 바닥을 이루었던 정결과 간소의 생활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것이 세계 역사를 통하여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바퀴의 돌아가는 현상이다. 개인이나 국민이나 그 운명은 언제나 그 개인 또는 국민이 여러 가지 자연의 힘들과 또는 생명과 우주의 법칙과 어느 만큼 조화를 이루고 있느냐 하는 그 정도에 따라서 결정이 된다.
부산모임 1977. 9월 61호 씨알의소리 1977, 9월 67호
저작집30; 15- 271
전집20; 19- 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