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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여행은 항상 나의 유럽여행의 로망이다. 50여차례 유럽 방문 중 10여차례 이상이 알프스 여러 지역의 방문 기록이었고, 그 중 서너 차례는 융플라우(Jung Frau), 체르마트(Zermatt)의 마타호른(Matterhorn), 프랑스 알프스의 몽브랑(Mont Branc) 등 일부 구간을 적어도 한 두 차례 씩 트레킹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도 항상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인 것이 바로 이태리-오스트리아 티롤(Tirol)지역의 알프스 돌로미티 때문이었다. 드디어 나이 들어 체력이 고갈되기 전에 동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로미티 트래킹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화룡정점의 마지막 그림을 장식하는 기분이다.
돌로미티는 일반 관광여행사의 패키지 여행 프로그램에는 거의 없고, 지역의 크기도 제주도의 3배 가까운 크기에 험준한 산맥군과 울창한 산림지대인데, 대중교통 시스템도 아주 불편한 곳이어서 접근이 쉬운 편이 아니다. 이 아름다운 알프스를 빼고는 알프스를 마스터했다고 할 수도 없다. 3주간 중 알프스 여행에 일주일을 시간 배당하고, 인터넷과 유럽 알프스여행 책자 등을 여러가지 사전 정보를 연구하여 동선 일정을 짰다. 전문 산악인이나, 이 지역 여행 가이드의 동영상 비디오도 구하여 시청하고 나름 내 체력에 맞는 best plan을 마련해본다. 한 일주일 렌터카를 하여 운행하고, 명소를 방문하고, 좋은 호수가의 호텔에 숙박하고, 자유롭게 이동하면 좋겠지만, 렌터카 대여가 65세 나이 제한에 걸려 몇 군데 online 예약에 실패하니, 자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도 8월 성수기 시즌 이후라서 움직임이 만만치 않다. 교통정보도 말처럼 쉽지 않고, 버스 운행 간격도 드물고, 트레킹 후 마지막 케이블 카 나 버스편을 놓치면 높은 산길을 걸어서 내려오는 최악의 상황도 고려해야한다. 그리고 70 중반을 넘어가는 나이에 몇 차례 트레킹을 약간의 불편한 무릎 사정에도 불구하고 과연 사고 없이 해 낼 수 있을까 내심 걱정도 해보았다. 그러나 내 여행의 제일 원칙 <일단 저질러 보고 걱정은 나중에 하자>를 동원하기로 했다.
돌로미티는 북부 이태리와 오스트리아 국경 지대 티롤(Tirol) 지방의 험준한 돌무더기 산과 울창한 나무들 사이 사이에 이따금 초원과 작은 마을이 보이는 험준한 지역이다. 3천메타 급 고봉 산맥군이라 여름에도 설산을 머리에 지고 있다. 지역이 방대하다 보니 돌로미티는 크게 동부 돌로미티와 서부 돌로미티로 나눌 수 있다. 동부의 중심 도시는 코르티나 담베초이고 서부 지역은 오르티세이 이다. 동부와 서부 어느 한 곳도 포기할 수 없으니 6일을 반반씩 쪼개서 동선을 잡는다.
렌트 카 없이는 외곽 지역의 호텔 숙박도 불가하니 양 도시의 중심 지역에 호텔을 선택하고, 등정할 명소의 시간 계획을 세웠다. 코르티나는 인구 8천명에 최고봉 3200M의 크리스탈 산과 여러 고봉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과거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작은 마을이다. 여기를 대중교통으로 접근하려면 베네치이(Venice)를 출발하는 직행 버스를 타야 한다. 시실리에서 항공으로 이동하여 베네치아에서 하루 한/두편뿐인 직행버스를 무려 5-6시간을 기다려 코르티나 행 버스를 타고 도착했다. 이 마을에서의 주 target는 삼봉산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Tre Cime 산정을 일주하는 4-5시간 트래킹으로 10-12킬로의 험한 산길을 걸어 일주하는 것이다. 체력의 한계를 느끼면 한 두시간 걷고 돌아오는 방법도 있다. 나무는 전혀 없고 석회암 돌무더기 고봉을 둘러싼 낭떠러지 산악 중턱을 걷는 트레킹 길이다. 비교적 완만한 경사이지만, 숨차는 고개길의 오르막 내리막이 혼합되어 좀 괴롭히는 산길이다. 고지대의 오솔길 수준이라 낭떠러지 계곡이 아득하게 밑으로 보이지만 한눈을 팔 수가 없다.
이 5시간 여 트래킹은 이 번 여행의 high light 이기도 하다. 사전조사와 호텔에서 상세히 파악한 버스 이동편을 환승 이용하여 트레킹 출발점인 아로운조(Arounzo) 산장에 도착했다. 이 지역 평균 높이가 2500 M 정도의 고지인데, 세 개의 산장을 순차적으로 거쳐 산정상 둘레를 일주하는 트레일이다. 마침 버스에서 만난 일본에서 온 68세의 할머니를 말동무로 전 코스를 같이 걸었다. 오사카 출신인 자그만한 체구의 요시무라 할머니는 전직 교사 출신 은퇴자로, 영어도 잘 구사하고, 전세계 주요 명승지를 혼자서 답사한 맹렬 여성이다. 멋지게 인생을 사는 분 같다. 나 보다 더 잘 걷는다. 트레킹 산길이 험준한 석회암 산길이라 나무는 전혀 없고, 한쪽에는 천길 만길 절벽이라 한눈 팔다가 절벽으로 구르면 오직 헬리콥타로만 구조가 가능하니, 걷는 내내 바짝 신경을 써야 한다. 트레 치메 (Tre Cime)라는 명칭은 이태리어로 3개의 봉우리 라는 뜻으로 최고봉이 3003M, 두번째가 2972M, 세번째가 2856M의 3개 봉우리 둘레를 일주하는데, 마지막 산장은 로카델리 산장으로 1차 세계 대전 때 오스트리아와 이태리가 산정에서 전쟁을 치른 곳이다. 아직도 전쟁 때 개발한 등산길이 남아있어 이곳을 걷는 고난도의 트레일도 남아있다. (이 고난도 트레일만 완전무장으로 행군하는 특수 프로그람도 있다). 로카델리 산장에 도착하니 여기의 숙식 팀도 있고, 음식 주문 등산객도 순서가 밀려 있어 나는 간단한 빵 한조각과 따뜻한 카푸치노 커피 한잔으로 몸을 녹이고 후반 남은 등반길에 나섰다. 여기부터는 오르막 내리막 길이 심해 사람을 좀 괴롭힌다. 돌아갈 수도 없어 오직 전진뿐이다. 언제쯤 트레킹이 끝나나 걱정도 하면서 묵언수행이다. 간혹 잔설도 보이고, 작은 빙하 호수도 보인다.
이번 트레킹에는 한국에서 알프스로 미리 준비해간 만원짜리 중국제 등산 스틱의 도움을 단단히 받았다. 전 코스 순회 길을 중간에 포기할 수도 없어 고생 끝에 5시간 반 만에 주파하였더니 감개무량하다. 언제 이 같은 트레일을 또 걸을 기회가 있을까 싶어서 피곤한 무릎에 항가리에서 구입한 무릎 통증 완화제 연고의 도움도 받은 것 같다. 무사 완주기념으로 어렵게 코르티나 마을로 돌아와서 일본 할머니에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아쉬운 이별을 하니, 오사카로 꼭 여행오면 저녁 대접하겠다고, 연락처를 준다. 오사카 갈 일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즐거운 만남이었다. 젊은 중년 여성이면 더 좋겠지만.
트리치메 트레킹으로 하루를 잡아먹고, 다음날 두번째 목적지 친퀘토리 (오봉) 방문을 교통정보를 호텔에 물어보니 대중교통 연결이 원할치 않고 너무 멀어서 아쉽지만 포기하고, 서부 돌로미티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코르티나로 오는데 베네치아에서 버스 대기시간 손실이 너무 많아서 친퀘토리 트레킹을 포기하니 아쉽기 그지없다. 그래도 대안으로 웅장한 산맥으로 둘러싸인 코르티나 마을 도심 거리를 끝에서 끝까지 산보를 하면서 주변 경치와 상점가 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그림의 떡이지마 등산복 차림의 적토마 엉덩이의 금발 중년 여인도 자주 눈에 띈다. 외로운 산길에서 득도를 했지만 속세에 내려 오니 원점으로 회귀한 건가?
동부 돌로미티에서 서부 돌로미티의 중심도시인 오르테세이까지 대중교통을 알아보니, 시즌 아웃이라 전혀 버스가 없다는 정보다. 결국 부득이 버스도 없고 하여 택시를 임차하니 200유로 거금이다. 비상금 다 털어 어쩔 수 없어 임차하여 한시간 반을 달려 오르티세 마을에 도착하여 호텔에 여장을 풀고, 오늘부터 3개의 좀 짧은 트레킹을 나선다. 대부분이 케이블카나 후니쿨라, 등산열차로 200-2500 고지로 오르면 아름다운 평지에 왕복 2시간짜리 트레일이 전개된다. Alp di Siusi는 산정에 케이블 카로 2005메타 고지에 오른 후 아름다운 초원길을 걷는다. 청정한 공기에 알프스의 산군들을 눈에 담으며 묵언수행을 하는 정겨운 시간이었다. 건너편 산자락에 뭉게 구름이 걸쳐 있으니 구름위의 산책이다. 다음날은 오전은 세체다(Ceceda) 산정으로 오른다. 여기도 리프트로 2000 고지에 오르니 대피소가 나오고 트레일 길이 시작되는데 여기는 처음부터 온통 눈밭이다. 아이젠도 준비 못했고, 엇그제 트레치메 트래킹을 마치고 잘 써먹은 등산 스틱을 호텔에 두고 온 탓에 눈길에 좀 고생을 했다. 두 시간 어려운 발걸음이 아름다운 주변 설산풍경으로 상쇄했다. 칼 같은 바위 정상이 너무나 아름다워 비디오 녹화로 아낌없이 담는다.
하산 후 호텔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휴식으로 체력을 보충한 후 오후에는 싸스룽고 고지에 오르는 후니쿨라로 산정에 오르니, 여기에도 구름위의 평탄한 트레일이 전개된다. 무념무상으로 두시간 트레킹을 하고 마지막 후니쿨라 하강 시간에 맞추어 마을로 내려오니 시원한 맥주가 이태리 정통 피짜와 스파게티가 기다린다. 동부와 서부 돌로미티를 모두 욕심낸 반면 렌터카가 없다 보니 시간 부족으로 몇 군데 아름다운 호수 둘레길을 걷지 못한 게 좀 아쉽다. 차가 있으면 한 일주일, 없으면 열흘 정도 기간이 있으면 주요 명소를 다 탐방할 수 있을 것 같다. 체력이 받쳐 주는 젊은 세대라면 보다 긴 트레일 코스를 골라 3박4일 내지 4박5일 full로 산장에서 숙박하고 트레킹하는 것도 좋을 거 같으나, 나이든 세대에는 장거리 코스는 무리일 것 같다. 제일 좋은 방법은 이번처럼 여러 유명 코스의 트레일을 골라 케이블카나 등산열차, 후니쿨라로 고산지대에 오른 후 매번 2-3시간 평탄한 길을 걸어 가는 것이다. 걷는 중 만나는 배낭을 맨 여인들과 하이 하고 나누는 인사도 정겹다. 산악자전거 팀도 가끔 보이고, 개를 데리고 산길 고봉을 걷는 사람도 보인다 개의 시각에서 보면 한마디로 개고생이다.
알프스 여행의 마지막은 오르티세이에서 또 다른 서부 돌로미티 지역의 거점 도시 볼차노(Bolchano, 독일명은 Bozen)로 이동하여 이 도심 중심가를 둘러보는 것으로 마감하기로 했다. 티롤 지방은 모든 거리와 지명이 이태리와 독일어가 병기되어 있다. 티롤 지방이 오스트리아와 이태리의 국경 지대인 이유에서다. 오르티세이 호텔에서는 숙박객에 버스 무료 승차권을 제공받았는데, 볼차노까지 한 시간 거리의 시외버스에도 사용 가능하였다. 관광과 교통을 잘 연계시킨 관광서비스 시스템이었다. 기차를 기다리는 두시간 여유시간에 볼차노 거리를 둘러보고 여기서 마지막 행선지인 인스부르크로 연결되는 기차로 두시간 걸려 도착하였다. 도시 이름이 인 강의 다리라는 뜻으로 비행장도 알프스 고봉 산맥 사이로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고, 하얀 눈이 덮힌 산들이 도시 전체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중세부터 무역거래의 중심지이고, 티롤 주의 주도로 인구가 12만 정도이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본거지로서도 유명한 도시이다. 겨울 스키 시즌이 더 붐빈다고 한다.
이 도시 중심은 마리아 테레사 여왕의 거리로 유명하다. 마지막 남은 힘을 이 거리를 산책하면서 도심건물과 주변 알프스 산맥 그리고 사람구경을 하면서 마무리한다. 1964년과 1976년 두 차례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제법 규모가 큰 도시이자 휴양지로 유명한 도시이다. 마리아 테레사 거리에 자리한 중국 광동요리 식당을 발견 3주간 익숙한 서양음식을 매운 핫 앤 샤우어 스프와 얼큰한 중화요리로 달래니 몸에 약간 생기가 돈다. 마지막 일정으로 일박하면서 짧은 체제가 아쉽지만 예전부터 한번 꼭 와 보고 싶던 도시라 거쳐 가는 것 만도 다행이라 싶다. 인스부르크는 북쪽에서 기차나 버스로 돌로미티로 연결되는 거점도시이다. 인강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세찬 흐름의 강물에 3주간의 온갖 시름을 흘러 보낸다. 다음날 알프스 연봉 사이의 아담한 공항을 날아오르면서 눈 덮힌 산속의 공항을 떠 올라 귀국편의 대한항공이 연결되는 비엔나로 날라간다. 이번 여행에서 비엔나만 세번째 방문이어서 마치 제집 드나드는 것 같다. 크림트(Klimt) 그림과 비엔나 콘스트 홀의 음악회의 대형 화면이 즐비한 비엔나 공항 내부의 벽면 비디오를 간간히 보면서 귀국편 비행기를 기다린다. 길지만 참 즐거운 알프스 여행길이었다. 언제 또 다시 내 사랑 알프스로 날아와서 걸을 수 있을지 상념을 뒤로 하고 여행을 마감한다. (2022. 9.29).
첫댓글 overtourism을 피해서 다행!
다음에는 종량성님이 가실거지예?
요새 유럽은 관광객이 두세배, 인파가 몰려 트레비분수도 보기 힘든다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