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夜於池上作(월지어지상작)
이건창(李建昌:1852~1898)
본관은 전주. 자는 봉조(鳳藻), 호는 영재(寧齋)· 명미당(明美堂).
정제두(鄭齊斗)의 양명학을 계승한 강화학파의 문인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자결한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철저한 척양척왜(斥洋斥倭)로 일관했다.
강위· 김택영·황현 등과 교분이 두터웠다.
한말의 大詩人인 김택영이 우리나라 여한구대가(麗韓九大家)의 한 사람으로 이건창을 뽑았다. 기사문(紀事文)에 능했으며, 글씨도 뛰어났다.
문집으로는 『명미당집』 과 『당의통략』이 있다.
달이 좋아서 잠을 못 이루고
月好不能宿 월호불능숙
문을 나서 작은 연못에 갔네
出門臨小塘 출문림소당
연꽃은 고요히 이미 져버리고
荷花寂已盡 하화적이진
오직 나에게 연꽃 향기만 들려오네
惟我能聞香 유아능문향
바람이 불어서 연잎을 뒤집으니
風吹荷葉飜 풍취하엽번
물밑에 별 하나가 뜨네
水底一星出 수저일성출
손을 넣어 만지려고 하니
我欲手探之 아욕수탐지
푸른 물결 찬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드네
綠波寒浸骨 녹파한침골
*
강화에 가면 천연기념물인 사기리 탱자나무를 보고
맞은편에 이건창 선생의 생가인 ‘명미당’을 들인다.
나의 오랜 습벽 중에 하나가
집 뒤란으로 해서
산을 둘러보는 것이다
집 뒤로 오래된 무덤들이 있고
봉분이 약간 허물어지고 풀도 듬성 자란 것이 마음이 아팠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병인양요 때 강화에서 자결한 조부 이시원 선생의 묘라고 한다.
강화도는 단군의 얼과 민족의 혼이 깃든
구석구석마다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노천(露天) 박물관이다.
갈 때마다 새로움을 주는 특별한 곳이다.